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산업의 부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07년을 정점으로 수주 업황이 꺾인 후 긴 침체 국면에 들어섰던 조선업이 최근 달라진 모습을 보이면서 생기는 기대감이다. 실제 조선업계에서는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수주잔고가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고, 2011년 이후 처음으로 국내 대표 조선업체인 빅3가 동반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조선업의 슈퍼사이클이 돌아오고 있는 것 아니냐는 낙관론이 팽배하고 있다. 주요 조선사들의 주가도 바닥에서 벗어나 상승추세를 타고 있다.
정말 조선업이 초황기였던 2005~2007년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6월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한화그룹이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을 통해 미국의 필리 조선소를 인수했다는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조선업의 발전사를 보면 미국은 원조격이나 다름없다. 그런 곳의 조선사를 국내 조선업체가 인수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배 건조 능력이 글로벌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증 사례나 다름없다.
특히 필리 조선소가 있는 미국의 필라델피아는 미 해군의 주요 근거지로, 이곳에 발을 들였다는 것은 우리가 향후 미 해군의 군함 건조 기회도 엿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 같은 국내 조선사의 해외 진출 소식은 우리 조선업의 최호황기였던 2007년에 종종 들려왔을 뿐, 긴 침체기 동안에는 잘 들을 수 없는 뉴스였다. 그만큼 한화의 미 조선사 인수는 최근 업계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최근 여느 때보다 활기찬 모습이다. 넘쳐나는 수주잔고와 함께 기업 본연의 임무인 실적에서도 흑자 기조를 보이고 있다.
수주 소식을 살펴보면 7월에만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이 LNG선 4척 등을, HD현대중공업은 컨네이너선 6척을, HD현대미포조선은 중형 석유화학제품운반선(MR 탱커) 4척 등을 각각 수주했다는 낭보를 알렸다. 잇따르는 수주 소식에 연간 수주 목표액을 상반기 내에 이미 다 채운 조선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DB금융투자에 따르면 HD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이 각각 41억 3000만달러와 35억 6000만달러를 수주하며 이미 목표 수주액을 상반기에 초과 달성했다. 삼성중공업과 HD현대중공업은 상반기가 지난 시점에 각각 48억 7000만달러와 33억 5000만달러를 따내며 각각 목표액 대비 약 70%의 수주 실적을 달성했다. 한화오션을 제외하고 이들 조선사들은 2021년부터 연속 목표액 대비 초과 수주를 달성하고 있다.
이같은 성적에 힘입어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 기관 클락슨리서치 발표에 따르면 1분기 한국의 선박 수주액은 136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1.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한때 우리를 추월했던 중국은 주춤한 모습이다. 같은 기간 중국의 수주액은 10억달러 적은 126억달러였다. 국내 조선사들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암모니아 선박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을 중심으로 3~4년치 일감을 확보한 상황이다.
수주의 질도 달라졌다. 올 1분기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조선 빅3사는 13년 만에 동반 흑자를 기록했다.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각각 1602억원과 779억원을, 한화오션은 529억원의 영업이익 흑자를 냈다. 2분기에도 이 같은 흐름은 이어질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조선 빅3는 지난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영업이익 동반 흑자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체별 2분기 영업이익 시장 평균 전망치(컨센서스)를 보면 HD한국조선해양이 2466억원,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각각 927억원과 519억원으로 형성됐다. 하지만 시장의 눈높이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SK증권은 HD한국조선해양의 2분기 영업이익이 컨센서스보다 279억원 더 많은 2745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HD현대중공업의 예상 영업이익(1253억원)도 시장 컨센서스보다 높을 것으로 내다봤고, 3분기 흑자전환이 예상됐던 HD현대미포조선은 2분기에 이를 달성할 것으로 추정됐다.
시장을 선반영하는 조선사들의 주가는 이미 꿈틀대고 있다. 삼성중공업, HD현대미포조선 등은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긍정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조선업에 대한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도 강하다. 여기에는 2007년의 조선업의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가 한몫하고 있다. 당시 조선업은 초호황기를 누리며 장밋빛 전망만 가득했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인 2008년 갑자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금융위기에 글로벌 전체 경제가 흔들렸고, 당시 계속 거론됐던 공급과잉 문제와 수주 절벽이 조선업 전체를 휘감았다. 결국 2010년부터 본격적인 침체의 늪에 빠지기 시작한 조선업은 이후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혹독한 시간을 겪어야만 했다.
실제 이번 조선업황을 둘러싼 분위기도 언제든 갑작스레 변화된 환경에 직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큰 걱정은 역시 글로벌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다. 현재 전 세계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 금리 인하 단행의 가장 큰 전제 조건이 현재 과열된 경기가 어느 정도 식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경기 둔화의 조짐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사실 양날의 검이다. 만일 경기 둔화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세계 경제가 갑작스러운 침체의 국면으로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살아나던 조선업황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조선업이 살아나려면 글로벌 경제가 활발히 움직이면서 해상 운송이 바빠져야 한다. 이것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현 조선업의 분위기는 반짝 하고 끝날 수 있다. 현재 확보한 수주잔고 물량이 소화되는 향후 3년 후에는 다시 업황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AI발 산업 흐름이 과열됐다는 인식 속에 한바탕 폭풍우가 몰아칠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들이 꽤 늘었다. 현실화된다면 조선업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만 OECD 경기선행지수가 2022년 10월 이후 지난달까지 계속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고, 유로존과 중국 등 세계 경제의 핵심 축들의 경기 회복 기대감이 식지 않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갑작스러운 큰 돌발 변수만 없다면 글로벌 경제 분위기가 확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한 현재 늘어나는 수주 물량이 선박 패러다임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도 조선업의 장기 호황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있다. 국제해사기구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2008년 대비 5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는데, 선주들이 이 규제를 따르기 위해 노후화된 선박을 친환경 선박으로 바꾸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10년 동안 교체 발주 물량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조선업을 짓눌러 왔던 인력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점도 업황의 우상향 지속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사실 조선업이 침체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2021년부터다. 이때부터 국내 조선사들의 일감이 넘치기 시작했는데, 인력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 흐름 속에 고된 일자리에 속하는 선박 건조 현장에서 일을 하려는 이들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었다. 2007년 조선업 최호황기 때와 가장 다른 점이다. 이에 수주는 늘었지만 인력난에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이익의 질이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직면해 왔다.
최광식 다올투자증권 기업분석팀장은 “2021년부터 조선업황의 기류가 바뀌었지만 우리가 체감하지 못했던 이유”라고 했다. 그런데 외국인 근로자들의 수급이 이루어지면서 인력 문제가 숨통이 트였고, 이로 인한 비용 문제가 해결됐다. 이는 이미 수주 물량이 충분히 확보된 상태에서 납기일만 제대로 맞추면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조선사들이 마련했다는 의미다. 즉, 이익의 질이 어느 정도 확보됐다는 의미인데, 이는 당장 경기 둔화 흐름이 일어나더라도 확보된 수주 물량이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수주가 계속되고 있지만 전체 수주잔고가 2023년 하반기 이후 보합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우리 조선사들이 물량을 골라서 받고 있어서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에 걱정할 대목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더해 수주 블루오션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지난해부터 발주가 나오고 있는 암모니아 운반선 수주에 대한 기대감이다. 이 부분은 그동안 틈새 시장으로 우리 조선 관련업체들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암모니아 운반선은 수소 에너지 생태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암모니아 운반선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은 수소 에너지 생태계가 커지고 있다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수소를 대륙 간 이동시키려면 액화수소와 암모니아 방식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아직 기술적인 면에서 암모니아가 더 용이하다고 한다. 암모니아 운반선에 대한 발주가 늘어난다는 것은 수소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는 뜻이고, 수소 에너지 생태계는 이제 막 태동 단계에 있다.
변용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조선소가 점유율을 늘리고 있는 컨테이너 및 탱커와 달리 LPG/암모니아 운반선에서는 한국 조선사가 선두를 지키고 있다”면서 “올해 5월까지 관련 누적 발주는 37척으로 이미 지난해 절반 수준을 넘겼다”고 전했다. 2035년까지 암모니아 운반선이 200척 정도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조선 산업이 이제 막 호황의 진입 초기에 들어섰다는 시각도 당장 슈퍼사이클 논란을 잠재우지 않을 공산이 크다. 2007년 호황기를 보면 당시 조선업황의 호황을 틈타, 우후죽순으로 신생 조선업체들이 늘어났다. 이때 공급과잉 문제가 제기되고,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상당수가 힘없이 쓰러졌다. 불황에 접어들며 저가 수주 등 업체 간 출혈경쟁도 이어졌다. 아직까지 이런 흐름은 없다.
최광식 팀장은 “정확히 말하면 현재의 조선업 분위기는 슈퍼사이클보다는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초입에 있다고 보는 게 맞다”면서 “2007년보다는 정도는 약하지만 추세적으로는 더 길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최 팀장은 2029년까지는 현 조선업의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다만 중국 조선사들의 생산 능력이 한국 조선사의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계감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조선업의 가치사슬 종합 경쟁력에서 중국이 한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7호 (2024년 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