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끝내고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도중 동반자가 갑자기 휴대전화기를 찾기 시작했다. 파우치를 뒤져봐도 없고 라커룸과 화장실에서도 도저히 찾지 못했다. 혹시 프런트에 두고 왔는지도 몰라 문의했지만 허사였다. 카트에 두고 왔다면 캐디에게서 연락이 왔을 텐데 소식이 없었다.
곰곰이 골프를 끝낸 후 일정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캐디백을 싣기 위해 카트를 타고 차에 간 사실을 떠올렸다. 트렁크를 열어보니 백 옆에 놓여 있었다. 필자도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골프장에서 친구와 즐겁게 라운드를 돌고 귀가해 짐을 정리하다 보니 바람막이 옷이 없었다. 가방을 챙기는 와중에 선물로 받은 빨간 바람막이 옷을 라커 룸에 놔두고 온 것이다. 몇 년째 애지중지해 왔기에 그냥 버릴 수 없어 골프장에 전화를 걸어 택배로 받겠다고 부탁했다.
골프를 하며 챙길 게 의외로 많다. 나이가 들면서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그냥 빠뜨리거나 잊어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골프는 전날 밤 각종 준비물을 챙기면서부터 시작된다. 구력이 오랜 고수들은 매뉴얼대로 준비하기에 상관없지만 미리 챙기지 못하거나 분실 때문에 종종 곤경에 처한다.
그중에서 골프백 관련 사고가 가장 치명적이다. 총칼 없이 전쟁터에 나서는 꼴이다. 경기도 여주 소재 골프장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여성 골퍼가 티오프 시점까지 계속 기다리는데도 결국 백이 나오지 않자 골프장이 발칵 뒤집어졌다.
발을 동동 구르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골퍼에게 골프장 사장이 골프장에 오기 전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묻자 ‘○○연습장’이라고 했다. 직원과 함께 그 연습장에 가보니 여성 골퍼의 골프백이 그대로 서 있었다.
같은 브랜드에 같은 색상의 다른 사람 백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그대로 싣고 온 것이다. 이러니 경기실에서 아무리 그 여성 골퍼의 네임 태그를 찾으려 해도 허탕 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구두를 신고 18홀을 돈 적이 있다. 사건이 있기 며칠 전 우중 라운드를 마치고 젖은 골프화를 햇볕이 잘 드는 발코니에서 말렸다가 깜빡하고 빈손으로 골프장에 온 것이다.
장갑이나 양말, 칫솔은 골프장 숍에서 사면 되지만 골프화는 당시 15만원 안팎인 데다 집에 골프화가 두 켤레나 더 있어 그냥 필드로 나갔다. 정장화가 아닌 캐주얼화라며 캐디와 동반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18홀을 끝내고 나니 매끈하던 신발이 흡사 전쟁을 치른 전투화 같았다. 나의 경험담에 한 선배 골퍼는 본인도 겪은 일이라며 이후 차 트렁크에 여분의 골프화를 늘 비치해 둔다고 했다. 시간이 빠듯하거나 건망증으로 준비물을 빠뜨릴 수 있어 모자와 장갑은 항상 여벌로 보스턴백에 넣고 다닌다.
라운드를 도는 중에는 클럽 분실이 가장 위험하다. 경험적으로 고수일수록 분실 위험이 낮다. 구력이 짧은 사람은 클럽을 2~3개 들고 필드로 나갔다가 사용하지 않은 클럽을 놔두고 오는 일이 흔하다.
특히 노캐디제를 시행하는 골프장에선 이런 일이 다반사다. 카트 운전에 클럽 챙기랴, 공 닦으랴 캐디가 하던 일을 도맡다 보니 클럽 분실 사고가 비일비재하다.
골프가 끝난 후에는 소지품을 의외로 많이 빠트린다. 일단 카트에 휴대전화기, 지갑, 장갑, 바람막이 옷, 선글라스, 거리측정기 등을 두고 온다.보통 캐디가 다시 살펴보고 연락하기에 찾을 수 있다. 이후에도 분실 위험은 상존한다. 목욕탕이나 라커 룸에 칫솔과 안경, 휴대전화기, 거리측정기, 선글라스, 심지어 틀니까지 두고 온다.
지갑은 프런트에서 그린피를 계산할 무렵, 휴대전화기는 운전대를 잡으며 내비게이션을 켜려는 순간 분실을 인식한다. 안경도 운전석에 앉으면 그제야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안경의 경우 욕실 안, 라커룸, 세면대, 화장실 등 모든 곳이 분실 위험 장소다.
골프장을 빠져나올 무렵 가장 신경 쓸 부분은 클럽과 보스턴백, 그리고 캐디백이다. 간혹 스타트하우스 옆 간이 연습장에서 연습하다 클럽을 나무에 기대어 세워 두고 출발한다.
몇 홀이 지나 막상 필드에서 해당 클럽으로 샷을 하려다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부랴부랴 찾아 나선다. 대부분 경기과에 연락해서 찾을 수 있지만 누군가 가져가버리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CCTV에 나타나지 않으면 배상 문제가 생기고 그날 멘털은 무너진다. 골프를 끝내면 캐디 말을 듣고 반드시 클럽을 확인해야 한다.
필자는 몇 년 전 바뀐 퍼터 주인을 몰라 아직도 그대로 사용한다. 간혹 골프백을 발레 서비스로 실어주거나 동반자가 대신 내 차에 실어주더라도 골프장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트렁크를 열고 다시 확인한다. 다른 사람 차에 골프백을 임시로 실었다가 외부 식당에서 식사를 끝낸 후 인사를 나누고 그대로 차를 몰아 귀가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에 약속을 정해 다시 찾으려면 번거롭다.
특히 다음 날 아침 일찍 골프 약속이 돼 있으면 난감하다. 혹시라도 집이 서울 강남과 일산 등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면 한밤중에 골프백을 찾으러 간다는 건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골프 초보 시절엔 골프장에 보스턴백을 종종 두고 왔다.
포천 아도니스CC 등 먼 골프장은 돌아가기도 여의치 않아 며칠 지나 소포나 택배로 전달받은 게 수차례다. 골프 치매라는 농담이 있지만 만약 물건을 놔두고 왔다면 대부분 건망증(Forgetfulness)이지 치매(Dementia)가 아니다. 골프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렸다면 건망증이지만 약속 자체를 아예 기억하지 못한다면 치매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쉽게 말해 클럽하우스 식당에 재킷을 걸어두고 오거나 골프장 주차장에서 캐디백만 트렁크에 넣고 옷가방을 두고오면 건망증이다.
분실물 보관은 법적으로 1년이다. 고객이 두고 간 물건은 보통 라커룸 분실물 보관함에 보관하고 문의는 프런트로 오기 때문에 라커 직원과 말이 서로 안 맞으면 번거롭다. 이를 감안하고 연락해야 한다. 골프장 측이 분실물이 있다고 했는데 관리 부주의로 없어졌다면 배상 문제가 걸리기 때문에 골프장 측도 유념해야 한다. 자주 함께 골프를 하는 직장 선배는 골프장을 빠져나오기 전 반드시 스스로 되뇌는 말이 있다. “안, 전, 지, 키, 자”라는 말이다.
‘안=안경, 전=전화기, 지=지갑, 키=키(자동차), 자=자크(지퍼)’다. 이후 그는 중요한 지참물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매일경제신문에서 스포츠레저부장으로 근무하며 골프와 연을 맺었다. 당시 동료들과 <주말골퍼 10타 줄이기>를 펴내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매경LUXMEN과 매일경제 프리미엄 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