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을 둘러싼 경쟁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동안 기술적 한계와 규제, 사고 논란 속에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듯 보였던 자율주행 시장이 변곡점을 맞으면서, 2026년을 향해 완성차 업체 간 기술 경쟁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불씨는 테슬라가 던졌다. 테슬라의 ‘감독형 FSD(Full Self-Driving)’가 11월 말 국내에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방식으로 전격 배포되며 국내 자율주행 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FSD는 이름과 달리 완전자율주행은 아니다. 운전자의 전방 주시와 즉각적인 개입 의무가 전제된 레벨2(부분 자동화) 기술이다. 그럼에도 시내 주행과 고속도로에서 가감속, 차선 변경, 경로 추종을 차량이 스스로 수행하는 경험은 소비자 인식을 단번에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4세대 하드웨어(HW4)가 탑재된 모델 S·X를 중심으로 실제 사용 사례가 확산되며, 국내 이용자 사이에서도 체감 효과가 빠르게 공유됐다.
FSD는 테슬라가 차량을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의 결과물이다. 일론 머스크는 2016년부터 하드웨어 선탑재 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성능을 고도화하는 방식을 제시해 왔다. 테슬라는 레이더나 라이다 대신 카메라 기반 비전 시스템과 대규모 신경망 학습에 집중하며, 전 세계에서 수집되는 주행 데이터를 핵심 자산으로 축적해 왔다.
북미 시장에서 FSD는 이미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베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방대한 실제 도로 데이터를 확보해 왔고,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단계”라는 평가와 함께 과신 위험과 안전성 논란도 병존해왔다. 미국 교통안전 당국이 사고 사례를 조사하며 경고를 이어가는 가운데, 테슬라는 잦은 OTA 업데이트로 대응해 왔다. FSD는 완성형 기술이 아니라 ‘달리면서 진화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기존 자동차 기술과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이 실험이 한국 시장에도 착륙했다.
국내 배포 이후 파장은 즉각적이었다. 여전히 감독형 레벨2 기술이지만, 실제 주행에서 체감되는 자동화 범위는 기존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과는 결이 달랐다. 신호 대기 후 출발부터 교차로 진입, 차선 변경까지 이어지는 연속 주행은 ‘부분 자율주행’의 기준선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시에 소비자 눈높이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을 향한 질문도 선명해졌다. “언제, 어떤 수준의 자율주행을 제공할 수 있는가.” 특히 OTA를 통해 기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테슬라의 방식은 자율주행을 하드웨어 옵션이 아닌 서비스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테슬라의 공세에 전통 완성차 강자도 즉각 응수했다. GM은 자사의 고급 운전자 보조 시스템 ‘슈퍼크루즈(Super Cruise)’를 연내 국내에 출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슈퍼크루즈는 FSD와 출발점부터 다른 철학에서 탄생한 기술이다. 테슬라가 범용 비전 기반 자율주행을 지향한다면, GM은 사전에 검증된 환경에서 ‘완성도 높은 자동화’를 구현하는 방식을 택했다. 고정밀 지도, GPS·차량 센서, 운전자 감시 시스템을 결합해 허용된 도로에서만 핸즈프리 주행을 제공하는 구조다.
슈퍼크루즈는 2017년 캐딜락 CT6에 처음 적용된 이후 지속적으로 고도화돼, 현재는 북미 전역 70만 마일 이상의 고속도로에서 사용 가능한 수준까지 확장됐다. 북미 시장에서는 안정적인 제어와 예측 가능한 거동을 강점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핸즈프리 시스템’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다만 고정밀 지도 기반이라는 특성상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GM이 한국을 북미·중국에 이은 세 번째 핵심 도입 시장으로 명시한 것은 상징적이다. 단순 판매를 넘어, 고급자율주행 기술의 쇼케이스로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GM은 고정밀 지도 구축과 전용 OTA 서버 운영 등 현지화를 위해 100억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국내 첫 적용 차종으로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를 선택했다. 프리미엄 플래그십 모델을 통해 기술 신뢰도를 먼저 쌓겠다는 전략이다.
이 와중에 가장 복잡한 계산에 들어간 곳은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시작됐다. 2010년대 중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ADAS를 고도화하던 시점부터 현대차 역시 차로 유지보조,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등 단계적 자동화 기술을 축적해 왔다. 그러나 이 방식은 명확한 한계를 지녔다. 기존 완성차 중심의 개발 체계로는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 중심으로 급격히 전환되는 자율주행 경쟁에서 속도와 유연성 모두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부에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테슬라가 OTA 기반으로 기능을 빠르게 고도화하고, 북미·중국에서 데이터 학습을 가속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현대차 내부에서는 기존 연구소 중심 개발 방식만으로는 구조적 열세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이 문제의식이 결국 현대차 자율주행 전략의 분기점을 만들었다.
그 분기점이 바로 포티투닷(42dot)이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포티투닷을 인수하며, 단순한 기술 협력이 아닌 자율주행 전략의 중심축 이동을 선언했다. 포티투닷은 도심 자율주행, 로보택시 실증, 차량 운영 시스템(OS) 개발 등에서 소프트웨어 중심 접근법을 갖춘 조직이었다. 현대차는 포티투닷을 통해 완성차 회사의 내부 조직이 아닌, 실리콘밸리식 소프트웨어 조직을 자율주행 개발의 핵심에 두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했다.
이 과정에서 송창현 사장이 전면에 등장했다. 송 사장은 포티투닷 창업자이자 CEO로, 현대차그룹 합류 이후 자율주행 전략의 얼굴이 됐다. 이후 현대차·기아의 첨단차량플랫폼(AVP) 본부장까지 겸임하며, 그룹 내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전략을 총괄하는 위치에 올랐다. AVP는 단순한 연구 조직이 아니라, 하드웨어·소프트웨어·플랫폼을 아우르는 미래차 컨트롤타워로 설계됐다.
현대차그룹의 투자 규모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룹은 중장기적으로 수십조원에 이르는 미래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자율주행과 SDV를 핵심 축으로 명시했다. 특히 최근에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블랙웰’ GPU 5만 장을 확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시장의 시선을 끌었다. 기존에 구축한 H100 약 1만장 규모의 연산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자율주행 학습과 시뮬레이션을 위해 연산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내부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대차가 자율주행을 더 이상 ‘알고리즘 경쟁’이 아니라 데이터와 연산량의 싸움, 즉 산업 설비 투자 단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규모 GPU 확보는 더 큰 딥러닝 모델 실험과, 수백만 개의 케이스를 가상 환경에서 재현·검증하는 체계를 가능하게 한다. 이론적으로는 테슬라와 같은 데이터 기반 자율주행 경쟁에 본격적으로 올라탈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다.
문제는 결과였다. 현대차는 여러 차례 자율주행 기술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시장이 체감할 만한 ‘게임체인저’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레벨4 로보택시 실증은 제한적인 구역에 머물렀고, 양산차 적용은 레벨2+ 수준에서 경쟁사 대비 뚜렷한 차별점을 만들지 못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특히 2025년 3월 송창현 사장이 직접 언급한 ‘2027년 말 레벨2+ 자율주행 양산 적용’ 목표는, 선언 당시에는 의지를 보여주는 메시지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담으로 작용했다. 테슬라의 FSD, GM의 슈퍼크루즈처럼 소비자가 즉각 체감할 수 있는 자율주행 경험이 등장하면서, 현대차의 기술 진척 속도에 대한 내부·외부의 시선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결국 2025년 12월 초, 송창현 AVP본부장의 사의 소식이 전해졌다. 그룹 미래차 전략의 상징적 인물의 퇴장은 곧바로 여러 해석을 낳았다. AVP 조직 축소, 포티투닷의 역할 재정의, 남양연구소 중심 체계로의 회귀 가능성까지 다양한 관측이 쏟아졌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실패’로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자율주행은 기술 자체보다 조직 구조와 실행 속도가 성패를 가르는 영역이며, 현대차가 그 실험 과정에서 하나의 모델을 끝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국면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송 사장의 사의 직후 R&D본부장 교체가 단행되며,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 전략을 연구개발의 중심으로 다시 끌어당기려는 움직임이 감지됐다. 현재 현대차의 자율주행 전략은 2막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많다. 포티투닷을 전면에 내세운 스타트업식 실험 단계에서, 이제는 대규모 연산 인프라와 양산 경험을 결합한 현실적인 성과 창출 국면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레벨4의 장밋빛 비전보다는, 레벨2+에서 소비자가 확실히 체감할 수 있는 경쟁력을 얼마나 빠르게 구현하느냐가 관건이 됐다.
글로벌 시장으로 시선을 돌리면, 자율주행 경쟁은 이미 하나의 해법이 아닌 여러 갈래의 궤도로 나뉘어 전개되고 있다. 북미에서는 웨이모(Waymo)로 대표되는 로보택시가 ‘완전 무인’이라는 상징을 만들어내는 한편, 테슬라를 중심으로 한 승용 ADAS가 자율주행의 대중적 경험을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
웨이모의 주간 유료 운행 횟수가 45만 회 수준까지 늘어났다는 지표는, 로보택시가 더 이상 실험실에 머무는 기술이 아니라 실제 이동 수단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또 다른 극단을 향해 달리고 있다. 바이두, 샤오펑 등 레벨2 이상의 보조주행 기술이 빠르게 대중화되는 동시에, 로보택시와 물류 영역에서는 레벨4 실증이 병행되고 있다. 다만 중국 시장은 기술 확산 속도만큼이나 규제의 진폭도 크다. 안전 이슈가 불거질 경우 자율주행 용어 사용 제한이나 OTA 승인 절차 강화 같은 강한 규제 카드가 즉각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은, 기술 경쟁과 정책 리스크가 늘 맞물려 움직인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지역별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으나, 자율주행 산업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관측되는 흐름도 존재한다. 시장 규모에 대한 전망치는 기관별로 2000억달러에서 2조 달러까지 편차가 크지만, 실제 투자 자금의 유입 방향은 비교적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 자금은 차량 내 컴퓨팅 자원과 데이터 처리 인프라, 고정밀 지도 구축과 OTA 운영 체계, 그리고 안전성 검증 및 시뮬레이션 역량 강화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은 더 이상 목표를 먼저 제시하는 경쟁이 아니라, 누가 먼저 실제 도로에서 안정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느냐의 싸움이다”라며 “기술 방향보다 중요한 것은 실행 속도와 책임 구조를 얼마나 현실적으로 설계하느냐에 달렸다”고 밝혔다.
[추동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4호 (2026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