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담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KT&G와 한국필립모리스가 최근 동시에 신형 전자담배를 선보이면서 시장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쟁탈전에 돌입했다. 2017년 한국필립모리스가 전자담배를 국내 처음으로 선보이면서 주도권을 쥐었으나, 후발 주자인 KT&G가 올 들어 막상막하 수준까지 치고 올라온 상황이다. 각각 고급감과 디지털 기기로서 강점을 살린 신제품 경쟁을 통해 전자담배 시장의 주도권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 담배업계는 물론 애연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KT&G는 2022년 11월 중순 신형 전자담배 ‘릴 에이블’을 공개하고 판매를 개시했다. 릴 에이블은 2018년 11월 KT&G 최초 독자 플랫폼인 ‘릴 하이브리드’를 출시한 지 정확히 4년 만에 내놓은 신제품이다. 릴 에이블은 하나의 디바이스로 3가지(각초형, 과립형, 액상형) 종류의 전용 스틱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버튼 하나로 쉽게 디바이스 작동이 가능하고, 자동 가열, 청소 불편 해소, 3회 연속 사용 등 기존 제품들의 편의기능도 유지됐다.
국내 전자담배 시장을 개척한 선두주자는 한국필립모리스다. 한국필립모리스는 KT&G보다 약 보름 앞선 2022년 10월 말 신형 전자담배 ‘아이코스 일루마’를 출시했다. 지난 2019년 10월 ‘아이코스 3 듀오’ 이후 3년 만에 국내 시장에 선보인 신제품이다. 아이코스 일루마는 스마트코어 인덕션 기술을 적용해 가열 부품인 블레이드를 없애 관리 편의성을 높인 게 특징이다.
한국필립모리스 관계자는 “기존 자사 고객들을 조사한 결과 블레이드를 청소하는 과정이 까다롭고, 이 과정에서 블레이드가 파손되는 사례가 불편사항으로 지적됐다”면서 “일루마 시리즈는 사용 후 잔여물이 남지 않아 기기를 청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KT&G 측은 블레이드를 없애고 담배 내부에서부터 가열하는 시스템은 4년 전 출시된 릴 하이브리드 모델에 이미 적용된 기술이라는 입장이다. 필립모리스는 최근 간담회에서 신형 아이코스는 스틱 안에 금속 패널이 있어 전자기장을 통해 내부 가열시키는 방식이 특징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두 제품에 대해 시장에서는 각각 추구하는 지향점이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전자담배 이용자는 “자동차로 비유하면 아이코스 일루마가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제네시스라면, 릴 에이블은 기술을 강조한 전기차인 테슬라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우선 아이코스 일루마의 경우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소재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아이코스 일루마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디자인 어워즈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즈(Red Dot Design Awards)’와 ‘iF 디자인 어워즈(iF Design Awards)’에서 수상하며 디자인적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기본 모델인 아이코스 일루마는 유려한 곡선이 강조된 디자인이 특징이다. 고급 모델인 아이코스 일루마 프라임은 고급스러운 모노톤 알루미늄 소재와 우아하게 곡선을 감싸는 랩 커버가 특징이다.
색상도 다양화해 고객 선택의 폭을 넓혔다. 한국필립모리스는 출시 후 약 보름간의 판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총 4가지 색상으로 출시된 아이코스 일루마 프라임의 경우 ‘옵시디언 블랙’과 ‘제이드 그린’ 컬러가 가장 많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브론즈 토프’와 ‘골든 카키’ 컬러가 뒤를 이었다. 5가지 색상으로 출시된 아이코스 일루마의 경우 ‘페블 그레이’와 ‘모스 그린’ 컬러가 가장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아주어 블루’, ‘페블 베이지’, ‘선셋 레드’ 컬러가 뒤를 따랐다. 한국필립모리스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어떤 곳에도 잘 어울리는 무채색의 시크한 고급스러움이 많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이끌어내는 가운데, 아이코스 일루마 시리즈의 핵심 컬러인 그린 계열의 모델 역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릴 에이블의 경우 소형 스마트폰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로 디지털 기기로 진화한 모양새다. AI 기술이 적용돼 예열부터 충전까지 자동으로 상태를 인식하고 충전 전까지 사용할 수 있는 시간 등을 사용자에게 알려준다. 고급 모델인 릴 에이블 프리미엄의 경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터치스크린을 적용해 사용자 편의성을 확 높였다.
전용 앱을 통해 메시지나 전화 알림, 날씨 및 캘린더 정보도 확인이 가능해 소비자 편의성과 제품 차별성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다. 색상은 릴 에이블은 울트라 블루, 에어리 화이트, 에나멜 레드, 탄 그레이 총 4가지 색상으로 구성된다. 릴 에이블 프리미엄은 블랙 1가지 색상으로 출시됐다.
가격은 디지털 기능이 강화된 릴 에이블이 조금 더 비싸다. 릴 에이블 프리미엄 20만원, 릴 에이블은 11만원이다. 릴 공식 홈페이지에서 성인 인증 및 회원 가입 후 할인 코드를 발급받으면 각각 16만7000원, 9만9000원에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아이코스 일루마 프라임의 권장 소비자 가격은 13만9000원이며, 아이코스 일루마는 9만9000원이다. 기존 아이코스 기기를 반납하는 보상 판매 프로그램을 이용할 경우 아이코스 일루마 프라임과 아이코스 일루마를 각각 10만9000원과 6만9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릴 에이블의 경우 구매처에 따라 구매 가능한 색상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편의점의 경우 릴 에이블 4종 중 울트라 블루와 에어리 화이트 컬러 2종이 판매된다. 릴 전용 플래그십 스토어인 ‘릴 미니멀리움’과 온라인 판매처인 ‘릴 스토어’에서는 프리미엄 제품을 포함한 릴 에이블의 모든 기기를 구매 가능하다. 아이코스 일루마 시리즈는 전국 15개 모든 아이코스 직영 매장과 서울, 부산 및 수도권 일부 지역의 아이코스 공식 판매처, 편의점 등에서 구매할 수 있다.
디바이스의 개선에 맞춰 KT&G와 필립모리스는 전용 스틱도 각기 업그레이드했다. 릴 에이블의 전용 스틱인 ‘에임(AIIM)’은 ‘에임 리얼(AIIM REAL)’, ‘에임 그래뉼라(AIIM GRANULAR)’, ‘에임 베이퍼 스틱(AIIM VAPOR STICK)’ 등 3가지 라인업으로 출시된다. 가격은 갑당 4800원이다.
아이코스 일루마 시리즈의 전용 스틱은 ‘테리아’다. 기존 아이코스 시리즈의 전용 스틱인 히츠와 달리 테리아는 담배 끝이 밀봉돼 있고 잔여물이 없다. 기존 전자담배는 담배를 찌르는 블레이드라는 침이 있는데, 그것을 담배에 꽂아 안에서 발열해 담배를 찌는 원리다. 그러나 스마트코어 인덕션은 담배를 꽂을 필요 없이 내부에서부터 담배를 가열한다. 테리아는 한 팩당 4800원에 구매 가능하다.
그렇다면 양사의 신형 전자담배 판매 성적표는 어떨까. 두 제품 모두 본격 판매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은 양사 모두 판매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판세를 따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필립모리스 관계자는 “글로벌 본사의 방침상 개별 국가와 시장의 제품 판매량 등 경영지표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KT&G 관계자는 “판매 초기 서울 위주로 물량을 한정해 판매를 시작한 만큼 아직 판매 집계량이 의미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면서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국내 전자담배 시장은 2017년 한국필립모리스가 1세대 아이코스를 출시하면서 본격 조성됐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7년 2.2%였던 아이코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의 전체 담배 시장 내 비중은 2022년 상반기 기준 14.5%까지 상승했다. 2022년 상반기 일반 담배 판매량은 15억2000만 갑으로 전년 동기 15억4000만 갑 대비 1.0% 감소한 반면, 전자담배 판매량은 2억6000만 갑으로 전년 동기 2억1000만 갑 대비 22.5% 증가했다.
업체 간 시장 점유율에선 2021년까지 한국필립모리스가 1위 자리를 지키다가 2022년 들어 필립모리스와 KT&G가 각각 45% 내외 점유율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뒤이어 BAT로스만스가 10% 안팎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전자담배 시장 3위인 BAT로스만스의 경우 당장 신형 전자담배를 내놓기보다는 다른 판매사들의 신형 제품에 대한 시장 동향을 지켜본 뒤 신상품 출시 시점을 조율할 예정이다. BAT로스만스가 최근 출시한 제품은 2021년 9월 선보인 ‘글로 프로 슬림’이다. BAT 로스만스 관계자는 “신제품 출시를 계획하고 있지만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신제품 출시 이전에는 일단 스틱을 다양화해 기존 소비자들의 관심을 유지하려는 모양새다. BAT로스만스는 2022년 10월 전자담배 전용 스틱인 ‘네오 퍼플 부스트’를 최근 업그레이드해 출시했다. 2022년 6월 트로피컬 쿨, 제스트 쿨에 이은 두 번째다. 또 친환경 브랜드 ‘카네이테이(KANEITEI)’와 손잡고 디바이스와 스틱을 함께 넣을 수 있는 케이스도 선보였다.
전 세계 시장에서 전자담배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은 현재 전 세계 70개국에서 비연소 담배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PMI는 장기적으로 일반 담배 판매를 완전히 중단하는 것을 목표로 성인 흡연자를 위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혁신적인 비연소 제품을 개발 및 상용화하는 데 2008년부터 현재까지 90억달러(약 11조7500억원) 이상 투자했다. PMI의 전자담배 이용자는 2015년 20만 명(매출액 비중 2.7%)에서 2021년 2170만 명(29.1%)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PMI는 이 가운데 1350만 명 이상의 성인이 일반 담배를 끊고 아이코스로 전환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PMI는 2025년까지 자사 전자담배 이용자 수를 4000만 명, 전체 매출액의 50%까지 늘릴 계획이다. 백영재 한국필립모리스 대표는 “미국, 영국과 같은 선진국들은 아이코스와 같은 비연소 대안 제품을 인정하여 일반 담배를 계속 피우는 성인 흡연자들에게 더 나은 대안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러한 국가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재원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