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구정이 시작되기 1주일 전부터 중국에서는 기차와 장거리 버스역마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여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들 중 3분의 1 이상은 고향의 부모나 처자식을 만나기 위해 연해지역을 떠나는 중서부 지역 ‘농민공’들이고 임시로 타향에 거주하면서 일을 하는 다른 지역 도시 주민들까지 합치면 구정 때 ‘인구 대이동’의 대다수는 구정을 쇠려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구정 때 사람들이 살고 있던 자기 집을 떠나 고향에 있는 부모를 만나러 가는 것과는 정반대 방향의 인구 이동이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바로 중국의 특수한 사회제도인 ‘호구(戶口) 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중국에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 지역에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규정한 ‘호구제도’는 ‘공산당 독재’의 정치제도와 ‘국유기업 주도’의 경제제도와 함께 현재의 중국 사회를 지탱하는 3대 제도이다. 이 3대 제도가 서로 밀접히 의존하면서 중국 사회구조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에 많지 않다.
개혁개방을 시작한 지 34년을 맞이하는 중국에서 지금도 이 3대 분야만이 변화가 가장 느린 것은 바로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성격 때문이다. 즉 만약 그 중 한 분야에서만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한다면 거대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위험이 있는데 이는 거꾸로 중국 정부가 이 3대 분야의 과감한 개혁을 주저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지난해 중국의 많은 지역에서는 지방정부가 이른바 ‘주택 구매 억제(限購) 조치를 내놓았는데 현지 주택 가격 상승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는 해당 지역 ‘호구’(즉 공식적인 거주권)가 없는 외지인들의 주택 구입을 막아 총 수요를 억제한다는 방식이다. 지금 베이징 시에서는 심지어 ‘베이징 호구’가 없이는 승용차조차도 구매할 수 없다.
똑 같은 일을 하면서 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농민공’이나 ‘농민 기업가’라는 칭호를 중국에서만 사용하고 있는가? 수년 전 중국 한 대학에서 한 침실에 살던 두 학생이 교통사고로 동시에 목숨을 잃었는데 사망 보상금은 크게 달랐다. 왜냐하면 그 중 한 명은 도시에서 입학한 학생이기 때문에 해당 도시 생활비 기준에 따라 사망 보상금을 지급한 반면, 다른 학생은 농민 출신이기 때문에 출신 지역 농촌의 낮은 생활기준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도농 간, 지역 간에 거대한 경제 격차가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거주지를 자유로 선택할 수 없는 ‘호구제도’에 있다. 한국에서 한 지역의 소득 수준이 높거나 생활환경이 쾌적하면 필연적으로 그곳에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 주택 가격의 상승이나 소득(임금) 수준의 하락을 가져온다. 유감스럽게도 중국에서는 지금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그 지역의 합법적인 주민이 될 수 있는 ‘호구제도’ 때문에 지역 간, 도농 간 생활 수준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시장조정자’ 역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생활환경이 열악한 중서부 지역 농민들의 꿈은 한국에 임시로 돈 벌러 온 합법(혹은 불법)적 외국인들처럼 경제가 발전한 지역에 가 고생하면서 돈을 모은 후 고향에 돌아가 쓰려는 것이다. 한국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 국적을 쉽게 부여하려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중국의 도시나 경제가 발달한 연해지역 지방 정부는 외지인들에게 쉽게 본 지역 정식 거주 권리(즉 현지 ‘호구’)를 주려고 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지방 정부의 권한이 매우 크고 지역에 따라 경제정책도 많이 다르며 심지어 다른 지역의 제품에 대하여 판매제한을 하는 등 국제 무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수년 전 베이징 시 인민대표대회(한국의 서울시 의회에 해당)에서 한 대표가 외지인들의 베이징 시 진입을 제한하는 것에 관한 정책 제안을 하여 베이징 시 정부가 제법 진지하게 연구한 후 특정 분야에서 외지인의 취업을 제한한다는 규정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는 임금 수준이 높거나 ‘체면’ 유지를 할 수 있는 직업에 한해서는 외지인의 경쟁으로부터 현지인을 보호하겠다는 지역 배타주의적 발상이다.
1958년 중국 정부가 정식으로 ‘호구제도’를 실시한 이래 이미 반세기가 지났다. 개혁개방 전 이 제도는 주로 농민들을 토지에 얽매어 놓아 정부가 농산물을 염가로 수탈하여 중공업 우선의 계획경제제도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당시 중국에서는 자유이주는커녕 타 지역 여행과 같은 이동조차 자유로이 할 수 없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부는 농민들이 자유롭게 토지를 경작하고 그 외 시간을 자유로 지배하는 것을 허용했는데 이는 지난 30여 년 간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이다. 농민들이 설립한 이른바 ‘향진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농민공’들이 중국을 ‘세계 공장’으로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공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정부가 기존 도시 주민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야 하는 정치사회적인 고려 때문에 대다수 농민들은 도시에서 공업화에 공헌하면서도 여전히 도시 주민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농민공’이라는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생활수준이 높고 거주 환경이 쾌적한 도시나 연해지역일수록 농민들에게는 진입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왔다. 물론 일부 연해지역과 원래 도시 주변 농민들이 공업화, 도시화 속에서 토지 가치 폭등의 혜택을 입어 ‘졸부’가 된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중국에서 ‘호구제도’의 불이익을 받은 것은 농민들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의 도시호구에도 여러 가지 등급이 있다. ‘도시호구’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그 지역의 합법적인 거주자로서 받을 수 있는 경제적인 혜택에 기인한다. 즉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취업 기회, 임금 수준, 의료보험과 양로보험 혜택, 자녀 교육 조건, 편리한 교통, 문화시설 등 생활 인프라 때문에 거주 지역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가 달라지면서 그 지역 ‘호구가치(含金量)’도 크게 차이가 있다.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중심의 한 연구에 의하면 중국에서 평균적으로 한 농민에게 도시호구를 부여하여 도시 주민으로서의 평균적인 혜택을 받게 하는 데 약 8만 위안(약 1400만원)의 재정 자금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편 중국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선전시의 경우에는 약 35만 위안(약 6100만원)이 필요한데 비해 대다수 지방 중소도시는 평균 수치보다도 훨씬 낮다. 이는 그 만큼 서로 다른 호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경제적 지위에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한국의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상당수의 중국 유학생들조차 현재 중국에서 호구제도가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일단 그들도 중국에 돌아가 직업을 찾고 특정지역에 거주하여 생활을 하려고 하면 ‘호구제도’라는 거대한 무형 장벽의 존재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