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위기에 대한 공포가 커져가는 가운데 최악의 상황을 맞은 미국 기업들이 과거 기업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직 CEO를 다시 호출하고 있다. 과연 다시 컴백한 ‘부메랑 CEO’들이 ‘구관이 명관’임을 증명할 수 있을지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콘텐츠 왕국 월트디즈니는 과거 디즈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CEO ‘밥 아이거’를 호출했다. 월트디즈니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밥 아이거는 2021년 은퇴한 CEO로 11월 20일 재선임됐다. 그의 화려한 귀환에 디즈니 주가는 하루 새 7% 상승하며 기대감을 반영했다.
밥 아이거는 한마디로 월트디즈니의 영웅이다. 사실상 지금의 디즈니 제국을 완성시켰다는 평을 받는 그는 1974년 언론사 ABC로 입사해 1989년 ABC 엔터테인먼트의 CEO에 올랐다. 이후 디즈니가 ABC를 인수하면서 ABC의 회장으로 승진했고 1999년 디즈니 인터내셔널 회장에 올랐다. 그리고 2005년, 전임 마이클 아이스너 회장의 후임으로 바로 아이거가 CEO에 취임하며 전설이 시작됐다.
그가 CEO에 오른 2005년 이후 디즈니는 대혁신을 이뤘다. 2006년 픽사, 2009년 마블 엔터테인먼트, 2012년 루카스 필름을 차례로 인수하며 현재의 디즈니 왕국을 건설했다.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는 역대 최고의 히어로물로 자리 잡았고 북미 시장에서 <스타워즈>의 위상은 압도적이었다. 지식재산권(IP) 확보와 더불어 오프라인 테마파크 역시 궤도에 올랐다. 상하이 디즈니 리조트, 홍콩 디즈니랜드 등 테마파크 확장은 세계 최대의 콘텐츠 왕국을 만드는 초석이 됐다.
이처럼 디즈니의 전성기를 이끈 그는 2021년 은퇴하며 그의 화려한 전성기가 막을 내렸다. 그의 후임은 밥 체이팩으로 이번 복귀 직전 CEO다. 하지만 밥 체이팩은 CEO 취임 2년도 안 돼 불명예 퇴진하며 자존심을 구기게 됐다. 밥 체이팩은 디즈니+의 실패, 마블과 스타워즈의 후속작 흥행 부진으로 인해 결국 물러나며 왕의 귀한을 초래했다. 이제 디즈니의 운명은 또다시 밥 아이거에 달렸다. 기대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밥 아이거가 위기의 디즈니를 새롭게 구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행보에 달렸다.
그의 최우선 과제는 폭락한 디즈니 주가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디즈니+를 흑자 전환시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70대의 노CEO가 과연 디즈니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며 “디즈니가 더 이상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타이밍이다”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왕의 귀환을 불러일으킨 것은 디즈니의 실적 악화였다. 디즈니는 지난 3분기 어닝쇼크로 시장을 웅성거리게 했다.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실적 발표로 디즈니 주가는 하루 만에 10% 넘게 폭락한 뒤 회복을 좀처럼 못했다. 디즈니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 늘어난 201억5000만달러였다. 한화 27조4000억원 규모다. 이는 시장 전망치인 212억5000만달러보다 10억달러 이상 못 미쳤다.
핵심 문제는 디즈니+의 실적 부진이다. 가입자 수는 전 분기 대비 1210만 명이나 증가했다. 시장 전망치인 886만 명에 비해서 무려 350만 명가량 늘어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즈니+는 순손실 14억7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배가량 늘었다. 이 역시 시장의 전망치인 11억달러 손실에 비해 3억달러 이상 부진한 성과다.
일단 이러한 위기 극복에 대해 시장의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증권가 관계자는 “밥 아이거가 복귀하며 거친 미디어 업계의 여정 속에서 일정한 무게중심을 잡아줄 것으로 예상된다”며 “디즈니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마법을 돌려줄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실제 밥 아이거는 15년간의 CEO 기간 동안 디즈니 주가를 5배 이상 높였다. 연간 순이익은 무려 4배 이상 늘었다. 아이거의 귀환으로 디즈니+의 흑자 전환에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밥 아이거와 더불어 최근 위기의 기업을 구하기 위해 재등판한 대표적 CEO는 다름 아닌 스타벅스의 아버지 하워드 슐츠다. 스타벅스를 글로벌 ‘커피 제국’으로 키워낸 하워드 슐츠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한다는 소식은 2022년 초 들려왔다. 2017년부터 최고경영자를 맡아온 케빈 존슨의 후임 CEO로 하워드 슐츠가 등판한 것이다. 케빈 존슨은 2009년 스타벅스 이사회에 합류한 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최고운영책임자를 지내다 2017년 4월부터 CEO를 맡았다. 경영 일선에 복귀한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 이사회에 다시 합류했으며 연봉으로 1달러를 받겠다며 사실상 명예롭게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긴급 출격했다.
하워드 슐츠는 1980년대 초창기 스타벅스에 합류해 현재의 스타벅스를 사실상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경영하는 동안 11개였던 스타벅스 매장은 현재 77개국 2만8000개로 늘었고 현재는 3만4000개까지 확장됐다. 설립 51주년을 맞은 스타벅스는 27만 명에 달하는 임직원을 보유한 글로벌 1위 커피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스타벅스도 위기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미국의 경기 침체 분위기가 덮치며 함께 역풍을 맞이했다. 게다가 스타벅스는 2022년 전 세계 기업들 사이에 분 노조 결성 붐으로 인해 결국 최초의 노조설립이 이뤄졌다. 기업 입장에서는 노조 결성에 대한 우려가 컸던 만큼 여러 방면에서 애썼으나 이를 막지 못했다.
이처럼 기업의 실적 악화와 더불어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노조 설립까지 이뤄지자 스타벅스는 왕년의 스타 CEO 하워드 슐츠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역시 흔쾌히 이러한 부탁에 응했다. 하워드 슐츠 명예회장은 성명을 발표해 “뭔가를 사랑한다면 부름을 받았을 때 도움을 줘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갖게 된다”며 “스타벅스에 돌아올 계획이 없었지만 회사가 새롭고 신나는 미래를 향해 다시 한 번 변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안다”고 밝혔다.
특히 하워드 슐츠는 “코로나19 이후 회복과 글로벌 불안 요소가 증가하는 환경에서 우리는 파트너와 고객을 위해 스타벅스 경험을 용기 있게 구상하고 재창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스타벅스의 이름에 걸맞은 경영실적과 성과를 내는 데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스타벅스 주가 역시 복귀 소식이 알려지자 7%가량 오르며 2년 내 가장 큰 폭으로 오르기도 했다. 실제 연초 대비 20% 넘게 떨어졌던 스타벅스는 지난 12월 19일 기준 연초 대비 주가 하락률을 -15.3%를 기록하며 완만한 회복을 보이는 모양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미국뿐 아니다. 일본 대표 제조기업 일본전산 역시 지난 4월 창업주인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이 컴백했다. 경영 일선을 떠난 지 불과 10개월 만의 일이다. 나가모리 회장은 “매일 주가를 보면서 절망했다”며 복귀 이유를 밝혔다. 퇴임 당시 1만3800엔 정도였던 주가는 복귀 직전 8800엔까지 하락했다.
최근은 아니지만 대표적으로 성공한 부메랑 CEO로는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있다. 그는 사실상 애플로부터 쫓겨나듯 CEO직을 내놓았지만 결국 회사로 돌아와 아이포드, 아이폰, 아이패드 등 현재 애플을 대표하는 신제품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현재의 애플을 일궈냈다.
경영 위기 상황에서 과거의 CEO를 다시 호출하는 것은 그만큼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경영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회사를 잘 알고 직원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받는 만큼 일치단결한 마음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제격이란 평가다. 특히 경영이 어려울수록 모험을 택하기보단 안정적으로 회사를 이끌어나갈 리더십에 대한 니즈는 훨씬 높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성공 케이스는 기업이 바라는 최선의 경우의 수다. 전임 CEO의 컴백 소식에 주가가 반등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기대감의 반영이다.
반면 옛 CEO라고 무조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고민해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성공한 리더가 이전 회사로 돌아온 경우가 많아도 애플의 스티브 잡스 정도를 빼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모든 컴백 CEO가 성공한다면 기업들 역시 모두 같은 선택을 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델컴퓨터의 창업자 마이클 델이나 P&G의 앨런 래플리 CEO 등은 두 번째 임기에서 오히려 더 나쁜 성과를 거둔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 예전의 CEO가 더 경영을 잘했는지에 대해 조사한 자료도 발표됐다. 컨설팅 업체 스펜서스튜어트에 따르면 2010년 이후 S&P500 기업에서 재취임한 CEO 22명 중 1년 미만 근무한 9명을 제외한 13명을 분석한 결과 그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주요 지표인 주가를 살펴보면 컴백 CEO 임기 동안 연평균 주가 상승률은 평균 2%에 그쳤다. 이는 첫 임기 동안 기록한 6%의 성장의 3분의 1 수준이다. 물론 역성장은 아니었지만 이는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봐야 한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진은 아예 1992년부터 2017년까지 35년간 S&P1500 기업의 부메랑 CEO 167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이들의 경영 기간 주식 수익률은 초임 CEO 성과보다 평균적으로 10%가량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크리스토퍼 빙엄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경영 트렌드는 매번 바뀌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CEO는 과거를 답습하면서 뒤처지게 된다”며 “2021년 말까지 디즈니 이사회 의장을 맡은 아이거처럼 공백기가 짧다면 모를까 일반적으로는 더 나은 성과를 낸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부메랑 CEO의 역할은 위기의 회사를 긴급구조하고 다시 정상궤도에 오른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 안정과 더불어 훌륭하고 회사를 더 잘 이끌어나갈 후임 CEO를 선발하는 것 역시 주요한 업무란 뜻이다. 스타벅스는 지난 9월 차기 CEO로 펩시코·레킷벤키저 출신인 랙스먼 내러시먼을 내정하고 안정화 도모에 나섰으며 월트디즈니와 일본전산도 2년 안에 차기 CEO를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현재 체제가 임시적인 상황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CEO의 역량이 회사의 성장에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다들 인정하지만 그러한 CEO에 의존한 기업의 경우 중장기 성장은 어렵다”며 “결국 회사가 장기 성장을 위해서는 1인에 의해 좌지우지되기보다 시스템으로 운영되며 성장 동력이 끊임없이 가동돼야만 한다”고 분석했다.
추동훈 매일경제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