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0일 제68회 프랑크푸르트 모터쇼(IAA) 현장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2011년 이후 8년 만에 IAA를 찾은 정 수석부회장은 이날 오전 현대차의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스타일 셋 프리(Style Set Free)’를 토대로 제작한 전기차(EV) 콘셉트카 ‘45’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스타일 셋 프리는 고객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차량의 인테리어 부품과 하드웨어 기기, 상품 콘텐츠 등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는 전동화 기반의 개인 맞춤형 고객 경험 전략이다. 45는 현대차 전기차 디자인의 이정표가 될 전동화 플랫폼(E-GMP) 기반의 콘셉트카로, 현대차의 시작을 알린 포니 쿠페 콘셉트(Pony Coupe Concept)가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된 뒤 45년 동안 현대차가 쌓아온 역사와 전통에 대한 존경심을 담았다. 이날 현장에서 정 수석부회장은 “콘셉트카 45의 양산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속내를 밝혔다.
자동차 업계에선 콘셉트카 45와 함께 ‘스타일 셋 프리’에 주목하고 있다. 이 전략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onsumer Electronics Show·이하 CES 2019)’에서 현대차그룹이 밝힌 ‘미래 모빌리티 비전 고도화 혁신 전략’ 중 하나다.
현대차가 CES2019에서 공개한 ‘엘리베이트’ 콘셉트카
▶2020년 新전기차와 함께 선보일 모빌리티 방향성 ‘스타일 셋 프리’
현대차는 CES 2019에서 ‘미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업체’로의 전환을 예고했다. 당시 공개된 전략은 ‘전동화(EV) 기반의 개인 맞춤형 모빌리티 경험 제공’ ‘글로벌 커넥티드카 서비스 확대 및 오픈 플랫폼 구축’ ‘오픈 이노베이션&인공지능 혁신 거점 구축’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현대차가 선포한 모빌리티 방향성 ‘스타일 셋 프리’는 고객이 자신만의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인테리어 부품과 하드웨어 기기, 상품 콘텐츠 등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맞춤형 모빌리티 솔루션이다. 현대차는 2020년에 선보이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 기반의 전기차에 ‘스타일 셋 프리’ 고객 경험 전략을 반영하고 자율주행, 전용전기차 등으로 적용범위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E-GMP 기반의 전기차는 넓은 내부 공간에서 탑승자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배터리 등 동력계 부품을 교체하거나 소형가전, 사무기기 등 외부 하드웨어 기기를 탑재하는 등 개인화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조원홍 현대차 고객경험본부장 부사장은 “기존 내연기관 차량 대비 효율적인 공간 구성을 토대로 고객을 위한 맞춤형 기능을 제공할 것”이라며 “현대차는 ‘스타일 셋 프리’ 방향성 아래 자율주행 기술 이상의 새로운 경험을 고객에게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미래 초연결 사회에서 허브 역할을 하게 될 커넥티드카 분야 글로벌 리딩 전략으로는 ‘연결의 초월성(Transcend Connectivity)’을 제시했다. 2년 전인 CES 2017에서 모빌리티 방향성 중 하나로 제시한 ‘연결된 이동성(Connected Mobility)’을 구체화한 것으로,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다 자유롭고 편리하게 확장시키고 연결하겠다는 현대차의 커넥티드카 비전이 담겨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고성능 컴퓨터보다 진화한 수준의 커넥티드카를 구현해 자동차 안과 밖의 다양한 환경에서 다른 자동차, 집, 주변 공간, 다양한 스마트 기기, 나아가 도시와 하나로 연결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현대차는 우선 오는 2022년 초 글로벌 커넥티드카 서비스 가입 고객 1000만 명을 확보하고, 글로벌 시장에 출시하는 모든 차종에 커넥티드카 서비스를 탑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커넥티드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한국과 미국, 중국, 캐나다, 유럽 외에 글로벌 판매 전 지역(인도, 브라질, 러시아, 호주,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에서도 서비스 제공을 위한 빅데이터 센터를 추가로 설립할 예정이다. 서정식 현대차 ICT본부장은 “미래의 자동차 시장은 초연결성을 갖춘 자동차와 그렇지 않은 자동차로 나뉠 것”이라며 “오픈 플랫폼을 바탕으로 ‘연결의 초월성’을 주도함으로써,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 부응하고 ICT기업보다 더 ICT스러운 기업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01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한 현대차의 EV 콘셉트카 ‘45’
▶오픈 이노베이션 통해 스타트업과 협업 다각화
CES 2019 현장에서 현대차는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 ‘현대 크래들’에서 개발한 걸어 다니는 자동차 ‘엘리베이트(Elevate) 콘셉트카’를 전 세계 최초로 공개하며 미래 모빌리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현대차는 ‘현대 크래들 실리콘밸리(HYUNDAI CRADLE Silicon Valley)’와 한국의 ‘제로원(ZER01NE)’에 이은 세 번째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 센터 ‘현대 크래들 텔아비브(HYUNDAI CRADLE Tel Aviv)’를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에 오픈했고, 올해 베를린과 베이징에도 각각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설립해 글로벌 5대 혁신 거점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오픈 이노베이션 5대 혁신 거점은 미래 혁신 분야의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하는 동시에 이들과의 협업과 공동 연구개발을 통해 글로벌 혁신 기술 확보에 나서게 된다.
‘엘리베이트’는 일반 도로는 물론 4개의 바퀴 달린 로봇 다리를 움직여 기존 이동수단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지역과 상황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신개념 모빌리티다. ‘현대 크래들’과 미국 디자인 컨설팅 회사 ‘선드벅 페라(Sundberg-Ferar)’가 협업해 완성했다.
그런가하면 현대차가 완성차 업체에서 ‘미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업체’로 변신하기 위해 진행해 온 전략적 투자와 글로벌 협업이 올해 가시적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8월 투자한 인도의 차량공유 플랫폼 기업인 ‘레브(Revv)’는 최근 인도 주요 도시에서 현대차를 기반으로 한 차량 구독 프로그램 ‘현대 서브스크립션(Hyundai Subscription)’을 활성화하고 있다.
사이트 내에 별도로 현대 서브스크립션 코너가 마련돼 인도의 차량공유 이용자들이 현대차 7~8개 차종을 구독하거나 구매할 수 있다. 2015년 인도에서 차량공유 사업을 시작한 레브는 현재 인도 19개 도시로 사업을 확대했다. 중동시장에선 아랍에미리트(UAE)의 차량호출 서비스 업체인 ‘카림(Careem)’에 올해 말까지 현대차 5000대를 공급하는 플릿(fleet·법인과의 대량판매) 계약을 성사시켰다. 현대차는 이미 네덜란드에서도 차량공유 플랫폼인 ‘카포셰어(Car 4 Share)’와 손잡고 암스테르담 등 주요 도시에서 아이오닉EV를 활용한 차량공유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인도 기업 ‘올라’에 3억달러 투자 단행
지난 3월엔 인도 최대 차량 호출 서비스(Car Hailing) 기업 ‘올라(Ola)’에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인도의 공유경제 생태계에서 판도를 선도해 게임 체인저로 급부상한다는 전략이다. 인도 내 완성차 업체 중 처음으로 플릿 시장에 진입해 ‘차량 개발·판매→플릿 관리→모빌리티 서비스’로 이어지는 공유경제 가치사슬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기 앞서 올 초 현대차 양재사옥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과 바비쉬 아가르왈(Bhavish Aggarwal) 올라CEO가 만나 구체적 협력 방안과 미래 모빌리티 시장 변화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정 수석부회장은 “인도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장으로, 인도 모빌리티1위 업체인 올라와의 협력을 통해 우리가 목표로 하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업체로의 전환 노력에 한층 속도가 붙게 될 것”이라며 “고객들에게 새롭고 더 큰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시장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변화와 혁신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올라의 바비쉬 아가르왈 CEO는 “현대와의 협력으로 인도 10억 인구를 위한 혁신과 첨단 모빌리티 솔루션 구축에 나설 수 있게 됐다”며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범위를 확대함과 동시에 차세대 모빌리티 솔루션들을 시장에 선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에 설립된 올라는 현재 인도 카헤일링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는 인도 최대 모빌리티 서비스 업체다. 현재 글로벌 125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등록 차량 130만 대, 설립 이래 차량 호출 서비스 누적 10억 건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현대차가 2억4000만달러(약2707억원), 기아차 6000만달러(약677억원) 등 총 3억달러(약3384억원)를 올라에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동남아시아 최대 모빌리티 기업 ‘그랩(Grab)’에 투자한 2억7500만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액수다. 레브와 그랩, 올라까지 현대차 그룹이 국내외 모빌리티 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현재 약 7000억원 이상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4월에는 국내 스타트업 ‘코드42’, 5월에는 크로아티아의 고성능 하이퍼(Hyper) 전기차 업체 ‘리막 오토모빌리(Rimac Automobili)’(약 1000억원)에 투자를 단행했다. 자율주행 분야에선 2021년 국내 자율주행 친환경 로보택시 시범 운영을 목표로 미국 자율주행업체 ‘오로라(Aurora Innovation)’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유럽 완성차 업체 4개사가 공동 설립한 ‘아이오니티(IONITY)’ 지분 20%를 확보하며 유럽 내 초고속 충전인프라 구축도 속도를 내고 있다. 아이오니티는 BMW, 다임러 AG, 폭스바겐, 포드 모터 등 완성차 업체 4개 사가 유럽 전역 초고속 충전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2017년 11월 공동 설립한 회사다.
▶현대차, 국내 스타트업 ‘코드42’에 투자 확대 나서
현대차가 지난 4월 20억원을 투자한 국내 자율주행·모빌리티 스타트업 ‘코드42(Code 42.ai)’에 추가 투자(약 50억원 규모)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CTO 출신 송창현 대표가 설립한 코드42는 판교 테크노밸리에 자리한 신생 스타트업이다. 네이버, 카카오 출신의 핵심 기술 인력들이 대거 창립 멤버로 합류해 설립 전부터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이 회사의 구성원들은 이미 음성인식, AI, 모빌리티, 자율주행, 네이버 지도, 정밀 지도, 로보틱스, 컴퓨터 비전, 빅데이터 등 혁신 분야에서 글로벌 평가와 함께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도심형 모빌리티 서비스의 A부터 Z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모빌리티 통합 플랫폼 ‘유모스(UMOS : Urban Mobility Operating System)’ 개발에 착수했다. 유모스는 쇼핑과 빠른 배송, 다양한 교통·이동수단 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차세대 서비스 플랫폼이다. 자율주행차, 드론, 자동 배달 로봇 같은 다양한 형태의 자율주행 이동수단을 하나로 통합해 차량 호출, 카 셰어링, 로보 택시, 스마트 물류, 음식 배달 등 각각의 모빌리티 서비스 제공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현대차는 코드42와의 긴밀한 협력을 기반으로 모빌리티 서비스 및 기술 고도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UMOS’와의 접목을 통해 새롭게 펼쳐질 다양한 가능성을 실현해 나갈 계획이다. 코드42는 올해 말까지 100여 명으로 기술 인력을 보강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우수인재 확보를 통해 2021년에는 300여 명의 구성원을 둔 대한민국 대표 기술 중심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복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