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프랑스 여행(Tour de France)의 시간이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인간의 극한에 도전하는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잔인한 여행이다. 전 세계 35억 명이 숨죽이며 바라보는 영웅의 탄생. 가장 공정한 규칙 아래 펼쳐지는 가장 치열한 승부의 대서사시, 투르 드 프랑스.
2023년도 투르 드 프랑스가 7월 1일 3404㎞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총 23일 동안 21개로 나뉜 코스에서 경기가 펼쳐지는데, 피레네산맥, 오베르뉴 화산, 쥐라산맥, 그리고 알프스와 보주산맥까지 프랑스의 대자연을 날것 그대로 질주하며 자연의 웅장함 속에서 작지만 인간이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 경이로운 경기를 시청해본 분들이라면 공감하는 게 있다. 바로 기록의 향연이다. 구간기록은 물론, 순간 스피드, 표고차에 대한 대응능력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각종 수치들이 현장에서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과거의 선수들까지 불러내 비교하며 시대의 영웅을 만들어 간다. 기록은 동일한 단위가 있어야 비교가 가능해진다. 동일한 단위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마치 타임머신처럼 과거마저 소환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소소한 궁금증이 생긴다. 그렇다면, 지금 사용하는 미터(m) 단위법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길이와 무게를 재는 단위를 도량형이라 하는데,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며 무수한 단위들이 존재해 왔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왕의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를 ‘큐빗’이라 칭하고 표준길이로 정했는데, 이를 활용해 돌을 정교하게 잘라 만든 건축물이 피라미드다. 그리고 이 큐빗은 지금 미국에서 사용하는 야드(yd)의 원형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에든버러성과 여왕의 숙소까지의 거리를 로열 마일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마일’, 콩의 무게에 서 착안해 보석의 무게를 재는 단위로 발전한 ‘캐럿’, 손가락 길이를 원용한 동양의 ‘자’까지. 그리고 역사는 이러한 도량형을 통일하는 사람에게 위인의 지위를 부여해 왔다.
도량형 통일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진시황이다. 고대 중국은 은(殷), 주(周) 시대부터 주척이라는 도량형을 사용했는데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국가마다 이 잣대가 달라져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는 세금을 고루 거두기 위해 척관법을 실시한다. 척관법은 길이의 기본 단위인 척과 무게의 기본 단위인 관을 합친 말로, 이 제도의 시행으로 먼 거리 지방 간의 물건 거래가 용이해져 중국이 상업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토대를 만들게 된다. 지금의 글로벌 사회를 가능하게 한 도량형의 통일 미터법도 세계사의 대사건,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물이다.
길이 단위를 정의 내리기 위한 과학적 시도는 갈릴레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단위를 통일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욕구는 18세기 프랑스 평민 계층을 파고든다. 프랑스의 성직자와 귀족들은 평민 계층의 소작료를 착취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잣대로 기준을 정하는데, 기록에 따르면 혁명 이전 프랑스에는 서로 다른 800여 개의 단위가 존재했다고 한다. 그 자의적 잣대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을까? 시간과 공간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권력자에게 농락당하지 않는 영원불변한 단위. 바로 프랑스 혁명이 추구한 가장 공정한 가치이자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미터법의 기원이다.
1790년 프랑스 혁명 직후 국민의회는 1m를 정의하기 위해 불변의 가치로서 지구 둘레에 주목한다. 당시의 인식에선 지구의 둘레는 결코 변할 수 없는 가치였기 때문이었다. 지구 둘레의 4분의 1인 사분자오선을 구하고, 이 길이를 나누어서 길이 단위의 기본으로 삼겠다는 야심찬 선택이었지만, 북극에서 파리를 경유해 적도에 이르는 거리를 측정하기 위한 노력이 결코 순탄할 리 없었다. 1792년 원정대가 파리를 출발해 꼬박 7년을 노력한 끝에 사분자오선의 길이를 결정하였고, 그 1000만분의 1을 1m라고 정의 내린다. 그리고 1799년 길이가 1m인 백금 미터원기를 제작해 프랑스 국립 문서보관소에 보관하게 된다. 미터의 탄생 순간이다. 또한 가로, 세로, 높이가 각 10㎝인 큐브에 담긴 물의 무게를 1㎏으로 정의한다. 원정대를 이끈 들랑브르가 펴낸 책 <미터법의 원리>에 나폴레옹은 “정복은 순간이지만 이 업적은 영원하다”라는 글을 남긴다.
그리고 프랑스는 미터원기를 복제해 전 세계로 보내기 시작한다. 프랑스 혁명의 가치를 전파한 것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도 초대 국무장관으로 일하며, 프랑스에 표준길이를 요청한다. 미국을 성장시키기 위해 도량형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가 제퍼슨 장관에게 보낸 표준기를 실은 범선은 목적지 필라델피아항을 목전에 두고 풍랑에 휩쓸려 기수를 돌리게 되고, 불행하게도 캐리비안 해적들의 습격을 받아 표준기를 빼앗기고 만다. 2023년 현재, 전 세계에서 미터법을 법령으로 채택하지 않은 국가는 라이베리아, 미얀마, 그리고 미국 딱 세 나라뿐이다. 만약 해적들에게 길이 표준기를 빼앗기지 않고 미국에 무사히 전달되었다면, 인류의 도량형은 완전 통일을 이루었을 텐데. 비록 미국에 프랑스의 미터원기가 전달되지 못했어도, 혁명의 공정한 가치는 잘 전달되었다고 본다. 미국의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가 “미터법이 가져올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발전은 노예제 폐지와 맞먹는다”라고 강조한 것에서 보듯이 말이다.
프랑스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870년 국제미터위원회를 출범시켰고, 1875년 국제미터협약을 17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체결한다. 협약 체결일인 매년 5월20일은 ‘세계 측정의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1889년 제1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마침내 ‘1m는 미터원기라 불리는 금속막대의 길이’라고 국제적인 정의를 도출해 낸다.
투르 드 프랑스에는 알프 두에즈라는 악명 높은 오르막이 있다. 그 오르막을 최선을 다해 오르는 선수들의 의지처럼, 국제도량형총회는 과학적 발전을 적용하여 미터법의 정의를 개선해 나간다. 그리고 1983년 ‘1m는 빛이 진공 속에서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거리’라고 새롭게 정의 내린다.
파리 근교 세브르(Se0 vres)에는 세계도량형국(BIPM)이 있다. 이 작은 건물이 공정의 가치를 절대불변의 원칙으로 확립하고자 했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의 피, 땀, 눈물의 결과를 상징한다는 마음에 숙연해진다. 올해도 투르 드 프랑스가 쏟아내는 기록에 세계는 흥분할 것이다. 공정한 가치에 환호하는 것이다. 결코 우연히 주어지지 않은 처절한 노력으로 쟁취한 공정이기에 더 가치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