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메신저 라인의 해외 사업을 맡고 있는 라인플러스가 7월부터 해외 원격근무 등 근무 장소의 제약을 완전히 파괴한 ‘하이브리드2.0’ 근무제를 공식 시행한다. 이 회사가 내놓은 하이브리드2.0 근무제는 국내 어디서나 근무할 수 있도록 한 기존 근무제도를 발전시킨 형태다. 이에 따라 라인플러스 직원은 누구나 7월 1일부터는 한국 시각 기준 시차 4시간 이내의 해외 지역에서의 근무가 가능해진다. 회사 측은 법적 요소를 고려해 2023년 3월까지는 최대 90일의 기간 제한을 두지만 향후 상황을 고려해 확대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라인플러스는 하이브리드 근무 환경 조성을 위해 직원들에게 지원금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현금성 포인트 ‘라인 하이브리드 워크 포인트(LINE Hybrid Work Point)’를 지원한다. 라인 임직원은 연간 204만원(매월 17만원) 상당의 현금성 포인트를 활용해 리모트 업무 환경 구축 또는 사무실 근무 시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사무실도 하이브리드 근무 상황에 맞춰 전면 개편한다. 새 제도 시행 이후, 사무실은 단순한 업무 공간이 아닌 동료 간 대면 협업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중심적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다. 또 엔데믹(전염병의 풍토병화) 시대에는 직무별, 조직별 또는 개인별 최적의 근무 형태가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론 전사 공통의 획일적인 근무제도는 제시하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풀 리모트(100% 원격근무)’부터 ‘주 N회 리모트’까지 다양하게 조합해 선택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근무제를 이어간다는 설명이다.
이은정 라인플러스 대표는 “라인은 그간 일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임직원들이 자율과 책임에 기반하여 자기완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신뢰를 쌓아왔기에 이를 전제로 근무 유연성을 확대해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최적의 일하는 방식’을 지속해서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완전재택’ 전환 선도한 네이버
엔데믹 시대 정보통신(IT) 기업들의 업무 환경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재택근무제를 전면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가장 먼저 완전 재택근무 전환을 선언한 네이버의 결정은 코로나19 엔데믹 국면에서 적절한 근무 방식을 고심 중인 재계에 작지 않은 파장을 던졌다. 디지털 경제로 한국 경제의 체질이 바뀌는 상황에서 재택·사무실 근무가 적절히 배합된 이른바 ‘하이브리드’ 근무 방식은 소프트웨어(SW) 인재 확보에 필요한 선택이 아닌 ‘필수’로 부상했다는 분석이다. 트위터, 에어비앤비를 비롯한 일부 미국 테크 기업들이 영구적 재택근무 방침을 발표한 가운데 한국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엔데믹 시대에 맞춰 창의와 기업 혁신을 위해 일하는 방식부터 파격적인 변화를 선택하는 기업이 속속 나오고 있다.
네이버는 7월부터 사무실 출근과 재택근무를 직원들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새로운 근무제 ‘커넥티드 워크(Connected Work)’를 도입한다. 주 3일 이상 사무실에 출근(타입 O)할지, 주 5일 재택근무(타입 R)를 할지 6개월마다 고를 수 있게 했다. 직원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재택근무를 사실상 영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완벽한 재택근무’인 셈이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새 근무제는 계속 보완해야겠지만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제도화 의지를 보였다.
사실 최수연 네이버 최고경영자(CEO)로부터 사무실 출근과 재택근무를 직원 선택에 맡기는 과감한 결정이 나오기까지 네이버 내부에선 격렬한 찬반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의 주축인 2030 직원들을 중심으로 지난 2년간 재택근무에 ‘완벽 적응’하면서 사무실 출근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부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최 CEO 판단에 창업자인 이해진 GIO(글로벌투자책임자)가 수긍하면서 사무실 출근과 재택근무를 오가는 하이브리드만으로는 직원들 눈높이를 맞출 수 없다는 결정에 이르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네이버는 휴양지에서 근무하는 ‘워케이션’도 도입할 예정이다. 워케이션 제도를 통해 일본 도쿄, 강원도 춘천 등 네이버가 운영하는 거점 오피스에서 최대 4박 5일 동안 일하면서 휴양을 즐길 수 있다. 매주 추첨으로 워케이션을 누릴 10명을 선정할 계획이다. 네이버는 ‘셧다운제’도 도입해 월 연장 근로시간의 한도를 직군별로 기존보다 8시간 줄이기로 했다. 한도를 넘어설 경우 PC와 모바일 등 내부 시스템 접속을 완전 차단한다.
원하는 곳에서 한 달 일하기 프로그램에 참가한 라인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네이버의 이 같은 결정은 아직 새 근무 정책을 확정하지 않은 주요 대기업과 다른 정보기술(IT) 기업들에 벌써부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왜 우리 회사는 네이버와 같은 유연한 선택을 부여하지 않느냐”는 젊은 직원들 목소리가 더욱 거세질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네이버가 지난달 본사 직원을 대상으로 한 근무제도 선호도 조사에서 주 3회 이상 사무실 출근과 주 5일 사무실 출근을 선택한 직원의 비율은 11%에 그쳤다. 재택근무를 선택한 직원이 41.7%로 가장 많았다. 네이버 전체 직원 중 MZ세대 비율은 70%에 달했다.
▶‘메타버스 근무제’ 도입한 카카오
네이버와 함께 국내 플랫폼 업계 양대 산맥인 카카오는 ‘메타버스 근무제’를 도입한다. 6월 말 전면 재택근무제가 끝나는 카카오는 7월부터 ‘메타버스 근무제’를 도입하는 새 근무 정책을 꺼내들었다. 주 4일은 재택근무제를 유지하고, 나머지 하루는 출근하는 방식이다. 카카오는 2020년 2월부터 원격근무를 시행해왔다. 메타버스 근무제는 근무 장소에 상관없이 가상의 공간에서 동료와 항상 연결돼 온라인으로 가능한 모든 일을 하는 근무 방식이다. 텍스트, 음성, 영상 등 수단을 사용해 동료와 협업한다. 직원이 선택한 장소에서 자유롭게 근무하되, 음성 채널에 실시간 연결돼 소통하는 것이 기존 원격근무와 달라지는 점이다. 이를 위해 협업 도구인 ‘카카오워크’에 음성 기능을 더하기로 했다. 카카오는 주 5일 근무일 중 나흘만 메타버스 근무제를 도입하고, 나머지 하루는 오프라인 장소에 모여 회의를 하기로 했다.
새로운 근무제도 발표 하루 만에 전격 재검토 의사를 밝히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초 카카오는 7월부터 적용하는 새 근무제에 따라 업무 시간에 음성으로 팀원과 연결돼야 하고,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반드시 근무해야 한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지나친 감시라고 비판하며 카카오의 장점으로 꼽히던 ‘유연근무제’가 사실상 무너졌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네이버는 7월부터 직원들이 선택하는 새로운 근무제를 도입한다. 사진 최수연 대표이사.
이에 따라 카카오는 ‘메타버스 근무제’를 일부 수정해 내부에 공지했다. 사내 공지를 통해 음성채널 연결과 주 1회 오프라인 회의를 ‘의무’에서 ‘권장’으로 변경하고, 집중근무시간(코어타임) 제도는 기존 오후 1~5시에서 오후 2~5시로 1시간 단축한다고 밝혔다. 한편 카카오는 근무제 수정안과 함께 ‘놀금(출근하지 않는 금요일)’ 제도를 격주로 도입하는 것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놀금 제도가 도입된다면 수정된 메타버스 근무제와 함께 오는 7월부터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진정돼도 현재처럼 재택근무를 기본적으로 도입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판교를 중심으로 상당수 IT 업체가 다음 달까지 재택근무를 시행하기로 한 만큼, 점차 새로운 근무 방식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향후에도 전면적인 사무실 출근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낮은 분위기다. 실제로 NHN클라우드와 두레이는 ‘영구 주 4회 재택’을 도입했다. 현대카드와 한화투자증권도 재택근무를 상시화했다. SK텔레콤과 KT를 비롯한 통신사와 스타트업처럼 거점·공용 오피스를 마련해 ‘제3의 선택지’를 두는 기업도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수 디지털 인재 영입을 위한 유인책 차원에서라도 사무실 출근과 재택근무를 혼용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택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들은 거점 오피스, 메타버스 가상 오피스 등을 운영하면서 원격근무를 지속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3월부터 공유오피스 전문업체들과 손잡고 반포, 서초, 홍대, 일산, 광화문 등 수도권 일대 23곳에 거점 오피스를 확대 운영하고 있다.
스타트업들은 원격근무 도입에 적극적이다. 직방은 이미 지난해 2월 오프라인 사무실을 없애고 전면 원격근무를 도입했고 같은 해 7월 자체개발한 가상오피스 ‘메타폴리스’로 본사를 이전했다. 또 올해 5월에는 글로벌 가상오피스 ‘소마(Soma)’를 론칭했다. 대출 비교 플랫폼 ‘핀다’는 최근 ‘커스텀워크(개인 맞춤형 근무)’ 제도를 내놓았다. 커스텀 워크는 유기적인 협업과 개인이 중시하는 업무 스타일을 고려한 맞춤형 근무제도다. 직원들이 자신의 업무 스타일에 따라 주 3회 또는 주 2회 사무실 출근을 선택할 수 있다. 미용의료 정보 앱을 운영하는 ‘바비톡’도 근무지에 대한 제한이 없도록 했다.
▶게임 업계 “다시 사무실로”
반면 실적 악화로 비상이 걸린 게임 업계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상대적으로 보안에 민감하고 신규 지식재산권(IP) 개발이 시급해 출근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근무 방식을 코로나19 이전으로 돌리는 문제가 올해 경영의 최대 화두가 됐다. 게임은 수백 명에 달하는 개발 인력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콘텐츠를 완성해야 하는데 재택근무 방식으로는 개발 속도나 완성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회사는 전원 출근 방식으로 근무 시스템 개편에 나섰다. 2년 여간 재택근무 상황에서 지체됐던 신규 게임 출시에 속도를 내겠다는 취지다. 재택근무로는 게임 출시와 운영 과정에서 팀원이 뭉쳐 빠르게 소통하고 업무 집중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도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국내 대표 게임사인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6월부터 전 직원 전면 출근을 지시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게임사들 대부분이 신작 출시 지연과 업데이트 지연 문제로 실적이 우하향하는 시점에서 재택근무가 아닌 오프라인 출근을 통해 집중력을 늘려야 할 시점이 왔다”고 지적했다.
직방이 글로벌 가상오피스 공략을 위해 미국 법인 ‘소마 디벨롭먼트 컴퍼니’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게임사에 따르면 주요 게임사가 ‘대면근무’로 빠르게 전환하는 것은 게임 경쟁력 때문이다. 일부 대형 게임사가 예상치를 크게 밑도는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넷마블이 적자를 내고 중견게임사에서도 충격에 가까운 1분기 실적을 발표하자 게임 업계에 전방위적으로 위기론이 불거지고 있다. 사실 코로나19 확산으로 역대 최대 호황을 누렸던 게임 업계는 엔데믹 국면에서 역풍을 맞고 있다. 게임사들은 주가 하락과 신작 부재, 인건비 상승이라는 3가지 악재에 직면해 있다. 앞서 방준혁 넷마블 의장도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영향을 받아 게임 개발에 어려움을 겪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GDC)’ 조직위원회가 전 세계 개발자 약 3000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상황으로 게임 개발이 지연되는 상황을 겪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44%에 달했다. 게임사들은 전면 출근을 통해 신작 공개로 반등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대면근무로 전환되고 개발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하반기부터 신작 출시가 줄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