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보통 걷기 속도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양재시민의 숲’이 있다. 양재천을 끼고 있는 산책로는 널리 알려진 대로 서울 안에서 손꼽히는 벚꽃 길 중 하나다. 몇 년 째 4월 초면 날 잡아서 점심 도시락을 가지고 시민의 숲에서 식사를 한다며 동료들이 올해도 가자고 했다. 그때가 4월의 첫 날이었다. 벚꽃이 언제 만개해 보기가 가장 좋을지 정확히 예측하는 게 관건이 되었다. 참고삼아 서울 영등포구에서 주관하는 여의도 벚꽃축제 기간을 보니 4월 13일부터 20일까지였다. 그런데 3월 말부터 최고기온이 20도를 넘기는 이상고온현상이 연일 계속되면서 남부지방은 말할 것도 없이 서울까지 벚꽃들이 꽤 핀 상태였다. 주간일기예보를 보니 4월 3일부터 기온이 떨어지고 비까지 올지 모른다고 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우리는 다음 날인 4월 2일에 양재 시민의 숲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벚꽃길 산책을 즐겼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인 3일 비가 오고 벚꽃들이 졌다. 이는 13일 예정이던 개막일을 3일로 앞당겨서 벚꽃축제를 치르려던 영등포구에 가해진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결국 영등포구의 벚꽃축제는 10일 서둘러 폐막했다. 원래 일정으로 보면 개막하기도 전이었다.
서울시뿐 아니라 벚꽃이나 봄꽃 축제를 준비하던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이번 봄에 홍역을 치렀다. 기상이변이라고 표현을 해 지자체들의 피해상태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 기사검색을 하며 추려봤다. “작년도 올해도 ‘벚꽃 개화 예측’ 헛짚은 기상청. 진해 벚꽃 기상청 예보보다 1주 빨리 피어...지자체들 울상”이란 헤드라인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작년 4월 8일자의 기사였다. 그러니까 기상청의 예보는 올해까지 3년 연속으로 잘못 짚었고, 지자체들은 역시 3년 연속으로 축제 시기 문제로 골치를 앓은 셈이다. 날씨와는 별개로 세월호 침몰사건까지 겹쳐서 올봄은 지자체의 축제 담당자들에게는 혹독한 시련의 계절로 기억될 것이다.
바야흐로 기상이변의 시대
올 상반기의 기상이변은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지난해 3월 17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느닷없이 차량 2부제가 실시되었다. 미세먼지 농도가 1㎥당 180마이크로그램(㎍·1마이크로그램은 100만분의 1그램)이 넘었다고 해서 비상이 걸린 것이다. 180㎍이라고 하면 중국에서는 미세먼지의 연간 평균치 정도다. 서울에서는 올해 최고 수치로 4월 15일에 250㎍을 넘겼다. 중국의 베이징에서는 500㎍ 이상이 되는 날도 많다고 한다. 어쨌든 기준점을 높게 잡아놓은 파리에서는 180㎍을 넘긴 게 충격이었던 것. 시행 하루 전인 3월 16일에 차량2부제를 예고하고는 바로 시행에 들어갔다. 사전 예고 시간과 홍보가 부족한 점도 있지만 ‘파리지앵’답게 결연하게 반항한 자동차 운전자들도 꽤 많았던 것 같다. 단속하는 경찰들과 곳곳에서 시비가 일었고 나중에 결산하니 하루 동안에 4000여 명이 위반자로 단속되었다고 한다. 차량2부제를 실시하고는 바로 80㎍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차량 2부제가 파리에 실시된 게 1997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앞으로는 미세먼지를 비롯한 대기환경 때문에 자주 보게 되리라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다.
‘국가원수와 조깅’하면 한국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 현재 영국의 수상인 캐머런도 그에 못지않은 것 같다. 그가 최근 조깅을 하지 못하고 건너뛰었다고 해서 뉴스가 되었다. 런던을 휘감은 스모그 때문이었다. 스모그의 역사에 런던은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52년 12월 엿새간의 스모그로 런던에서만 4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스모그로부터 야기된 폐질환으로 이후 사망한 사람까지 합치면 1만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영국 정부의 대응이 늦기는 했지만 1956년 대기정화법을 제정하는 등 차근차근 노력하여 1970년대 이후 스모그의 대표적인 도시는 LA로 바뀌었다. 이번 스모그는 사하라사막에서부터 온 먼지 때문이라고 한다. 3~4년 전부터 이슈가 되었는데, 올해 아프리카에서는 북풍이 심했고, 상대적으로 영국에서는 바람의 활동이 약해서 먼지가 오래 머무르게 되었던 까닭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파리와 같이 자동차 배기가스를 비롯한 공장과 난방시설이 뿜는 오염도 이런 스모그가 발생하는 기본요소로 작용한다. 언제든지 기상이변에 따라 더 심한 스모그도 일어날 수 있다.
미국에서 주재원을 지냈던 한 지인은 미국 식당의 가장 큰 장점으로 큰 컵에 아낌없이 주는 얼음물을 들었다. 이제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에서는 그런 장점이 발휘되지 못한다. 작년 말부터 가뭄으로 캘리포니아가 물 부족을 겪으며 식당에서 물을 주는 것도 요구를 해야만 주는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워낙 겨울 가뭄이 잦은 지역이기는 했지만, 식당에서 물을 주는 것까지 관리할 정도의 조치는 처음이었다. 캘리포니아의 3대 명물이 지진, 산불, 가뭄이라는 얘기가 그저 웃기 위한 조크로 들리지 않는다. 지난 겨울 미국 동부는 서부와 반대로 계속되는 폭설에 시달렸다. 한 미국인 친구의 말에 의하면 11월 말부터 3월 초까지 눈 온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미국 남부의 토네이도는 예전부터 유명했다. 지난 4월의 토네이도는 애초의 예상을 넘어 근래 몇 년 동안 가장 강력했다.
일본의 동북대지진 때 한국 모 언론사의 도쿄특파원으로 근무했던 기자를 만났다. 후쿠시마 원전 지역을 최초로 취재하는 등 역동적인 활약을 펼쳤던 그에게 당시의 취재 이후 생활에 변화가 있었냐고 물었다. 다른 것보다 꽁치를 좋아했는데 먹지 않는다고 했다. 후쿠시마 앞바다가 원래 꽁치의 주산지였다고 한다. 좀 크게는 원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 기자뿐 아니라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식습관과 발전(發電) 방식을 비롯한 사회 인프라에 대한 생각, 가족과의 관계를 비롯한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다.
기상이변 시대다. 올 3월 말부터 최고기온이 20도를 넘기는 이상고온현상이 연일 계속되면서 벚꽃이 평년보다 일찍 피고 졌다.
위기관리의 ABC
한국의 들쭉날쭉한 봄철 날씨에서부터 유럽, 미국,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최근 세계 각지에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그 여파는 지자체의 행사, 자동차 운행, 야외 스포츠 활동, 식당에서의 서비스, 기호 음식, 발전 방식 등 다양하게 미친다. 기업들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일찌감치 기상이변이나 날씨의 변화의 중요성을 간파하여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기상마케팅’ 혹은 ‘날씨마케팅’과 같은 용어는 1990년대 초부터 쓰였다.
패션이나 냉난방기기에서의 적정 수요 예측과 그를 통한 재고 최소화, 공사 현장에서의 효율적 인력과 일정 관리 등의 비용과 수익 측면에 초점을 맞춰 전개되었던 기상마케팅에 근래 변화가 생겼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위기관리, 곧 ‘Risk management’ 차원으로 전개하는 것이 거역할 수 없는 큰 흐름으로 대두되고 있다.
주로 자본에 초점을 맞춘 국경을 넘나드는 리스크에 대해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판카즈 게마와트(Pankaj Ghemawat)는 ABC를 머리글자로 한 세 가지 순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그의 <월드 3.0>에서 말했다. 경보 장치(Alarms), 저지 장치(Breakers), 완충 장치(Cushions)라는 조기경보시스템, 전염 억제, 타격의 완화 기능을 일컫는데, 기상 관련해서도 충분히 ABC는 적용될 수 있다. 동북대지진이 난 2011 여름 도쿄에 갔었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도쿄에 사는 후배가 진동이 온 스마트폰을 확인하더니 곧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 했다. 감각이 둔해서인지 나는 느끼지 못했는데 한국에서 온 친구들까지 몇 초 후에 “아! 왔다”하면서 서로 신기해했다. 지진 발생 수십 초 전에 스마트폰을 통하여 경보하는 앱인데, 동북대지진 후 한 달 사이에 약 150만 명이 다운을 받았다고 한다. 지진의 강도와 진원지까지 알려주는데, 작년에 미국에서도 지진이 잦은 캘리포니아 주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기상예보도 경보 장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3월이 되면 대형마트에는 황사대응 물품매대가 설치된다. 황사용 마스크를 비롯하여 피부보호용 화장품에 선글라스까지 있다. 황사가 호흡기, 피부, 안구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는 데 목적이 있는 저지 장치다.
크게 보면 황사의 발원지라고 하는 몽골에 나무를 심는 것도 저지 장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황사가 심해지면 삼겹살 소비가 증가한다. 확실한 효과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만 목에 낀 먼지를 삼겹살의 기름으로 제거한다는 미명하에 자연스레 소비가 늘어난다. 감정적으로는 충분히 황사 피해에 대한 완화 효과가 있다. 삼겹살은 그래서 황사에 대한 완충 장치라 할 수 있다. 손 소독제를 쓰거나 외출했다 들어올 때마다 손을 씻는 것 등도 완충 장치의 일종이다.
청명한 날씨를 보인 4월 어느날 도심 하늘에는 안정된 대기로 인해 공기중으로 흩어지지 않은 오염띠가 형성됐다.
신제품과 스토리를 개발(D)하라
기상이변이나 그로 인한 재해 등을 예측하고 대비하고 활용하기도 하는 ‘기상마케팅’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ABC만으로는 부족하다. ‘개발’ 곧 ‘Development’의 ‘D’가 필요하다. 두 가지의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신제품’과 ‘스토리’이다. 예측하고 저지하며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상과 재해 상황이라도 적극적으로 자신과 엮어서 신제품과 그와 함께 내세울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사례들 몇 가지를 보자.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를 참관한 후 귀국 전날에 현지 TV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하나를 보았다. 미국 프로 아이스하키 리그인 NHL의 ‘윈터클래식(Winter Classic)’이 소재였다. 윈터 클래식은 매년 1월 1일 NHL의 정규 경기를 야외의 대형 스타디움 같은 곳에서 하는 행사이다. NBC방송국의 스포츠 프로그램 담당자의 아이디어로 2008년에 처음 시작되었는데, 이제 NHL의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앤 아버(Ann Arbor) 소재 미시간대학교의 스타디움에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Detroit Red Wings)와 토론토 메이플 리프스(Toronto Maple Leafs)가 격돌했다. 기온은 섭씨 영하 20도까지 떨어졌고, 경기 내내 눈보라가 몰아쳐 잠깐의 휴식시간마다 경기 진행요원들이 링크 위의 눈을 치우느라 분주했다. 야외에서 경기를 하고 관전을 하는 데 최악의 날씨라 할만 했으나, 그런 점이 바로 윈터 클래식의 묘미를 한층 더 부각시켰다. 팬들도 더욱 열광하고 직접 관전했다는 사실에 뿌듯해했다. 추운 겨울에 하는 역동적인 스포츠로 아이스하키에 대한 팬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더욱 뜨거운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몫한 것이다.
윈터 클래식과 비슷하게 시카고의 ‘러시안 페스티벌’도 관광에는 치명적인 약점인 혹한을 강점으로 만든 사례이다. 시카고보다 더욱 추운 러시아의 음악을 비롯한 발레, 미술 등의 공연과 전시회를 열어서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더욱 러시아다운 맛을 느끼도록 한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팀으로 원래 뉴욕에 있다가 서부 샌프란시스코로 옮긴 자이언츠의 홈구장은 ‘캔들스틱 파크’였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것치고도 바람이 세기로 유명했다. 야구장으로는 최악의 기후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그래도 자이언츠의 팬들은 그런 기후조건 속에서도 야구장을 찾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것이 자신의 야구와 팀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하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원정팀의 선수들이 바람에 당황해 실수하는 모습을 보며 야유를 퍼붓고 놀림거리로 삼는 것을 즐겼다. 소금기 먹고 수시로 방향을 바꾸는 바람이 바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팬들의 상징이 된 것이다.
일본 동북대지진으로 모든 통신망이 두절된 상황에서 혼다는 차량에 장착된 내비게이터로 차량들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지진과 해일에 강타당한 지방에서 움직이는 혼다자동차들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다. 그 하나하나의 움직임으로 혼다는 일본의 그 어떤 기관보다 빠르고 확실하게 구호물품이나 구조인력이 접근할 수 있는 도로를 파악해 알려주었다. 혼다는 그렇게 파악한 도로와 그런 자신들의 노력 행위 전체를 ‘Connecting Lifelines’라고 명명했다. 기상 정보는 빅데이터의 일환으로 꾸준히 살펴보고 혹여 있을 이상 징후를 탐지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편으로 스토리가 있는 상품을 개발하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진정한 기상마케팅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