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터키 FTA가 3년 만에 타결됐다. 이번 FTA에 누구보다 감개무량해 할 사람들은 아마도 현대차 터키공장 건설 담당자들이 아닐까 한다.
현대차는 지난 1995년 터키 공장 건설에 착수해 1997년부터 현지생산을 시작했다. 터키공장을 짓기 전 현대차는 고작 3000여 대의 차량을 현지에 팔았을 뿐이다. 그런 현대차가 현지공장을 건설한 것은 유럽연합(EU)과 터키가 관세동맹을 맺고, 이 외 지역에서 들어오는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7.7%에 불과했던 관세가 33%로 치솟는 것이었다. 게다가 유럽업체들이 판매가 인하에 나서서 현대차의 매출은 급감했다. 이러다간 서유럽 시장 개척은 고사하고 가까스로 개척한 터키시장마저 어려워질 상황이었다. 그래서 현대차는 터키공장을 세웠고 덕분에 지금 현지는 물론이고 인접국에까지 차량을 팔고 있다.
그런 한국이 터키는 물론이고 EU와도 FTA가 체결됐으니 이제는 국내에서 생산한 완성차는 물론이고 부품까지 마음대로 내다팔 수 있게 됐다.
이런 사연 못지않게 터키는 7000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시장과 유럽과 중동을 잇는 핵심 관문이란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터키는 고대부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중심에서 모든 경제적 통로 이상의 역할을 했는데 최근에는 신흥 시장으로서의 중요성이 더해져 각국이 경쟁적으로 현지공장 구축에 나서는 나라이기도 하다. 더욱이 오는 2015년 EU에 가입하면서 가장 규모가 큰 유럽 자동차 시장 공략을 위한 중요한 거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분명히 유럽은 미국 이상 가는 중요한 시장이다. 현재 세계 3대 자동차 시장은 유럽, 중국, 미국이다. 이 축은 중장기적으로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 다양한 시장이 창출되면서 조금씩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적절한 지역에 생산거점을 갖추는 일은 자동차 업계에선 핵심과제가 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최근 미국 조지아 주에 기아차 공장을 준공해 앨라배마 주의 현대차 공장과 함께 미국 공략 거점을 완성시켰다.
유럽 공략 거점으로 체코의 현대차 공장과 슬로바키아의 기아차 공장을 쌍두마차로 둔 것과 마찬가지다. 현대차는 올 하반기 중국 북경 제3공장과 남미의 브라질 공장을 준공해 그동안 소외됐던 세계 핵심 지역 모두에 거점 공장을 두게 된다.
한-터키 FTA 한국 자동차산업의 새 길 연다
그러나 차세대 시장을 고려한 지역을 꼽으라면 중동과 유럽 및 아프리카를 모두 거점으로 할 수 있는 지중해 지역 터키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물론 현대차는 터키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초기부터 공장을 건설해 자리를 잡아 매우 다행이다. 특히 현대차는 2009년 터키 시장에서 6만여 대를 판매해 해외 단일 메이커로 최고 수준인 16%를 넘는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다만 최근 중국이나 대만의 자동차 부품 업체나 완성차 업체가 가격을 무기로 현대차의 입지를 흔들기 시작해 앞으로 더욱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터키는 최근 섬유산업에서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가전 등을 경제 기틀의 기반으로 삼아 성장을 추구하고 있기에 내수 시장이나 근린 지역 수출 측면에서도 모두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점에서 한-터키 FTA의 타결은 한국 업체가 경쟁국 업체에 비해 훨씬 유리한 입장이다. 또한 이번 FTA 체결로 철강, 섬유, 석유화학제품 등의 고지 선점은 물론이고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의 수출이 더욱 확고해졌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터키 시장에선 1600cc 미만의 소형차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번 타결로 10%에 이르는 관세가 없어지면서 소형차와 자동차 부품의 직수출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몇 가지 측면에서 고민할 사항이 있다. 우선 우리의 입지 구축이다. 현재 터키에서는 더욱 늘어날 완성차 수요와 수출을 위해 자동차 부품 조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곳엔 최고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현대차를 비롯해 도요타, 포드, 르노 등 글로벌 기업 14개사가 16개 공장에서 완성차를 만들고 있어 부품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최근 지진 등 몇 가지 요소로 인해 종종 어려움을 겪기는 하지만 터키 정부의 소비세 인하 등의 다양한 지원으로 완성차와 자동차 부품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 이에 따른 우리 부품의 수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으나, 원화가치 상승과 중국 등의 도전으로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우리보다 20~30%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틈새를 파고들고 있어 그 효과는 남다를 정도로 커지고 있다. 자동차 부품의 질적 수준은 우리가 인정받고 있으나 중요한 요소는 가격 경쟁력이다. 이것을 얼마나 높이느냐가 관건인 만큼 내부 낭비요소를 없애고 질과 양을 모두 만족시키는 글로벌 소싱을 해야 한다. 다행히 이번 FTA 타결로 가격 경쟁력을 어느 정도 확보하게 된 만큼 가격과 품질의 양면을 얼마나 잘 조화시키는가가 관건이다.
둘째로 완성차에 납품하는 OEM 부품과 서비스 부품의 양면적 특성으로 분류되는 터키 시장을 철저히 분석해 두 부류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현지의 문화적 특성을 철저히 분석하고 부품에 따른 가격과 품질의 수준을 부품별로 분석해 공급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필요하면 서비스 분야의 가격 경쟁력이 높은 세컨드 부품 등의 공급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터키는 아직 금융 안정성이 약해 현지에 맞는 통상적 외상거래 문화 등을 익힐 필요가 있고, 수시로 바뀌는 제도와 정책을 감안해 현지 업체와의 연계나 실시간 정보 획득도 해야 한다.
셋째로 점차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산 부품의 가능성도 분석해야 한다. 특히 중국 체리자동차 등이 터키에 공장을 세워 더욱 우리를 옥죄고 있는 형국이라 상대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요구된다. 가격을 내세우는 중국에 대해 상대적 우위가 무엇인지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완성차에 공급하는 OEM 부품의 경우 질적 수준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최적의 모델을 제시하고, 적극적이고 신뢰를 높을 수 있는 현지 마케팅 전략을 동시에 구사할 필요가 있다.
넷째로 터키 시장에선 소형차의 강점이 더욱 강화될 것이고 차후에는 친환경성을 강조한 차량으로 전개될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경소형차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고 상대방보다 강점을 갖고 있는 만큼 이 점을 잘 부각시켜야 한다. 현지인 입맛에 맞는 자동차 부품 개발과 최적의 마케팅 전략이 필요한 것도 그래서다.
마지막으로 터키는 우리를 혈맹의 형제국으로 인식하고 있다. 터키는 문화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사회기여 등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나라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윤을 추구하지만 현지에 맞는 적극적인 공헌도 중요하다.
터키 자동차 시장의 가능성은 매우 크다. 특히 잠재력이 큰 지역을 공략할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할 지역이기에 중요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우리는 완성차 수출에 비해 아직 부품 수출 비율은 낮은 편이다. 현재 터키 시장은 수요가 많으나 공급은 부족한 형국이라 가능성은 더욱 크다. 역량을 조금 더 펼칠 수 있다면 우리의 자동차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고 이 중 터키가 큰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여기에 한-터키 FTA는 유럽, 아시아, 중동을 이어주는 일석삼조의 역할을 담당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