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는 첫 번째 태양을 바라보며 결심했다. ‘올해는 꼭 담배와 이별하리라!’ 매년 했던 다짐이지만 이번만은 꼭 금연에 성공하리라. ‘오토-플러스원 시스템’으로 늘어난 나이보다 더 무거워진 몸과 카키색으로 변한 얼굴빛의 원흉이 담배라는 강한 확신이 든다. 건물 전체가 금연구역이 된 직장에서는 밖에서 피우고 들어온 후 가시지 않은 담배 냄새 때문인지 주위 시선이 따갑다. 금연을 장려하는 회사분위기는 담배를 피울 때마다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이 뿐인가. 언제부터인지 음식점, 호프집, 커피숍 등 가는 곳마다 금연구역으로 바뀌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기 힘들어졌다. 그나마 마련돼 있는 흡연실에 들어설라치면 여러 담배향이 섞인 역겨운 공기에 헛구역질부터 나기 시작한다.
담배와의 전쟁 이미 시작됐다
많은 흡연가들의 신년 계획에 빠지지 않는 사항 중 하나가 금연이다. 작심삼일은커녕 세 시간도 못가 원점으로 돌아갈 다짐일지언정 담배와의 질긴 애증을 끝내고자 하는 흡연가들의 고뇌가 늘어가는 연초다. 굳은 다짐이 현실이 되면 얼마나 좋으려만 대다수 금연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개인의 의지로 좀처럼 끊기 힘든 담배인지라 정부당국도 오랫동안 팔을 걷어붙이고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국내 흡연율은 2008년 이후 27%대를 유지하고 있어 OECD 국가들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여성 흡연율은 2010년 6.3%에서 2011년 6.8%로 오히려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0년 기준 국내 흡연 인구는 1020만명에 이른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땅덩어리에 5명 중 1명이 흡연자이다 보니 누구도 담배연기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는 흡연율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본격적인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해 12월 8일 보건복지부는 새로운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증진법’의 시행을 알렸다. 개정법의 시행으로 앞으로 조금 넓다 싶은 실내공간에서는 거의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됐다.
새로운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150㎡(약 45평) 이상 규모의 커피전문점, 호프집 등 일반음식점 7만6000여 곳에서 흡연구역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흡연이 불가능해졌다. 흡연구역은 담배연기가 실내로 유입되지 않도록 실내와 완전히 차단돼야 하며, 환기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2014년까지만 운영되고 후에는 실내흡연이 전면 금지된다. 2015년부터는 100~150㎡인 영업장 7만7000여 곳까지 금연구역이 확대돼 거의 모든 실내영업장이 금연구역으로 바뀐다. 그나마 당구장이 제외됐다는 점이 흡연자들에게 위안거리라 할 수 있겠다.
이를 위반할 경우 흡연자는 1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 자체적으로 실외 금연구역이 생겨나기도 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이나 강남대로 일부는 이미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마찬가지로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실내외를 불문하고 흡연자들의 설 곳은 줄어들고 있다.
‘죽음의 시계’와 ‘담배 다이어트’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특히 임산부와 청소년 건강에 해롭습니다.’
이 찝찝하고 식상하기까지 한 사실을 모르고 담배를 태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년 시절부터 ‘백해무익’이라는 사자성어와 함께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점에 대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 유해성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4000여종이 넘는 담배 속 독성 화학물질의 효과는 뒤로하고 단순한 숫자만으로 실상을 들여다보자.
지난 11월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담배가 인류에 미치는 해악에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국제협약인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이 열렸다. 대한민국은 FCTC 가입 7년 만에 2년마다 열리는 회의의 당사국이 됐다. 총회가 열렸던 장소 한켠에는 ‘죽음의 시계(Death Clock)’가 전시됐다. 6200만을 넘어선 숫자는 거의 매초 올라가고 있었다. 이 시계는 1999년 FCTC 출범 이후 담배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수를 기록하고 있다.
WHO(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6.5초마다 한 명이 담배로 인해 목숨을 잃고 모든 암의 3분의 1은 흡연으로 인해 발생한다.
담배의 심각한 유해성을 절감한 한 의과대학 교수는 흡연을 ‘질병’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서일 연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한 언론사 기고를 통해 “단일 질병으로 인류의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흡연 뿐”이라며 “아이러니하게 이 질병의 예방 및 치료법은 간단하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된다”라고 밝혔다.
흡연의 유해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인지 최근 몇몇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는 담배(전자담배 포함)를 피워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철없는 경험담들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글을 올린 많은 수는 자신을 10대 여성이라고 밝혔다. 16세 여성이라 밝힌 한 블로거는 “90kg까지 올랐던 체중이 하루 한 갑가량의 흡연을 통해 72kg까지 빠졌다”며 “흡연은 식욕을 억제시키고, 주전부리를 피하게 해주며, 몸속 칼로리 소비를 활성화시켜 발열작용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일으켜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예상하듯 전문가들은 담배 다이어트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은 물론 생명을 단축시킬 뿐이라고 경고한다.
‘먹튀’ 외국계 담배사에 눈총
흡연가들과 담배사업자들에게 사실 한국시장은 천국에 가까웠다. 담뱃값이 고가로 정착된 유럽이나 담뱃값 디자인을 민무늬로 통일시킨 호주 등과 비교할 때 한국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편이기 때문이다. 공략이 쉬운 한국 흡연자들을 통해 외국계 담배사들은 막대한 이윤을 챙겨왔다. 2000년대 초반 10% 안팎에 머물렀던 외국계 담배사들의 점유율은 2010년 무려 42%까지 치솟았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외산담배의 점유율은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 외국계 담배사들은 크게 말보로, 필립모리스 등을 생산하는 필립모리스코리아가 전체 시장의 20%대 초반의 점유율로 선두를 차지하고 있고, 던힐 등을 생산하는 BAT코리아와 마일드세븐 등을 생산하는 JTI코리아가 뒤를 잇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필립모리스코리아는 2009년부터 매해 10% 넘는 매출성장세를 보이며 2011년에는 579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영업이익 역시 947억원 2010년 1332억원 2011년 1553억원의 극명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국내에서 거둔 이익은 고스란히 배당을 통해 국외로 유출됐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필립모리스코리아는 순이익의 95%가 넘는 총 2196억원을 배당했다. 반면 기부금액은 초라한 수준이다. 필립모리스코리아는 2008년 5200만원, 2009년 8840만원이라는 배당금의 1%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기부금으로 책정했고 2010년의 기부금은 제로(0원)였다. 같은 기간 매년 접대비에 4억원 이상을 지출해 온 것이 드러나며 필립모리스코리아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대해 필립모리스코리아 관계자는 “배당은 본사에서 결정하는 사항인지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기부금에 관련해서는 공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본사에서 따로 비용을 받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이에 본사에서 집행한 기부금 규모에 대해 되묻자 “대외비라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다른 외국계 회사들의 기부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BAT코리아는 2008~2010년 3년 동안 587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지만 기부금은 총 3억1000만원에 불과했다. JTI코리아는 2211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기부금은 1억4000만원에 불과했다. 국내 담배회사인 KT&G가 매년 수백억원을 내놓으며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BAT코리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나름대로 사회공헌 활동이나 기부활동을 하고 있지만 미비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고, JTI코리아 측은 “회의 중”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국민건강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죄악 산업’으로 분류되는 담배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의 대부분을 챙긴 외국계 담배회사들의 업계의 비판은 거세다. 한 유통업계 전문가는 “먹튀를 일삼는 외국기업의 행태를 담배회사들 역시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라고 비판했고 또 다른 전문가는 “담배로 벌어들인 순이익은 건전하다고 볼 수 없다”며 “일정부분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사업이나 사회공헌을 위해 내놓는 것이 도의적으로 옳다”고 주장했다.
국내 농가 무시하는 외국계 담배사들
최근 지방에는 외국계 담배회사들의 설비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비용절감 효과와 생산량 확대에 나선 것이다. 필립모리스코리아는 지난 10월 경북 양산에 신공장 준공식을 가졌다. 1900억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통해 기존 생산량의 2배가량을 늘렸다. 2002년 자체공장을 설립한 필립모리스코리아는 이번 신공장으로 통해 포장공장설비를 확장하는 한편 원료가공시설도 갖췄다.
BAT코리아 역시 지난해 1000억원을 들여 국내 공장의 포장설비를 증설했다. JTI코리아의 경우 최근 신탄진 공장의 생산설비를 증설하고 생산규모의 확대에 나섰다. 2004년부터 국내생산을 하고 있는 JTI코리아는 일본직수입 방식에서 국내 현지 생산시스템으로 변경한 후 국내 담배시장 점유율을 7%까지 끌어올렸다.
국내 설비투자를 통해 점유율 확대에 나선 외국계 담배회사들은 정작 국내 담배 농가를 외면하고 있다. 현재 외국계 3사는 국산 잎담배를 구입하지 않고 전량 수입하고 있다. 이유는 “국내산 잎담배가 수입산보다 2배가량 비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반면 KT&G는 지속적으로 국산 잎담배를 구매하고 있다. 특히 KT&G는 2002년 민영화된 이후 국산 잎담배 구매 및 농민 지원에 관한 의무가 완전히 사라졌지만 지속적으로 국산 농가 지원차원에서 잎담배를 구매하며 외국계 3사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외국계 담배사에 무조건 비싼 국산 잎담배를 구매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BAT코리아의 경우 공장건립 당시 국내산 잎담배를 사용하겠다는 공약을 통해 현지 주민들을 설득했다는 점에서 도의적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2001년 BAT코리아의 존 테일러 사장은 기자회견장에서 “BAT코리아가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담배 제조에 필요한 원부자재를 최대한 한국 내에서 조달할 방침”이라며 “특히 한국 잎담배 농가로부터 원료를 사들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공언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현재까지 BAT코리아는 국산 잎담배를 구입하지 않고 있다. 실상 BAT코리아가 사천에 공장을 설립하려고 한 이유는 2001년부터 완제품 담배에 부과되는 40%의 관세를 피하려는 목적이 컸다. 결과적으로 2002년 공장은 건립됐고 생산되는 제품은 ‘Made In Korea’의 옷을 입고 관세를 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BAT코리아 관계자는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고 확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담뱃값 또 인상 불가피?
이런저런 금연정책을 펼쳐온 정부당국이지만 유난히 담뱃값만큼은 오랫동안 손대지 않았다. 담뱃값은 2004년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인상된 이후 공식적으로 인상이 논의된 적이 없었다. 이유는 기획재정부는 물가 상승의 우려로 담뱃값 인상에 번번이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해 왔으며 1000만명이 넘는 흡연자의 매서운 눈초리와 표심은 정치인들의 결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담배 농가에 대한 지원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하나의 이유였다.
FCTC 제5차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마거릿 챈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한국의 낮은 담뱃값이 높은 흡연율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챈 사무총장은 이날 “호주의 담배가격은 1갑당 17달러, 캐나다는 10달러인 반면 한국은 2달러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한국은 담배 규제에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녀는 “담뱃값 인상의 한 방법은 세금 인상이 될 수 있으며 한국은 인상 여지가 매우 크다”고 평가했다.
담배 농가의 피해대책에 대해서도 챈 사무총장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담배 대신 대나무 등 대체 작물을 길러 경작자가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면서 우간다, 멕시코 등을 모범사례로 꼽았다.
보건사회연구원 역시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낮출 것이라 전망했다. 보사연은 2011년 담배안전관리 및 흡연예방 정책연구를 통해 담뱃값을 1000원 인상할 경우 2020년 성인 남성 흡연율이 2.1% 더 떨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또한 금연구역 확대 등과 함께 담뱃값이 4500원이 되면 2020년 성인 남성 흡연율이 29%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애연가들의 원성을 살지언정 담뱃값 인상은 흡연율 감소를 위해 불가피해 보인다. 담뱃값 인상을 반대하는 측은 물가상승과 서민경제 위축, 세수감소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 등은 담배 관련 세금의 확대가 소비자 물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연구결과를 이미 발표했다.
세수감소 우려에 대해서도 오히려 담뱃값 상승은 국가재정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김필헌 한국지방세연구원은 “그동안 물가 변동이 담배소비세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흡연행위에 실질적으로 감세가 이뤄졌고 지방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만에 하나 세수가 감소한다 하더라도 흡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2011년 국내 건강보험 진료비 통계를 살펴보면 담배로 인한 질환 진료비는 1조5633억원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담뱃값 인상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청소년 흡연율 감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성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낮은 청소년들의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좋은 정책적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혹여 담뱃값이 올라 주머니 사정이 힘들어 질 흡연자들의 입장에서도 인상된 담뱃값을 지불하는 편이 자식의 책가방에서 담배를 발견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