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조선이나 해양장비, 통신 같은 특정 산업에서 한 지역에 모여 큰 성과를 이뤘지만 앞으로는 서비스 중심의 클러스터(산업집적지)로 갈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 스콧 스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
“한국이 앞으로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무게중심이 전환돼야 한다.”
- 앤디 닐리 영국 케임브리지대 서비스연합회 소장
제조업의 의존해 고도성장을 해온 국내 산업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국내외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통해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 현재의 제조업에 편중된 산업구조를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아시아 국가들의 제조과잉을 메워주던 선진국의 소비가 줄어들어 국내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경제운용이 한계에 봉착해 서비스산업 육성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국내 서비스산업 수준은 비극적이다.
“우리 경제와 관련해 밖에 내놓기 창피한 통계는 모조리 서비스 분야와 관련돼 있다”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일갈은 결코 과장되지 않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제조업 1인당 노동생산성은 8491만원인데 비해 서비스업 생산성은 절반에 못 미치는 3879만원에 그쳤다. OECD회원국 중에서도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럼에도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은 편이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에서 서비스업의 비중은 59%, 고용에서는 69.4%나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서비스산업은 우리 경제를 지탱해 주는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산업 수준이 낙후된 이유는 무엇인가.
차별·규제·서비스산업 발전 막아
그동안 서비스업은 제조업에 비해 많은 차별을 견디어야만 했다. 세제, 인프라 등의 정부 지원은 성장을 이끌어 온 제조업체에 집중된 것이 사실이다. 작년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재정 지원의 절반 이상인 53.8%는 제조업이 차지했다. 서비스업에 대한 지원은 10.8%에 그쳤다. 정부의 금융·병역특례 지원 등에서 서비스업은 번번이 외면 받아왔다.
이러한 홀대를 감내하기만 하던 서비스산업 종사자들도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9월 금융 의료 교육 정보기술(IT) 디자인 관광 등 서비스산업 관련 32개 단체가 모여 서비스산업총연합회를 출범시켰다. 이렇게 탄생한 서비스산업총연합회는 가장 먼저 18대 대선 후보들에 서비스산업 육성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서비스업에 대한 차별을 철폐해달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11월 6일 박병원 서비스산업총연합회 회장(전국은행연합회 회장)과 주요 회원단체장은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서비스산업 발전 선언문’을 발표했다. 협회는 선언문을 통해 그동안 제조업 위주의 ‘불균형 성장전략’에 따라 세제·재정·금융·인프라 등 모든 영역에서 역차별을 받아온 서비스업을 제조업과 동등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특히 “서비스산업이 산업의 큰 축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획기적 발전을 위한 추진 체계를 정비, 강화하는 기본법 제정을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다”며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켜 조속히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정부가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해 제출한 법안으로 18대 국회에서 폐기됐고 19대 국회에서도 논의가 정지된 상태다.
제조업과의 차별 외에 과도한 규제 역시 서비스업 성장을 막는 장애물로 자리하고 있다. 정치권의 반대와 불이익을 우려한 이익단체들의 반대로 번번이 발목을 잡힌 서비스 규제완화는 산업군의 성장을 저해하는 주범이었다. 세계시장에서 속속 융합산업이 출현하는데 비해 개별산업 중심의 칸막이형 법과 제도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시각에 대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월 22일 열린 ‘2012 산업혁신 서비스산업 선진화 국제포럼’에서 “서비스산업의 진입규제를 완화해 국제 경쟁력을 높이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약속했다.
클러스터 도입으로 선진화 노려야
‘2012 산업혁신 서비스 선진화 국제포럼’에 참석한 혁신 클러스터 전문가로 명성이 높은 스콧 스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는 “한국의 조선·통신 기업들은 제조업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탈바꿈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덧붙여 그는 “한국이 다음 단계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가 정신 육성으로 정부주도의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의 많은 실험이 허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체들의 서비스산업으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처럼 남들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혁신가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혁신적인 창업가가 탄생하기 힘든가’라는 질문에 사회적 분위기를 날카롭게 꼬집기도 했다. “일단 (대한민국은) 창업에 따른 위험 부담을 분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힘든 상황이다. 창업하려는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해 창업가들을 지원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투자하는 문화가 아니라 사람을 기반으로 투자하는 문화로 바뀌는 것도 필요하다. 사람을 보고 투자해야 실패해도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이 창출될 수 있다.”
그는 서비스 산업 구조전환을 위해서 서비스 중심 클러스터(산업집적지) 육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보기술(IT) 클러스터든 통신장비 클러스터든 서비스 중심의 클러스터로 바뀔 수 있다. 반도체 회사라면 반도체 생산을 기반으로 해서 소프트웨어 제공, 분석 및 물류 서비스 업체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한 스턴 교수는 IT기기를 생산하던 IBM이 서비스 회사로 변신한 사례를 좋은 예로 들었다.
단 그는 “많은 나라가 외국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는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비교우위 경쟁역량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고유한 성장전략을 바탕으로 새롭게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고 이를 클러스터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스턴 교수는 서비스업을 바라보는 국내의 사회적 시각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기업가가 된다고 하면 축하해주는데 한국에서는 서울대생이 졸업해 기업가가 된다고 하면 가족이나 주변에서 반대한다고 들었다. 사회적인 시각과 분위기가 달라져야 잡스 같은 기업가가 탄생할 수 있다.”
함께 포럼에 참석한 앤디 닐리 영국 케임브리지대 서비스연합회 소장은 국내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인적인프라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앞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무게중심이 전환돼야 한다”며 “기술과 자본이 중심인 제조업에 비해 서비스 산업은 인적 자원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와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는 것이 향후 한국 산업 체질개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한 닐슨 소장은 “긴 호흡은 필수다.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해서는 성공적인 클러스터를 구축하기 어렵다. 예컨대 노키아 성장 배경에는 핀란드 클러스터 정책이 있었다. 100% 투자해서 80%는 실패하더라도 이를 감수하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시장화할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이 있었다”며 지속적인 도전이 가능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