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주력제품인 LCD 패널의 가격 하락으로 치킨게임 경쟁을 넘어 서바이벌 게임으로 돌입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40~42인치 LCD TV패널의 경우 올 초 240달러였지만 계속 가격이 떨어져 이달 들어서는 208달러에 시장가격이 형성됐다. 세계 LCD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도 공장 가동률을 떨어뜨리며 시장가격을 조절하고 있지만 경기침체가 이어지며 수요는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LCD 가격이 곧 디스플레이의 업계의 전체 위기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많다. 따라서 양산 경쟁력에만 큰 관심과 지원을 쏟아왔던 우리나라 업체들이 디스플레이 강국의 위상을 이어가기 위해 그동안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미래 핵심기술을 하루 빨리 상용화하는 패스트 무버(Fast Mover) 전략을 과감히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화가 곧 현실로
3차원 홀로그램과 투명 디스플레이가 착용된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
미래 디스플레이를 언급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됐던 할리우드 영화는 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다. 동작인식과 휘는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제품들을 상상력을 동원해 선보였다. 영화가 개봉한지 10년 만에 영화는 현실이 되고 있다. 동작인식 기술을 활용한 디스플레이가 가능해졌고 휘는 디스플레이, 투명 디스플레이 등의 상용화가 머지않아 보인다.
윤부근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부문 사장은 지난 10월12일 일산 킨덱스에서 열린 한국전자산업대전(KES 2011)의 기조연설자로 나서 “과거 할리우드 감독들의 상상들이 계속 현실이 되고 있다”며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에 나오는 투명 디스플레이가 상용화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난해 전 세계적인 3D 열풍을 몰고 온 영화 '아바타'에서는 다시 한 번 디스플레이의 미래를 짐작하게 하는 많은 기술이 화면을 장식했다. 비록 컴퓨터 그래픽으로 창조된 것이지만 영화의 주 배경인 판도라 행성을 재현한 ‘3차원 홀로그램(Hologram)과 투명 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이다. 특히 지구인의 기지와 비행선 등에는 거의 대부분의 디스플레이가 투명으로 구현됐다.
활처럼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평판의 한계를 넘어, 디스플레이 이상의 디스플레이 세상을 구현할 새로운 테마가 펼쳐지고 있다. 마치 종잇장처럼 마음대로 구부리거나 접을 수 있는 플렉서블(Flexible) 디스플레이의 상용화가 눈앞에 있다. 미래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 디스플레이를 살아 숨쉬게 만들, 무궁무진한 응용 분야를 지닌 신성장 동력임에 틀림없다.
최근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마케팅 명칭을 정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SMD는 현재 기술 용어인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제품 특성별로 나눠 일반 소비자들이 인식할 수 있는 제품명을 찾고 있다. 명칭을 찾고 있는 제품은 총 4가지로 깨지지 않는 평평한 화면(UBP·Unbreakable Plane), 접을 수 있는 화면(UBF·Unbreakable Foldable), 돌돌 말 수 있는 화면(UBR·Unbreakable Rollable), 구부릴 수 있는 화면(UBB·Unbreakable Bended) 등이다. 삼성SDI와 삼성전자가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AM OLED의 공식 명칭을 ‘아몰레드’로 정하고 상용화를 실시했던 점에 비춰 볼 때 이번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의 명명 작업은 상용화를 앞둔 수순으로 풀이된다.
SMD가 준비하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는 현재 양산 중인 아몰레드 디스플레이의 발전된 형태다. LCD화면은 유리기판, 백라이트(back-light)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화면을 구부리기 어렵지만 아몰레드는 자체 발광하기 때문에 백라이트가 필요 없다.
세계시장에서는 기존 디스플레이 기술을 대체하는 전기종이와 LC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이 여전히 경합을 벌이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액정이나 유기물이 아닌 전자잉크(e-Ink)를 소재로 하는 전자종이(EPD) 분야에서 특히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미 지난 2006년 5월에 세계 최초로 14.1인치 흑백 플렉서블 전자종이를 개발했다. 2007년 세계 최초로 A4 용지 크기의 컬러 플렉서블 전자종이를 개발했다. 또 2008년에는 기존 컬러 플렉서블 전자종이에 비해 무려 4배 향상된 해상도를 구현하는 세계 최고 해상도(1280x 800) 14.3인치 컬러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선보였다. 지난 2010년 초에는 세계 최대 크기인 19인치 플렉서블 전자종이 개발에 성공하는 등 전자종이 대형화 시대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이 원천 소재 기술 확보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04년 미 국방성 주도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연구개발(R&D)을 위해 애리조나 주립대에 ‘플렉시블디스플레이센터(FDC)’를 설립했다. 첨단 정보전 상황에서 디스플레이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해 집중 투자에 나선 것이다. 일본도 지난 2006년부터 NEC·히타치 등 총 14개 업체가 참여하는 산학연 단체 ‘TRADIM’을 구성, 활발한 R&D를 진행 중이다.
액정이 뚫린 듯한 착각 ‘투명 디스플레이’
삼성전자가 최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제정보디스플레이전에서 46인치 투명디스플레이를 전시했다.
투명 디스플레이는 디스플레이 자체가 일정 정도의 투과도(빛을 통과시키는 정도)를 갖추고 있어 사용자가 화면 배경을 볼 수 있는 특징을 가진 디스플레이를 말한다.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한국산업전자대전에서 “전 가정의 유리가 앞으로 투명 디스플레이로 바뀌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투명하다는 기본 특성으로 인해 건물과 자동차 창문은 물론이고 상가 쇼윈도 등에 적용이 가능하다. 또 향후 투과도 개선 및 대형화에 따라 그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명 디스플레이는 백화점 매장에서 디스플레이 된 제품을 소개하는 투명 쇼윈도, 태양광의 밝기를 조절하는 스마트 유리창, 자동차 앞 유리창에 속도나 연료 잔량 등 계기정보를 표시하는 운전정보 디스플레이 등으로 적용 분야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투명 디스플레이 개발과 관련해 업계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 LCD사업부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업계 최초로 투명 LCD 양산에 나섰다. 특히 22인치 컬러와 흑백 두 가지 방식으로 500대 1의 명암비와 WSXGA+(1680×1050)의 고해상도를 구현했다. 투과율의 경우 흑백은 20%, 컬러 제품은 15% 이상을 달성해 매장 쇼윈도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투명도를 향상시켰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뱅크 등에 따르면 투명 디스플레이는 내년을 기점으로 상용제품이 다양하게 출시될 전망이다. 전 세계 투명 디스플레이 시장은 오는 2025년에 대수 기준으로 11억7000만대, 금액 기준 872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10년 후엔 건물 외벽도 디스플레이
LG전자의 3D OLED 를 체험하고 있는 외국인들
삼성전자는 최근 차세대 발광다이오드(LED) 기판의 핵심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기존의 사파이어 기판을 대체해 유리 기판에서도 LED의 기초 화학 물질들을 성장시킬 수 있어 대면적의 LED 조명 기술 개발에 한 걸음 다가섰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은 10월10일 세계 최초로 유리기판 위에 질화갈륨(GaN)층을 성장시키는 기술을 개발해 세계적 권위의 국제 학술지 ‘네이처 포토닉스’ 인터넷판에 게재됐다. 이를 활용하면 10년 이후에는 건물 외벽이나 디스플레이를 조명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신기술이 개발돼 상용화할 전망이다.
유리는 대면적으로 만들기 쉽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기판 재료로 꼽혔지만, 원자의 배열이 비규칙적인 비정질적 특성 때문에 이제까지는 유리기판상에 LED 재료를 구현하지 못했다. 단결정은 결정 전체가 일정한 결정축을 따라 규칙적으로 생성된 고체 물질을 의미하며, 반도체 소자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 현재까지 LED는 사파이어와 같이 원자의 배열이 규칙적인 단결정 기판 위에 결정체의 층을 성장시키는 에피(Epi) 성장법으로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과학계와 업계의 상식이었지만 원자의 배열이 불규칙한 유리를 이용해서도 LED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획기적이다.
삼성종합기술원 관계자는 “10년 후 미래에는 유리창이 곧 조명으로, 디스플레이로 활용돼 건물이 자신만의 표정을 띠게 될 수 있다”며 “대면적화를 통해 하나의 기판에서 많은 LED칩을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조명 등 다양한 부문에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