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엔데믹 시기를 맞으며 미국 기업에서는 하이브리드 근무제가 뉴노멀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하이브리드 근무, 뉴노멀… 조금은 생소한 단어일 수 있겠다. 먼저 하이브리드 근무란 말은 사무실 출근과 재택근무를 혼합한 근무 형태를 일컫는다. 예컨대 한 주 5일 근무 중에 3~4일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1~2일은 집에서 업무를 보는 식이다. 뉴노멀이란 말은 어떤 특정의 큰 사건 이후에 새롭게 변화한 세상의 기준을 뜻한다. 그러니까 코로나 엔데믹 시기로 들어서면서 미국 기업에서 하이브리드 근무제가 뉴노멀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국면이 끝나가던 올해 초부터 아마존, 스타벅스, 디즈니 등 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완전히 폐지하거나 사무실 출근 일수를 늘리며 직원들의 반발에 직면했다. 주 5일 출근제를 고수한다면 이직도 불사하겠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기업 경영진과 직원들이 근무 형태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면서 이들의 전투가 길어지는 가운데 양측은 타협점을 찾아나갔다. 사무실에 나오나 집에서 일하나 성과에 별반 차이가 없다면 기업으로서도 5일 내내 사무실 출근을 요구하는 대신 하루 이틀 정도의 재택근무 정도는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리고 직원들 역시 사무실 출근이 갖는 긍정적인 면을 인정하면서 그 타협점을 ‘하이브리드 근무 형태’로 찾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미국 부동산 투자 전문가들은 이러한 하이브리드 근무 형태가 현재 미국의 고금리 상황과 맞물리면서 ‘불패의 투자의 장’으로 인식돼오던 미국 부동산 투자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16일 발간한 ‘해외경제 포커스’에서 미국의 주택가격은 공급 부족과 재택근무 증가 등에 힘입어 반등하는 반면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사무실 등을 중심으로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의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주택가격은 고점 대비 6.8% 하락하다가 2월 이후 3.5% 반등했다. 반면에 상업용 부동산은 고점 대비 12% 넘게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인플레이션과 맞서기 위해 지난해인 2022년 6월부터 10연속 금리를 인상하면서 부동산 시장은 고금리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에 따라 모기지금리가 크게 오르면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고 주택거래는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미국 경제가 여전히 건강하다는 경제지표가 잇달아 발표되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고 미국 주택 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 반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오히려 더 나빠질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찬바람이 여전하다. 현재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주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고금리 상황과 코로나로 일반화된 재택근무 형태가 미국의 주택 시장과 상업용 부동산 시장, 이 양대 시장에 극명하게 다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도심에서 근무하고 거주하던 사람들이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외곽으로 이사한 후에 저렴한 집값과 넓어진 공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팬데믹이 종료됐어도 다시 도시로 돌아오지 않고 장거리 통근을 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이와 함께 젊은 층을 중심으로 팬데믹 기간 동안 원격근무, 혹은 재택근무로 전환하면서 부모 집에 얹혀살거나 룸메이트와 거주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홀로 삶을 사는 것의 가치를 인식하게 됐고 이런 재택 및 원격 형태 근무가 자기만의 공간인 집에 대한 가치를 올리면서 내 집을 마련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리고 미국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이런 내집마련 열풍이 결국 고금리 속에서도 주택가격 상승이라는 기현상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이렇듯 코로나로 인한 원격근무 및 재택근무 형태가 미국 주택 시장 가격의 주요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 반면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는 도리어 커다란 악재로 작용했다. 재택근무로 전환되면서 사무실로 사용되는 건물이 줄어들었고 인근의 식당과 같은 시설도 많이 문을 닫았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지난 7월에 ‘공실과 하이브리드’라는 보고서에서 팬데믹으로 바뀐 근무 패턴이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켜 대도시의 부동산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거 위치의 변화와 재택근무로 사무실 근무 인원이 팬데믹 이전의 절반 수준을 유지하자 회사들은 사무실 임대공간을 줄여나갔고 리스 기간도 팬데믹 이전에 비해 짧게 계약하는 추세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도심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사무실 인근에서 소비하던 금액이 감소하면서 회사 주변의 상가에도 부담을 안겼다. 뉴욕타임스는 2022년에만 30만 명의 뉴욕 시민이 도시를 이탈했다고 보고했으며 상업용 부동산 기업 VTS에 따르면 2023년 1월의 사무실 임대수요는 팬데믹 이전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이자 부담의 증가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을 휘청이게 만든 또 하나의 주요 요인이다. 상업용 부동산 소유 기업들이 늘어난 팬데믹 이전의 2배에 가까운 금융 비용을 감당하기엔 너무 큰 폭으로 기준금리가 인상됐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임대료를 올리면 된다지만 기업들은 반대로 업무공간의 축소로 맞서기 때문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중소형 은행 대출 비중이 높아 이들 은행의 불안 요인으로 드러나면서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대출 심사가 깐깐해지고 신용 공급도 줄어드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부실해지기 시작하면 지역 은행들의 재무 건전성 또한 악화될 우려가 커져 은행들로서는 대출 기준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 대출 연장을 못하는 부동산 주인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건물을 팔고, 이는 또 부동산 시장의 시세를 떨어뜨려 다시금 은행에서는 대출심사를 더욱 강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이런 가운데 국내 증권사가 투자한 전체 해외 부동산 가운데 절반이 오피스 건물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7월 24일 금융투자업계와 한국신용평가에 의한 집계 결과다. 지역별로는 높은 공실률로 임대지표가 지속적으로 악화해온 미국과 유럽 부동산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증권사들은 2010년대 후반부터 낮은 금리와 우호적인 환율 여건에 힘입어 해외 부동산 투자에 적극 뛰어들었다. 그중에서도 오피스 건물은 당시만 해도 수익률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부동산 투자 대상으로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가치가 하락하면서 투자 손실에 대한 우려가 불거진 가운데 리스크 현실화 가능성에 업계와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몇 달 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코로나 위기가 불러온 급격한 사회 변화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눈에 띄게 깊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로 미국 서부의 금융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를 주목했다. 샌프란시스코 금융지구에 있는 22층짜리 건물은 4년 전인 2019년에는 3억달러의 가치가 있었는데 최근 매물가격은 6000만 달러 정도로 급락했다. 그리고 해당 빌딩의 공실률은 75%에 이른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인 유니언스퀘어의 고급 백화점 노드스트롬도 유동인구 감소로 30여 년 만에 문을 닫았다.
지난 7월 세상을 떠난 재즈의 거장 토니 베넷(Tony Bennett)은 1963년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란 노래로 그해의 레코드상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노래다. 이 노래 속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The morning fog may chill the air….” 서늘한 아침 안개가 가슴에 스며드는 샌프란시스코는 실제로 ‘안개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상업용 부동산 위기 속에서 세계적인 금융도시 샌프란시스코가 두터운 안개속에 갇혀버린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상업용 부동산 위기는 샌프란시스코를 넘어 같은 서부인 LA, 동부지역인 뉴욕 등 다른 대도시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니 상업용 부동산 위기는 안개를 너머 공포 그 자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월 초 미국의 누빈자산운용의 잭 개이 글로벌 부동산투자 부문 대표가 한국을 방문했다. 개이 대표는 1500조원 규모의 글로벌 운용사인 누빈자산운용에서 글로벌 부동산 포트폴리오 전반을 관리감독하는 부동산 투자 전문가다. 개이 대표는 말한다. “공포에 휩싸인 지금 시점이 최근 10년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투자 기회다.” 상업용 부동산이 부동산 시장 전체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에 대한 잭 개이의 반론은 이렇다. “공포의 진원지는 상업용 부동산으로 이 부문 공실률이 과거 대비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리테일 부문이나 주거형 부문, 멀티 패밀리 부문 등에서 과거와 별다르지 않은 공실률이 이어지고 있고 시장 전체 차원에서 보면 퍼포먼스는 유지되고 있다.” 그러니까 현재로서는 예상과 달리 미국의 경기가 견조하고 금리 인상이 중단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부동산 시장에 대한 우려는 줄어들 것이며 유동성은 늘어날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으므로 지금과 같이 상당 수준 가격이 하향돼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때가 매력적인 시점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미국 재무부 등 정책당국도 상업용 부동산 규모가 주택 시장에 비해 작은 데다 관련 대출의 금융기관 간 연계성도 낮아서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망하면서 미국 부동산 위기론 불식에 힘을 보태고 있다. 참고로 미국 부동산 시장 규모는 총 79조달러 정도인데 이 가운데 주택이 55조7000억달러(지난해 4분기 기준)로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상업용 부동산은 23조8000억달러 규모를 보이고 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촉발된 부동산 위기가 미국 경기 침체의 방아쇠로 작용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 부동산 시장은 또다시 온갖 악재를 이겨내고 불패 신화를 쓰게 될 것인가?
김민경 국민이주 미국변호사
미국 이민전문 변호사. 미국투자이민, 고학력 독립이민, 사업가비자 등을 담당하며 미국 내 부동산 거래 관련 실무 및 상담을 하고 있다. 관련된 전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이민변호사협회 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