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부터 제주 이전 계획을 추진해온 다음(DAUM)은 지난 해 본사를 제주도로 옮겼다. 한때 네이버와 쌍벽을 이루던 다음의 시가총액은 지금 1조2000억원 전후에서 움직이고 있다. 네이버의 시가총액이 계열사를 포함해 20조원이 넘는 것에 비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다. 무엇이 이 격차를 만들었을까.
과거 한국 정부는 전국토의 균형발전을 내세우며 행정도시를 건설하고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내려 보내려고 했다. 지금 정부는 비효율에 시달리고 있고 많은 공기업들의 적자와 재무구조 악화로 골머리를 썩고있다.
당신의 기업은 어디에 자리를 잡을 것인가. 비용이 저렴한 지방을 찾아 도시를 떠나는 게 현명한가. 복잡한 대도시를 떠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도시로 가는 게 올바른 선택일까. 맥킨지가 최근 이 질문에 답을 주는 리포트를 냈다.
지금 세계의 대도시 서열이 바뀌고 있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일까. 신흥 시장의 부상은 비즈니스 수행의 장소와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지난 30년간 신흥시장은 저비용 노동력의 공급원이었다. 지금 신흥시장 노동력의 숙련도는 날로 향상되고 있다. 급속히 성장하는 신흥시장의 도시들은 구매력으로 무장한 수백만 명의 새로운 소비자로 넘쳐나고 있다. 대다수의 선진세계가 인구 고령화로 인해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반면에 신흥 도시들은 글로벌 기업에 새로운 성장 시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신흥시장의 대기업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MGI)는 최근 보고서에 신흥시장의 변화를 분석했다. 맥킨지는 이러한 새로운 기업의 등장은 전 세계에 오랫동안 뿌리 내린 경쟁의 지평에 본질적인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흥시장 기업의 부상
MGI는 이번 연구를 통해 글로벌 기업 구도의 변화와 신흥시장의 부상으로 인해 오랫동안 뿌리 내려온 재계와 도시 리더들의 경쟁 구도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분석했다. 조사 결과 포춘지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신흥국 기업의 비중은 2000년 5%였던 것이 2025년에는 45%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전 세계 기업 중 연 매출 10억달러 이상인 기업 가운데 3분의 2가 현재 선진경제에 속해 있다. 맥킨지는 그러나 앞으로 10년 후에는 연 매출 10억달러 이상을 기록하는 기업이 7000개사나 더 늘어나고, 그 가운데 70%는 신흥시장 기업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결과는 MGI의 컴퍼니스코프 대기업 데이터베이스에 따른 것이다. MGI는 이와 관련해 매년 연간 매출액 10억달러 이상인 민간기업은 물론이고 공기업과 국영기업까지 포함해 데이터를 관리해왔다.
맥킨지는 세계 거대기업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지금과 같은 지위를 유지해 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글로벌 재계의 균형 축이 이처럼 극적으로 변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서유럽 기업 150개 가운데 40%는 1900년 이전에 설립된 것으로 나타났다. 맥킨지는 또 현재 추세로 볼 때 글로벌 500대 기업 가운데 신흥국 도시에 본사를 둔 기업 수는 지난 2000년 24개에 불과했으나 2025년이 되면 230개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불과 10여 년 후엔 세계 500대 기업의 절반 가까운 숫자가 신흥국에 자리 잡게 된다는 얘기다. 이는 선진국 위주로 해오던 지금까지의 글로벌 영업 패턴의 일대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CEO들에게 울리는 경종
짧은 시기에 엄청난 규모의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이라 지금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현실에 안주할 여유가 없다는 게 맥킨지의 지적이다. 비슷한 상황은 이전에서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세계 시장 점유율을 늘리면서 일부 업체들이 미국의 경쟁사를 앞질렀던 것이다. 최근 한국의 삼성전자가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아성을 약화시킨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 10년간 이와 유사한 상황이 훨씬 더 큰 규모로 벌어질 것이며, 업계 후발주자들이 선도업체의 입지를 흔드는 현상이 강해질 것이란 얘기다.
특히 신흥시장의 대기업들은 저비용으로 우수한 제품을 디자인하여 빠른 속도로 출시하고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합리화함으로써 전체 산업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신흥시장 기업의 대부분이 어려운 영업환경에서 단련되었기 때문에, 선진국 경쟁사들에 비해 한층 더 기민할 뿐 아니라 수 분기 동안 이익이 감소하더라도 장기적으로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만큼 방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많은 신규 업체들이 해외 시장으로 시야를 확대하고 있어 비즈니스계 최고 경영자들은 새로운 시장과 경쟁자를 찾아내기 위해 트렌드를 지속적으로 주시하면서 영업 스타일을 전면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맥킨지는 이와 관련해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다음과 같은 3가지 요건을 충족하도록 당부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형마트
1. 영업망을 최적화하라
새로운 기업의 성장은 기존 기업에게 경쟁 위협이 될 뿐 아니라, 공급업체나 서비스 제공업체에도 막대한 기회를 제공한다. B2B 업체들은 어떻게 해야 훨씬 더 다각화하고 광범위한 고객 기반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영업망을 재검토하거나 필요 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2. 고객과 경쟁사의 변화 방향을 파악하라
새롭게 각광 받는 산업은 경쟁과 수요를 낳는다. 그런 만큼 기업들은 신흥국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중심지를 지속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만 북부의 신추(新竹)와 브라질의 산타카타리나(Santa Catarina)는 잘 알려진 지명은 아니지만, 첨단 전자업체를 포함해 수십억달러 규모의 기업들이 이미 다수 진출해 있는 허브 지역이다.
3. 본사의 조직 및 기타 핵심 활동의 소재지를 재검토하라
이미 많은 기업들은 본사가 하나만 존재하는 전통적 모델로는 자신들의 니즈를 충족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캐터필러와 제너럴일렉트릭 같은 기업은 총괄센터(corporate center)를 2개 이상의 지역으로 분할하여 의사결정과 생산, 연구개발, 서비스 리더십을 공유하고 있다. 유니레버는 글로벌 상품 및 서비스 개발을 위해 싱가포르에 제2의 본사를 설립했고, 지금은 고위 경영진의 핵심 멤버들이 참여하고 있다.
허브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막대한 기회
이 같은 세계 도시의 변화는 개별 도시에 입장에선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시장 변화에 맞춰 기지를 이전하는 기업들을 얼마나 유치하느냐가 그 도시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오늘날 세계 모든 대기업의 3분의 1이 불과 20개 주요 도시에 본사를 두고 있다. 세계의 대도시 가운데 가장 선도적인 허브 도시는 600개 이상의 대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도쿄이다. 100개 이상의 대기업이 본사를 두고 있는 대도시는 도쿄를 포함해 전 세계에 10개에 불과하다.
오늘날 신흥국에서 선도적인 기업 도시들은 장래 기업 성장의 과실을 독점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2025년이면 상파울루에 본사를 둔 대기업의 수가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베이징과 이스탄불에 소재한 대기업 본사 역시 오늘날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기업 본사들은 신흥국의 여러 도시에 분산될 것으로 보인다. 280개 정도의 신흥 도시가 사상 처음으로 대기업 본사를 유치함으로써 글로벌 산업 네트워크의 새로운 허브 도시 반열에 동참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많은 대도시 관계자들이 기업 본사를 유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실제로 본사를 이전하려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수천 개의 글로벌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입지를 물색하고 있는 만큼 도시들의 입장에서는 한층 전도유망한 외국 기업의 자회사들을 유치할 기회가 생긴다.
그 가운데 중국은 분명 새로운 글로벌 기업들을 위한 가장 강력한 성장 엔진이며, 지금은 전향적으로 사고하는 도시라면 재계 리더들이 자기 도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관찰하며 좋은 평판을 구축해야 할 시기다. 거대 외국계 기업의 자회사들이 세계 각 지역의 극소수 핵심 도시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싱가포르의 경우, 경제개발청의 효과적인 노력에 힘입어 아시아 신흥시장에 진출하려는 서구의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는 데 독보적으로 앞선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다른 도시들도 싱가포르의 접근법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는 애기다.
기업이 입지 선정에서 사업 환경의 질만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프라하나 시드니, 토론토 등 삶의 질이 높은 것으로 이름 난 도시들은 성공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해외 사무소를 유치했다. 미래의 사업 확장을 위한 입지를 선정할 때 신흥국의 다양한 기업들은 해외 유학파 직원의 개인적인 인맥이나 가족기업의 다각화 필요성, 국내에서의 평판 구축 또는 프런티어 시장 진입을 향한 강한 의지 등 한층 광범위한 기준을 고려한다.
경제 성장의 축이 신흥국으로 이동하는 속도보다, 글로벌 사업 환경의 균형조정 속도가 훨씬 빠르고 극적이다. 대기업은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임금을 높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생산성 향상이나 혁신, 표준 설정, 기술 확산 등에도 기여한다. 이들이 입지를 옮긴다는 것은 자원이나 인재 확보를 위한 경쟁뿐 아니라 경제 발전이나 번영의 다음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신흥시장의 노력 등 경쟁의 본질을 크게 바꿔놓을 수도 있다. 기업이나 도시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리차드 돕스·제임스 마냐카·조나단 위첼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 이사, 제이어나 레미스 파트너, 스벤 스미트 맥킨지 암스테르담 오피스 이사, 정리 정진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