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최태원 ‘K수소 동맹’, ‘코리아 어벤저스’ 떴다… 3000조 시장 공략 위해 15개 국내 대표기업 뭉쳐
서동철 기자
입력 : 2021.09.29 10:03:10
수정 : 2021.09.29 10:03:31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9월 8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 수소차 ‘넥쏘’를 타고 나타났다. 한국판 수소위원회 격인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 창립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전날 “수소를 편리하게 쓰는 대중화 시대를 2040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정 회장의 등장과 함께 신성장 산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수소경제’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고조됐다. 이날 현장에는 정 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부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사장, 허세홍 GS그룹 사장, 구동휘 E1 대표,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 이규호 코오롱그룹 부사장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총출동했다.
뜨거운 관심과 기대 속에 15개 기업이 합류한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은 이날 공식 출범했다. 한국 대표기업들이 ‘수소 강국 코리아’를 향한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업들은 탄소중립이라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을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삼고, 수소경제를 선점하기 위해선 기업들이 우선 힘을 모아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그룹 총수들은 서밋 창립총회에서 각자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수소경제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정의선, “기업 힘 모으면 못할 것 없다”
정의선 회장은 이날 “우리나라는 유럽, 일본 등에 비해 수소 산업 생태계의 균형적인 발전이 늦었지만,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만큼 못할 것도 없겠다는 자신감도 든다”며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이 개별 단위의 기업 경쟁력뿐만 아니라 기업, 정책, 금융 부분을 하나로 움직이는 역할을 함으로써 수소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리딩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수소 산업은 기후변화 대응뿐만 아니라 한국의 새로운 산업이 되어 미래 일자리 창출 등 사회 기여, 나아가 글로벌 시장 진출을 통한 경제 기여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부생수소 생산능력, 암모니아 인프라스트럭처 확대 등 수소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며 “롯데는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도 “철강은 금속 소재 중 단위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적지만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많아 연간 총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수소환원제철을 상용화해 철강 제조 공정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세계 1위로 성장한 우리나라 수소발전 시장을 주도해왔으며 터빈, 드론과 같은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며 “그린수소 생산, 액화플랜트 등에서 핵심 역량을 확보하면서 적극 키워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 재계의 차세대 리더들도 수소 시장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은 “혁신적 변화인 만큼 수소경제로의 전환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지만 세계 주도권의 향방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 기업들에 무한한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은 “효성은 수소 생산과 공급, 저장, 활용 등 수소 생태계를 망라하고 있다”며 “향후 배터리와 연료전지, 모빌리티 차체 등 미래 에너지 분야 소재·부품 사업에도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부사장은 “유기적인 밸류체인 구축은 수소 생태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그룹 계열사들의 인프라를 토대로 국내 기업들과 시너지를 발휘해 수소경제 활성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수소(H2)는 연소할 때 에너지와 물만 배출하는 청정에너지다. 수소 1g의 발열량(에너지)은 석유의 3배에 달할 정도다. 오염물질을 발생시키지 않으면서도 효율이 높은 최적의 에너지원인 셈이다. 특히 전 세계가 목표로 하는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수소에너지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2050년 수소경제 2조달러 넘어서
수소 시장의 성장성을 주목하고 세계 각국도 앞다퉈 투자에 나서고 있다. 2050년 세계 수소경제 시장 규모를 놓고 글로벌 컨설팅사인 딜로이트는 2조600억달러, 맥킨지는 2조5000억달러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 수소 기업 협의체인 수소위원회와 맥킨지가 최근 발간한 ‘수소 인사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수소와 관련된 대규모 프로젝트는 올 7월 현재 359건에 달한다. 불과 5개월 만에 3배가량 증가한 셈이다. 수소위원회는 이들 프로젝트를 근거로 2030년까지 전 세계 수소 사업 투자 규모가 5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연합(EU)은 전체 에너지에서 수소가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2~3% 수준에서 2050년까지 14%로 확대하기 위해 청정수소 생산에만 최소 1800억유로를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미국은 2030년까지 수소차 누적 보급 120만 대, 수소충전소 4300개 구축을 골자로 하는 수소경제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2030년까지 수소차 100만 대와 충전소 1000기를 설치하고 수소버스, 발전용 연료전지 연구개발(R&D)도 강화할 계획이다. 일본도 지난해 12월 ‘그린성장 전략’을 발표하며 수소 발전 확대를 발표하고, 향후 10년 동안 3조원을 수소 R&D에 투자하기로 했다. 현재 160여 곳인 수소충전소도 2030년까지 1000개로 확대해나가기로 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내빈들이 현대자동차그룹 부스의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수소 생태계서 기업 간 역할 분담 필수
국내 기업들도 시장 선점을 위해 과감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에 참여한 15개사 중 현대자동차·SK·포스코·롯데·한화·효성 등이 2030년까지 투자하겠다고 밝힌 금액은 줄잡아 47조8000억원에 달한다. 금액을 공개하지 않은 나머지 기업들까지 합하면 그 금액은 5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안 요소도 있다. 에너지원으로 쓸 수소를 얻기 위해서는 별도의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얻을 경우 수소를 얻기 위한 전기 생산 과정에서 탄소가 발생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수소 사업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관련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기초·원천 기술 확보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종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청정신기술연구소장은 “반도체, 철강, 조선 등 모두 앞선 국가들이 있었고 우리는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며 “하지만 수소는 우리가 가장 앞선 분야인 만큼 정부와 기업, 학계, 연구소 등이 함께 방향을 설정하고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인 만큼 기업들이 적극적인 합종연횡을 통해 투자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수소의 ‘생산-유통-활용’에 이르는 가치사슬(밸류체인) 전반에 걸친 사업 추진을 통해 수소 사업이 현실화될 미래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회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딜로이트컨설팅은 “글로벌 선도국·선도기업 들이 현재의 수소 패권경쟁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바로 대형화(Scale-up)와 속도감 있는 전개”라며 “공급, 수요, 인프라 영역의 다양한 기업들이 적극적인 협업과 공동투자, 공동기획을 논의해 가치사슬 전후방의 불확실성을 효과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특히 협의체가 중심이 돼 공동투자를 통한 해외 청정수소 공급기반을 확보하고 수소 공급, 활용기업 간 협력을 통한 효과적이고 신속한 국내 생태계를 조성하며 수소 가치사슬 전반의 핵심기술을 조기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1수소모빌리티+쇼’에서 이동형 수소충전소가 전시되어 있다.
실제 기업들은 활발한 협업 작업에 나서고 있다.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 주간사인 현대차그룹·SK그룹·포스코그룹은 일찌감치 동맹을 결성한 상태다. 현대차와 SK는 지난해 수소 사업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현대차는 SK에서 생산한 수소를 활용하고, SK는 현대차에서 생산한 수소차를 제공받으며 각자 강점을 살려 윈윈하는 협업 구도다. 이에 더해 SK가 물류 서비스 거점에 설치하는 상용차용 수소충전소에는 현대차가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공유한다.
현대차는 포스코와도 손을 맞잡고 포스코의 철강 물류 특성을 고려해 수소 상용 트럭을 개발하기로 했다. 포스코는 제철소에서 생산되는 부생수소를 수소트럭의 에너지원으로 제공한다. 아울러 포스코는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제철과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개발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
또 SK종합화학은 포스코와 수소전기차를 비롯한 미래 모빌리티 신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포스코가 지닌 강재 관련 노하우와 SK종합화학이 보유한 플라스틱 소재 기술을 접목해 수소전기차에 적합한 튼튼하면서 가성비 좋은 신소재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포스코그룹은 전날 GS그룹과 수소 사업 전반에 걸친 협력을 골자로 한 양자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롯데그룹 계열사 롯데케미칼은 SK가스와 연내 합작사 설립에 나섰다. 이들은 기체수소충전소 건설과 수소연료전지발전소를 시작으로 향후 협력 체계를 확대해 액화수소 공급으로까지 이어지는 사업 모델을 공동으로 구축한다.
두산그룹은 세계에서 가장 앞서 상용화에 나선 수소연료전지와 발전용 터빈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수소가스터빈 개발을 통해 국내 대기업과 잇달아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두산퓨얼셀은 한화에너지와 세계 최대 규모의 대산 수소연료전지발전소를, GS파워와 함께 부천 연료전지발전소를 건설하는 한편 한국조선해양과 손잡고 선박용 친환경 연료전지 공동 개발에도 나섰다. 수소터빈 분야에서는 SK가스, 포스코 등과 공동 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이 밖에 효성그룹은 국내 1호 수소충전소를 현대차 남양연구소에 구축하는 등 현대차와 함께 수소전기차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에 힘쓰고 있다. 코오롱그룹 역시 수소 저장과 운송에 필요한 압력용기 사업 등에 적극 뛰어들기로 했다.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국제적인 공조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수소융합얼라이언스(H2KOREA)는 주요국 수소산업협회와 ‘글로벌 수소산업협회 얼라이언스(GHIAA)’ 발족을 위한 공동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수소융합얼라이언스(H2KOREA)가 주도한 GHIAA는 한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연합, 독일, 호주, 캐나다, 프랑스, 노르웨이,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칠레, 중국, 싱가포르 등 14개 국가가 참여한다. 공동의향서에는 수소경제 조기이행 및 수소 산업 활성화를 위해 민간 활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강화하기 위한 국제 수소 산업 협력 활동 추진을 주요 골자로 한다. 각 국가의 수소 산업 관련 정책·규제·산업·보급 관련 정기적 정보 교류 추진, 다양한 글로벌 프로젝트에 대한 공동 개발 및 실증 프로젝트 발굴·추진, 각국의 민간수소협회 간 정기 교류회 주최 및 참여를 통한 교류 활성화, 2022년 하반기 정식 발족 전까지 H2KOREA를 임시 사무국으로 지정 등의 내용을 담았다.
GHIAA는 앞으로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친 뒤 2022년 중 정식 발족식을 가질 계획으로 민간 중심의 교류 플랫폼, 데이터 허브 구축과 더불어 국제 수소 산업 협력·지원 기반을 마련하여 글로벌 수소경제 시장의 민간투자를 촉진하고 수소 산업과 시장 활성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문재도 H2KOREA 회장은 “공동의향서 체결을 통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핵심수단인 수소 산업 분야에서 견고한 정부와 민간의 파트너십 구축 지원 및 국제협력 활성화를 위한 컨센서스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민·관 차원의 수소협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GHIAA를 통해 산·학·연 간 소통을 촉진하고 국제협력 시너지를 창출하여 글로벌 수소경제 조기실현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