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9월, 프랑스 중서부의 작은 마을에 살던 소년들이 동네 뒷산에 난 좁고 어두운 지하동굴에 들어갔다. 전설에 나오는 보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긴장된 여행 끝에 그들은 동굴 벽과 천장에 가득한 그림들을 발견했다. 말, 사자, 들소, 염소, 매머드 등이 램프 불빛이 닿을 때마다 살아서 꿈틀댔다. 약 1만 7000년 전 구석기인들이 남긴 라스코 동굴 벽화였다. 생생한 동물 그림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자연을 관찰하고 머릿속에 담아둔 후, 이를 떠올리는 힘을 갖추었음을 보여준다. 이미지는 관찰력, 기억력, 상상력의 종합이다. 인류의 조상들은 동물을 관찰해 예술혼을 불태움으로써 그들의 움직임을 떠올리고, 도주 방향을 예측하며, 협동의 힘을 높여서 사냥에 성공할 수 있었다.
라스코 동굴 벽화는 사냥의 청사진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거대한 조감도다. 인류는 이 벽화 앞에서 신에게 풍요를 기원하며 사냥 대상을 물색하고 계획을 짜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사냥 방법을 배우고, 어른들은 사냥 전략을 공유하며 미래를 더 나은 쪽으로 움직여 갔다.
박귀현 호주국립대 경영학과 교수의 <집단의 힘>(심심)에 따르면, 라스코 동굴 벽화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구가 선연히 나타난다. 팀이다. 팀은 인간 능력을 확장하는 데 쓰인 최초의 도구다.
인간은 혼자서는 날뛰는 들소를 사냥할 수 없으나, 팀을 이루어 협동함으로써 인간보다 빠르고 힘센 들소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팀은 “인간의 잠재 능력을 최상으로 끌어내는 수단이고, 인간이 인간을 사용하는 도구”다. 인간은 함께 힘을 합치는 방법을 찾아냄으로써 자연의 정복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팀이란, 여러 사람으로 구성돼 공통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집단이다. 팀의 힘을 극대화하려면, 각 개인의 능력을 파악해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설계하고, 주어진 상황에 맞춰 적절히 조정하며, 협력을 강화하고 갈등을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팀워크라고 한다. 팀워크는 “인간 집단이 가진 가장 오래되고 적응력 뛰어난 심리적 자질”이다.
작은 목표를 이루는 데는 개인역량으로 충분하지만, 위대한 목표를 이룩하려면 집단 능력을 끌어낼 팀워크가 필수다. 팀워크는 인간 진화의 가장 큰 원동력이고, 인류 역사를 발전시켜 온 눈부신 촉매다. 더 다양한 사람과 더 밀도 높은 협력 관계를 이룩한 세력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발굴하고, 강한 기업과 국가를 운영해 세상을 이끌었다. 집단의 힘을 이용할 줄 아는 공동체는 발전하고, 그러지 못한 공동체는 서서히 약해진다.
팀이란 무엇보다 분산 기억 체계, 즉 서로 다른 지식과 기술을 가진 이들을 한데 모아 시너지를 내는 도구다. 집단에 속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어느 한 집단에 속하면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눈치 보면서 일을 나누어 각자 자기 일을 책임지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방안을 찾으려 애쓴다. 우리 유전자에 팀이 가장 강력한 생존 비결이란 사실이 이미 새겨져 있어서다.
아이들을 관찰하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많은 걸 알지 못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내가 모르는 걸 알려줄 사람이 누구인지를 또는 무엇인지를 알면 그들은 많은 걸 해결할 수 있다. 아이들이 대답보다 질문에 능한 이유다. 호기심이 생기고 의문이 피어날 때마다 그들은 조르르 달려와 “엄마!” “아빠!”를 외치고, 책을 뒤적이며, 휴대전화 검색창을 살핀다. 이런 협력 시스템 구축에 인간보다 능한 생명체는 없다.
인간은 집단을 이용해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고 전수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생존 비결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간다고 하자. 좋은 배를 탄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만, 잘못된 배를 탄 사람들은 난파 또는 죽음을 겪을 수밖에 없다. 홀로 시도하면 돌아오지 않은 자들의 실패가 기록되지 않으나, 함께 시도하면 사람들이 실패를 금지하고 성공 비결을 나머지 사람에게 전수할 수 있다.
집단에 소속되는 일이 가장 확실한 생존 비결이기에, 인간은 자신과 집단을 쉽게 동일시하도록 진화했다. 자기가 속한 집단의 성공엔 강렬한 기쁨을 느끼고, 그 불행엔 깊은 슬픔을 느낀다. 이를 내집단 선호라고 한다. 우리는 집단을 너무나 좋아하므로, 무엇이 올바른 인생이고, 도덕적 행위이며, 정상적 삶인가를 집단이 결정한다. 심지어 우리는 혼자 있을 때조차 집단을 느끼고 인식하며, 허울뿐인 집단을 상상해 그에 맞춰 행동한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다수가 믿는 것을 진실로 생각한다.
집단 애착을 잘 이용하면 팀워크를 끌어올려 목표를 이루는 데 초인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심지어 집단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 그러나 집단과 동일시가 지나치면 편견에 사로잡혀 비합리적 사고나 비이성적 행위를 저지른다. 특히, 인간은 중요하고 어려운 일을 결정할 때일수록 집단 사고에 빠지기 쉽다. 나치 선동에 넘어간 독일인들은 유대인을 약 600만 명이나 학살했다. 팀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함께 몰락하는 길로도 이끌 수 있다.
집단 사고에 사로잡혀 공동체 전체가 망하는 길로 접어들지 않으려면, 공동체 내부에 소수 의견에 귀 기울이는 장치가 필요하다. 질 좋은 토론이다. 다수 의견은 주어진 현실을 다시 반복시키지만, 소수 의견은 낯선 사고를 제안함으로써 미래의 가능성을 넓힌다. 소수는 다수의 생각을 감염시켜야 하기에 언제나 더 많은 증거를 모으고, 더 세밀한 부분까지 고려하며, 더 예민하고 감각하고, 더 영민하게 논리를 짠다. 이 때문에 다수가 융통성을 발휘해 소수를 토론에 참여시킬 때 소수 의견은 한 집단의 판단을 정확하게 만든다.
다수만 참여해 의사를 결정하는 곳에선 순식간에 의견이 통일된다. 소수가 의견을 내는 공동체만이 새로운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배를 띄워 먼 바다로 나간 소수가 없었다면, 문명은 발전할 수 없었다. 소수 의견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고, 낡은 성공 방식에 도전하며,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데 이바지한다. 다만, 그 영향력이 느리게, 천천히 발휘되기에 우리는 이들의 힘을 무시하기 쉬울 뿐이다. 좋은 공동체는 다수가 소수의 의견에 열려 있어 질 높은 토론이 항상 유지되는 곳이다. 이는 집단의 힘을 극대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