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매번 타석에 들어서기 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걸 본다. 배트를 두세 번 휘두르거나, 배트로 운동화 바닥을 툭툭 치거나, 자세를 취하기 전 엉덩이를 몇 차례 흔드는 등 각자 신중하게 특정한 행동들을 반복한다. 이런 행동을 안 하는 선수는 없으나 실제 경기력과 관련은 없어 보인다. 엉덩이를 흔들어 안타를 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투수들도 모습은 다르지만, 공 던지기 전 비슷하게 행동한다. 왜 선수들 모두가 별 쓸모없어 보이는 행위를 하는 걸까?
출근해서 일하기 전에 사람들은 비슷한 행동을 한다. 투수들이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바로 공을 던지지 않듯, 출근하자마자 곧바로 자리에 앉아 일하는 직원은 한 사람도 없다. 업무 전에 사람들은 매일 정해진 행동을 반복해서 행한다. 가령 크게 한 차례 기지개를 켠 후, 서류를 줄 맞추고, 문방구를 가지런히 하고, 눈을 꽉 감았다 뜨고서야 비로소 일을 시작하는 식이다. 인간은 이처럼 일정한 행동을 쓸데없이 반복함으로써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민음사)’에서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는 인간은 누구나 이런 별 소용 없어 보이는 짓을 하는 데 큰 노력을 쏟는다고 말한다. 주요 경기를 치를 때마다 같은 양말을 꺼내 신는 야구선수,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특정 브랜드의 포도주를 사서 축배를 드는 경영자, 큰돈을 걸 때마다 주사위에 입 맞추는 도박꾼, 대청소를 안 하면 글을 못하는 작가 등 그 목록은 한없이 길다.
지갈라타스는 직접적·명시적 효과는 없으나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리라 믿고 행하는 이런 활동을 의례(ritual)라고 한다. 일상생활 곳곳에서 자기 나름의 의례를 반복해서 행하지 않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삶은 합리적 활동과 의례적 활동의 교차적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례는 습관과 다르다. 둘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특정 행동을 반복 수행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습관은 실용적이다. 직접적 효과가 있다. 공부 습관을 들이면 성적이 향상되고, 운동 습관을 들이면 몸짱이 된다. 따라서 삶에 도움되는 일일수록 습관화하는 게 좋다. 습관을 들이는 게 쉽진 않으나, 일단 몸에 붙으면 별 신경 쓰지 않고 그 일을 쉽게 해낼 수 있는 까닭이다.
의례는 다르다. 달리기 전에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성적이 오르진 않는다. 그러나 삶의 주요 국면마다 강박적으로 의례를 실천한다. 입학식 없이 학생이 될 수 없고, 선서 없이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지 못한다. 우리는 문제에 대한 합리적 해결책을 찾는 만큼이나 기도하고 노래하고 선서하는 등 쓸데없어 보이는 짓을 실천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한다. 왜 이런 낭비적 행동을 멈추지 못하는 걸까.
의례는 인간을 바꾸는 정신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의례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불어넣는다. 가령 아이들은 성인식을 거쳐서 어른이 되며, 연인은 결혼식을 치러야 부부가 된다. 습관이 일상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단조로운 행위라면, 의례는 영혼에 의미를 불어넣어 삶의 흐름을 뒤바꾼다.
의례 속에서 우리는 거룩함을 경험하고, 그때까지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간으로 변한다. 일찍이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는 말했다. “의례는 사람들이 치미는 화, 미움, 짝사랑, 절망과 불안으로 고통스러울 때도 침착함과 정신적 온전함을 유지하면서 중요한 과제를 자신 있게 수행하도록 해준다.” 의례는 정신적 문제를 해결해 개인 성취를 높이고, 역량을 강화하며, 사회적 역할과 지위를 달라지게 하는 실천이다. 인간은 의례를 거쳐 모드를 바꾸지 않고는 사적·공적 생활에서 적절한 역할을 해낼 수 없다. 의례가 개인과 집단, 민족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인간 사회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실행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인간은 의례를 통해 스트레스와 불확실성을 이겨낼 힘을 얻는다. 정치인, 군인, 운동선수, 연예인, 최고 경영자, 펀드매니저, 도박사, 수험생 등 수시로 불안에 노출되는 사람일수록 사소한 의례에 매달린다. 일류 운동선수처럼 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의례에 집착한다. 이들은 더 많은 대가를 걸고 더 위험한 상대와 싸워야하기 때문이다.
가령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은 경기장에 들어설 때 항상 오른손에 라켓을 들고, 라인을 절대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반드시 오른발 먼저 코트에 내디뎠다. 타이거 우즈는 일요일 경기엔 빨간 셔츠만 입었고, 마이클 조던은 시카고 불스 유니폼 밑에 대학 때 반바지를 입고 경기를 치렀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례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엔도르핀 분비는 늘림으로써 불안을 제거하고, 자존감과 안정감을 높여주어 이들의 컨디션을 정상 상태로 돌려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안에 처할 때 의례 행위를 수행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구글에서 기도를 검색한 횟수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신규 확진자가 8만명 늘 때마다 기도 검색 건수도 2배로 뛰었다. 정신적 불안을 누그러뜨리고, 정상성을 되찾고자 한 것이다. 수시로 찾아드는 무질서하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의례는 질서감과 통제감을 제공하고 소속감과 연대감을 불어넣어 고통받는 마음을 치유한다.
의례에만 매달리는 삶은 파멸한다. 이스터 섬의 원주민들이 모아이 석상을 만들다 멸망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합리적 습관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는 단조롭고 밋밋하고 재미없다. 출근해서 하루 종일 나사 죄는 행동을 반복하는 노동자는 삶의 의미를 잃고 스러진다. 따라서 개인이든 조직이든 의례의 힘을 적절히 활용하는 건 중요하다. 휘게(hygge)를 추구하는 덴마크인들은 주목할 만한 실례이다. 휘게란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말한다. 이들은 직장에서도 오피스 의례를 이용해 휘게를 연출한다. 가령 이슬람 사회가 하루 다섯 번 신과 만나듯, 덴마크 회사들은 대부분 하루 몇 차례 휴식시간을 준다. 아침 커피를 마실 때, 점심시간에, 오후 커피를 마실 때 직원 전체가 모여서 음식을 나누며 대화한다. 금요일 업무가 끝날 때면 주점을 열어 음악, 춤, 술을 함께 즐기고, 월요일 아침 첫 업무는 커피와 케이크로 시작한다.
일이 바쁘다고 공동 식사를 거르면 오히려 근무 평점이 떨어진다. 의례는 인간을 바꾼다.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건 동료 간 유대를 강화하고, 신뢰도를 높이고, 효율적 협력을 가져온다. 소속감은 최상의 생산성 도구다. 주인의식을 가진 직원만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은 없다. 덕분에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면서도 가장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회사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은 습관과 의례가 조화를 이룰 때 가장 행복하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문제를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 습관을 얻는 데 힘쓰는 한편, 적절한 의례를 통해서 불안을 떨치고 삶을 주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유지할 때 우리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