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를 연구하고, 숲을 가꾸고, 집도 짓는다?
최근 친환경적인 생활공간을 연구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특히 건설업체들의 경우 친환경 거주 공간을 공급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앞서 밝힌 친환경 생활공간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는 자동차 기업이 있다. 바로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인 일본의 ‘도요타’다.
도요타는 현재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 인근의 여러 공장에서 잔디를 비롯해 바이오디젤의 연료가 되는 풀, 건물의 외벽에 설치하는 녹색식물 등을 연구하고 있다. 게다가 숲을 가꾸고, 스마트그리드 기술이 구현된 주택단지 보급 사업도 추진 중이다.
자동차와 큰 관련이 없는 이 같은 사업에 도요타가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키리모도 케이스케 도요타 글로벌커뮤니케이션실장은 “숲과 식물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고갈된 화석연료와 지구온난화에 대한 문제해결을 위한 것”이라며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모두 자동차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업들”이라고 말했다.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에서 추진되고 있는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의 독특하고 다양한 친환경 프로젝트를 직접 살펴봤다.
숲과 풀을 연구하는 자동차 회사
태평양을 마주보고 있는 이세만 인근 나고야의 배후에 자리 잡고 있는 아이치현 도요타시(市)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자동차의 공장이 집결된 곳이다. 원래 명칭은 고로모시였으나, 도요타자동차의 이름을 따 도요타시로 개칭했다.
이곳에는 크라운 마크X 에스티나를 생산하는 모도마치공장을 비롯해, 코롤라 아이큐 아리스를 만드는 다카오카공장, 프리우스 캠리 프레미오의 생산지인 츠츠미공장이 위치해 있다. 도시 전체가 도요타의 생산거점인 셈이다.
공장들이 집결한 산업단지를 지나 외곽으로 나가면 푸르른 숲이 장관인 곳이 나온다. 바로 ‘도요타의 숲’이다. 가이드를 맡은 하부키 씨는 “1997년부터 조성을 시작해 약 45만㎡ 규모의 숲을 관리해 왔다”며 “개장 이후 벌써 5만명이 넘는 이들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이곳에 숲을 조성하면서 따로 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한다. 자연 스스로가 울창한 산림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람의 손을 빌어 조성된 곳은 희귀동물의 서식지 정도일 뿐이다. 또한 숲을 관리하는 사무소와 방문객들에게 숲을 설명해주는 ‘숲해설사’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도요타는 45㎡나 되는 넓은 부지에 공장이 아닌 숲을 왜 조성했을까. 코니시 도요타 글로벌마케팅팀 상무는 “길게 내다보면 숲 조성 사업은 우리는 물론, 후손들에게 이득이 된다”면서 “대기오염을 줄이고 벌채를 통한 경제적 효과도 약간 있다”고 말했다.
실제 도요타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산림 조성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상태다. 중국 허베이성에 2001년부터 10년 동안 모두 3000만㎡의 녹지를 조성 중이며, 필리핀 루손섬에 2007년부터 2400만㎡의 산림을 조성 중이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1월 강남구 도곡근린공원에 나무를 심는 ‘도요타 하이브리드 숲’ 행사를 갖기도 했다.
도요타의 숲을 본 뒤 취재진은 두 번째 행선지인 바이오·녹화연구소로 향했다. 도요타는 이 연구소를 신사업 개발부 휘하에 두고 있다. 바이오·녹화연구소에서 나온 결과를 새로운 사업을 위한 것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1998년 설립된 이 연구소는 바이오 및 농업 연구개발을 전담하는 곳으로 현재 주차장에 사용되는 잔디와 건물 외벽에 설치하는 블록식물, 그리고 바이오디젤 연료까지 연구하고 있다.
코니시 상무는 “잔디의 경우 차량의 주차장에 사용할 수 있는 품종을 따로 개발했고, 블록식물은 건물의 온도를 내려주는 에어컨과 같은 효과가 있어 개발했다”면서 “해당 제품들은 이미 일본 내에서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첫째 날 마지막 행선지는 도요타시에 있는 쿠라카이게 기념관이었다. 이곳은 도요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도요타박물관으로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명성을 날리기 전 일본 최고의 방직회사였던 도요타의 과거를 볼 수 있다.
츠츠미 공장 내부의 연못. 이 곳의 물은 공장의 폐수를 정화해 사용한다.
전력을 만들어내는 공장과 주택
둘째 날에는 도요타의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오전에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프리우스를 생산하는 츠츠미공장이었다. 이곳에서는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 판매되는 친환경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프리우스’를 생산하고 있다. 높은 담벼락을 에워싸고 있는 넝쿨로 인해 내부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공장을 방문한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공장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곧바로 제작공정을 살펴봤다. 프레스, 용접, 도장 순이었다. 1500여대의 로봇 팔이 불꽃을 튀기며 순식간에 4000곳이 넘는 곳을 용접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놀라움이었다. 대부분 공정이 자동화돼 로봇 팔이 모든 일을 대신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완성된 차량을 확인하는 것과 제품의 품질을 체크하는 것은 직원들의 몫이었다. 숙련된 장인들이 잠깐의 살핌으로 제품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곳에서는 공장 외부를 덮고 있는 태양광 패널이 눈에 띄었다. 태양광 발전을 통해 2000kW의 전력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내 공장 내 필요전력의 40%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후 점심을 먹고 이동한 곳은 도요타자동차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실증주택단지였다. 이곳은 이른바 스마트그리드 단지다.
이곳의 주택들은 태양광 발전을 통해 전기를 직접 생산해 가정에서 사용하고 남는 전력은 인근의 오피스와 공장 등으로 송전해주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외부에 자리하고 있는 플러그인 장비였다. 코니시 상무는 “태양광 발전을 통해 전기를 만들어 빌라 외부의 플러그인 장비를 통해 하이브리드 차를 충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가 주택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문이 들었다. 이에 대해 나카이 히사시 도요타 홍보기획실 매니저는 “당초 계획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설을 확충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결국 충전시설을 만들려면 집을 짓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양광 패널을 통해 자가 발전을 하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도 충전할 수 있는 주택을 짓게 됐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현재 아이치현 도요타시에서만 66개 주택을 분양했으며 앞으로 분양사업 규모를 늘려갈 계획이다. 도요타의 스마트그리드 실증주택단지는 방 3개에 2층 높이, 그리고 정원을 갖춘 전형적인 빌라로 가격은 약 4500만엔(5억원대)에 달한다. 높은 가격이지만 전력과 자동차 연료를 줄일 수 있다.
도요타 바이오 녹화 연구소
 도요타 스마트 홈
자연의 품에서 친환경을 배운다
취재진의 마지막 일정인 셋째 날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시라카와고로 향했다. 이곳은 ‘합장촌’으로 유명한 곳으로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 중의 하나다. 도요타는 이곳에 172ha(172만㎡)의 엄청난 규모의 자연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도요타가 도지를 소유하고 재원을 투자했지만, 정작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 인근 시라카와고 주민들이 구성한 운영위에서 자연학교를 경영하고 있다. 도요타는 이곳 4.5ha에만 학교와 숙박시설을 지어 운영 중이며, 그 외에 부지는 도요타의 숲처럼 산림을 조성했다. 이곳은 사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지만 수력발전소용 댐도 자리하고 있다. 과거 댐 건설과정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합장촌과 인근의 작은 마을들이 상당수 수몰된 것으로 전해진다. 도요타 관계자는 “수력발전은 자연을 활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으로 현재 일본에는 이런 수력발전소 댐이 상당히 많이 있다”고 말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내 모든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을 중단한 상황에서 수력발전소 댐이 전기공급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방직기계 제작회사로 출발해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로 올라선 도요타는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잔디재배와 녹화사업, 스마트그리드 등 다양한 신사업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이 모든 신사업의 출발점은 친환경과 에너지 절감에서 시작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가 꿈꾸는 내일은 세계 최고의 에너지 기업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