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3일 강진 백련사에서 ‘만덕산 백련사 학술대회’가 있었다. 다양한 주제의 발표를 통해 백련사의 미래 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술대회였다.
백련사란 사찰은 전국 여러 곳에 있다. 그 가운데 강진 백련사가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은 다산 정약용(1762∼1836년) 덕분이다. 정약용의 강진 유배 시절 백련사 혜장선사(1772∼1811년) 배려로 백련사 인근 ‘초당’에 머물게 된다. 오늘날 유명해진 ‘다산초당’이다. 다산(茶山)이란 호 역시 백련사 일대에 야생차가 많은 데에서 유래한다. 1990년대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백련사를 잠깐 언급했지만 ‘불친절’을 소개하였을 뿐이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필자는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로 논쟁을 유도했다.
“왜 백련사의 풍수지리학적 특징을 학술 주제로 삼았을까요? 이 절을 풍수적으로 좋다고 말하려면 그 근거를 댈 수 있는 풍수 서적이 수십 권이 있으며, 반대로 나쁘다고 말하려면 역시 그 근거를 댈 수 있는 서적이 그만큼 있습니다. 터의 좋고 나쁨을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 터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밝힘으로써 그에 맞는 ‘사찰 경영’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 절의 창건자는 왜 이곳에 터를 잡았을까요? 창건자가 염원했던 절의 미래는 무엇이었을까요?”
‘사찰 경영’이란 말은 자본주의적 표현이지만 절의 흥망성쇠는 풍수에서 말하는 터의 성격에 부합해야 한다. 20년 전인 2003년 5월 여주 가업동 소재 구곡사를 답사할 때 그곳 주지승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절 망하는 것 아주 쉬워요!”
“왜 망하는데요?”
“신도가 안 오니까 망하지요!”
“예?….”
“흥성하는 절의 풍수 특징이 있어요!”
“무엇인지요?”
“육산(肉山)이 아닌 석산(石山)이어야 하고, 수구가 쪼여줘야 돼요(水口關鎖). 그렇지 않은 곳은 어김없이 오래가지 못하고 폐사지(廢寺地)가 돼요!”
구곡사 주지승은 풍수적으로 번창할 터의 요건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육산이란 흙으로만 된 산을, 석산은 바위가 많은 산을 말한다. 수구가 조여줘야 한다는 말은 좌우산(청룡·백호)이 교차하여, 즉 두 팔이 서로 감싸안듯 하여 밖에서 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지금까지 번성을 구가하는 사찰과 망하여 없어지고 터만 남은 곳을 비교하면 이 2가지 요건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사찰 풍수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고인이 된 건축가 김석철(1943~2016년,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은 종교 부지 선정에서 “종교적 성지가 되기 위한 영기(靈氣)가 느껴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안도 타다오 역시 2016년 그의 오사카 사무실에서 본 발표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종교시설물 건축은 터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동양적 관념만은 아니다. 미국의 생태주의 시인 게리 스나이더(1943년~)의 의견이다.
“우리는 신선한 땅이란 어떤 것일 수 있는가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 어떤 장소들에는 드높은 정신적 밀도가 있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동식물의 서식 환경이 집중해 있거나 전설과 관련되어 있거나 토템 신앙을 가졌던 조상과 연결되어 있거나 지형학적으로 이례적이거나 어떤 특질들이 결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문을 통해 우리는 인간보다 크고 개인보다 큰 시각과 좀 더 쉽게 접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생의 삶>)
다시 백련사 학술발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맨 처음 강진 일대에서 절을 창건하려고 터를 물색할 때 무엇이 1차 기준이었을까? 첫째, 김석철 선생이 말한 ‘영기 어린 땅’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석산에서 찾아야 한다. 강진 만덕산 줄기는 대부분 육산인데 산 정상 부분만 흰 바위(백암)가 드러난다. 전국의 유명 사찰도 예외가 아니다.
둘째, 석산 아래 일정한 규모의 건물들(가람)이 들어설 평평한 땅과 그 사이를 흐르는 물이 있어야 한다. 이른바 ‘장풍득수(藏風得水)’이다. ‘풍수’는 ‘장풍득수’의 줄임말이다. 그것으로 부족하다. 좌우산(청룡·백호)들이 교차해서 밖에서 터가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바람이 들이치지 않고 흘러가는 물은 굽이돌아 유속이 줄어든다. 백련사 절터는 만덕산 정상의 흰 바위로 충분한 영기를 갖추었다. 그러나 아쉽게 두 번째 요건 좌우산(청룡·백호)이 일직선으로 뻗어가 바로 탐진강과 강진만이 빤히 보인다. 심리적으로 불안할 뿐 아니라 낮과 밤으로 산바람과 강바람이 번갈아 교대하면서 사찰을 쓸어내린다. 이러한 단점을 백련사 창건주는 몰랐을까? ‘천연기념물 151호’로 지정된 사찰 입구의 동백나무 숲이 그 해결책이다. 동백나무를 심어 센바람을 누그려뜨렸다. 그뿐만 아니다. 백련사 대웅전 진입로는 직선이 아닌 동백나무 숲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구불길이다.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백련사가 유명하나 한산한 편이다. 왜 그럴까? 구곡사 주지승의 말을 인용하자면 신도와 관광객이 많지 않음이 이유이다. 기도발(靈氣)이 약해서일 수도 있고, 백련사의 강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백련사 측이 소개하는 안내문을 보면 백련산 정상 흰 바위 코끼리상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흰 코끼리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불교미술사학자 주수완 교수(문화재청 전문위원)는 “마야 왕비의 태에 부처님이 하얀 코끼리 모습으로 들어가셨기에, 하얀 코끼리는 석가모니를 상징”한다고 한다. 즉 백련사는 석가모니 영기를 받는 곳이다. 창건자가 이곳으로 절을 정한 이유이다. 다른 여러 부처보다 석가모니가 중심 불이 되는 절이다.
절의 번창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터를 잡던 처음 창건자의 의도를 드러내면 된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그에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듯’(김춘수), 이 절이 필요한 것은 ‘그 이름’이다. 만덕산 정상의 코끼리 모양의 흰 바위를 보고 터를 잡았다. 당연히 ‘흰 코끼리(白象)’가 이름에 들어가야 한다. 흰 코끼리(白象)가 하고자 하는 행위는 무엇일까? 바다를 바라보는 것일까(望海), 탐진강을 건너려는 것일까(渡江), 어린 코끼리에게 젖을 주려는 것일까(哺乳) 등에 따라 절의 형국명이 달라진다. 그에 따라 절의 흥망이 달라진다. 백련사와 한국의 전통 사찰뿐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도시에 있는 기업 사옥들도 이와 같은 풍수적 존재 이유와 이름이 필요한 이유이다.
김두규 우석대 교수
국내 손꼽히는 풍수학자다. 현재 우석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풍수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