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전 세계 차량용 반도체 품귀난 가운데서도 올해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전 세계 완성차 업체 중 올 상반기 판매량 기준 3위에 올랐을 정도다. 반도체 수급난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수익성 높은 차 중심으로 판매 전략을 짠 덕분이다. 원홧값 하락에 따른 환율 효과도 봤다.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아이오닉5’와 ‘EV6’ 등 친환경차를 앞세워 꾸준히 성장한 것도 선전 배경으로 꼽힌다.
▶현대차·기아 선전의 3가지 이유… 비싼 차·해외 판매·친환경차
현대차는 올해 2분기 매출액 35조9999억원, 영업이익 2조9798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18.7%, 영업이익은 58%나 늘어났다. 증권가 예상치인 20%를 훨씬 웃도는 ‘어닝서프라이즈(깜짝실적)’였다. 상반기로 넓혀도 영업이익이 4조9087억원으로 5조원에 육박한다. 기아 역시 올 2분기 매출액 21조8760억원, 영업이익 2조2341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19.3%, 영업이익은 50%나 올랐다. 기아의 분기 영업이익이 2조원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기아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3조8406억원에 달한다.
양사 모두 판매량이 줄어드는 중에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모두 늘었다. 실적 선방의 이유는 크게 3가지가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우선 수익성 높은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 등에 집중했다. 현대차의 경우 투싼 하이브리드와 신형 팰리세이드가 힘을 보탰다. 실제 올 2분기 전체 판매량에서 SUV가 차지하는 비중은 52.4%로, 전년 동기(47.3%)보다 5.1%포인트 상승했다. 제네시스 SUV까지 포함하면 전체 판매량에서 SUV가 차지하는 비중은 55.1%에 달한다.
경기 안산시 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차 내부에 들어갈 모듈을 제작하는 모습.
기아도 고수익 차에 집중했다. 올해 2분기 전체 판매량에서 레저용 차(RV)가 차지하는 비중은 65.4%로 전년 동기(56.5%)보다 8.9%포인트나 올랐다. 신형 니로와 인기 차종인 스포티지 등이 판매량을 견인한 결과다. 전 세계적인 ‘카인플레이션(차+인플레이션)’으로 자동차 가격이 상승한 점도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북미·유럽·인도 등 해외 시장에서 선전한 점도 눈에 띄었다. 현대차는 올 2분기 도매 기준으로 북미에서 전년보다 6.6% 증가한 24만1000대, 유럽에선 2.9% 늘어난 15만1000대를 각각 판매했다. 인도 판매량 역시 같은 기간 17.7% 늘어난 13만6000대로 집계됐다. 수요는 많지만 공급 물량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인센티브 비용도 감소했다. 인센티브란 딜러들이 차를 판매할 때마다 지급되는 판매 장려금이다. 오토모티브뉴스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의 대당 인센티브는 지난해 2분기 2102달러(약 277만원)에서 올 2분기 620달러(약 82만원)로 71% 감소했다.
기아는 상반기 기준 서유럽에서 16.8% 증가한 29만4000대를, 인도에서 25.5% 증가한 12만2000대를 각각 판매했다. 특히 해외 판매의 경우 환율 효과를 톡톡히 봤다. 현대차의 경우 2분기 매출에서 2조1540억원, 영업이익에서 6410억원이 환율 효과로 분석됐다. 기아 역시 환율 효과로 5090억원 상당의 영업이익을 끌어올렸다. 올 2분기 실적에 적용된 달러당 원홧값은 평균 126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2.3% 떨어졌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강타한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을 유연하게 대처한 점도 실적 방어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완성차 업체의 상당수는 올해 판매량이 크게 감소했다. 전 세계 판매량 1위인 도요타그룹은 전년 동기보다 6% 감소, 2위인 폭스바겐그룹은 14% 감소했다. 스텔란티스(16%)와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17.3%) 등도 반도체 품귀난을 피해가지 못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올 상반기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5.1% 감소하는 데 그쳤다.
판매량 방어의 핵심으로는 ‘재고 관리’가 꼽힌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미주대권역담당 사장은 지난 5월 본지 인터뷰에서 “현대차는 유연한 경영으로 불확실한 대외 환경에서도 의미 있는 실적을 내고 있다”며 “어느 때보다 차량 재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완성차 업체들이 2~3개월 치 재고 물량을 유지하는 것과 달리 현대차 미국법인은 훨씬 적게 재고를 관리했다고 한다.
전동화 ‘퍼스트무버(선도자)’ 전략이 시장에 통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테슬라를 기점으로 전기차 대중화가 시작되자 재빠르게 뒤를 쫓았다. 현대차의 ‘아이오닉5’와 기아 ‘EV6’ 등이 대표적이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적용한 아이오닉5는 ‘2022 월드카 어워즈’에서 세계 올해의 차에 선정됐을 정도로 기술력 측면에서 인정을 받았다. 현대차는 올해 하반기 전기 세단 아이오닉6, 기아는 내년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V9을 각각 선보이면서 경쟁력을 더욱 끌어올릴 예정이다.
다만 하반기 경영 환경은 녹록지 않다. 구자용 현대차 IR 담당 전무는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코로나19 이후 대기수요 증가로 전반적인 수요는 견조하다”면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등으로 완성차 공급 부족 현상이 지속돼 자동차 판매 회복은 예상보다 더딘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 인상, 코로나19 재확산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올해 전 세계 자동차 수요는 연초엔 8000만 대 이상으로 전망했으나 7000만 대 중후반으로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부사장)은 경영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달러당 원홧값이 지금 같은 상태가 유지되지 않을 것이고 미국 시장 인센티브도 올라갈 것”이라며 “제품력과 브랜드 힘으로 수익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도 새로운 장애물로 등장했다. 미국은 8월 16일(현지시각)부터 북미에서 조립하지 않은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내용이 담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시행한다. 북미 조립 차량 21개 모델에만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991만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현대차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전기차 모델은 모두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대차그룹도 최근 정부와 함께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현대차·기아 돈 벌 때 부품 기업들은 ‘울상’
현대차·기아가 지난해부터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부품사들의 사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전 세계 공급망 위기로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 등이 모두 오르면서 벌어도 남는 게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차·기아를 중심으로 수직 계열화돼 있는 부품 업체 특성상 협상을 통해 원가 상승을 부품단가에 반영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최근 한국자동차연구원이 발표한 ‘자동차 부품 기업 2021년 경영성과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자동차 부품 기업이 전체의 36.6%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라는 것은 영업으로 번 돈으로 이자 등 금융비용조차 내기 어려운 잠재적 부실기업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10곳 중 4곳에 해당하는 수치다. 자동차연구원은 자동차 부품사 가운데 외부 감사 대상인 법인 1296곳의 재무제표를 나이스평가정보 데이터를 이용해 분석했다.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부품 업체 비중은 지난 2012년 19.6%에서 2018년 32.6%로 30%대를 처음 웃돌았다. 이후 2019년만 해도 30.3%였던 이 비중은 코로나19를 겪으며 2020년 43.1%로 높아졌다. 지난해는 전년보다는 줄었으나 2020년이 코로나19로 비상사태였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가장 높은 수준으로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자동차용 신품동력 전달장치·전기장치 제조업은 28.6%로 이자보상배율 1 미만 비중이 가장 낮았고, 내연기관에 들어가는 자동차 엔진용 신품 부품 제조업체 가운데 이자보상배율 1 미만 비중이 40.5%로 가장 높았다. 자동차연구원은 “외부차입 의존도가 높고 수익성이 낮은 소규모 중소부품 기업들의 퇴출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자동차 값 상승으로 부품 업체 매출액(151조원)은 전년보다 12.6% 증가했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은 전년(2.2%)과 유사했다. 규모가 클수록 영업이익률도 높았다. 대기업 영업이익률은 3.6%인 반면 중소기업은 1.6% 수준으로 조사됐다.
전체 부품 업체 중 약 35%는 매출액 증가율보다 원가 상승률이 더 높았다. 완성차 업체와 1·2·3차 부품 업체 등으로 짜인 ‘수직 계열화’ 구조 속에서 중소 부품 업체가 완성차 업체와 가격 협상을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상장 부품 기업 56곳의 대표 부품 79개의 가격 증가율 추이를 분석해보니 원자재 가격 폭등에도 일부 알루미늄 부품 등을 제외하고는 한 자릿수 증가율에 그쳤다. 가격이 전년과 비교해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떨어진 부품도 20여 개에 달했다. 자동차연구원은 “글로벌 부품사나 기술력이 높은 1차 부품사는 납품가 조정 협상 여지가 있으나 대부분 부품사는 특정 완성차 제조사와 1차 부품사에 대한 사업 의존도가 높아 협상이 어렵다”고 했다.
문제는 부품 업체들이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면서 기술개발 투자도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연구원이 부품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품 업체들은 자동차 부품 산업 육성·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로 ‘자금 부족’을 꼽았다. 실제 지난해 전체 부품 업체의 설비투자액은 3조7840억원으로 전년보다 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완성차 기업의 지난해 설비투자액은 3조504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2.3%나 증가했다. 인건비도 부담이다. 대기업인 부품사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줄어드는 반면 중소기업 부품사의 인건비는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미래차로 전환하는 시기에 상당수 부품사들이 낙오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부품 기업 중 미래차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10%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차 투자 자체가 돈이 많이 들고 시행착오를 감당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맹지은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자동차 산업이 코로나19 영향과 미래차 전환 가속화로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으나, 부품 기업들의 낮은 영업이익으로 인한 투자자금 부족 등 대응 여력이 제한적인 상황”이라면서 “성공적 미래차 산업 전환을 위한 부품 업체, 완성차 업체, 정부 공동의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