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잦은 전산사고에 CEO 교체설까지…IBM의 금융 IT 독점파워 연이은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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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11.28 15:48:27
수정 : 2012.02.10 10:09:40
100주년을 맞은 IBM이 올 한 해 한국에서 시련에 시련을 거듭하고 있다. IBM은 1967년 한국 시장에 진출, 고성능 ‘메인프레임’을 기반으로 국내 금융·IT 강자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최근 크고 작은 사건 사고로 IBM의 위상은 급격히 떨어졌다. 금융권에서 ‘반 IBM’, ‘탈 IBM’ 정서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한국IBM은 성대하게 준비했던 100주년 기념행사를 전면 취소하기로 했다.
끊임없이 터지는 금융사고
한국IBM는 최근 3년 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금융·IT 분야에서 크고 작은 사고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특히 2010년에 벌어진 국민은행 전산장애는 IBM이 그토록 자랑하던 메인프레임과 연관된 문제였다는 점에서 상징하는 바가 컸다.
잦은 사고로 위기의식이 고조되던 와중 올 4월 발생한 농협 전산망 장애 사태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검찰조사결과 전산망 사고의 원인이 협력업체인 한국IBM 직원의 노트북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지며 안일한 보안의식에 대중의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당시 한 IT전문가는 “서버에 삭제 명령을 내린 IBM직원 노트북에 80여 개나 되는 악성코드가 발견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라며 “기본적인 보안 수칙을 지키지 않았음은 물론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 활용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 시중은행의 전산담당자는 “그동안 한국IBM은 거래처에 ‘철통보안’을 내세우며 영업을 해왔다”며 “농협사태로 금융·IT 분야에서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고 평했다.
농협사태가 대중에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져가던 7월. 사고는 다시 발생했다. 우리은행의 인터넷뱅킹 서비스가 7월20일과 7월25일 양일간 접속 지연되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문제가 됐던 부분은 웹어플리케이션서버(WAS)로 IBM제품이 사용되고 있었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당시 웹서버와 DB서버 사이의 중간 처리를 담당하는 미들웨어인 IBM의 웹어플리케이션 서버가 갑자기 늘어난 정보량을 감당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라 밝혔다.
잇단 프로젝트 실패로 뭉개진 차세대 시스템
비씨카드는 지난 2년간 IBM과 차세대 시스템 사업을 진행해왔다. 그런데 2009년 당시 한국IBM측의 승인계 서버 용량을 잘못 산정하는 오류가 발생했다.
또한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승인계 시스템 개발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개발사업 수행자가 LG CNS로 교체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순탄치 않았던 프로젝트 개발 과정 끝에 비씨카드는 올 5월과 8월 두 차례 차세대 시스템 가동 시점을 연기한 후 결국 백지화하기로 결정했다.
비씨카드 관계자는 “한국IBM과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승인계 시스템 등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며 “지금 후속 대책을 준비 중에 있다”고 말했다.
과거 동부생명과 한국투자증권의 차세대 시스템 구축 사업에서도 한국IBM의 수행 작업이 문제가 생겨 가동이 연기된 전례도 있다. 이들 사업들은 중장기 정보화전략(ISP)과 분석설계가 잘못 이뤄져 나타난 문제로 알려졌다.
가장 뼈아픈 실패작으로 남은 사례는 2007년 국민은행이 은행권 최초로 진행한 자본시장통합시스템(CMBS) 구축 사업이다. 한국IBM은 시스템 설계와 일부분의 개발을 진행했으나 회계처리와 결산 영역의 개발을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당시 성과관리, 한도관리 등 오피스 영역에 있어 한국IBM의 기술력이 미흡하다고 판단해 내부적으로 사업자를 교체해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국민은행은 내부적으로 한국IBM측에 보상금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예고된 사고… 문제는 먹이사슬식 하청구조
IT업계 전문가들은 한국IBM의 각종 전산사고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한 IT 전문가는 “금융권 서버관리실에 IBM 직원들은 실상 5명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하청업체에 일을 맡기고 서버에 문제가 생겨도 그들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농협사태가 일어난 당시 서버담당 한국IBM직원은 3명뿐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전부터 IT업계의 뿌리 깊은 먹이사슬식 하청구조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돼 왔다. 구체적으로 IBM같은 대규모 SI(System Integration)업체가 특정 고객사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이를 중견 IT업체에 하도급을 주고 다시 다른 업체에 재하도급을 주며 이윤을 남기는 형태다.
업계관계자에 따르면 심한 경우 5~6단계의 하청구조가 형성되는 경우도 즐비하다고 밝혔다. 문제는 하도급 과정에서 줄어드는 비용이다.
4단계 하도급 구조를 예로 들어, IBM이 1억원에 수주한 프로젝트를 하도급주는 각 과정마다 2000만원씩 차액이 생긴다면 5단계에서는 비용이 2000만원까지 줄어든다. 4단계 사업자는 1억짜리 사업을 5분의 1로 줄어든 2000만원의 비용으로 수행해 내야 하는 것이다.
한 IT 전문가는 이러한 하도급 구조에 대해 “줄어든 비용으로 사업을 수행하려다보니 자연스레 기술력이 부족한 인력을 낮은 임금으로 고용하게 된다”며 “또한 비효율적인 수직적 보고·관리체제는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적시에 대응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일례로 2011년 초 한국IBM은 KT의 차세대 프로젝트 진행 중 중국 조선족 인력을 대거 투입해 KT와 마찰을 겪었다. 월 급여 80만원대로 고용된 이들은 국내 인력에 비해 프로그램 설계 능력이 부족해 KT측에서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하도급 구제에 따른 ‘수직적 갑을(甲乙) 관계’ 역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김인성 IT칼럼리스트는 “슈퍼 갑의 위치에 있는 IBM과 같은 회사 직원들은 하청업체에 귀족적 지위에 있다”며 “이들은 하청업체를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에는 별로 관여하지 않으면서 전문 인력이라는 명패를 달고 고액연봉을 수령한다”라고 말하며 현재의 IT산업의 구조적 병폐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 국내 중견 IT업체 프로그래머는 “대형 SI업체는 하청업체에 거의 불가능한 기간 동안 일을 끝마치길 원한다. 그러면 하청업체에서는 인력을 혹사시켜 계속적인 밤샘 작업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품질도 이상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같은 회사의 다른 프로그래머는 “회사에 이러면 안 된다. 더 신경 써서 품질을 맞춰야 한다고 건의했다가는 이상한 사람 취급되기 십상이다”고 말했다. “일정이 중요하지 품질이 중요하냐는 꾸중만 돌아올 뿐이다”라 밝혔다.
사건·사고에도 IBM에 얽매인 금융사들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도 불구하고 많은 금융사들은 여전히 한국IBM을 ITO사업자로 두고 있다. IT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지명도와 기술력을 함께 갖춘 대안업체가 없다는 점이다. 김인성 IT칼럼리스트는 “다른 대규모 SI업체는 있지만 IBM과 같이 금융권의 토털솔루션 기술을 갖춘 업체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설사 기술력을 갖추었더라도 IBM만한 지명도를 갖춘 기업이 없어 독과점체제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이러한 IBM의 지명도가 금융사 ITO 결정권자에 ‘책임 회피’를 가능케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IT 전문가에 따르면 “담당자가 IBM 이외에 다른 업체와 계약을 할라치면 윗선에서 제지한다. ‘왜 이름도 없는 업체와 하느냐,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책임지겠느냐’라고 비난당하기 일쑤다”라 말했다. 또한 사고가 난 후에는 ‘하물며 IBM도 사고가 났는데 다른 업체라고 별 수 있나’라며 책임 회피를 할 수도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둘째는 천문학적인 교체 비용이다. 농협은 올 4월 발생한 해킹사고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IBM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농협은 IBM 서버 320대 가량을 가동 중인데 서버 한 대 가격은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체하려면 엄청난 금액이 소요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산 운영사만 교체한다고 하더라도 제작사만큼 축적된 노하우를 가진 곳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농협 관계자에 따르면 “비용 문제도 그렇지만 마땅한 대안도 없는 상태로 한국IBM과 잘 협조하고 보완해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셋째는 한국IBM의 영업력과 협상력을 들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IBM은 소프트웨어 실사와 라이선스 비용을 은행권들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데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작년부터 은행들과 이 문제로 다툼이 많았는데 농협사태 이후 라이선스 비용 인상 요구 강도가 약해졌다”고 말했다.
연이은 고객사 이탈에 CEO 교체설까지 나돌아
한국IBM은 작년 한 해만 OB맥주, 신용보증기금, 에스콰이어 등의 고객사를 잃었다.
OB맥주는 IT인프라 운영업체를 삼성SDS로 교체했고 신용보증기금과 에스콰이어는 각각 LG CNS와 동부 CNI로 아웃소싱 업체를 바꿨다.
당시 한해 3개의 ITO 고객사들을 연달아 경쟁사에 빼앗겼다는 점에 대해 IT업계 관계자들은 한국IBM의 총체적 위기를 주장하기도 했다.
올해는 농협, 우리은행 전산장애사태와 비씨카드 차세대시스템 백지화 등으로 한국IBM은 신뢰감에 큰 상처를 입어 추가적인 고객 이탈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할 형국이다.
한국IBM은 3년 전부터 일본에 있는 아시아퍼시픽에서 GMU(Growth Market Unit)로 소속이 재편됐다. GMU 안에는 중국, 인도 등 신성장 140여 개 국가가 포함됐다. 그동안 GMU 국가 대부분이 10%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한 가운데 한국IBM의 성장은 2~3% 그쳐 권한이 크게 위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IBM은 올 한 해 동안 지속적으로 CEO 교체설에 시달려 왔다.
이휘성 사장의 거취에 대한 다양한 관측들이 등장해 내부적으로 한국IBM은 직원들에 ‘함구령’을 내리기도 했다.CEO 교체설에 대해 손명희 한국IBM 실장은 “루머일 뿐이며 공식적으로 어떤 것도 답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구체적인 실명을 거론해 내부인사뿐 아니라 외부 영입 가능성이 나돌고 있다.
헤드쿼터의 힘이 강해 한국지사의 힘이 워낙 약하다 해도 수장이 흔들리면 조직은 위태롭기 마련. 대표 자리에 대한 다양한 ‘설’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래저래 한국IBM은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 SI란?
SI는 ‘System Intergrator’의 약자로 정보시스템의 개발에 관해 상담, 설계, 개발, 운용, 보수, 관리 등 일체업무를 담당하는 정보 통신 기업을 의미한다.
[박지훈 기자 parkjh@mk.co.kr│사진 = 정기택 기자 ]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5호(201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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