병오년 새해 우리 경제의 최대 변수는 고(高) 환율이다. 2025년을 짓눌렀던 대통령 탄핵과 대선, 관세협상과 같은 대외적인 불확실성은 해소됐지만, 우리 국민과 기업, 정부는 뉴노멀로 부상한 고환율 패닉과 힘겨운 싸움이 노정돼 있다. 필자가 연말에 만났던 재계 인사들도 “달러당 1500원대를 상정하고 경영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 현지 투자가 늘면서 수출 채산성 상승이라는 호재보다는 원자재 수입 비용 증가라는 악재 요소가 더 커졌다는 우려다.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TF를 구축하고 수시로 구두개입성 발표를 내놓고 있지만 글로벌 자산시장의 흐름에 인위적으로 제동을 거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내 기업과 서학 개미의 해외 투자가 계속 늘고 있는데다 한미 금리차에 따른 자본 유출도 당분간 변수라기보다는 상수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방향성이다. 투자자와 기업, 시장은 불확실성을 극도로 꺼려하지만 방향성이 보이면 충분히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학습효과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헤지를 위해 가입한 파생상품(KIKO)에서 약 3조원대 환차손을 입고 줄도산했다. 당시는 리먼브라더스 파산에 따른 돌발 변수로 환율 폭등이 단기간에 진행됐지만 최근 외환시장은 구조적이고, 점진적인 방향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때와는 다르다는 분석이 더 많다. 역발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달러 유출과 살인적인 고금리, 대규모 실업 사태가 속수무책으로 전개됐지만 기업-금융 구조개혁과 글로벌 스탠다드 도입으로 경제 체질을 확 바꾸는 효과도 거뒀다. 고환율로 수출 채산성이 개선되고 경상수지가 단순에 흑자로 전환하는 반사이득도 누렸다.
과거 고환율 위기 때와는 달리 지금은 우리도 1조달러가 넘는 대외 순자산을 보유 중이고 외환보유액도 세계 9위 수준인 4300억달러를 확보하고 있다. 해외로 나가는 국내 관광 수요를 억제하고 역으로 해외 관광객 유입으로 내수 진작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엔저 효과로 열도를 방문한 관광객이 연간 4000만 명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그 덕분에 초고령화에 신음하던 일본의 지방 도시들이 속속 새로운 관광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당국의 불안감이 과도하게 노출되면 오히려 투기 세력에게 빌미만 제공할 수 있다. 서학개미 투자 과세나 국민연금 동원령, 수출기업에 대한 달러 환전 압박과 같은 급조된 조치들은 “한국 외환시장이 진짜 코너에 몰렸다”는 인상을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차제에 경제 체질을 탄탄하게 만드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back to the basic). 잠재성장률 하락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도록 가장 시급한 과제인 노동시장 유연화 개혁을 추진하고 AI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들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해외 투자자들도 외면하지 않을 것이고, 국장에도 더 상승 탄력이 붙을 것이다. 일본은 1985년 프라자합의 이후 단기 처방에만 급급하다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긴 터널에서 신음했다. 진짜 패닉은 고환율이 아니라, 가격 경쟁력에 이어 기술 경쟁력까지 치고 올라온 중국이 아닐까. 2026년 새해는 한국 경제가 진짜 실력을 보여줄 때다.
[채수환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4호 (2026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