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umni] 멘토로 나선 노창준 바텍 회장…“붕어빵 기계에서 나와 주관 있게 미쳐봐라”
-
입력 : 2012.05.04 13:12:05
수정 : 2012.05.25 09:06:01
서울대 동양사학과 동문회는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으로 선후배들의 모임을 주선해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1회는 취업에 관심이 많은 후배들을 위해 이인용 삼성전자 부사장 등 대기업 임원들이 나섰다. 2회는 다양한 신문, 방송 등 언론계 선배들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3회는 아예 분야별 선배들이 ‘버라이어티’하게 뭉쳤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선배들이 후배들의 진로와 개인사에 대한 고민을 듣고 조언해 주는 자리를 가졌다.
이에 대해 황효진 총무이사는 “앞으로 후배들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해서 1대 1 또는 1대 소수의 전담 멘토링제로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전담제를 두면 선배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후배들도 편하게 조언을 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 4일은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노창준 바텍 회장(78학번)이 시범적으로 두 명의 재학생 후배들과 만났다. 1000여 명의 직원을 이끌고 있는 노 회장은 지금까지 10만명 이상의 지원자들과 면접관으로 만나 직접 인재를 선발했다고 한다. 그러한 경험을 살려 진로와 취업 때문에 고민 많은 후배들의 고충을 듣고 가감 없는 솔직한 조언을 들려줬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으나 지면 관계상 핵심적인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Q : 군대를 다녀오고 4학년이 되면서 선배들을 보고 부적응의 문제, 취업 실패 등의 현실적인 모습을 지켜보며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 자체가 희미해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A : 학부 시기는 내가 즐기며 미쳐볼 수 있는 일을 찾는 시기다. 사회가 스펙 쌓기를 강요하고 있다지만 학생들 역시 무분별하게 따라가는 측면도 있다. 사회나 기업이 학부 졸업생들에게 바라는 수준은 크지 않다. 기업이 보는 박사, 석사, 학사의 의미를 들어본 적 있나? 박사학위는 ‘아, 이제 너는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라는 자격이고, 석사는 남의 논문을 읽고 요약할 수 있구나 라는 자격증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학사는? 글을 읽고 해독 정도를 할 수 있는 자격이란다. 학부시절에 무언가에 미쳐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단 무엇에 미칠 것인가는 치열하게 고민해 봐야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자기가 좋아서 미치면 대부분 성공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뭐든 되더라. 그렇지 않은 경우 금방 질리고 그만둬버리는 사례를 많이 목격했다.
Q : 동양사학에 대한 관심에서 과 진입을 결정했는데 진로를 취업 쪽으로 결정하다 보니 고민이 생겼습니다. 경영, 경제 전공이 아닌 데서 오는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부담감에 언어능력을 더 키워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A: 간혹 동양사학을 포함한 인문학 전공자들을 보면 후배님과 같이 주눅 든 모습도 목격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 학부 졸업생들의 수준은 전공이 무엇이든 비슷비슷하다고 본다. 인재를 선발해야 하는 입장이 돼보니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지원자들이 너무 자기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 배낭여행 다녀오고 해외연수 다녀오고 무엇을 하고… 똑같은 붕어빵이 되고 있다. 언어 성적이고 무엇이고 싹 무시하고 차라리 내 것이 무엇이냐를 고민하고 면접에서 주장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년 넘게 살아왔고 얼굴 생김새나 키도 모두 다른데 생각만은 다른 게 없다. 진화의 세계에서는 결국 달라야 살아남는다. 경영자 입장에서 유일한 고민은 어떻게 다른 기업과 차별화할 것인가다. 아예 다른 것을 할 것인가? 또는 같은 것을 얼마나 다르게 잘할 수 있을까다. 그러한 환경에 맞는 인재상이 필요하다.
외국어에 대한 부담감도 지나치게 가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언어가 무조건적으로 비즈니스를 결정하지 않는다. 외교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 바텍에는 현재 해외 법인이 지금 13개가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조금 언어가 서툴 때 유리할 때도 있다. 서툰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협상이 이뤄져 상대방에게 유리한 조건을 내줬을 때 “미안하다. 내가 언어가 서툴러서 이해를 못했다”며 양해를 구해 내용을 뒤집는 경우도 있다. 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 말을 조금 더듬으면서 시간을 끌 때도 있다. 지나치게 유창한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 오히려 조금 의심스럽지 않나?(웃음)
Q : 구체적으로 저는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붙임성도 있는 편이라 막연하지만 영업이나 인사 분야에 취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A : 사람 만나기를 좋아한다면 지금 세계적으로 유망한 직업군이 HR(인사전문가)분야다.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을 타깃으로 한 인사전문가가 되겠다’라는 등의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준비하면 상당히 메리트가 있다고 본다. 이 직업 자체가 사람을 만나기를 즐겨야 한다. 상대방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해야 하는데 적성에 안 맞는 사람은 절대 못한다.
준비는 관련 분야의 테크닉적인 공부를 시작하면 좋다. 또 취업 준비 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거나 면접에 가서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식의 예스맨은 되지 마라. 내가 구체적으로 HR 분야, 영업 분야, 재무 분야에서 어떤 업무나 활동을 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라. 면접관들이 싫어하는 부류가 원하는 업무를 물었을 때 “시키는 것이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 급했구나!’란 느낌을 주게 된다.
노창준 바텍 회장 서울대 동양사학과 78학번으로 2002년 1월에 주식회사 바텍의 전신인 바텍시스템과 전문경영인으로 첫 인연을 맺었다. 그의 탁월한 경영전략으로 바텍은 일본 등 선진국에서 더욱 인지도가 높은 의료기기 분야에서 글로벌 포지션을 선점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현재 코스닥에 상장돼 있다. 바텍이 만드는 치과 장비는 2시간반에 1대씩 세계에 팔려나가고 있다. 직원 수는 1000여 명으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 13곳 해외 법인에서 일하고 있다. 노 회장은 과거 총알택시 기사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1980년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을 맡을 정도로 학생운동에 열성적이었다. 졸업 후 열악한 운수노조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벌이기 위해 강남과 수원을 오가는 총알택시를 몰다가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당시 노 회장의 인성에 감동한 손님의 초청으로 다음날 손님이 경영하던 회사에 이사로 출근하게 됐다는 얘기는 동문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박지훈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0호(2012년 05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