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일거수일투족에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주가를 살펴보면 그 이유가 뚜렷하다. 올 초 4만원 초반이던 호텔신라의 주가는 8월 중순 6만원 중후반대에 시세를 형성하며 7개월 새 60% 가까이 급등했다. 적극적인 면세점 사업과 중국인 관광객 유치, 동화면세점 지분 인수, 비즈니스호텔 사업 계획, 서울신라호텔 리노베이션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작년 하반기 실적 부진으로 한 차례 조정을 겪긴 했지만 그룹 내에서도 이 같은 호텔신라의 주가 상승은 도드라진 편이다. 2010년 12월 이 사장이 취임할 당시 주가가 3만200원이었으니 취임 후 2년 반 만에 두 배를 훌쩍 넘겼다. 이 사장은 지난해 3월 삼성그룹 3세 중 가장 먼저 등기이사로 등재돼 주주총회 의장이 됐다.
주주들 사이에선 “삼성 총수 일가의 경영 참여가 주목을 받은 시점에 오너가(家) 일원으로 책임을 다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동행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자 ‘리틀 이건희’로 불리기도 했다. 업계에선 “외모뿐 아니라 사업스타일도 이건희 회장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이야기한다.
종로 인근 삼합집에서 현장 직원들과 막걸리잔을 돌리거나 이태원 고깃집에서 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이 사장의 모습은 이미 알려진 그만의 경영스타일.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 씨가 한복차림으로 서울신라호텔 파크뷰에 입장하려다 제재를 당했을 때 직접 나서서 사과하고, 베이커리 ‘아띠제’를 철수하는 등 신속한 결단력이 주목받기도 했다.
하반기 실적 호전, 호텔 사업 확장이 관건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문제는 매출이다. 호텔신라는 지난해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하반기에는 경기침체와 엔화약세, 일본인 관광객 감소로 실적이 급추락 했다.
호텔신라의 지난해 4분기 매출액은 5521억원, 영업이익은 225억원이었다. 2011년 동기대비 매출은 8%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37%나 떨어졌다. 7개월간의 휴관을 거쳐 첫 리노베이션을 마친 서울신라호텔의 재개관이 승부수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호텔신라의 매출 비중을 보면 이러한 분위기가 확연해진다. 그동안 이부진 사장은 면세점 사업에는 높은 성과를 보였지만 호텔 사업은 부진했다. 지난해 호텔신라의 매출액은 2조2196억원, 영업이익은 1292억원이었다. 매출 비중은 면세부문이 85.7%, 호텔부문이 11.5%를 차지했다. 2010년에는 면세부문 83.6%, 호텔부문 13.9%, 2011년에는 면세부문 83.5%, 호텔부문 12.8%로 면세부문의 매출이 대부분이었다.
매출 감소는 올 상반기에도 이어졌다. 매출액 1조174억원, 영업이익 407억원을 기록했고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4.4%, 43.1% 떨어졌다.
이 같은 하락의 원인은 서울신라호텔의 휴관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지만 엔화약세와 면세점의 주요 고객인 일본인 관광객 감소 등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 사장에게 서울신라호텔의 재개관은 경영능력을 재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지난 1월 10일 리노베이션을 시작한 서울신라호텔은 당초 일부 층을 돌아가면서 공사를 진행하거나 일부 공간의 영업을 중단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지만 고객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7개월간 전면 휴관했다. 모든 일정은 이부진 사장이 직접 진두지휘했다.
이 기간 동안 임직원들은 서비스(고객 응대), 식음 상품, 여름 테마 등 소프트웨어를 구현하기 위해 전 세계 특급호텔로 벤치마킹을 다녀오기도 했다. 벨 데크스 직원들은 홍콩 페닌슐라 호텔의 리무진 서비스를 체험했고, 피트니스 담당자는 홍콩, 싱가포르, 마카오 등의 럭셔리 호텔에서 글로벌 수준의 서비스와 운영법을 배웠다.
마케팅팀 기획 담당자는 여름 테마인 하바나 라운지 구현을 위해 실제로 쿠바 하바나에 가서 칵테일, 음식, 음악 등 분위기를 체험하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다양한 고객군별로 차별화된 호텔 야외수영장 6곳을 벤치마킹했다. 각 분야별 셰프들도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등으로 연수를 다녀왔다는 후문이다.
호텔신라는 서울신라호텔과 함께 비즈니스호텔을 신사업으로 삼고 ‘신라스테이’란 브랜드로 건물 전체를 임차해 운영한 뒤 수익을 창출하는 마스터 리스(Master Lease) 전략을 진행 중이다. 현재 전국 6곳의 비즈니스호텔에 대한 위탁운영 계약을 맺은 상태. 서울 서초동 호텔과 역삼동 KT영동지사 부지, 서대문구 옛 화양극장 부지, 구로디지털단지 JW중외제약 부지, 마포구 도화동 한마음병원 인근 부지 등 서울 5곳과 동탄 신도시 1곳이다.
2020년까지 전국 30여개의 비즈니스호텔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서울신라호텔 인근에 5만7702㎡에 전통호텔과 면세점을 짓는 계획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이 계획은 최근 서울시로부터 전통호텔과 한양도성의 모순, 건축계획의 적정성 부족 등을 이유로 허가가 세 번이나 반려됐다.
서울신라호텔 실내수영장
럭셔리 호텔 전환이 목표, 서울신라호텔
“한국 토종브랜드로는 최초로 럭셔리 호텔 브랜드에 도전합니다. 삼성전자가 일본 유수의 전자기업을 누르고 세계 1위가 됐듯이 호텔신라도 페닌슐라, 리츠칼튼, 포시즌을 누르고 세계 시장에 진출할 계획입니다.”
지난 7월 31일 재개관 행사에 나선 최태영 총지배인의 일성이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허병훈 서울·제주신라호텔 사업부 총괄사업부장은 “2006년 진행한 로비, 레스토랑, 연회장 리뉴얼이 일류화의 시작이었다면 이번 리노베이션은 일류화의 완성”이라며 “세계 어디에도 도심에 객실과 연회, 아웃도어까지 갖춘 호텔은 드물다”고 이야기했다.
7개월간의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8월 1일 재개관한 서울신라호텔은 객실을 중심으로 이그제큐티브 라운지, 야외수영장, 피트니스 클럽 등을 새 단장했다. 비용만 835억원이 소요됐다.
리노베이션의 콘셉트는 ‘일상이 최고의 순간이 되는 곳’. 최태영 총지배인은 “비즈니스 업무, 휴식, 미식, 레저 등의 일상이 서울신라호텔과 만나면 최고의 순간으로 빛난다는 뜻”이라며 “이를 위해 고객의 감동적인 경험에 초점을 맞춘 라이프 스타일 공간인 이그제큐티브 라운지와 야외수영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구현하는 데 특히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객실은 뉴욕 포시즌스 호텔, 홍콩의 랜드마크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베이징 파크 하얏트 등을 작업한 디자이너 피터 리미디오스가 디자인했다.
그랜드 디럭스룸
한식당 라연
규모가 작았던 8평(26.45㎡) 크기의 수페리어룸을 없애고 11평 디럭스룸(36㎡)과 16평 그랜드 디럭스룸(53㎡) 사이에 13평 비즈니스 디럭스룸(43㎡)을 신설했다.
‘시대를 아우르는 모던함(Timeless Modern)’을 모토로 단순하고 모던하게 꾸몄고 여타 호텔의 일반적인 미니바 대신 요트 콘셉트로 구성한 ‘프라이빗 바’가 도입됐다. 무엇보다 최상의 수면 환경 조성을 위해 몸에 직접 닿는 침구류를 국내 최고 수준으로 구성했다.
호텔 내 최고층인 23층에 자리한 이그제큐티브 라운지(Executive Lounge)는 퍼스트 클래스급 라운지로 업그레이드했다. 펜트하우스의 거실을 모티프로 가구, 창 밖 풍경, 분위기 등 각기 다른 스타일의 거실을 한 곳에 모은 듯한 구성이다. 국내 최초로 조식, 라이트 스낵, 애프터눈 티, 해피아워 등 하루 4번 다이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새롭다. 최고 시설과 서비스를 지향한 만큼 가격은 높아졌다. 가장 저렴한 객실이 60만원, 리노베이션 전 45만원이던 것에 비해 껑충 뛰었다.
세금과 봉사료를 더하면 70만원대다. 이그제큐티브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디럭스룸은 90만원대(세금포함)다. 20평(66㎡)인 코너스위트는 140만원대, 최고가인 프레지덴셜 스위트는 1박에 1400만원이다.
프렌치 레스토랑 ‘콘티넨탈’(총 36석)과 서라벌에서 ‘라연’(羅宴·총 40석)으로 이름을 바꿔 9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 한식당은 이그제큐티브 라운지와 같은 층에 자리했다.
두 곳 모두 룸 하나에 테이블이 많지 않아 특색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가 하면 가장 힘을 준 야외수영장 ‘어번 아일랜드(Urban Island)’는 수영 외에 아웃도어 라이프 스타일 전반을 즐길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했다. 아웃도어 다이닝을 즐길 수 있도록 비스트로와 바(Bar)가 마련됐고 럭셔리 카바나를 들여왔다. 서울 특급 호텔 최초로 온수풀(물 온도 28℃)이 설치돼 사계절 내내 운영된다. 설계는 하와이 포시즌스 호텔 등을 담당한 미국의 WATG에서 맡았다. 하지만 투숙객이라도 입장료와 카바나 이용료는 별개다.
총 13동이 마련된 카바나는 크기와 장소에 따라 한 동에 30만원부터 60만원까지 유료로 운영된다. 이외에도 전면 업그레이드 된 서비스가 눈에 띈다.
첫째,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에스코트 서비스. 호텔 현관 도어부터 객실 도어까지 직원이 동행해 세심하고 신속하게 에스코트하는 서비스다.
둘째, 공항 리무진 세단 차량을 국내 최초로 ‘벤츠 S500’ 시리즈로 교체하고 럭셔리 밴 ‘벤츠 스프린터’ 차량을 추가했다. S500은 차량 가격만 1억원대 후반인 벤츠의 대표 모델. 홍콩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페닌슐라 호텔 등에서 리무진으로 사용되고 있다. 차량 가격이 2억원에 육박하는 스프린터는 내부에 냉장고와 와인셀러, TV 등을 갖추고 있다.
서울신라호텔 23층 이그제큐티브 라운지
폭우에 누수, 이게 무슨 일?
재개관 일주일이 지난 8월 6일,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간당 30㎜의 폭우가 쏟아지자 호텔신라가 포털사이트 뉴스게시판을 뒤덮었다.
‘신라호텔 빗물누수 굴욕’ ‘835억원 들였는데 비 새’ 등이 주된 내용. 이번 리노베이션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23층 이그제큐티브 라운지에 빗물이 떨어지며 직원들이 수건과 양동이로 받치는 모습이 TV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리노베이션 공사가 날림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서울신라호텔 관계자는 “빗물이 떨어진 건 맞지만 일부 보도된 것처럼 이그제큐티브 라운지의 영업이 중지된 것은 아니고 사건 발생 5시간 만에 정상영업 됐다”며 “원인을 파악해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야외수영장 어번 아일랜드
직접 체험한 서울신라호텔 객실, 디테일이 살아있네
프론트에서 체크인하자 에스코트 서비스가 진행된다. 안내 직원이 동행해 객실 문을 열고 TV 등 객실 사용에 대한 간단한 안내까지 진행한 후 퇴장한다. 숙박한 곳은 비즈니스 디럭스룸. 문을 열고 들어서면 통창을 가리고 있던 전동식 블라인드가 서서히 올라간다. 밖으로 남산이 훤히 보이는 전경이 일품이다. 아래로는 야외수영장 ‘어번 아일랜드’가 한눈에 들어온다.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인터넷을 연결한 후 도어 주변을 살펴보니 옷장 옆에 프라이빗 바가 이채롭다. 3병의 와인과 고급 위스키가 준비돼 있고 갖가지 프리미엄 제품이 채워져 있다. 침대 옆에 커다란 방처럼 자리한 욕실은 중앙의 세면대를 기준으로 왼쪽에 욕조, 오른쪽에 샤워실과 화장실로 구성됐다. 언뜻 디자인이 너무나 모던해 별다른 특색을 찾지 못하다 침대에 누우니 포근한 침구가 모든 불만을 상쇄한다. 숙면에 최적의 조건이다. 준비된 어메니티의 수준도 프리미엄급이다. 일상을 위해 사용하는 모든 것들에서 제대로 대접받고 있음이 느껴진다. 55인치와 65인치가 설치됐다는 삼성의 스마트TV도 여유롭다. 그럼에도 너무 모던한 게 흠이면 흠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