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너머 이어진 땅콩 논란에 호텔신라의 택시 사고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사건인 즉, 지난해 2월 25일 택시 한 대가 급작스럽게 호텔신라의 출입문을 들이받았던 것. 피해규모는 작지 않았다. 택시 승객과 호텔 직원 4명이 다쳤고, 6개월 전 리노베이션을 마친 호텔의 회전문이 파손됐다.
팔순의 택시기사는 사고 원인으로 차량의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경찰은 운전 부주의로 조사를 마쳤다. 문제는 여기서 불거진다. 사고를 낸 기사가 5000만원 한도의 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었지만 호텔에 변상해야 할 금액은 한도를 한참 넘어선 4억원이나 됐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당시 보고를 받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한인규 부사장에게 “고의사고는 아닌 것 같으니 집을 방문해 상황이 어떤지 알아봐 달라”고 지시했다. 반지하에 거주 중인 택시기사의 열악한 상황을 전해들은 이 사장은 그를 상대로 한 4억원의 변상 신청을 취소했고, 호텔 측이 직접 피해를 해결했다.
‘땅콩리턴’ 사건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재벌가의 미담이 다시금 언론에 알려지며
관련기사에는 오랜만에 활짝 웃는 이부진 사장이 등장했다.
예로부터 웃으면 복이 온다 했던가. 적어도 사업적인 면에서 호텔신라는 지난해 면세사업에 이어 호텔사업이 흑자로 돌아서며 업계의 부러운 시선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 1분기에도 호텔신라의 호(好)실적을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호텔사업 흑자, 면세사업이 든든한 후원군
2014년 1월 신라면세점은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 향수·화장품 사업자로 선정돼 10월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마카오 국제공항 면세사업권도 획득했다. 홍콩 면세사업자인 스카이 커넥션과 합작사 스카이신라를 설립(호텔신라 40%, 스카이 커넥션 60%)해 신라면세점이 향수와 화장품, 패션 브랜드를, 스카이 커넥션이 술, 담배, 토산품을 취급할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 관광에 나선 요우커가 급증하며 활황인 국내 면세점 시장의 상황은 고스란히 호텔신라의 실적성장으로 이어졌다.
호텔신라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12월 중순 기준 3조4381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1조원이 올랐다. 지난해 3분기 면세사업부의 매출은 약 7000억원, 호텔신라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영업이익은 562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62%나 증가했고 호텔신라 전체 영업이익의 95%를 책임지고 있다. 이처럼 호텔신라의 실적은 면세사업이 견인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탄한 면세사업 덕분에 전체 실적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 적자를 면치 못하던 호텔사업도 서서히 힘을 보태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호텔신라의 호텔사업이 흑자전환하며 실적 회복세에 들어섰다.
호텔사업의 선전에는 서울신라호텔의 투숙률 회복이 큰 역할을 했다. 2013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쳐 그해 8월 재개관한 서울신라호텔은 공사비용만 총 850억원이 투입됐다. 사실 당시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2012년 4분기 매출액은 5521억원, 영업이익이 22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8%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37%나 줄어든 상황이었다. 경기침체와 엔화약세, 일본인 관광객 감소 등이 실적 추락의 원인이었는데, 이듬해 서울신라호텔이 7개월간의 리노베이션에 들어가자 업계에선 ‘이부진 사장의 승부수’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불어 “서울신라호텔의 재개관은 이부진 사장의 경영능력을 재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부진 사장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물론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우선 개관 초기 호텔 투숙률이 리노베이션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아 고전했다. 2012년 70~85%를 넘나들던 투숙률이 재개관 이후 50~60%까지 낮아졌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3분기 63%까지 오르며 서서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같은 기간 제주신라호텔의 투숙률은 89%까지 치고 올라왔다.
면세사업의 든든한 뒷받침 덕에 돌다리 두드리듯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비즈니스호텔 사업도 이즈음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당초 경기도 동탄에 비즈니스호텔 ‘신라스테이’를 개관할 때만 해도 별도의 사업 법인이 없었으나 지난해 6월 ‘신라스테이 역삼’의 개장을 앞두고 별도로 법인을 설립했다. 비즈니스호텔 사업이 호텔사업의 큰 축임을 공표한 것이다. 지난해 10월에는 호텔신라가 보유하고 있던 신라스테이 역삼의 자산 81억원어치를 신라스테이에 넘겼다.
(위)서울신라호텔 어번 라운지, (아래)신라스테이 동탄 로비 
위탁운영으로 초기투자비용 최소화, 신라스테이
“동탄과 역삼에 이어 2016년까지 10개 지역에 신라스테이를 선보일 계획입니다.”
김태흥 신라스테이 역삼 총지배인이 개관에 앞서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사업계획이다. 비즈니스호텔은 출장 온 비즈니스맨을 위한 업무시설 등이 갖춰진 장기 투숙형 호텔이다. 특급호텔보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호텔신라는 초기투자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라스테이를 위탁운영하고 있다. 기업이나 부동산 펀드가 호텔을 개발하면 이를 빌려 운영하는 방식이다.
신라스테이 동탄은 미래에셋 부동산펀드가 투자를, 신라스테이 역삼은 옛 KT 영동사옥 별관을 리모델링했다. 신라스테이가 KT 소유의 부지와 건물에 임대료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호텔신라는 올해 제주(3월), 서대문(5월), 마포(9월), 울산(11월)에 신라스테이를 개장할 계획이다. 2017년에는 구로, 광화문, 천안, 서초에 예정돼 있다.
모든 신라스테이가 위탁운영될 예정인데, 현재 공사 중인 신라스테이 천안은 HMC투자증권이 주관해 신한은행과 신한캐피탈이 자금을 투자했다. 신라스테이 마포와 신대방도 각각 하나다올자산운용과 리치먼드자산운용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위탁운영은 부지와 건축비 등 초기투자비용이 거의 없고 적은 비용으로 호텔을 알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그랜드룸 객실(3실)을 포함해 총 306실 규모로 개장한 신라스테이 역삼의 경우 개관 첫 달 주중 투숙률과 예약률이 90%를 넘어섰다.
주말에도 대부분의 객실에 예약이 차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단 이부진 사장의 도전이 통했다”며 “신라스테이의 성공적인 확장이 호텔신라 호텔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키워드로 자리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부진 사장의 넥스트 스탭은? 삼성그룹이 방위산업과 화학산업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면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에 대해 지금까지 재계와 증권가는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금융·건설 부문을, 이부진 사장이 호텔·상사·화학 부문을, 이서현 사장이 패션·미디어를 맡을 것이라 예상해왔다. 하지만 이번 매각을 통해 이러한 시나리오는 힘을 잃었다.
이부진 사장이 개인적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화학 계열사가 매각(이 사장은 2013년까지 삼성석유화학 지분 33.19%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 합병 후 지분율이 4.95%로 줄었지만 3남매 중 유일하게 화학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되며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전자 계열사와 이부진 사장을 중심으로 한 화학 계열사가 추후 분할 승계되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재계 일각에선 이재용 부회장 체제가 확고해진 상황에 이부진 사장이 반대급부로 유통업에 눈독들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유통업 관계자는 “면세사업에서 이미 대내외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다음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