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바야흐로 월드컵 시즌(6월 13일~7월 14일)이다. 마케팅 기획이 한창인 각 기업의 입장에선 올림픽처럼 여러 종목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도 아니요, 과연 흥행에 성공할지 설왕설래할 이유도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따르면 2010남아공월드컵 당시 전 세계 누적 시청자 수는 약 263억명. 결승전이 열렸을 땐 204개국 250여 채널이 중계화면을 전송하며 약 8억명의 세계인이 환호했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들이 이러한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만무한 일. 경기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도 4년 만에 돌아오는 스포츠 특수를 놓칠 수 없다는 기세다.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공인구 브라주카
왜 축구인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성화 봉송을 하면 1마일당 1파운드를 대신 기부해 드립니다.’ -영국 현지 삼성 호프 릴레이
‘5천만 국민의 성원을 한국음악으로 응원합니다.’
-기아차 오성과 한음
‘축구팀의 8강을 우대금리로 응원합니다.’
-하나은행 오필승코리아적금 …
2년 전 런던올림픽 당시 우리 기업들의 마케팅 슬로건이다. 당시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매출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우리기업의 스포츠마케팅 실태와 향후과제’를 살펴보면, 런던올림픽 특수여부를 묻는 질문에 ‘세계경기가 좋진 않지만, 올림픽특수가 있을 것이다’란 응답이 60.9%로 나타났다.
일례로 2002년 한일월드컵(19.7%)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27.3%)보다 연계마케팅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실제 올림픽 마케팅에 나선 기업의 57.1%는 ‘시청자의 시선이 올림픽에 쏠릴 것인 만큼 언론매체를 통해 제품 및 기업광고를 늘릴 것’이라고 답했고, ‘선수단 성적이 오르면, 마케팅 지출을 더 늘리겠다’는 기업도 38.9%나 됐다.
기업들은 이러한 마케팅을 통해 ‘기업이미지 향상’(71.4%)과 ‘매출증대’(23.8%) 효과를 노리고 있었다.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답한 기업은 고작 4.8%에 불과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활용하는 스포츠마케팅 방법으로는 ‘선수 또는 팀에 대한 스폰서십 후원’(69.7%)이 ‘스포츠를 활용한 광고제작’(37.9%)보다 많았다. 주요 후원대상은 ‘국내스포츠팀’(74.5%), ‘축구 K-리그, 골프 KPGA 등 스포츠이벤트’(25.5%), ‘국내 스포츠선수’(29.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올림픽 당시 기업들이 가장 선호한 종목은 무엇이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단연 축구(33.3%)가 대세였다. 2위를 차지한 야구(28.8%)와 비교해 약 5%p나 앞섰다. 국내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2년 월드컵 당시 거리응원이 증명하듯 국가대표팀의 경기가 열리는 날엔 온 국민의 시선과 마음이 하나”라며 “하물며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월드컵이야말로 브랜드 홍보의 절호의 기회”라고 전했다. 그만큼 국가대표 축구팀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높다는 방증이다.
거대 스포츠 브랜드의 승부수
마케팅 전쟁의 성패는 월드컵이 열리는 한 달간 소비자의 시선을 얼마나 강하게 사로잡느냐에 달렸다. 우선 눈에 띄는 기업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양대산맥이라 불리는 나이키와 아디다스다. 아디다스가 국제축구연맹(FIFA)의 공식 후원업체라면 나이키는 본선 진출팀 32개국 중 가장 많은 10개국 대표팀을 후원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업계 일각에선 아디다스의 마케팅 상황이 좀 더 유리하단 반응이다.
월드컵 공식 후원사는 광고와 제품에 대회 로고와 마스코트를 표시할 수 있고, 경기장 내에서도 브랜드를 노출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브라질 월드컵 티켓이나 공식 슬로건에 아디다스가 등장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여기에 아디다스는 스페인, 독일, 아르헨티나 등 강력한 우승후보국의 유니폼도 후원하고 있다. 대신 나이키는 앞서 밝혔듯 가장 많은 출전국의 국가대표팀을 후원하고 있다. 한국은 물론, 개최국 브라질도 나이키 유니폼을 입는다. 경기 중 자연스럽게 로고가 노출되는 건 기본이다. 물론 자사 제품을 착용하고 마케팅 행사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각국 스타플레이어를 개별적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국 대표팀의 구자철, 손흥민 선수는 유니폼은 나이키, 축구화는 아디다스를 신을 예정이다. 팀은 나이키의 후원을 받지만 정작 선수 본인은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키는 지난 4월 1일부터 도전정신을 강조한 ‘RISK EVERYTHING’ 캠페인을 전 세계 동시 론칭했다.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네이마르 등 슈퍼스타들을 내세워 물량공세 중이다. 축구공을 놓고도 양사의 자존심싸움은 철저하다.
일단 1970년부터 월드컵 공인구는 FIFA 공식 후원업체인 아디다스가 제작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공인구 계약을 2030년까지 연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이키는 자사가 후원하는 국가대표팀이 국가 대항전에 나설 때 아디다스가 제작한 브라질 월드컵 공인구 ‘브라주카’ 대신 자사의 축구공(‘오뎀’)을 쓰도록 계약서에 명시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나이키는 2012년에 대한축구협회와 공식 후원 계약을 체결하며 8년간 현금과 현물 등 총 12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삼성에버랜드패션부문 브랜드 갤럭시가 협찬한 대한민국 월드컵 국가대표 공식 단복
한국 시장도 서서히 기지개
한국 기업 중 유일하게 브라질월드컵 공식후원사로 참여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은 월드컵 홍보대사로 스페인 대표팀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와 브라질 대표팀 공격수 카카를 선정하며 해외 마케팅을 시작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와 AC밀란에서 뛰고 있는 두 사람은 앞으로 현대차의 TV광고와 온라인 마케팅을 통해 전 세계 축구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국내 시장에선 월드컵 에디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차는 준중형 세단 아반떼와 SUV 투싼ix의 월드컵 에디션을 출시했다. 20~30대 젊은 고객층을 겨냥해 아반떼 월드컵 에디션에는 16인치 알로이 휠, 고휘도방전(HID) 헤드 램프, 발광다이오드(LED) 리어 콤비 램프, LED 보조 제동등, 노출형 싱글팁 머플러, 세이프티 선루프 등을, 투싼ix에는 18인치 다이아몬드 커팅 알로이 휠, LED 리어 콤비 램프, LED 주간 전조등(DRL), 루프랙 등 옵션추가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기아차의 월드컵 스페셜 에디션인 ‘W 스페셜’은 기존 모닝, K3, K5, 스포티지R 모델에 다양한 옵션을 추가했다. 특히 판매기간을 월드컵 개막 한 달 전인 5월 12일부터 7월 31일로 정해 마케팅 효과를 노렸다는 반응이다. 대형 스포츠 행사가 개최되는 시점의 TV매출은 어김없이 수직 상승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로 양분되는 대형 TV시장은 월드컵 시즌 최대 수혜 품목 중 하나다.
실제로 부산 롯데백화점의 매출을 분석해보니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그 해 상반기 TV매출이 전년대비 각각 54%, 68%나 껑충 뛰었다. 평년과 비교하면 1년 매출을 단 2분기 만에 달성한 것이다. 좀 더 쉽게 풀어보면 윤달이 없어 봄철 결혼특수가 확연했던 지난해 매출 신장률(22%)보다 2∼3배 높은 수준이다.
매출 신장의 원인 중 하나는 ‘50대 여성’이었다. 결혼 특수 당시 TV를 구매한 이들은 주로 30대 여성이었지만 월드컵 축구시즌에는 50대 여성이 가장 많이 매장에 들렀다. 지난 2010년 월드컵 당시 가장 인기를 끈 TV는 55인치 이상 대형TV였다. 이 기간에 TV를 구입한 고객들은 평년보다 한 단계 높은 사양의 제품(40·42인치→46인치, 50·52인치→55인치 이상)을 선호했다.
박기준 롯데백화점 생활가전팀 관계자는 “브라질 월드컵을 두 달여 앞두고 TV 구입을 위해 매장에 방문한 고객들 상당수가 50인치 이상 대형 TV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월드컵 특수를 잡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과 행사로 고객유치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장이 대목이니 제품도 첨단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최신 모델에 축구 경기 시청 시 화질과 음질을 최적화한 ‘사커 모드’와 ‘스포츠 모드’를 탑재했다. 사실 TV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전환이 마무리되며 지난 2년간 불황이 깊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금 꿈틀대고 있다. 전자업계 일각에선 6~7년을 주기로 반복돼 온 TV 구매 시기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고, 여기에 월드컵 특수가 겹쳤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해 최근 주요 TV제조사들이 출고가를 낮췄다. LG전자는 49인치 UHD(초고해상도)TV 가격을 290만원에 내놓았다.
55인치 UHD TV 가격은 300만원대 후반으로 종전 풀HD TV 가격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삼성전자도 가격을 낮춘 보급형 UHD TV인 HU7000 시리즈를 출시했다. 40인치 출고가격이 189만원. UHD TV가 100만원대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마케팅 측면에서 LG전자는 지난 3월 25일 브라질 상파울루 시에 있는 트란스 아메리카 엑스포 센터에서 ‘디지털 익스피리언스 2014’를 열고 신제품을 소개했다. 이 자리에서 ‘77형 울트라 HD 곡면 올레드 TV’를 비롯해 다양한 울트라 HD TV 신모델이 공개되며 화제가 됐다.
LG전자는 올해 모두 16종의 울트라 HD TV를 출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월드컵을 앞두고 ‘갤럭시11’을 활용한 글로벌 축구 캠페인을 전개한다. 가상의 축구대표팀이 지구의 운명을 걸고 외계인과 축구 시합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청용 등 톱클래스 선수들이 대거 참여한다.
코카콜라의 ‘모두의 월드컵’ 캠페인
여전한 앰부시 마케팅
공식 후원사가 아닌 기업은 이른바 ‘앰부시 마케팅(Ambush Marketing)’이 한창이다. 월드컵과 직접적인 단어나 로고 등을 사용하지 않지만 분위기를 선도하며 FIFA의 제재를 피해가는 일종의 우회 마케팅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나이키가 파리 시내 대형 테마공원에 ‘나이키 파크’를 설치, 무료로 개방해 광고효과를 높이자 각 기업들이 눈여겨보게 됐다.
국내에선 일찌감치 커피 전문점 카페베네가 월드컵 시즌을 겨냥해 신메뉴를 출시했다. 월드컵이란 단어 대신 ‘초코악마빙수’ ‘승리의 그라운드 케이크’ 등으로 재치있게 명명했다. 롯데제과는 ‘월드콘 먹고 브라질 가자’ 이벤트를 지난 5월 20일에 마감했다. 총 10명의 당첨자에게 브라질월드컵 관람권과 브라질 여행권을 증정하는 행사였다.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의 남성복 갤럭시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이어 브라질 월드컵 국가대표팀 공식 단복을 협찬하며 주목받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물론 대표팀 선수단, 스태프 등 총 58명에게 슈트, 팬츠, 티셔츠, 타이, 구두 등 의류 일체를 지원할 계획이다.
함형준 삼성에버랜드 남성복사업부장 전무는 “대한민국 No.1 슈트인 갤럭시 슈트를 입고 월드컵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기량뿐 아니라 패션 감각 측면에서도 경쟁우위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갤럭시는 브라질월드컵 16강 진출을 기원하는 ‘월드컵 응원가-승리를 원해(Pride11)’ 이벤트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