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다짐했는데, 나의 버킷리스트에 올라 있는 그곳은 이제 더 이상 지상낙원이 아니다. 영화에서 봤던 디스토피아를 고스란히 재현해놓은 듯, 살아있는 생명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하와이 마우이섬 얘기다.
100명이 넘는 인명을 앗아간 기록적인 산불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이상기후로 인한 극심한 가뭄과 허리케인이 몰고 온 강풍을 지목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 스페인 카나리아제도와 그리스 로도스섬에서도 가뭄과 강풍이 겹쳐 유례없는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캐나다는 1000건이 넘는 산불이 발생해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기까지 했다.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를 넘어 끓는 지구(global boiling)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경고처럼 지구가 균형점 이상으로 뜨거워지고 있다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로 인한 가뭄이 산불을 내고 세계 곳곳의 산불은 지구를 더욱 뜨겁게 만들며 기후재앙의 악순환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작가인 조시 티켈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키스 더 그라운드(Kiss the Ground)>에서 생산량을 극대화하려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농업의 대량화와 획일화, 독한 화학비료의 과도한 사용 등으로 대지가 자정능력을 잃고 사막화돼 이상기후를 가속화한다고 분석했다.
그의 주장이 설득력 있는 것은 하와이 마우이섬의 경우만 봐도 알수 있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습한 곳으로 원래 사탕수수밭이었지만, 외래종 식물들로 대체되면서 화재에 취약하다는 경고가 이미 수년 전 있었다고 한다. 마우이섬 당국은 산불이 발생했을 때 송전선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절연 전선을 사용하고, 전선이 초목과 접촉하는 것을 감지하는 기술을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발표한 것과 달리 별다른 조처들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마우이섬 산불을 자연재해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화재 발생 몇 시간 전, 전력회사가 화재 위험을 사전 감지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도 전력 공급을 차단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회색코뿔소(gray rhino)였지만 아무 대비도 않고 안이하게 대응해 대참사를 맞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와이 산불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강원도 산불로 강릉시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게 불과 넉 달여 전인데, 그사이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전국이 또 몸살을 앓았다. 기후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이제 뉴노멀이 됐음을 우리도 몇 달 새 진하게 겪은 셈이다.
“오늘 몰디브가 침몰하면 내일은 뉴욕도 도쿄도 침몰할 수 밖에 없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해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선진국, 후진국을 가리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렸던 평온한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지구의 경고를 무시하고 살아온 대가다. 환상의 섬 몰디브와 베니스가 머지않아 침몰할 것이라는 ‘예정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김주영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