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엔진에 전통주 혹은 막걸리를 검색해보면 시장이 뜨겁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일견 그런 면이 있다. 전통주 시장 규모는 2010년 433억원에서 2021년 941억원, 지난해 1629억원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줬다. 그 의견들을 비집고 들어오는 ‘팩트 폭행’도 존재한다. 출고액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전체 주류 시장에서 전통주가 차지하는 비율은 1.6%에 불과하다는 것. 모두 국세청 국세통계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눈여겨보고 싶은 수치는 따로 있다. 바로, 단 1.6%에 불과한 전통주 산업이 연간 쌀 소비량의 6.7%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쌀 소비 수치가 노출된 양조장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더욱 놀랍다. 일례로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한강주조’는 서울쌀 브랜드인 경복궁쌀을 100% 사용해 서울 유일의 지역 특산주를 생산하는 곳이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서울의 쌀 생산량은 1000톤인데, 지난해 기준 한강주조가 매입한 경복궁쌀만 67톤으로 전체 서울 쌀 생산량의 15%에 가까운 수치를 보여준다. 이론적으로는 한강주조처럼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양조장이 5곳만 더 있어도 서울 쌀은 대부분 소비되는 셈이다. 쌀 소비 증대에 전통주의 몫이 커 보인다.
그렇지만 농업을 지키기 위해 전통주를 소비하자든가, 우리 것을 지키자는 다소 공허한 외침은 생략하겠다. ‘소비자에게’ 쌀 소비의 증대는 전통주 소비의 부수적인 결과물이 돼야 하는 것이지, 제1의 목적이 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그다지 매력적인 외침도 아니다. 우리는 전통주 한 병을 사 먹는 데 있어 이미 필요 이상으로 전통이라는 단어를 듣고 있지는 않은지. 그보다는 마시고 싶어지고, 사고 싶어지는 새로운 목소리를 들려줄 필요가 있다.
젊은 양조장들이 이에 앞장서고 있다. 근래 가장 흥미로운 형태는 커뮤니티 형성이다. ‘가장 동시대적인 술을 만드는 주류회사’를 표방하는 ‘이쁜꽃’은 ‘사랑과 용기 테라피’ 계정(@love.and.courage.therapy)을 통해 양조를 매개로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랑과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아카이빙한다. 제품 이름과 동일한 명사를 사용한 질문들은 술 이야기를 하지 않고도 ‘사랑과 용기’라는 술을 끊임없이 떠오르게 한다. 따뜻하고도 똑똑한 방식이다. 한강주조의 경우 한 달에 한 번, 한강주조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태깅한 사람들의 자료를 모아 ‘나루생활자’라는 이름으로 소개한다. 대표 제품인 ‘나루생막걸리’ ‘나루약주’를 생활화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단순히 술의 판매자와 구매자로 남지 않고 소속감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양조장들이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또다른 방법은 다른 문화 형식과 결합으로 ‘소장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레이블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압도적인 쌀 매입량과 새로운 커뮤니티 형성 방식을 보여준 한강주조는 여기서도 빠지지 않는다. 전통주 신에서 공부도 잘하고 놀 줄도 아는 반 1등 같은 존재랄까. 2022년 12월 나루 약주 출시 이후, ‘나루 약주 아티스트 레이블’이라는 이름 아래 일민 미술관과 협업하여 분기별로 다른 레이블을 보여준다. 겸재 정선의 작품을 손동현 작가의 화풍으로 다시 그린 ‘한양’을 시작으로, 한국 고전 RPG 게임 속 주인공의 특징을 조합한 김민희 작가의 ‘RIFF’를 통해 생활 속에 친숙하게 호흡할 수 있는 전통주와 예술의 형태를 선보여 왔다. 2만원이 채 안되는 술 한 병의 구입으로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의 프린트본을 소장할 수 있는 셈. 현재 겨울 레이블로의 변신이 예고된 상태로,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쌓아 간다. 레이블에 마치 소설의 한 구절처럼 노랫말을 더해 감성 한 스푼을 더한 전통주도 있다. 강원도 철원의 두루미 양조장은 인디 그룹 스탠딩 에그와 협업해 탁주 레이블에 ‘오래된 노래’ 가삿말을 새겼다. 뒷면의 QR 코드를 통해 노래도 들을 수 있다. 밀양 햅쌀을 사용한 밀양클래식술도가의 탁주는 콘텐츠 그룹 ㈜우주라이크의 손길을 통해 새 옷을 입었다. 영국의 셰퍼톤 디자인스튜디오와 정식 라이선스를 맺고 영화 스타워즈 속 대표 캐릭터인 스톰트루퍼 헬멧을 캡에 장착하며 스타워즈 팬들을 뭇 설레게 했다. 전통주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영화 팬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마셔보고 싶은 흥미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콘텐츠 그룹 답게 밀양에 불시착한 캐릭터들이 벼를 베고 새참을 나르는 모습 등을 SNS에 게재하면서 해당 술의 세계관을 이어가고 있다.
이 양조장들의 특징은 만드는 방식은 전통을 뼈대로 하지만 맛, 디자인, 소통 방식 등은 다각도로 동시대와 온전히 호흡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고하게 서 있지 않고 활달하게 걸어와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전통을 지켜 나가자는 말 대신, 맛있는 술 한 잔 해보지 않겠냐고. 이번 연말 연시에는 이 다정한 대화에 참여해보는 건 어떨까. 쌀 소비 증대에 한몫한다는 자부심은 덤으로 챙겨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장새별 F&B 콘텐츠 디렉터
먹고, 마시는 선천적 애주가. 미식 매거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현재는 스타앤비트를 설립해 F&B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