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5일 오후 3시.
이날 전국적으로 순환정전이 단행되면서 시민들은 큰 혼란을 겪었다. 타고 있던 승강기가 멈추는 것은 물론, 공장가동이 중단됐고, 신호등이 꺼지는 등 처음 겪은 ‘블랙아웃(무대에서의 암전을 뜻하는 말로, 전력 부족으로 일시정전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에 시민들은 공포감을 느꼈다.
블랙아웃의 공포 이후 재계와 금융투자업계는 대기업 산하의 민자 발전소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전이 전력 부족으로 곤란해지자, 가동률을 급격하게 끌어올리면서 부족한 전기를 생산했다. 전력대란의 위기를 넘긴 주역이란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추가 생산한 전력을 한전이 높은 가격에 사들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재계와 금융투자업계는 바로 이 때문에 민자 발전소가 침체기를 겪고 있는 건설업계의 새로운 캐시카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이들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2013년 민자 발전소들은 사상 최고의 수익을 기록하며 재계의 새로운 황금알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올 여름 민자 발전소들의 수익률이 급격하게 낮아졌다. 2010년 이후 건설업계의 신성장동력으로 급부상했던 민자 발전소 업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전력공급 늘면서 수익률 급격히 하락
금융권에 따르면 대기업 계열 민자 발전소들은 올 상반기 수익성이 대폭 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2011년 9월 15일 블랙아웃 사태 이후 매년 일어나던 전력대란이 올해는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전력공급량이 늘어난 데 비해 에너지 수요는 예년 수준이기 때문”이라며 “민간 발전회사들이 높은 수익을 올리려면 추가로 전력을 생산해야 하는데, 올해는 이런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매년 전력수요가 가장 높았던 8월 셋째 주께 사용된 전력은 7900만㎾ 규모로 지난해 여름 최대 전력수요인 8008만㎾에 못 미쳤다. 반면 국내 발전설비를 통한 공급능력은 지난해 여름보다 650만㎾ 늘어난 8450만㎾ 수준으로 나타났다. 전력수요가 줄었음에도 공급능력은 늘어난 셈이다.
한 전력업계 관계자는 “2011년 순환 정전사태를 겪으면서 민간 발전소의 허가를 늘렸고 가동을 중단했던 일부 원자력 발전소들이 재가동에 들어가면서 공급능력이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반면 “전력수요는 내수침체에, 예년보다 덥지 않은 선선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전기사용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이유로 민간 발전회사들의 수익성은 낮아졌다. 업계에선 민간발전업체들의 수익성 악화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SK E&S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영업이익·매출)은 9.49%로 2012년 13.16%에서 3.67%포인트 하락했다. 올해 1분기 역시 9.56%의 영업이익률을 보였다. 매출액은 늘었지만 전력부문의 수익성이 악화된 탓이다.
포스코에너지 역시 지난해 7.81%에서 올해 1분기 7.07%로 소폭 하락했다. 2012년 9.56%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데 이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GS EPS도 올해 1분기 영업이익률은 4.27%로, 지난해 8.88%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전년 1분기 7.6%와 비교해 봐도 절반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보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민자 발전소들의 수익성 하락이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블랙아웃 이후 정부가 추가로 허가해준 민자 발전소들이 완성되면 전력 공급능력이 더 높아지지만, 경기침체로 인해 여전히 전력수요가 늘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전력거래소가 전력생산 및 공급량을 직접 조율하고 있고, ‘원자력-석탄-LNG(액화천연가스) 발전’ 등으로 이어지는 발전 우선순위에서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LNG가스발전소만 운용하고 있는 민간발전소는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한 전력업체 관계자는 “2011~2012년 전력대란으로 민자 발전회사들이 많은 수익을 올린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원전 가동중단 등 비정상적이고 일시적인 요인이 주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3년 동안 예외적인 이유로 수익성이 올라간 것을 두고 가격 상한제 등 규제가 생겨났다”며 “정부주도로 움직이는 사업인 만큼 최근 시장상황을 반영해 정책을 운영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기회 있다! 민자 발전 인기 여전
수익성이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음에도 민자 발전소는 여전히 재계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정부와 전력거래소가 전력 유통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대기업 계열 건설사는 물론 금융사들은 직접 발전소를 인수 혹은 건설하거나, 지분투자에 나서는 등 여전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 2012년 8월 한국전력거래소가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민자발전 건설의향서를 접수한 결과 30여 개 회사들이 제안서를 제출했을 정도다.
실제 민자 발전소를 운영하는 대기업들 역시 수익률 하락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공급능력을 늘리고 있다. 포스코에너지는 2020년까지 설비용량을 5900MW로 확대할 방침이다. 포스코복합 7·8·9에 최근 인수한 동양파워 석탄화력발전소의 2000MW도 더해 국내 최대 규모의 민간 발전업체로 성장할 계획이다.
GS그룹의 움직임도 비슷하다. GS그룹이 현재 보유한 발전설비용량은 GS EPS 1400MW, GS파워 900MW 등 총 2300MW다. 여기에 지난해 인수한 GS E&R의 석탄화력발전소 1180MW, GS EPS가 건설 중인 당진복합화력발전 4호기 900MW가 더해 총 4400MW 규모로 공급능력을 키울 예정이다. 광양과 평택에 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는 SK그룹은 2017년 준공을 목표로 1800MW급 장문LNG발전소와 950MW 여주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을 진행 중이다. 이미 보유한 광양과 평택의 1800MW 공급능력을 더하면 총 4500MW까지 공급이 가능해진다.
금융권에서는 대기업들의 이 같은 행보에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자 발전을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보는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현재 건설 중인 고리 원전 5~6호기의 건설이 늦어질 경우 전력 수급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블랙아웃 가능성은 해마다 제기되고 있다”면서 “민자 발전소의 허가권을 전력거래소가 쥐고 있고, 계획단계에서부터 안정적인 마진을 보장하기 때문에 투자매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증권가의 한 전력담당 애널리스트는 “경기침체로 인해 전력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민자 발전소들의 공급능력은 매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며 “공급능력이 지금처럼 급격하게 증가하면 한전과 전력거래소의 부담도 커질 수 있어 마진에 대한 조정을 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