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지난 7월 말, 네이버카페에 ‘벤츠에서 썩은 차를 팔았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차주는 “구매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벤츠GLS의 내부 부품이 부식된 사실을 알게 됐다”며 “출고 다음날 딜러에게 알렸더니 서비스센터 예약을 잡아줬고, 2주 후 센터에서 트렁크 부분을 분해했더니 이 꼴”이라며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엔 차량 내부 곳곳에 녹슨 흔적이 보였고 정체불명의 흰색 가루도 잔뜩 붙어있었다. 문제는 차량 교환을 요청한 차주에게 벤츠 측이 취등록세와 감가상각비를 요구하며 불거졌다.
해당 차주는 벤츠코리아 측 담당이사가 “차량을 등록하고 주행했으니 취등록세 900만원과 감가상각비 600만원을 더해 총 15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며 “차량 감가와 취등록세는 구매자가 부담하는 게 당연한 것이고 1500만원이 그리 큰돈도 아니지 않느냐”고 답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벤츠GLS 판매 가격은 1억4000만~1억6000만원이다.
사건이 공론화되자 벤츠코리아 측은 “해당 차주에게 부담금 없이 교환·환불 조치하기로 했다”며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동일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벤츠 침수 차
Scene 2
지난해 7월 22일, 취등록세를 포함해 2억7200만원을 내고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580 4매틱’ 차량을 인도받은 해당 차주는 3일 만에 엔진 시동 결함으로 차량을 수리 센터에 보내야 했다.
보름 후인 8월 4일 수리가 완료된 후 차량을 운행하던 차주는 일주일 뒤인 8월 12일 똑같은 결함으로 다시금 수리 센터를 찾아야 했다. 이후 11월 2일 수리가 완료됐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해당 차주는 인수를 거부하고 국토부 산하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중재심의위)에 새 차로 교환해 달라는 신청을 냈다. 해가 바뀌어 올 5월 국토교통부는 벤츠코리아를 상대로 해당 차량에 대해 교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조건이 붙었다.
중재심의위 다툼이 해를 넘기며 차량 연식 변경이 진행됐고, 이에 벤츠코리아 측이 옵션비와 차량 가격 인상분 등 약 1000만원을 교환 조건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벤츠코리아 측은 차주가 신차를 원해 이에 따른 가격 상승분이 추가된 것이고, 이외 따로 더 내야 하는 금액은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S클래스 대차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해당 차주 측은 민법의 완전물 급부청구권(계약을 해제하는 대신 하자 없는 물건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에 따라 추가비를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지만 결국 이를 지불하고 2022년식 차량으로 교환받기로 했다. 대신 1년 동안 차를 이용하지 못해 생긴 사용 이익 상실에 대한 손해배상과 위자료를 청구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추가비 요구에 대한 시비도 가리게 된다.
최근 불거진 수입차 관련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 시행 4년 차를 맞은 한국형 레몬법의 실효성이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다. 레몬법은 1975년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소비자 보호법이다. 차량이나 전자제품이 일정 횟수 이상 반복해서 하자가 발생하는 등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교환이나 환불 등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국내에서도 미국의 레몬법을 기반으로 한국형 레몬법을 제정해 2019년 1월부터 자동차관리법·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국내서 신차를 구매한 소비자는 1년 또는 주행거리 2만㎞ 이내에 반복적으로 결함이 발생하면 교환 또는 환불을 받을 수 있다. 엔진 등 중대 하자는 2회, 일반 하자도 같은 증상이 3회 이상 반복되면 구제 대상이다. 하지만 반복적인 결함에도 이를 증명하고 보상받기가 쉽지 않아 법 도입 취지가 무색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2019년 1월부터 올 5월까지 국토교통부 산하 중재심의위의 중재 판정에 따라 진행된 차량 교환은 4건이었다. 앞서 소개한 마이바흐 차량이 그중 하나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중재 판정에 따른 환불은 3건. 소비자와 자동차 제조사 합의로 자발적인 교환이나 환불이 이뤄진 경우(취하)를 포함해도 각각 81건과 106건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접수된 중재 신청은 총 1669건이나 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차량 구매 1년 이후, 2만㎞ 주행 이후에 발생한 하자는 레몬법과 무관하다”며 “제조사가 보증하는 기간이 이보다 훨씬 긴데, 소비자 입장에선 법 적용 기간이 너무 짧다”고 전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미국의 레몬법을 참고했다곤 하는데 한국형 레몬법은 3가지가 결여됐다”며 “우선 미국은 NHTSA(미국도로교통안전국)처럼 소비자를 우선하는 공공기관이 존재하고 둘째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뤄져 제조사들이 고심할 수밖에 없고, 마지막으로 입증 책임이 제조사에 있어 소비자를 먼저 보호하는데, 우린 이 3가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레몬법 시행에 앞서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 소비자가 제조사 갑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형 레몬법은 차량을 인도받은 후 6개월 이내에 반복적인 하자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에게 입증 책임이 넘어간다. 김 교수는 “입증 책임 면제를 6개월로 제한하면 혜택을 볼 수 있는 차주가 극도로 적어질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경우 제조사가 차량에 결함이 없다는 걸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결함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다고 해도 보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레몬법이 계약 시 강제성이 없는 규정인 점도 교환·환불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제조사가 자발적으로 서면 계약서에 ‘신차로의 교환 또는 환불 보장’과 관련한 내용을 기입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레몬법 적용을 받을 수 없다. 현재 중국 등 일부 국가의 수입차량과 상용차 등이 아직도 계약서에 관련 내용 삽입을 거부하고 있다.
최근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발표한 자동차리콜센터 리콜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최근 3년간(2019~2021) 국산·수입차 결함 신고현황은 총 1만8359건이나 됐다. 2019년(3721건) 대비 2021년(7744건)의 신고 건수는 2배(108%) 이상 증가했다. 이 중 국산차 결함 신고는 1만2415건, 수입차는 5944건이다. 국산차 중에선 제조사별로 현대차가 5175건(41.7%)으로 가장 많았다. 기아 3691건(29.7%), 르노코리아 1585건(12.8%) 순이었다. 수입차는 폭스바겐이 1627건(27.0%), 벤츠(947건·16.0%)와 BMW(813건·13.7%)가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