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정부의 요즘 행보를 보면 놀라움을 넘어 두려울 정도다. 일본은 이례적으로 대만 TSMC 반도체 공장을 자국 내에 짓는 것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나섰다. TSMC가 10조6000억원을 들여 일본 규슈 구마모토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데 그 사업비의 40%에 달하는 4조6000억원을 일본 정부가 지원한다. 지원액 규모도 놀랍지만 그 속도는 더 놀랍다. 지난해 봄 착공해 올해 12월 완공 예정이다. 2년도 채 걸리지 않아 그야말로 ‘뚝딱’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도 아닌 외국 경쟁사를 이처럼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것에는 반도체 기술이 구조적 전환기를 맞은 지금, 오히려 일본 반도체 산업이 부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이 배어 있다. 또한 부지 인근에는 소니 반도체 기업과 도큐일렉트론 공장도 위치해 TSMC 공장까지 완공되면 이 일대가 이른바 아시아 반도체 산업의 메카가 될 것이라는 일본 정부의 야심도 담겼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자국의 경쟁력을 강화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보조금, 면세 등 과감한 지원 정책은 기본이고 경쟁국과 전략적 제휴도 마다하지 않는 필사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쩐’과 ‘속도’가 생명인 반도체 시장에서 ‘아차’ 하는 순간 뒤처질 것이라는 위기감과 절박함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니 우리 국회는 아직 그 절박함과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반도체산업강화법인 이른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여야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국회 계류 중이다. 야당은 “세액 공제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대기업만 좋은 일”이라며 발목을 잡고 있다. ‘대기업 특혜’란 얘기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삼성과 SK하이닉스 특혜법 그 자체”라며 “5년간 9조2000억원의 현금을 삼성과 하이닉스에 쥐어주게 된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대기업만 좋은 일”이라는 발언의 밑바닥에는 대기업은 우리 편이 아니라는 부정적 인식이 깔려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은 수출 1위 품목으로,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국가 근간산업이다. 반도체 관련 기업은 1400여 곳에 달한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직원만 10만 명인데, 이들을 고객사로 한 반도체 관련 기업들, 주주들까지 감안하면 수백만 명의 일자리, 밥줄이 달린 산업이다. 게다가, K칩스법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반도체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 스타트업, 벤처를 지원하는 법안이다.
우리끼리 내 편, 네 편으로 편 가르기하는 편협한 인식으로 허송세월하다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하면 그때 가서 정부가 수백조원을 들여 산업을 살리려 한들 만회가 쉽지 않다. 1980~199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한 최강국이었지만 지금은 몰락한 일본이 단적인 예다. 우리도 일본처럼 되지 말란 법 없다. 일본이 외국 경쟁사에 수조원을 지원하며 파트너십 관계를 맺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은 단순히 기업 경쟁력 강화를 넘어 자국의 ‘경제 안보’를 위해 일본 내에 반도체 생산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야심찬 구상이다. 만약 같은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면, “대만 기업만 좋은 일”이라고 발목 잡지 않았을까.
[김주영 월간국장·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50호 (2023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