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희 회사에서는 유튜브 접속이 안 되는데요.”
모 금융회사의 교육 담당자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그 회사에서 강의하기로 했는데, 강의 시간에 보여줄 동영상들이 많아서 강의 원고를 이메일로 보내기에는 파일이 너무 컸다. 개인 노트북을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반입할 수 없다고 했다. 그 회사의 교육장에 설치된 노트북만을 쓸 수가 있다고 한다. USB에 강의파일을 담아서 갖고 가겠다고 했더니, 강의와 관련 없는 파일이 들어있으면 역시 반입할 수 없다고 한다. USB를 그 강의만을 위해서 새로 구입하든지, 원래 있던 것에서 다른 파일들을 지워야 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럴 정도의 시간과 정성이 없어서 웹하드에 동영상들을 올려놓겠으니 다운로드를 받으라 했다. 그런데 웹하드 접속도 안 된단다. 그럼 유튜브 연결해서 보여주겠다고 했더니 그 역시 접속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내가 웹하드에 파일을 올리고, 담당자가 회사 근처의 PC방에 가서 회사에서 허가를 받은 자신의 USB에 다운로드를 받는 방식으로 겨우 강의 원고를 전달할 수 있었다.
# “노트북 안의 내용을 확인한 후에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많은 파일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실 겁니까?” “네. 규정상 어쩔 수 없습니다.”
모 전자회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역시 강의를 하러 갔는데 깜빡 잊고 노트북을 신고하지 않은 채 갖고 들어갔다. 강의 장소 로비에서 담당자를 만나 인사하고는 그도 나 자신도 노트북을 등록하는 것을 잊고는 함께 출입검색대를 휙 지나서 사무실로 간 것이었다. 나올 때 X-Ray 검색대에 가방을 올려놓으면서도 노트북 생각은 전혀 못했다. 검색대의 직원이 가방 안의 노트북을 발견했다. 그것도 사전등록하지 않은 노트북을. 사정 설명을 하고, 담당자도 자신의 실수라며 선처를 부탁했으나 이미 보안본부에까지 연락이 되어 간부급 직원이 왔고 위와 같은 대화가 오갔다. 교육 담당 임원까지 사정을 설명했으나 규정 준수를 외치는 보안담당자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노트북으로 당일 할 작업이 있었으나 결국 노트북을 맡기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 오후 늦게 교육 담당자가 사무실로 노트북을 갖다 주었는데, 실제 노트북의 파일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었다.
카메라폰이 대중화되면서 언제부터인가 많은 회사들에서 카메라폰 반입을 금지했다. 모 정부기관에서는 최근까지 직원들조차도 카메라폰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 직원들이 구형 핸드폰을 구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근래는 전화기의 카메라 기능을 정지하는 시스템을 쓰는 곳도 많다. 내방객들의 경우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렌즈에 테이프를 부착하거나 특수 코팅된 필름으로 만든 봉투에 넣어 통화만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웬만한 디지털카메라 이상의 2000만 화소짜리 카메라를 장착한 스마트폰이 나오는 세상이지만, 한쪽에서는 그것을 쓰지 못하도록 만드는 시스템들이 함께 개발되고 쓰이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는 2010년에 “인류가 태초부터 2003년까지 만들었던 데이터의 양이 5엑사바이트인데 지금은 이틀마다 그 만큼의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있고 추가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했다. 곧 이틀이 하루가 될 것이다.
2011년 IDC의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 정보의 양은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단다. 그렇게 엄청난 정보가 쌓이고 정보가 유통되는 채널들이 많아지는데, 한편에서는 정보를 입수하는 채널들을 제한해 정보를 접하기가 더욱 힘들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정보 유통 채널이 많아질수록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접하게 되고 그러면서 정보가 유출될 통로도 많아지면서 위험성도 커지기 때문에 정보의 제한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4인의 정보 유출
지난 7월 30일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 미국의 기밀 자료 70만 건을 넘긴 혐의로 기소된 1987년생 브래들리 매닝에 대한 군사재판이 열렸다. 기소 건 중 가장 무거운 이적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평결이 나왔으나, 간첩죄를 비롯해 정부 재산 절도 등의 다른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 평결이 나왔다. 기소한 검찰이나 매닝의 변호인단이나 위키리크스 관련 당사자나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매닝의 행위에 대한 논란만 가중시킨 평결이었다.
매닝이 위키리크스에 제공한 자료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아파치 헬기에 탄 미군들이 마치 게임을 즐기듯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들에게 총을 난사하는 동영상이었다. 이 동영상이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지 한 달만인 2010년 5월 매닝은 체포됐다. 그때부터 매닝의 행위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미군 당국은 중죄인으로 매닝을 몰아갔고 여론도 매닝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제2의 매닝’이 여러 분야에서 줄을 이었다.
1986년생으로 14세 때 RSS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뉴스와 정보를 공유하는 레딧(Reddit), 사회 문제를 다루는 온라인 캠페인을 벌이는 ‘Demand Progress’의 창시자였던 애런 슈워츠가 지난 1월 26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유서를 남기지 않아 그를 자살로 몬 원인이 확실하게는 밝혀지지 않았다. 2011년 초 유료 학술저널 DB인 JSTOR를 MIT네트워크를 통해 해킹한 사건의 재판이 그를 지치게 하고 압박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추정한다. 애런 슈워츠는 480만 건의 학술자료를 자신의 노트북에 담아두고 있었다. 정보의 자유로운 이용, 인터넷에서의 카피레프트 활동의 일환이었다. 그의 행위에 대해서도 역시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제레미 하몬드란 1985년에 태어난 인물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 전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해 그는 ‘HackThisSite’란 도발적인 이름의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적법한 범위 내에서 윤리적 기준에 맞춰 해킹할 대상을 정하고 방법을 알려주고 훈련시키는 사이트로 컴퓨터 보안 관계자들의 교육용으로도 많이 쓰였다고 한다. 몇몇 정치적 시위 등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특기를 살려 이라크전 관련한 사이트를 해킹하기도 했던 제레미 하몬드는 2012년 국제적 사설정보업체인 ‘스트랫포(Stratfor)’가 고객들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위키리크스에 제공하며 체포된다. 인터넷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그의 석방을 호소하고 있지만 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지난 6월에는 1983년생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전 세계의 조명을 받으며 혜성처럼 나타났다. 스노든은 잘 알려진 것처럼 영국의 신문 가디언에 미국 정부가 지난 수년 동안 구축한 거대한 디지털 감시 시스템을 알리고, 그를 통해 이루어진 개인의 사생활 정보까지 포함한 빅브라더를 연상시키는 행위들을 고발했다. 스노든의 행위에 대해서는 제레미 하몬드나 애런 슈워츠와는 다른 각도에서 평가가 엇갈렸다. 국가안보, 사회안전이라는 기준이 들어간 것이다. 곧 개인의 사생활 정보까지 들여다본다는 부담은 있지만 다수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스노든의 비밀 폭로는 사회공동선을 저버린 행위라는 평가가 있다.
특히 국가가 국민을 위해 의당 해야만 될 일인데 그에 반한 스노든은 반역자이며 간첩에 진배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 에콰도르로 망명을 시도했던 스노든은 결국 1년 기한으로 러시아에 단기망명을 하게 됐다. 1년 후 아니면 그 이전에도 스노든의 신상에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분명히 예측 가능한 점은 이러한 유형의 정보 노출이 스노든이 마지막은 아니란 것이다.
1980년대 생, 디지털 시대의 히피&핵티비스트
위의 네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1983년생인 스노든부터 1987년생인 매닝까지 모두 PC가 가정과 학교의 필수품목으로 자리 잡은 1980년대에 태어났고, 디지털을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한 돈 탭스콧이 얘기한 ‘N세대’이다.
돈 탭스콧은 1997년에 나온 그의 저서 에서 새로운 세대로서 그들에 주목했고, 2009년에는 성인이 된 그들의 모습과 영향을 <디지털 네이티브-역사상 가장 똑똑한 세대가 움직이는 새로운 세상>에서 펼쳐보였다.
<디지털 네이티브>에서 돈 탭스콧은 사회정의 및 다양성의 수용에 대한 N세대, 곧 ‘넷세대’의 관심과 활동에 특히 다음과 같이 주목했다. “지금까지 유례가 없었던 최초의 글로벌 세대인 넷세대는 그들의 부모들에 비해 더 똑똑하고, 빠르고, 더 많은 다양성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사회가 직면한 정의와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일반적으로 학교나 직장, 커뮤니티에서 여러 종류의 시민 활동에 종사한다. 미국에서는 대선 때 수십만 명의 넷세대 유권자들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최초로 정치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서구의 몇몇 언론과 학자들은 이들을 1960~1970년대의 히피와 비교하기도 한다. 전쟁을 겪으며 육체적·정신적으로 궁핍하고 험난한 세월을 보냈던 이전 세대에 비해 정치적,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시기에 교육을 받고 자라난 이들이 기존 세대가 벌인 베트남 전쟁을 비롯한 사회적 불의와 부조리에 반항하며 개인의 자유를 설파하고 일부는 자신이 옹호하는 그런 가치를 위해 탈법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던 히피의 디지털 판이라는 것이다.
일부 히피들이 국가나 기존 질서에 총까지 들고 저항했던 데 비해 이들은 디지털 시대답게 총 대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 워리어가 됐다.
실제로 이들 네 명은 모두 IT전문가이면서 어떤 종류의 구속에도 반대하는 자유의지론자이다. 어릴 때부터 PC통신으로 시작해 대중화된 인터넷과 함께 국경과 인종 등의 이전 세대가 느꼈던 장벽 없이 소통의 즐거움을 누리며 자란 이들은 정보의 흐름을 막는 행위를 일종의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본다.
국가기관 뿐만 아니라 돈을 받고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까지도 불공정한 행위로 간주하고 거기에 철퇴를 내린다. 그래서 이들을 ‘해커(Hacker)’와 ‘활동가(Activist)’를 합성한 ‘핵티비스트(Hactivist)’로 부른다.
핵티비스트와 이전의 히피운동가를 구분 짓는 특징 중 하나가 디지털 시대답게 네트워크다. 애런 슈워츠나 제레미 하몬드처럼 인터넷의 귀재 소리를 들었던 인사들의 온라인상에서의 교류 범위는 이전 60년대의 카페에서의 모임이나 편지나 전화가 커버했던 영역과는 차원이 다르다. 평소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가도 사건이 터지면 순식간에 국경을 넘어서 결속된 힘을 보여주는 것도 핵티비스트의 강점이다. 동조자, 후원자들의 존재를 항상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이들에게 확신범으로서의 명분을 실어준다. 그래서 이들과 같은 핵티비스트의 출현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모 사이트의 회원들이 자신들과 반대하는 사상을 가졌다고 어느 단체 회원들의 신상을 공개한 것이 자신의 가치관을 내세우며 핵티비스트적인 행동을 했다고 할까?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신상털기 정도의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사상과 정보 소통의 자유가 아닌 그것을 억압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데서 핵티비스트 본연의 정신과는 완전히 모순된 것이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금융기관들이 자주 해킹을 당한다. 핵티비스트와 같은 명분보다는 오로지 돈을 노린 행위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세 가지 패러독스와 극복법
글 첫머리에서 직접 겪었던 두 회사 모두 해킹을 당했거나 정보를 노린 산업스파이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은 경험이 있었다. 그러기에 다른 곳보다 훨씬 철저하게 정보차단 및 보호시스템을 설치하고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두 회사 모두 같은 업종의 어느 회사보다 DB나 정보의 양에서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다. 지식경영부터 시작해 DB시스템을 구축하고,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부분에서도 앞서 간다고 했다. 그런데 시스템상의 한 단계 한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보호벽이 설치돼 있고 내부 임직원들조차 삼엄한 사전조사와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외부와의 소통은 더욱 심하게 제한된다. 그래서 임직원들 중에는 아예 정보 이용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거나 극히 제한적으로 한다. 이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IT에서 가장 앞서 가는 회사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
위에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모 사이트’를 언급했는데 왜 그들은 편향됐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보가 너무 많아서 편협한 정보만을 취하게 되는 패러독스에 빠진 것도 큰 이유라고 본다.
정보가 지나치게 많이 쏟아지다 보면 어떤 정보를 취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경우 자신들이 원하는,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선택해서 본다. 특정한 사상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더욱 외골수적으로 흐를 수 있다. 정보 소통을 쉽게 해주는 네트워크가 그런 경향을 강화시킨다.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마음에 맞는 편협된 정보만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게 된다.
지난 대선 후 딴지일보에서 ‘뱅뱅이론’이란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용어를 기사에서 소개했다. ‘주위에서 뱅뱅 청바지를 입은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 뱅뱅은 한국 내 청바지의 압도적인 1위이다. 뱅뱅이 아닌 다른 청바지를 입은 무리와 함께 놀면서 정말 뱅뱅이라는 청바지를 입는 절대다수의 존재를 몰랐다’는 발견에서 그렇게 명명됐다.
정치적 상황과 맞춰 의미를 읽으면 자신만의 SNS 네트워크, 조금 넓게 보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같은 성향의 사람들과만 부대끼며 맴돌면서 대세를 착각했다는 얘기다. 정보가 너무 많고 소통이 잘 되어 오히려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게 되는 패러독스이다.
‘채선당 사건’을 기억하시는가? 임산부 고객이 채선당 식당 종업원에게 폭행당했다며 모 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올려 식당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났다가 결국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판명이 된 사건이었다.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판명되기까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으나 채선당의 이미지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정보 소통이 빠르게 되는 것과 비례해 관심이 지속되는 시간도 짧아졌다. 잘못된 사실이 퍼지더라도 그것을 바로 잡을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고 까지는 못하겠지만 고도 정보화 시대에 틀린 정보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도 패러독스이다.
정보의 양, 유통 채널, 소통의 속도와 원활함에서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수준에 이른 정보시대에 겪는 패러독스 세 가지를 얘기했다. 첫째, 채널은 늘어나는데 접근은 제한되고 접하는 정보의 양도 줄어든다. 둘째, 정보의 양은 많은데 편향된 정보만을 접하게 된다. 셋째, 잘못된 정보의 소통이 늘어난다.
첫째의 경우 ‘열 사람이 도둑 하나 막지 못한다’는 말처럼 아무리 보호 장치를 하더라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금전적 이득만을 노린 해커들도 문제지만 핵티비스트의 경우에는 보안문제와 함께 이미지까지 손상을 입게 된다. 그럴 빌미를 주지 않는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노력을 하는 것이 최소한 차선은 된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조사 결과만을 취하는 기업들이 이런 패러독스에 빠진다. 나의 강점을 강화시키는 게 브랜드 전략의 기본이지만 그를 위해서도 고객이 아닌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마지막 잘못된 정보의 소통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불이익이 될 수 있는 이야기가 SNS 등에 나왔을 때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바로 반응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테면 회사도 그 얘기를 접했고, 사실 여부를 최대한 빨리 알아보겠다는 정도로라도 공표를 해야 한다. 마케팅에 100점은 없다. 100점을 꼭 해야 되겠다고 하면 더욱 깊은 패러독스의 늪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