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 앉아 가는데 저비용항공사(LCC·Low Cost Carrier)를 택하면 수십만원씩 경비가 절감돼요. 배낭여행으로 치면 3~4일은 족히 더 여행할 수 있는 돈이죠.”
1년에 2~3차례 해외로 떠나는 직장인 김진용 씨(33)는 항공편으로 저비용 항공사를 고집한다. 올해 7월 방콕 여행을 계획 중인 김씨는 여행을 준비하며 항공권 가격비교에 들어갔다. 대형 항공사의 항공요금은 81만원이었지만 저가항공사 중 저렴한 항공편을 검색한 결과 유류할증료와 공항세를 포함해 48만원이면 충분했다.
“이전에도 같은 항공사를 이용한 적이 있는데 4시간 정도 비행하는데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 정도 돈을 아끼면 현지에서 하루 이틀은 왕처럼 호화롭게 관광을 즐길 수 있거든요. 고민할 필요 없죠.”
즐거운 마음으로 항공권 예매를 마친 김씨는 며칠 지나지 않아 웹서핑을 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한 외국계 저비용항공사가 성수기인 8월 말까지 방콕행 항공권을 왕복 20만원도 안되는 파격가에 내놓고 손님몰이에 나선 것이다. 결국 김씨는 멋쩍게 예매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가격 해부 저비용항공사 얼마나 싸기에?
저가 항공사를 이용할 경우 대형 항공사(FSC·Full Service Carrier)에서 얻을 수 있는 넓은 좌석과 AVOD(음악·게임·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기내식, 무료신문 제공 서비스 등은 포기하는 것이 속 편하다. 대신 서비스와 비행기 기종을 단순화해 가격만큼은 착하다.
특히 대형 항공사와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4시간 이하의 중단거리 노선에서 가격 메리트로 승부한다.
실제 항공권 가격을 비교해 봤다. 2014년 5월 15일 기준으로 평일인 5월 20일 김포에서 제주행 항공권 가격을 보면 유류할증료와 공항이용료를 포함한 당일 최저 티켓 가격이 대한항공은 6만5700원, 아시아나 5만8700원, 제주항공은 3만 7600원, 진에어 3만6700원, 티웨이항공, 에어부산과 이스타항공 3만6000원 순이었다.
저비용항공사의 항공권 가격이 최고가로 책정된 대한항공에 비해 최대 40% 이상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말인 5월 24일에는 대한항공 9만2100원, 에어부산 8만3250원, 아시아나 6만9600원, 이스타항공 6만3000원, 티웨이항공 5만8000원, 진에어 5만7900원, 제주항공 3만3600원 순이었다. 상대적으로 평일에 비해 편차가 큰 이유는 저비용항공사의 경우 일찍부터 초특가 티켓이 매진돼 남아 있는 빈 좌석 티켓 가격을 기준으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국제선 인천에서 오사카로 향하는 5월 24일 항공권 가격을 비교해보면 대한항공 34만2600원, 아시아나 31만8900원, 이스타항공 12만5800원, 제주항공 11만800원으로 대형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 항공권 가격이 3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항공사별로 ‘최저운임’, ‘초특가운임’, ‘이벤트운임’ 등의 이름으로 다양한 상시 할인제도와 특별할인경쟁을 펼치고 있는데 날짜와 시간별로 가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왕복할 경우라도 가는 편과 오는 편을 다른 항공사에서 예매할 때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도 있는 것이 확인됐다.
대한항공 계열 진에어는 업계 최초로 승무원 유니폼을 청바지로 정했다.
국내선 2명 중 1명은 저비용항공사로 ‘훨훨’
배낭여행을 떠나는 대학생부터 실용적인 여행을 원하는 스마트컨슈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저비용항공사들이 날개를 활짝 폈다. 저렴한 비용에 노선까지 넓어지면서, 대형 항공사 대신 저가 항공사를 찾는 항공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국내에는 현재 5개의 저비용항공사(제주항공·진에어·에어부산·이스타항공·티웨이항공)가 국내선과 국제선을 운항하고 있다. 2005년 애경그룹의 제주항공이 취항한 데 이어 2007년 아시아나계열의 에어부산과 이스타항공, 2008년에는 대한항공계열의 진에어, 2010년 티웨이항공이 출범했다. 2008년 LCC의 국내선 분담률은 9.7%로 한 자릿수에 머물렀지만 최근 국내선 점유율이 47%를 훌쩍 넘는 등 점유율이 대폭 늘어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저가 항공사들의 시장 점유율은 19.8%로 작년 1분기(17.4%)에 비해 늘었다. 특히 저비용항공사들이 주력하고 있는 국내선의 비중이 높다.
1분기 국내선 항공사 점유율을 살펴보면 대한항공이 29.4%, 아시아나항공 23.1%, 제주항공 13.2%, 에어부산 11.9%, 이스타항공 7.9%, 티웨이항공 7.3%, 진에어 7.2% 순이다. 저비용항공사의 비중은 47.5%로 국내선 이용자 2명 중 1명은 저비용항공사를 이용한 셈이다. 특히 김해-제주는 74.3%, 김포-제주는 59%, 군산-제주는 54.9%가량을 저가항공사들이 장악했다. 올해에는 큰 폭으로 노선이 확대돼 점유율은 50%를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선도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1분기 시장 점유율은 9.4%로 작년 1분기보다 3%포인트가량 증가했다. 총 이용객 수도 작년 1분기(72만명)보다 큰 폭으로 늘어난 118만명에 달했다. 1만명 이상 수송한 노선수도 22개에서 30개로 크게 증가했다.
이용객이 늘어나며 저비용항공사들의 실적도 개선됐다. 지난해 제주항공은 194억원의 순익을 기록해 전년(53억원)보다 2.5배 이상 증가했고 에어부산은 44억원에서 46억원으로 소폭 상승했다. 티웨이항공은 특히 2010년 9월 첫 취항 후 적자세가 지속됐으나 지난해 첫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12년 15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140억원 이익을 내며 실적이 크게 호전됐다. 유일하게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스타항공은 2012년 229억원의 손실을 냈지만 지난해에는 167억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적자폭을 다소 줄였다. 2005년 한성항공이 처음으로 취항하며 출범한 저비용항공사들은 우여곡절도 많았다. 먼저 국내 1호 저비용항공사였던 한성항공은 만성적인 적자로 2009년 법정관리에 들어가 이듬해 티웨이항공으로 다시 태어났고 9년 사이 영남에어, 코스타항공, 인천타이거항공 등이 도산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실적개선이 두드러진 티웨이항공 측은 “초기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산업의 특성상 저비용항공사들은 출범 후 몇 년간은 흑자를 내기 힘든 구조”라며 “업황이 좋아지고 브랜드 인지도가 늘어남에 따라 재무상태도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 업계 전문가는 “LCC들의 노선이 확대되고 취항하는 곳이 늘어나며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늘려준 것이 큰 성공요인”이라며 “단순히 저렴하다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각 사별로 벌인 마케팅 역시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저비용항공사의 약진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곳은 대형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다. 대한항공은 2012년 약 26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2905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2012년 62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지만 2013년 114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방 맞은 대형 항공사들의 반응
대한항공 ‘복지부동’ 아시아나 ‘복수전’ 준비
대한항공 관계자는 “지난해 발생한 2500억원 규모의 환차손을 1차적인 수익감소”의 원인으로 꼽았고 양사 모두 일본 노선 감소가 타격이 됐다고 밝혔다.
한 항공업계 전문가는 “한국·일본 간 항공노선의 경우 저가 항공사 위주로 판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향후 4시간 내외의 근거리 노선에서 저가 항공사의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높아질 것”이라 내다봤다. 그나마 올해 1분기 대형항공사들의 실적은 개선됐다. 대한항공1분기 매출 2조8969억원에 영업이익 212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와 비교해 영업이익은 -1466억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당기순이익에서는 지난해 1분기 -3034억원 대비 적자폭이 -1558억원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했다.
아시아나는 올해 1분기 매출 1조4148억원에 영업이익 -21억원, 당기순이익 -46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1분기에 이어 적자를 기록했으나 190억원가량 손실폭이 줄었다. 당기순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16억원이 개선됐다. 저비용 항공사들의 공세는 올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운항횟수부터 대폭 증가했다. 지난해 하반기 저비용항공사의 운항횟수는 주 258회였지만 올해에는 주 339회로 30% 이상 증가할 예정이다. 이는 일본·중국·동남아·홍콩 등 하절기 항공시장 수요충족을 위해 기존 노선 운항 및 신규 취항노선이 확대된 결과다.
국내선은 물론이고 중·장거리 국제선 노선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미 국내선에서는 진에어가 5월 24일부터 오는 10월 26일까지 김포-제주 노선에 대해 주간 평균 16편, 총 3024석을 추가로 공급할 예정이다.
국제선에서는 제주항공이 세부·괌·청도 노선을 신규 취항할 예정이다. 진에어는 일본 오키나와와 중국 연대, 에어부산은 중국 서안과 마카오, 이스타항공은 일본 오사카와 중국 심양 노선을 준비 중이다. 저비용항공사들의 신규 취항으로 스케줄 선택의 폭이 확대되고 운임이 인하되는 등 이용객의 편익이 증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대형 항공사들은 국내 노선과 한·중·일 등 근거리 노선 수를 줄이고, 미주나 유럽 등 장거리 노선에 집중하고 있다.
한편 아시아나항공은 지분 100%를 출자해 신생 저비용항공사를 출범시킬 것이라 알려지며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시아나는 지난 2월 초 TF팀 구성에 나서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가 신규 LCC를 출범하게 되면, 지분 46%를 투자한 에어부산에 이어 두 번째로 LCC를 품에 안게 된다. 이와 관련해 한 저비용항공사 관계자는 “대기업이 모기업으로 있는 저가항공사는 그렇지 않은 곳보다 자금력 부분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며 “여러 저가항공사가 재무위기에 빠져 도산했는데 경쟁이 치열해지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아시아나항공은 신규 항공사 출범 외에 할인 정책을 통해 저비용항공사 견제에도 나섰다. 그동안 저비용항공사들의 주요 마케팅기법이었던 ‘얼리버드(3~6개월 뒤 출발하는 항공권 사전 구입)’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 2월 취임한 김수천 사장의 작품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저비용항공사인 에어부산 초대 대표를 지낸 김 사장은 얼리버드 전략을 통해 단거리 시장에서 저비용항공사와의 가격 경쟁력을 회복해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반면 대한항공은 “별도의 할인 항공권 판매에 나설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