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일 중국 베이징 포시즌호텔에선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지난해 12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현지법인을 통합해 새로 문을 연 통합 중국하나은행이 이날 정식으로 출범식을 가진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을 비롯해 김병호 하나은행장, 김한조 외환은행장, 지성규 중국하나은행장 등 금융그룹 내 고위 경영진이 대거 참석했다. 중국 내 거래고객과 중국 현지의 금융 관계자 등도 참석해 새로운 하나은행의 출범을 축하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이 자리에서 “중국 통합법인 출범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시현할 수 있는 한국계 은행이 탄생하게 됐다”며 “한중 FTA 체결로 한중 경제 및 금융거래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시기에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가 한중 교역과 금융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통합의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기존 하나은행 중국 법인에서만 가능하던 인민폐 영업이 30개 영업망에서 모두 가능하게 됐다. 그만큼 고객의 편의성이 증대되고 현지화 영업을 강화하기 쉬워졌다. 자본금이 대폭 늘어나 대기업 마케팅 기회가 늘어난 것도 합병에 따른 성과다.
김 회장은 이날 통합 중국하나은행을 10년 안에 중국 내 ‘톱5 은행’으로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행 측은 이번 통합으로 영업력이 강화돼 3년 내 이익금이 2000억원 규모로 전망될 만큼 빠른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하나은행의 리테일 및 PB 업무와 외환은행의 외국환 및 대기업 영업의 강점을 융합해 시너지를 확대한다는 중국 하나은행의 계획이다. 특히 한국에서 자리를 잡은 하나은행의 특화된 PB서비스를 중국시장에 접목시켜 중국 최초로 ‘상속·세무 전문센터’를 설립하고, 펀드상품 자문서비스를 실시하며, 중국 VIP고객 자녀를 대상으로 글로벌 홈스테이 사업을 벌이는 등 다양한 서비스에 나선다는 것이다.
빠른 성장을 위해 분행과 지행을 늘려 지점망을 확보하고 인터넷 뱅킹 시스템을 도입해 중국 내 영업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구상도 밝혔다. 이를 위해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영업을 대폭 강화하는 등 새로운 금융기법도 속속 도입할 방침이다. 한국계 은행 최초로 ‘스마트폰뱅킹 서비스’를 연내 출시하고 네트워크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실명확인을 창구 방문 없이 온라인으로 해결하고 계좌 개설부터 대부분의 업무를 인터넷에서 처리하는 ‘다이렉트뱅킹’도 선보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 회장은 통합법인 출범식 직전 기자회견을 통해 “캐나다 법인에서 성공한 원큐(1Q)뱅킹 시스템을 중국에도 도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원큐뱅킹은 개인 간 금융 직거래 방식으로 전화번호를 통해 송금할 수 있는 신금융기술이다.
현지인 선임해 현지화 박차
중국 법인의 빠른 성장을 위해 하나금융그룹은 분행장을 중국인으로 교체하고 중국인 상근 동사장(이사회 의장)을 선임하는 등 인력 현지화부터 나섰다.
김 회장은 “중국인 동사장에게 중국 고객에 대한 영업의 전권을 부여할 것”이라며 “중국 인력에 대한 인사권이나 중국 고객에 대한 영업추진 등 중국 현지영업에 대한 전권을 부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고객의 현지화뿐 아니라 상품의 현지화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중국하나은행은 이미 통합법인 출범에 맞춰 지난 1월 8일 중국에 없던 ‘168적금’이나 ‘发(8)카드’와 같은 융복합 상품을 개발한 데 이어 한류를 이용한 맞춤상품 등을 지속적으로 내놓을 방침이다.
지난 1월 내놓은 하나 ‘发카드’는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숫자 8(八, ba)과 유사한 발음으로 크게 부유해진다는 의미의 发(fa)라는 이름을 달았다. 중국인 고객들이 한국을 방문해 화장품이나 면세점, 미용, 의료관광 등에 이 카드를 사용하면 우대 혜택을 줄 뿐 아니라 카드사용 금액에 따라 수수료의 최고 100%까지 캐시백 서비스를 해준다. 특히 글자 ‘发’를 실제 금으로 만든 8888개 한정판까지 내놓아 고객들의 인기를 끌었다.
하나168 적금은 ‘168’시리즈의 대표 적금상품으로 가입기간 1년, 3년, 5년제가 있는데 카드사용 등 추가 거래 시 금리우대 등의 혜택이 있다.
비은행 부문은 현지 금융사와 함께 진출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따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리스업이나 소액대출 시장 등 비은행 업무엔 중국 현지 금융사와 합작해 진출한다는 게 하나금융의 전략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최대 민간 투자회사인 중국민생투자유한공사와 합작사 형태로 리스업 진출을 추진 중이다. 지난 2014년 8월 설립된 중국민생투자유한공사는 자본금 500억위안(약 8.7조원) 규모로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에 나서는 등 중국판 JP모건이란 소리를 듣는 회사다. 지난 2월 출범식엔 동문표 중국민생투자유한공사 동사장이 참석해 테이프 커팅까지 했을 정도로 양사의 관계가 밀접해 연내 사업이 시작될 전망이다. 하나금융은 이와 별도로 소액대출 시장 진출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은행 부문과 비은행 부문 양쪽 모두를 빠르게 정착시킨 뒤 중장기적으로 양 부문의 협업을 통해 현지화 영업을 심화하고 국내 그룹사 간 시너지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남은 과제는 국내 은행 통합
중국 법인이 통합함에 따라 하나금융그룹 내에선 이제 국내 은행 부문의 통합만이 과제로 남았다. 해외 부문은 지난 2014년 2월 인도네시아법인을 통합한 데 이어 2014년 12월 중국 법인까지 통합함으로써 단일화가 마무리됐다. 또 국내 카드 부문은 지난해 12월 통합카드사를 출범시킨 바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현지법인 통합에 따라 금융그룹 전체로는 24개국 127개 네트워크를 갖추게 됐다고 밝혔다.
그룹 측은 통합 이후 시너지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39개 지점을 갖춘 인도네시아 통합법인은 120개 현지 은행 중 48위로 출범 후 1년도 안 돼서 이익이 40%나 급증했고, 30개 분·지행을 두어 국내은행의 현지법인 1위인 중국 통합법인도 통합 1호상품인 168적금을 10일 만에 완판하는 등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 하나카드 역시 자산 6조원에 연매출 50조원을 올리며 통합 1호상품인 Sync카드를 순조롭게 팔고 있는 등 영업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고 했다.
결국 글로벌 하나금융그룹으로 나아가는 데는 하나-외환은행의 통합만이 과제로 남았다는 것이다. 하나금융그룹은 지난해 1월 진정한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2025년을 목표시점으로 잡고 ‘신뢰받고 앞서가는 글로벌 금융그룹’이란 새로운 비전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비전 달성을 위한 전략 목표로 글로벌 비중을 40% 이상 가져가는 것을 비롯해 ▲이익 기준 국내 1위 은행 ▲비은행 비중 30% 이상 ▲브랜드 신뢰도 제고 등을 제시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이 글로벌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순이익은 2014년 6월 기준 국내은행 총 당기 순이익의 10.2%에 불과하다. 이 점에서 하나금융그룹이 글로벌 비중 40% 목표를 제시한 것은 거의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좁은 국내시장 경쟁을 뛰어넘어 차별화된 역량을 바탕으로 세계 유수의 글로벌 플레이어 대열에 합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셈이다. 지난해 12월 1일 그룹 출범 9주년 기념식에서도 김 회장은 ‘글로벌’과 ‘혁신’을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김 회장이 글로벌 역량을 강조하는 것은 자본금을 키우고 세계로 나가야 보다 큰 시장이 열린다는 믿음에서다. 국내 은행 부문을 통합할 경우 자본금이 순식간에 늘어나 해외 M&A나 지분투자 기회를 확보할 수 있어 글로벌 성장전략 추진이 가능하다는 것. 하나금융그룹은 이 때문에 굴지의 글로벌 금융기관으로 자리 잡기 위한 과제를 하나하나 실행에 옮겨왔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정비하고 법인별로 뛸 수 있는 자본을 확충해온 것도 모두 그런 계산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외환은행과의 합병 지연은 단순한 업무차질을 넘어 기회손실로 이어진다는 게 그룹 측의 설명이다. 하나-외환은행의 합병은 단순히 양 은행의 실적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기회 확보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글로벌 금융그룹 향해 이익 다지는 중
하나금융그룹은 이익 면에서도 차곡차곡 발전을 위한 토대를 쌓아가고 있다.
지난 2월 6일 발표한 하나금융그룹의 2014년 당기 순이익은 전년 대비 0.4% 증가한 9377억원이다. 이자이익과 신탁보수, 신용카드 수수료 등 수수료 이익이 전반적으로 증가해 모뉴엘 대손비용과 대한전선 주식 손상차손 같은 거액의 일회성 손실(1986억원)을 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보다 순이익이 늘었다.
그룹 측은 대표적 건전성 지표로 꼽히는 고정이하 여신비율이 전년 대비 0.13%p 하락한 1.35%로 2013년 1분기 이후 가장 안정적인 수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신탁자산을 포함한 그룹의 총자산은 전년보다 6.3% 늘어나 391.6조원으로 집계됐다.
계열사별로 하나은행의 2014년 연결기준 당기 순이익은 이자이익과 수수료이익 및 매매평가익이 고르게 늘어난 데다 대손비용을 줄여 전년 대비 21.2% 증가한 8561억원을 기록했다. 이 은행의 고정 이하 여신비율은 전년 대비 0.29%p 감소한 1.18%다.
외환은행의 2014년 연결기준 당기 순이익은 모뉴엘 대손비용 682억원이 발생하고 외환파생 관련 손실이 전년 대비 912억원이나 늘어나 전년 대비 17.8% 감소한 3651억원으로 집계됐다. 외환은행의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전년보다 0.19%p 높아진 1.36%다.
하나대투증권은 증권업계의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매매평가이익과 증권수수료를 늘려 전년 대비 138억원 증가한 820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올렸다. 하나캐피탈은 전년 대비 59억원 증가한 504억원, 하나저축은행은 전년 대비 54억원 증가한 112억원, 하나자산신탁은 전년 대비 29억원 증가한 101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각각 올렸다. 통합 하나카드는 2014년 당기 순이익((구)하나SK카드 1~11월 실적 포함)으로 51억원의 흑자를 냈다. 다만 (구)하나SK카드의 11월까지 당기 순이익 163억원이 통합법인의 자본잉여금으로 반영돼 회계는 112억원 손실로 잡을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