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 회장으로는 처음 기소된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재판에 관심이 쏠린다. 정 회장은 지난해 1월 29일 발생한 경기 양주시 채석장 토사붕괴 사고와 관련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유해·위험 요인 등 확인·개선 절차와 중대산업재해를 대비한 매뉴얼 마련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다.
삼표그룹은 지난 5월 1일부터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창사 이래 처음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분류됐다. 공정위가 발표한 ‘2023년도 공시대상기업집단’ 자료에 따르면 삼표그룹의 공정자산 총액은 5조2200억원으로 사업 개시 이후 최초로 자산 5조원을 넘어섰다. 자산 기준으로 보면 재계 순위 80위에 해당한다.
국내 시멘트·콘크리트 등 소재 분야 대표 기업 중 하나인 삼표그룹은 1952년 정도원 회장의 부친인 정인욱 창업주가 강원탄광을 설립한 것이 사업의 시작이다. 정도원 회장은 정인욱 창업주의 차남이다. 세간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돈 기업으로 더 알려져 있다.
정도원 회장은 장남 정대현 삼표시멘트 사장과 정지선(정의선 현대차 회장의 부인), 정지윤 씨 등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이 중 그룹 경영에 참여하는 사람은 정 사장뿐이다. 정 사장은 2006년 삼표그룹 과장으로 입사해 2015년 삼표시멘트 부사장에 올랐고, 2019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표의 실질적인 계열사는 코스닥 상장사인 삼표시멘트다. 비상장사인 ㈜삼표가 상장사인 삼표시멘트와 삼표산업 등을 계열사로 보유한 형태였다. 삼표시멘트는 2년 전 삼표레미콘을 설립하면서 자산이 400억원 넘게 늘어났다(표 참조).
실적도 나쁘지 않다. 삼표시멘트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399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53.3% 증가했다. 매출액은 4194억원으로 27.3% 증가했으며, 순이익은 149억원으로 606.1% 늘었다.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으로 지연된 시멘트 출하량이 올해 상반기에 몰렸고, 지난해 이뤄진 판매단가 인상이 올해 실적부터 반영되기 시작한 결과로 풀이된다.
삼표그룹의 최대 현안은 앞서 언급한 정 회장의 재판과 지배구조 개편이다.
실제 회장의 재판을 앞두고 지난 7월 1일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역할을 했던 모회사 삼표가 소멸법인이 되고 자회사였던 삼표산업이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사 역할을 맡은 역합병 방식. 합병 이전 ㈜삼표의 주주 구성은 정도원 회장 65.99%, 정대현 사장 11.34%, 정 사장의 개인 회사 에스피네이처 19.43% 등이었고, 삼표산업의 주주 구성은 ㈜삼표가 98.25%, 정 사장이 0.01%, 정 사장의 개인 회사 에스피네이처가 1.74%였다.
합병 이후 통합법인 지분율은 정도원 회장 54.88%, 그의 아들 정대현 사장 9.44%, 정대현 사장의 개인회사 에스피네이처가 32.98%로 변경됐다. 정 사장의 직·간접적 통제권에 있는 지분 비율이 30.8%에서 32%로 약 1.2%포인트 올랐다(그림 참조).
지주사 역할을 하는 비상장 계열사 ㈜삼표가 그룹 유일의 상장사 삼표시멘트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던 형태인 만큼, 정 회장의 지주사 지분을 정 사장에게 넘기는 것이 승계의 관건이었다.
삼표그룹 측은 공식적으로는 합병이 오너 일가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합병 이후 정대현 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에스피네이처의 지분 증가율이 미미하다는 게 그 이유다. 삼표시멘트 관계자는 “삼표와 삼표산업은 원래 한 회사였다. 삼표산업은 2013년 10월 1일 ㈜삼표의 골재, 레미콘 및 콘크리트 제품의 제조와 판매사업부가 물적분할해 만들어진 회사로 10년 만에 다시 한 회사로 합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선 정대현 사장이 대주주이자 실질적인 경영을 맡고 있는 에스피네이처를 주목한다. 에스피네이처는 삼표그룹 계열사 주요사업에서 발생한 부산물을 재활용하는 등 그룹 내부 거래를 통해 성장했고, 이렇게 확보한 유동성을 그룹 지배회사의 지분 확대에 사용해왔다. 에스피네이처의 전신은 정도원 회장의 개인 회사였던 대원이다. 정 회장은 2007년쯤 세 자녀에게 지분을 넘겼고, 이 과정에서 정 사장은 70%가 넘는 지분을 확보했다.
삼표그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결국 통합법인 삼표산업과 에스피네이처가 합병하는 방식으로 삼표그룹의 승계작업이 진행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에스피네이처는 ‘삼표기초소재’가 ‘경한’과 ‘네비엔’을 흡수합병하면서 2019년 사명을 바꾼 회사. 현재 ‘홍명산업’ 등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자산은 6830억원이다. 사실상 관계사와 수차례 합병 등을 거치며 삼표산업과 비슷하게 덩치를 키워온 것이다. 2013년 연결 기준 자산 2465억원, 매출 293억원이었던 회사는 2022년 자산 7572억원, 매출 8442억원으로 성장했다. 2022년 합병 전 삼표산업의 자산 7500억원, 매출 6804억원 등과 견줄 만한 규모다.
에스피네이처는 높은 배당성향을 보인다. 결국 정 사장의 승계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에스피네이처의 2022년 총 배당금은 103억원, 배당성향은 59.89%에 달했다. 2021년 총 배당금은 131억원, 배당성향은 117.12%였다. 벌어들인 돈보다 배당금으로 지출한 금액이 더 많았다.
증권가에선 합병으로 인해 삼표산업의 자사주 비중이 45%에 달하는 등 높아지면서 정대현 사장 입장에서는 자사주를 어떤 형태로든지 확보하면 정도원 회장의 주식을 상속받지 않고도 삼표산업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한다. 앞서 인사는 “정 회장은 이번 합병으로 주식 수가 약 695만 주로 늘었다. 삼표산업 주당 평가가액으로 계산했을 때 정 회장의 총 주식 평가금액은 약 2139억원에 달한다”면서 “정 사장이 이를 이어받는다면 증여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멘트 업계의 최대 화두는 대체연료 도입 및 친환경 시멘트 생산 등 환경 분야를 시작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체제 구축이다. 삼표그룹 역시 지속가능 경영보고서를 발간해 회사의 ESG 현황을 공개하며 투명성과 신뢰도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삼표그룹 이 건설기초소재 전문기업으로 성장해왔고, 중대재해법으로 그룹 총수가 기소되는 등의 상황을 맞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다각화 역시 시급한 과제다. 그룹 핵심인 삼표시멘트 매출 구성은 시멘트, 석회석, 물류 등이 속한 시멘트 사업 부문에 집중돼 있는 현실이 있다. 경쟁사인 쌍용시앤이, 한일시멘트의 경우 2022년 기준 시멘트 사업의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 대비 58.28%, 52.54%였으며 이외 레미콘이나 레미탈 등에서도 비교적 매출이 고르게 나오고 있다. 시멘트 업계 상장사 6개사 중 삼표시멘트는 2022년 매출액 기준 점유율 5위에 그치고 있다. 경쟁사들이 레미콘 등 시멘트 외의 사업부문에서도 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만큼 삼표시멘트도 신사업에서 성공적인 결과가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신사업 발굴의 중심에 정 사장이 있다. 그는 삼표시멘트의 전신인 동양시멘트가 삼표그룹에 편입된 2015년 9월 영업부문 부사장으로 이사회에 입성했고 이후 지금까지 삼표시멘트 사내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2018년 대표이사를 맡은 이력도 있다.
또한 삼표레일웨이, 에스피네이처, 에스피에스엔에이 등 주요 계열사 사내이사직을 맡으며 신성장동력 발굴에도 주력하고 있다. 삼표그룹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폐기물 처리 사업, 부동산 개발, 로봇 발레 사업 등에 뛰어든 상태다.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