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사업비 700조원대에 이르는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일행이 지난 11월 29일 네이버 첨단 사옥을 전격 방문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날 사우디 도시농촌주택부가 고민하는 교통, 치안, 위생 관리 등 도시 문제와 더불어 주택·건물 관리 등을 어떻게 디지털 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양측 간 논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사우디 정부 일행의 네이버 사옥 방문에 큰 관심이 모인 이유는 네이버가 네옴시티 건설에 필요한 ‘디지털 트윈’ 세일즈에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국내 기업 최초로 네옴시티 사업 파트너가 될 가능성에 관심이 모인다.
네이버는 사우디 정부 일행 방문 직전에 자사의 독보적 디지털 트윈 솔루션인 ‘아크아이(ARC eye)’를 공개하고 글로벌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아크아이는 도시라는 대규모 공간을 고정밀 매핑 및 측위 기술을 통해 클라우드상에서 쌍둥이처럼 복제하는 솔루션이다. 스마트시티 설계와 운용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네이버가 사우디를 상대로 수출 가능성을 밝히고 있는 디지털 트윈 솔루션은 삼성전자, SK텔레콤, LG CNS, 포스코ICT 등 다른 테크 기업들도 제조업의 판도를 바꿀 미래 사업 비전으로 기술 고도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래 에너지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부상한 소형모듈원전(SMR)에도 기술 접목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네이버는 앞서 중동을 직접 방문해 ‘기술 세일즈’에 나섰다. 디지털 트윈, 클라우드, 로보틱스 등 네이버가 보유한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앞세워 초대형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글로벌 파트너 발굴에 속도를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이다. 채선주 네이버 대외·ESG 대표를 중심으로 클라우드·로봇·인공지능(AI) 사업 주축인 네이버 클라우드, 네이버랩스 등의 실무자·기술진으로 이뤄진 ‘팀 네이버’는 지난 11월 사우디 출장길에 올랐다. 해당 방문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주도로 사우디 주요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꾸려진 지원단의 일환이었다. 사우디는 네이버의 제2사옥 ‘1784’ 등 스마트빌딩 기술력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고, 방문이 성사됐다. 팀 네이버는 초대형 도시 건설 프로젝트인 ‘네옴시티’ 사업을 추진하는 관계자들은 물론 사우디 정부 주요 인사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네이버는 2022년 4월 완공된 신사옥 1784를 세계 최초의 로봇 친화형 빌딩으로 건립했다. 네이버는 신사옥에서 직접 개발한 로봇을 풀어놓고 학습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국내 기업 최초로 5G(5세대) 이동통신 특화 망을 구축했고, 로봇의 눈과 두뇌 기능을 모두 클라우드에 올렸다. 그 결과 로봇을 상황에 맞게 원격조종하거나 개선이 가능하고, 다양한 역할을 맡길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게 됐다. 로봇이 빌딩에서 낮에는 배달부로, 밤에는 경비를 서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테크 컨버전스 빌딩을 표방하는 1784는 네이버랩스, 네이버클라우드, 네이버웍스, 클로바CIC, 글레이스 CIC 등 네이버가 개발 중인 모든 기술이 융합된 공간으로 꾸며졌다. 사옥이 로봇뿐 아니라 자율주행, 인공지능, 클라우드, 헬스케어 등 선행 기술들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네이버는 신사옥에서 활용 중인 첨단 스마트 빌딩 기술과 노하우를 다른 기업이나 국가에 적용할 수 있도록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네이버 스마트빌딩 기술에는 중동뿐 아니라 미국·유럽 주요 국가와 기업들이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의 실질적 지배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초대형 신도시 사업 ‘네옴시티’를 추진 중이다. 석유 중심의 사우디 경제를 대전환하기 위해 ‘사우디 비전 2030’의 핵심 프로젝트다.
로봇이 물류와 보안, 가사노동 서비스를 맡고, 그린수소·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스트럭처를 갖춘 미래형 AI 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나드비 알나서 네옴시티 최고경영자(CEO)는 “네옴시티를 AI 과학기술로 가득 찬 도시로 만들어서 세계의 롤모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옴시티는 사우디 북서부 타북주 일대에 약 2만6500㎢로 조성될 예정인데, 이는 서울시의 약 44배에 달하는 크기다. 네옴시티는 공식 사업비만 5000억달러(약 709조1500억원)에 달한다.
사우디 정부는 네옴시티 건설을 위한 다양한 파트너 국가와 기업을 발굴 중이다. 네옴시티는 모든 인프라와 물류가 AI와 로봇으로 작동하는 ‘세계 첫 인지도시(Cognitive City)’를 꿈꾸고 있다. 클라우드·로봇·AI·디지털 트윈 등 최첨단 기술을 신사옥 1784에 집약시킨 네이버의 기술력에 사우디가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네이버랩스와 네이버클라우드는 1784의 핵심 기술인 ‘아크(ARC)’와 ‘5G 특화 망 패키지’를 내년까지 상용화해 ‘미래형 공간’의 대중화에 나서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아크는 인공지능(AI), 로봇(Robot), 클라우드(Cloud)를 줄인 말로 네이버의 클라우드 로봇 시스템을 말한다. 본체에 내장된 기기가 아니라 AI·클라우드가 실시간으로 연결돼 로봇들의 두뇌 역할을 한다. 건물 내의 로봇 수백 대가 정보를 동시에 공유하면서 5G 특화 망인 ‘이음 5G’ 서비스를 통해 자율주행 경로를 초저지연·실시간으로 제어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서 네이버의 스마트빌딩 사업에 관심을 보인 이유도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아크 기술력에 주목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네이버는 제2사옥에 이들 기술을 적용해 실증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크와 5G 특화 망을 적용한 자율주행로봇 수십 대를 제2사옥에 배치했다. 이들 로봇은 제2사옥 구석구석을 누비며 직원들에게 택배·커피·도시락 등을 배달하고 있다.
제2사옥이 거대한 테스트베드이자, B2B 시장 공략을 위해 검증된 레퍼런스로 활용되는 셈이다. 네이버는 이들 기술의 상용화로 기존 건물도 제2사옥인 ‘1784’처럼 미래형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른 기업이 아크를 건물 전체 또는 일부에 적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네이버가 로봇을 파는 것은 아니다. 네이버는 로봇을 제어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이 기술 중 일부를 상품화해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올린다는 구상이다. 그 첫 상품이 아크인 셈이다.
네이버는 자사의 기술을 다른 기업의 기술이나 플랫폼과 호환이 잘 되도록 ‘개방형’으로 개발하고 있다. 특정 기업에 대한 기술 종속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A사의 로봇, B사의 클라우드, C사의 통신망 등에서도 네이버의 아크를 이용할 수 있다.
석상옥 네이버랩스 대표는 “아크는 로봇 대중화를 이끌 시스템”이라며 “세계 어떤 로봇 제조사든 상관없이 아크를 통해 대규모 공간 및 서비스 인프라와 효율적으로 연동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박원기 네이버클라우드 대표도 “네이버가 5G 특화 망 인허가부터 구축과 운영까지 전 구간(엔드 투 엔드)에 걸쳐 관련 장비와 솔루션을 제공하거나 통신사와 협업하는 등 고객사의 수요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랩스와 네이버클라우드는 세종시에 구축할 예정인 제2데이터센터에서도 로봇, 자율주행 셔틀버스 등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아크도 해외에 데뷔할 가능성이 높다. 네이버는 웍스모바일, 클로바 AI콜, 파파고 등 이미 많은 자사 기술을 네이버클라우드를 통해 서비스하고 있다. 아크아이와 아크브레인 역시 네이버클라우드의 상품으로 개발해 해외 기업에 제공할 수 있다.
네이버는 네이버클라우드를 중심으로 기업 간 거래(B2B) 회사로의 다각화를 준비 중이다.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일변도의 사업 모델을 B2B로 확장하고, 이를 통해 해외 사업을 키운다는 구상이다.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네이버의 자회사인 네이버클라우드를 중심으로 클라우드, 인공지능 등 혼재된 B2B 사업군과 인력을 하나로 묶어 전진 배치된다. 네이버는 ‘뉴 클라우드’ 산하로 기존 인공지능·기업 간 거래 사업 조직들을 통합하는 클라우드 사업 조직 개편안을 공식화했다.
이에 대해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이번 개편을 통해 그동안 분산되어 있었던 각 조직의 기술 역량을 집결할 뿐 아니라 인프라부터 플랫폼, 솔루션 영역까지 보다 최적화되고 강화된 통합 사업 구조를 완성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의 사업 모델을 살펴보면 주로 개인 소비자의 검색 서비스와 상품 주문에서 수익을 내는 B2C 기업에 가깝다. 엔데믹 속에서 비대면 활동이 줄면서 커머스, 콘텐츠 등 B2C 사업은 성장세가 꺾이고 있지만, B2B 시장은 디지털 전환에 나서는 기업이 늘면서 굳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네이버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그러했듯 B2B 회사로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네이버의 해외 진출과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게 네이버 경영진의 판단”이라면서 “AI, 로봇 등 미래 기술은 시작부터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고 여기서 새로운 시장이 창출될 수 있기 때문에 조직개편을 통해 이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AI, 디지털 트윈, 디지털 헬스, 로봇 등 네이버의 미래 기술을 융합하고 이를 클라우드에 얹어 사업화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네이버클라우드는 네이버 전사 차원의 서비스 융합을 통해 해외 클라우드 경쟁사들이 깊게 다루지 못한 영역을 공략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클로바 AI 솔루션, 금융·핀테크, 협업 도구·기업정보시스템, 게임, 교육, 커머스, 의료 등 모든 산업군에서 클라우드 기반의 특화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소비자 플랫폼 서비스를 위해 만든 AI, 클라우드 등 기술이 경쟁력을 갖추면서 기업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B2B 시장에서 해외 빅테크들과 경쟁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게 네이버의 판단이다. 네이버는 3년 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클라우드 서비스 1위 업체로 등극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2014년부터 네이버클라우드를 이끈 박원기 공동대표는 2023년부터 네이버클라우드 아태지역 사업총괄을 맡아 이를 주도할 예정이다.
클라우드 기반 기술 강화는 네이버가 일본에서 B2B 사업을 강화하는 움직임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네이버는 일본 소프트뱅크와 함께 B2B 상품을 개발해 판매를 추진 중이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일본에 리전(서버)을 두고 네이버가 개발한 챗봇, 파파고 번역 등 AI 기술을 상품화하고 클라우드를 통해 제공한다. 네이버 클로바가 개발한 AI 서비스는 ‘라인 클로바’란 브랜드를 달고 일본 최대 택배 업체 야마토운수를 비롯해 전자 대기업 파나소닉, 대형 편의점 업체 로손 등에 속속 도입되고 있다. 영업에 강한 소프트뱅크와 기술에 강점이 있는 네이버가 협력하면 B2B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는 기대감도 상당하다.
최 대표는 “클라우드 기반의 기술 강화는 네이버의 일본향 매출 확대를 위한 중요한 과제”라면서 “Z홀딩스, 소프트뱅크와의 협업 기회들도 모색하며, 새롭게 출범하는 ‘뉴 클라우드’의 일본 내 사업 확장 또한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순민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