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전자와 테슬라를 비롯해 NXP 등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몰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에 두 번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는 데 170억달러(약 22조원)를 투자한다. 테슬라는 2021년 캘리포니아를 떠나 텍사스로 본사를 이전한 바 있다.
최근 배터리 제작 연구소를 포함해 총 4개의 새로운 설비를 증설하는 데 7억7500만달러(약 9600억원) 증액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 NXP는 기존 오스틴 반도체 공장에 약 2억2900만달러(약 3000억원) 규모 증액 투자를 발표했다. 이처럼 글로벌 테크 기업들이 오스틴에 집결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경영 전문지 <치프 이그제큐티브(Chief Executive)>는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대상으로 매년 최적의 비즈니스 환경을 갖춘 주를 선정한다.
텍사스는 올해로 19년 연속 1위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기업 경영인들이 텍사스를 선호하는 이유는 비즈니스 친화적인 조세 정책과 풍부한 전문 인력이다. 미국은 주별 개인 소득세율이 다르다. 캘리포니아는 13.3%로 가장 높은 반면 텍사스를 비롯해 알래스카, 플로리다, 네바다, 워싱턴 등은 개인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 비즈니스 친화적 정책 기반이 마련돼 있다.
또 텍사스는 주 법인세가 없고 최고 1% 영업세만 물린다(여기서 모든 주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연방정부 법인세 21%는 별도다). 또한 다양한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이와 더불어 노동 시장의 공급과 수준 모두 탄탄하다. 텍사스 내에서도 오스틴은 인구가 가장 많이 늘어난 지역이다. 2022년 오스틴 추정 인구는 약 97만 4000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실리콘 밸리가 위치한 산호세(97만 1000명)를 넘어서면서 미국에서 10번째로 큰 도시가 됐다. 이로 인해 주변 지역까지 포함한 오스틴 광역시(Austin Metropolitan Area)는 12년 연속 미국 주요 광역시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으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이 속도라면 앞으로 100년 안에 오스틴은 미국 내에서 3번째로 큰 도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조사에 따르면 오스틴은 “미국 내 가장 강력한 노동 시장” 중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오스틴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오스틴에는 명문 UT오스틴 외에도 50여 대학 및 연구기관이 있다. 또한 경제활동 인구의 47%가 대졸자로 미국 전체인 33.1%보다 훨씬 높아 교육 수준도 뛰어난 편이다. 각종 공과금과 집세 등 생활물가가 실리콘 밸리에 비해 저렴하다는 점도 꾸준한 인구 유입을 이끌어내는 요소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기업의 미국 진출은 한편으로는 강제에 가깝다. 미·중 갈등으로 발발된 미국 정부의 여러 자국 우선주의 정책들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대부분 정책이 첨단 기술인 반도체 및 전기차 부문과 관련이 높은 만큼, 해당 업계 기업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이 같은 미국 움직임에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정부의 수가 깔려 있다.
미국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반도체 설계, 제조 등 수익성이 높은 부분을 장악하며 세계 반도체 생산의 37%에 달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미국이 제조 공정 전체가 아닌 설계에 집중을 하면서 2020년 12%까지 떨어졌다. 그 대신 생산 부문을 도맡게 된 대만,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점유율은 크게 늘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자 미국 반도체 전략은 바뀌었다.
생산 차질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중국의 부상에 위기를 느낀 미국이 자국 내 생산 역량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8월,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517억달러(약 70조원) 규모 ‘반도체과학법(The CHIPS and Science Act)’을 공표했다.
같은 달 바이든 정부는 또 다른 정책을 내놓는다. 미국 내에서 조립된 전기차에만 대당 최대 7500달러 보조금을 주는 내용의 ‘인플레이션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이다. 해당 법안은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에서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또 다른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연이어 발표된 리쇼어링 정책으로 인해 여러 기업들은 미국에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바이든 정부 정책이 실제로 1년 만에 효과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두 법안이 통과된 지난해 8월 이후 미국 투자 규모는 총 2040억달러(약 266조원)로, 2021년 투자액의 2배, 2019년 투자액의 20배에 달한다. 특히 반도체 부문에서 국내외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가 두드러진다. CNBC에 따르면 반도체 법이 시행된 이후 약 60개의 반도체 프로젝트가 발표됐으며 총 규모는 2100억달러(약 278조원)에 이른다. 이 중 6개 프로젝트가 텍사스 내 기업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투자 규모는 610억달러(약 81조원)에 이르며 최소 8000개 이상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기업들이 몰려들면서 오스틴을 중심으로 한 ‘실리콘 힐스(Silicon Hills)’가 뜨고 있다. 실리콘 힐스는 실리콘 밸리의 테크 기업이 대거 입주한 오스틴 서부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삼성전자 외에도 AMD, Dell 등 약 1700개가 넘는 반도체 관련 업체 및 IT 기업이 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미 오스틴에서 공장을 운영 중이다. 약 73만㎡(22만 평) 규모 파운드리 라인 1개를 갖췄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제2공장은 오스틴에서 약 40km 떨어진 테일러에 위치한다. 대지는 약 500만㎡(150만 평) 규모로 170억달러(약 22조원)를 투입한 이 공장은 올해 말 완공돼 2024년부터 최첨단 공정을 활용한 5세대(5G) 이동통신, 고성능 컴퓨팅(HPC), 인공지능(AI) 등 시스템 반도체를 양산해 나갈 예정이다.
이런 발 빠른 행보와 투자 선점을 하려는 노력에 힘입어 200여 곳에 이르는 삼성전자의 협력업체 또한 오스틴 진출을 고려한다. 실제로 반도체 장비 세정·코팅 전문업체 코미코는 미국 생산거점을 잇달아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의 대부분의 수주를 받는 만큼 최근 최소 3000만달러(약 390억원)를 투자해 기존 오스틴 공장을 증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또 다른 협력업체인 한양이엔지 미국 법인은 현재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 안에 위치한다.
최근에는 공정용 프로세스 케미컬을 생산하는 이엔에프테크놀로지가 오스틴에서 공장을 가동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엔에프는 지난 2020년에 50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세웠으며 한국 반도체 소재 업체로는 처음으로 오스틴에서 공장을 가동했다.
이외에도 테슬라 등 전기차 관련 협력업체들도 적극적으로 진출 기회를 탐색하고 있다. 테슬라에 전기차용 타이어 모듈을 공급하는 HL홀딩스 또한 오스틴에 전기차 모듈 생산 기지 설립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화솔루션 또한 태양광 관련 사업 기회를 오스틴에서 모색한다. 앞으로도 적극적인 기업 진출이 예상되는 만큼 대규모 단지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는 기업도 있다. 산업자재 전문 유통기업 아이마켓코리아는 지난 4월 대규모 산업 클러스터인 ‘테일러 테크놀로지 파크(Taylor Technology Park)’ 개발을 발표했다.
이는 오스틴 광역 진출을 희망하는 반도체, 전기차, 2차전지 산업을 포함한 국내외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구축하는 대규모 산업 클러스터다. 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기업 진출을 돕고 나섰다. 코트라(KOTRA)는 지난 4월, 중소, 중견기업의 오스틴 시장 진출을 위한 오스틴 반도체 GP(Global Partnering) 센터를 개소했다. 공유 오피스 입주비 지원, 현지 정착을 위한 전문 컨설팅 제공, 글로벌 바이어 대상 마케팅 지원 등 입주 기업별 맞춤형 현지 진출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미국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기업들은 부지 구입, 마스터플랜 기획 업무, 인허가 대관 업무, 건설 토목 공사 업무, 개발 후 운영까지의 업무 등 전반에 걸쳐 세세한 준비가 필요하다. 미국에 진출하는 기업부터 투자, 그리고 실거주용 부동산을 찾는 개인까지 이제 한국과 미국 부동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지웅 빌드블록 부대표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미국 부동산 컨설팅 기업 빌드블록을 설립, 미국에 진출하려는 개인과 기업 투자자의 미국 부동산 문제를 컨설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