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그룹(회장 정몽구)이 2012년 벽두부터 강력한 마케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FTA 타결 이후 일본 빅3 업체(도요타, 혼다, 닛산)들이 미국에서 생산된 차량들을 국내로 들여와 가격경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막강한 현대차그룹의 점유율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업계에서는 미국산 일본차의 국내 출시에 대해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대차그룹의 판매량 감소를 걱정하고 있다. 기존 모델보다 최대 100~300만원 가까이 저렴한 미국산 일본차가 국내에 쏟아질 경우 자칫 토종회사인 현대차그룹의 점유율이 흔들릴 수 있다고 보고 있어서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지배력 약화는 국내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염려스럽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세계 5위의 글로벌 메이커로 성장한 현대기아차가 일본 빅3에 맥없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현대차그룹이 이번 고비를 슬기롭게 넘기면 글로벌 메이커로 확고히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미 FTA 시행을 앞두고 중형차 시장에서 전면전에 나서는 현대기아차그룹과 일본 빅3, 2012 임진년을 맞아 아시아자동차업계의 진정한 용이 될 곳은 어디일까?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당장 내년부터 미국산 도요타 캠리가 시장을 뒤흔들겁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올초 발효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자동차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예고됐다. 엔고에 시달리는 일본차 빅3들이 내년부터 미국에서 생산되는 모델을 국내로 들여올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인기차종에 국한됐던 라인업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일대 파란이 예상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미FTA이 시행되면 곧바로 국내 중형차시장에 회오리가 몰아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차의 쏘나타와 기아차 K5가 양분하고 있는 중형차 시장에 가격경쟁력과 국제무대에서 검증된 성능으로 무장한 미국산 일본차들이 대거 공세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어서다.
가장 먼저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보이는 미국산 일본차는 세계 최대 자동차그룹으로 올라선 도요타다. 이미 한국도요타는 지난 11월1일 미국 인디애나공장에서 생산된 7인승 미니밴 시에나를 국내로 들여온 상태. 여기에 오는 1월18일에는 미국 캔터키주 조지타운 공장에서 생산된 뉴캠리를 국내에 출시한다.
도요타 대표차종인 캠리는 미국에 출시된 지난 14년 동안 13번이나 베스트셀링카 1위에 오를 정도의 히트작으로, 국내에 출시되는 모델은 이전 모델과 완전히 다른 7세대 신차다. 낸시 린 폐인 미국 도요타 부사장은 “7세대 뉴캠리는 도요타가 생산한 차량”이라며 “안전성과 신뢰, 가치 등 모든 면에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혼다 역시 내년에 선보일 신형 어코드를 미국에서 들여올 것으로 점쳐진다. 혼다는 엔고현상으로 일본 내 생산차량을 해외로 수출하는 과거 방식을 자제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는 방침을 정한 상태다. 이런 배경 때문에 업계에서는 미국산 어코드가 내년에 한국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닛산은 이미 미국에서 생산된 알티마를 국내로 들여와 팔고 있다. 여기에 닛산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인피니티의 신차 JX도 미국에서 생산해 들여올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미국산 자동차들을 대거 쏟아낼 것으로 예상되면서 업계에서는 중형차 시장에서 치열한 ‘가격경쟁’을 예상하고 있다. 8%에 달하던 관세가 FTA 시행 이후 4%로 내려가는 만큼 수입차 가격 결정에 여유가 생겨 일본 빅3가 기존 판매가격보다 더 낮아진 가격으로 신차를 출시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업계에서는 한국도요타가 뉴 캠리의 가격을 3000만원대 초반에서 정하는 파격을 단행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뉴 캠리(풀 옵션)는 현재 미국에서 2만5000달러(약 2700만원대)에 팔리고 있다.
현대차 “수성, 자신 있다”
현대자동차의 기술이 녹아있는 YF소나타
그러나 일본차 빅3가 가격을 내린다고 해서 현대기아차그룹의 점유율이 곧바로 타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새로운 모델에 대한 신차출시 효과는 있을 수 있겠지만, 현대기아차의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국내 전문가들이 이처럼 생각하는 이유는 일본차 빅3가 미국산 생산차량을 들여와도 물류비 때문에 중형차 시장에 알맞은 가격경쟁력을 갖기 어려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관세가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태평양을 건너와야 하는 만큼 물류비가 더 들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현대증권 역시 최근 캠리의 미국 판매 가격을 관세인하분과 물류비 등을 반영해 국내 예상판매가로 3175만원으로 추정했다. 결국 가격만을 놓고 볼 때 미국산 일본차의 경쟁상대는 중형차가 아닌 준대형급 모델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캠리는 소비자들 사이에 소나타의 경쟁차종으로 인식돼 있다”며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굳이 준대형급 가격을 주고 중형급으로 보이는 캠리를 살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중고가격과 유지비용 등을 감안하면 미국산 일본차의 경쟁력은 더 약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중고차업계의 한 딜러는 “중형차 시장의 가장 큰 고객인 일반 소비자들은 차를 구입할 때 중고차의 가치까지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소비자들의 자동차 교체 주기가 5년 전후인데, 중고시장에서는 캠리의 중고할인율이 더 높아 현대차를 구매하는 이들이 여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비업체 역시 마찬가지다. 장안동에서 정비센터를 운영하는 김모현씨는 “수입차의 경우 부품공급가격이 국산부품에 비해 적게는 1.5배에서 많게는 2~4배에 달해 유지비용이 높은 편”이라며 “유지비 측면에서는 여전히 국산차가 휠씬 더 합리적이다”고 강조했다. 국내 업체들은 그러나 미국산 일본차의 국내 진출을 여전히 경계하고 있다. 당장 큰 타격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점차 시장점유율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벌써부터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진검승부는 하반기부터
현대기아차그룹은 공격적인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현대차는 12월부터 수입차 보유고객이 현대차를 구매하면 최대 100만원의 할인혜택을 주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선 상태다. 한국GM과 르노삼성 역시 신규차량 구입 고객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주는 등 수성에 집중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일 자동차업체들의 진검승부가 2012년 하반기에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요타가 1월 미국에서 생산된 뉴 캠리를 국내에 들여오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대결구도를 만들기에는 예상판매대수가 너무 적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2년 하반기에는 도요타 외에 닛산과 혼다 역시 미국산 중형차를 들여올 가능성이 높아 현대기아차와의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했다. 중형차 시장을 놓고 생존을 위한 진검승부를 시작한 현대기아차그룹과 이에 맞설 일본의 빅3 자동차업체들. 용의 해인 임진년을 맞아 아시아의 자동차 맹주 자리를 놓고 한판 대결이 펼쳐진다.
기아차 레이 “일본 박스카 내가 상대해주마”
미국산 일본차의 국내 진출 초읽기로 전운이 담도는 중형차 시장과 달리 소형차 시장은 이미 한·일 간의 자동차전쟁이 불을 뿜고 있다. 일본 업체들이 독식했던 박스카 시장에 기아차가 ‘레이’를 출시하며 도전장을 냈기 때문이다.
기아차는 박스형 경차인 레이는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모델이다. 디자인만 놓고 보면 형님격인 ‘쏘울’과 유사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경차에 속하는 만큼 경제성 면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갖고 있어서다. 기아차는 레이를 월 5000대, 연간 6만대 이상을 내수시장에 판매할 계획이다.
사실 국내 자동차업계에서는 지난 2011년 9월에 출시된 닛산의 박스카 큐브가 돌풍을 일으키며 젊은 층을 상대로 스타일리시 박스카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가 커지고 있다. 고유가와 주차난에 실용적이면서도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다양한 모델들에 젊은 층의 눈길이 쏠리고 있어서다.
기아차 역시 이런 소비자들의 니즈를 적극 반영해 지난 2007년 박스형 SUV인 쏘울을 출시해 큰 호응을 받았다. 당시 쏘울은 해외에서도 극찬을 받으며 ‘디자인 기아’의 주력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런 가운데 닛산이 국내에 큐브를 전격 출시했다. 박스카의 원조로 불리는 큐브는 작고 귀여운 디자인에 파워까지 겸비해 출시와 함께 수입차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런 관심은 판매량으로도 이어져 큐브는 출시 직후 월간 판매량 1위(동급 기준)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국내 자동차업계에서는 큐브가 일으킨 ‘박스카 돌풍’의 대항마로 기아차 레이를 주목하고 있다. 귀여운 디자인에 ‘경차 혜택’이라는 프리미엄까지 더해진 만큼 큐브의 돌풍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레이는 여러 면에서 큐브보다 매력적인 부분이 많다. 일단 가격이 착하다. 큐브와 레이의 신차가격 차이는 최저등급 기준으로 큐브 2190만원, 레이 1240만원으로 약 1000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 여기에 닛산은 2012년부터 큐브의 가격을 일괄적으로 70만원 상향 조정한다. 가격차가 더 벌어지는 셈이다.
또 레이는 경차종에 속해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주자장에서 요금할인이 되며 고속도로 통행료도 할인된다. 반면 큐브는 덩치는 비슷해도 1.8ℓ 엔진을 쓰는 만큼 준중형차급에 속해 큰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기아차는 이런 점에 주목해 ‘레이’의 장점을 더욱 부각시킬 계획이다. 박스카의 스타일과 경차의 실속을 모두 챙길 수 있는 이점을 최대한 알리겠다는 전략이다.
그래서일까. 기아차 레이는 자동차 비수기인데도 신차효과를 제대로 누리고 있다. 기아차에 따르면 출시 직후 현재까지 5000여대 이상의 사전예약이 이뤄졌을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반면 큐브는 레이 출시 이후 판매량이 주춤하고 있다. 닛산 큐브의 계약대수는 9월 600대에서 10월 450대, 11월에는 250여대로 줄어드는 추세다.
기아차 관계자는 “출시 직후부터 높은 애정을 받고 있는 만큼 2012년에도 꾸준한 판매량을 유지할 수도 있도록 마케팅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레이는 대한민국 대표 박스카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닛산 큐브
[서종열 기자 snikerse@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6호(2012년 0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