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지도를 반으로 나누면 북쪽지방에 가로로 길게 위치한 지역이 있으니 바로 ‘에밀리아 로마냐(Emilia-Romagna)’다. 중세 시대부터 이어온 고풍스럽고 장엄한 성당과 건축물이 도시 전체에 자리를 잡고, 각종 미식이 입을 즐겁게 하며, 슈퍼카들을 눈과 몸으로 체험해볼 수 있는 멋진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중심도시 볼로냐를 비롯해 슈퍼카의 성지 모데나, 멋과 미식의 도시 파르마, 동부의 아름다운 해변도시 리미니 등은 여행에 최적화되었음에도 아직까지 한인을 비롯해 동양인 관광객이 많지 않은 것 역시 붐비지 않는 여행을 돕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본 조르노(Buon giorno, 안녕하세요).”
에밀리아 로마냐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이 한마디면 족하다. 경제적으로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있는 이 지역은 특히 유럽인들에게 사랑받는 지역으로 꼽히고 있으며 관광객 친화적이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파가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 브랜드의 본사나 박물관을 순회하는 여행길은 특히 자동차 애호가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모터 밸리’라고도 불리며 모터스포츠의 중심지로서 주요 국제 행사가 자주 열리기도 한다.
에밀리아 로마냐주에 따르면 모터 밸리의 경제적 영향력은 이탈리아 전체 10%를 차지하고, 1만 6500개 기업과 6만 명이 넘는 고용을 담당하고 있으며, 수출액은 거의 50억유로(약 7조362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터 밸리는 그랑프리, 모토 GP, 슈퍼바이크 등의 주요 국제 행사부터 역사적인 재연 행사까지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며, 188개의 스포츠 팀, 13개의 박물관(가상 투어 가능), 18개의 개인 컬렉션 네트워크, 4개의 경주로, 11개의 카트 트랙이 있다. 여기에는 엔초 페라리 박물관(모데나), 페라리 박물관(마라넬로), 무데텍(MUDETEC)–페루치오 람보르기니 박물관, 오라시오 파가니 박물관, 달라라 아카데미, 아우토모빌리 람보르기니 박물관, 두카티 박물관(볼로냐) 등이 포함된다.
자동차를 미뤄 두고라도 볼로냐, 모데나, 파르마와 같은 르네상스 시대에 번성했던 도시들은 당시 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어 다양한 역사적 현장과 스토리를 눈과 귀로 담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외에 리미니 등 동부 해안 도시에서는 아름다운 해변을 즐길 수도 있다.
먹거리에 있어도 한국인의 식성과 참 잘 맞는 여행지라 할 수 있다. 식품 산업으로 유명한 이 지역은 감자, 토마토, 양파 등이 주 수확물로 꼽히며, 당도가 높은 포도를 생산해 제조하는 람부르스코(Lambrusco) 와인의 원산지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이 지역에서 크리스마스 등 좋은 날 즐기는 전통음식인 토르텔리니(Tortellini)는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즐겨보길 바란다.
볼로냐는 에밀리아 로마냐의 중심도시로 공항이 있어 여행객이 가장 먼저 만나는 도시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대학이 생긴 볼로냐는 아직도 그 명성을 이어가며 많은 학생이 유학을 하는 도시이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마조레 광장에 자리한 웅장한 산 페트로니오 성당(Basilica di San Petronio) 앞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즐기는 장면은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공존하는 모습이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어울려 지낸 만큼 다양한 음식 문화가 발달해 온 것이 볼로냐의 특징 중 하나다. ‘대학의 도시’라는 별칭 외에 ‘뚱보의 도시(The Fat City)’라고도 불리고 있는 이유다. 이탈리아인들에게 ‘미식의 수도’라 불릴 정도로 그만큼 다양한 현지 별미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탈리아 전통 방식으로 만든 햄 ‘모르타델라(Mortadella)’, 전통음식 ‘토르텔리니’, 볼로네제로 불리는 ‘탈리아텔레 알라구(Tagliatelle al ragu)’ 등 다양한 맛있는 음식들이 있어 미식가들에게도 성지와 같은 곳이다.
또 한 가지, 볼로냐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바로 포르티코(Portico)다. 건축물 끝에 회랑 형태로 지붕을 막은 건축 양식인 포르티코는 12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아케이드로, 거리만 총 62㎞가 넘어 202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에밀리아 로마냐주 관계자는 “포르티코는 볼로냐에 과거 유럽을 대표하는 가문의 자제들이 비를 맞지 않으며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건축 양식을 도입했다는 이야기가 정설”이라며 “이후 상인들이 영업하는 자리로 쓰였으며, 오늘날에도 그 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라고 설명했다.
모데나는 페라리, 마세라티, 람보르기니와 같은 이탈리아의 상징적인 자동차 브랜드의 발상지로 잘 알려져 있다.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있어 성지와 같은 곳으로, 매년 많은 방문객이 찾아온다. 각 브랜드사가 운영하는 박물관을 방문해 자동차의 역사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운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데나 레이싱 트랙(https://www.autodromodimodena.it/it/)에서는 페라리를 직접 주행하는 경험을 해볼 수도 있다.
한편 모데나는 발사믹 식초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태어난 모든 아이들에겐 조부모들이 남긴 12년 이상 된 자기만의 발사믹이 있을 정도다. 미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모데나 발사믹 식초를 주제로 한 유럽 최초의 테마파크인 ‘발사믹 빌리지’를 방문해 전통적인 생산 방식과 음식 문화를 접할 수 있다.
모데나에 슈퍼카와 발사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모데나 두오모, 토레 치비카(기를란디나), 피아차 그란데 등의 문화유산이 있어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흥미를 제공한다. 더욱 좋았던 것은 볼로냐 파르마를 포함해 모데나 역시 각 도시를 대표하는 성당이나 건축물에 입장료가 없다는 것. 여타 유명 관광지가 높은 입장료를 지불하고도 줄까지 서서 사진 찍기 바쁜 것과 달리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데다 경제적인 부담도 없다는 점은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슈퍼카 박물관의 경우 입장료가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도시는 파르마다. 아름다움을 한 장의 사진에 담기 어려운 두오모 광장과 세례당이 가장 인상 깊었다. 밖에서 볼 땐 소탈한 이 건축물은 안으로 들어서면 규모에 압도될 만한 8각형의 세례당(Battistero)으로 핑크색 대리석과 중세의 위엄을 자랑하며 로마네스크-고딕 양식으로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세례당 남쪽에는 높이 63m의 두오모(주교좌 성당) 종탑이 마치 아버지에게 매달리는 아이처럼 주 건물을 껴안고 있다. 파르마는 또한 음악과 예술의 유산이 살아있는 도시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주세페 베르디가 태어난 곳으로, 매년 베르디 페스티벌이 열린다.
하루는 국립 파르마 국립미술관을 돌아보는 것도 좋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는 누구나 알고 있는 ‘모나리자’를 줄 서서 관람해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여유롭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라 스카필리아타(La Scapigliata)’를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모나리자와 비슷한 스타일과 기법(즉, 스푸마토)을 사용했지만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이곳은 파르마의 주요 예술 작품 컬렉션과 르네상스 시대의 유산인 극장 테아트로 파르네세(Teatro Farnese)를 만날 수 있다.
에밀리아 로마냐에 방문할 예정이라면 매년 5월을 추천한다. 올해 6회째를 맞은 모터 밸리 페스트(Motor Valley Fest)는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에서 매년 열리는 주요 이벤트로, 자동차 애호가들과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최고의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 제6회 모터 밸리 페스트는 2024년 5월 2일부터 5일까지 열렸으며, 7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끌어모았다. 슈퍼카, 오토바이, 빈티지 자동차 등을 포함한 유명 브랜드와 모터 밸리의 경주용 자동차가 전시되며, 모데나의 거리와 광장에서는 다양한 패션쇼와 퍼레이드가 열린다. 모터 밸리 페스트는 모터스포츠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도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한편 에밀리아 로마냐의 모터 밸리 페스트 주최 측은 다음 MVF 2025 행사는 2025년 5월 22일부터 25일까지 모데나에서 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