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톤 이상의 무게에 문의 두께만 23cm. 게다가 티타늄과 특수 알루미늄 및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차체는 로켓의 공격에도 안전하다. 또 타이어가 펑크 나도 60km/h 이상의 속도로 주행이 가능하며, 차체 내부에는 통신시설을 갖추고 있어 언제든지 외부와 연락이 가능하다.’
언뜻 보면 괴물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위의 설명은 바로 미국 대통령이 타는 의전차량의 성능을 보여준다. 총격은 기본이고, 로켓공격과 화학공격에도 안전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이동이 가능하다. 바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타는 ‘오바모빌(Oba-mobile)’이다. 오바모빌은 사실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인 GM그룹 산하의 럭셔리 디비전인 ‘캐딜락’을 기본으로 설계됐다. 역대 미 대통령의 의전차량을 ‘캐딜락 원’으로 부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캐딜락만 미 대통령의 의전차량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 대통령의 의전차량으로 가장 많이 애용됐던 차는 GM의 경쟁사인 포드의 링컨이었다. 실제 링컨은 미국 32대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방탄 의전차를 납품한 이후 최근까지 미 대통령의 의전차량으로 명성을 쌓았다.
미 대통령의 선택을 받은 최고의 럭셔리카 링컨과 캐딜락. 대통령 의전차량을 놓고 벌인 두 회사의 100년 경쟁을 살펴봤다.
링컨 1972 Presidential Limousine
(위)순종황제의 어차였던 캐딜락 (아래)캐딜락 DTS
헨리 M. 릴랜드가 만들어낸 캐딜락과 링컨
미국 최고의 럭셔리카로 평가받는 캐딜락과 포드는 헨리 마틴 릴랜드라는 한 사람 손에 의해 설립됐다. 영국인이었던 그는 어릴 적부터 정밀 가공 기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20대 중반에 미국으로 건너가 디트로이트 기계 공장을 설립했다.
하지만 이 공장에서 생산한 엔진이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납품이 되지 않자, 곧바로 자동차 생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당시 헨리 포드가 운영하고 있던 디트로이트 오토모빌 컴퍼니를 인수해 1902년 ‘캐딜락’을 설립했다. 회사명을 캐딜락으로 지은 것은 대항해 시대 아메리카 대륙에서 디트로이트 시를 개척했던 모스 캐딜락 가문에서 따왔다.
릴랜드는 바로 이곳에서 자동차 역사에 큰 흔적을 남겼다. 바로 부품 표준화에 성공한 것. 당시 개발됐던 자동차들은 마차 스타일에 고풍스런 디자인을 가졌지만, 수작업을 통해 완성됐다. 부품이 고장 나면 차량 자체를 멈춰세워야 했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최초로 부품 표준화에 성공했다. 당시 1기통 10마력 엔진을 장착해 48km/h의 속도를 냈던 모델-A를 기초로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GM의 설립자인 월리엄 듀런트를 만나게 된다. 릴랜드는 듀런트가 “캐딜락을 최고급 차종으로 개발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캐딜락을 GM그룹에 합병시킨다. 하지만 두 사람의 협력관계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깨졌다. 항공기 엔진 개발 문제를 놓고 불협화음을 냈기 때문이다.
GM을 나온 릴랜드는 다시 아들과 함께 링컨 모터스라는 항공기 엔진 제작회사를 설립했다. 회사 이름인 ‘링컨’은 릴랜드가 처음으로 투표했던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에서 따왔다. 3년 후 릴랜드는 다시 업종을 자동차 제작으로 바꾼다. 그리고 첫 모델인 V8엔진을 장착한 L-시리즈를 선보였다. 하지만 낮은 연비와 평범한 디자인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에 대공황의 그늘이 지면서 차량 판매량도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릴랜드는 당시 ‘포드-T’로 출시하며 자동차업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던 헨리 포드에게 800만달러를 받고 링컨을 넘겼다. 과거 헨리 포드로부터 자신이 회사를 사들였던 것과 반대로 이제는 자신의 회사를 헨리 포드에게 매각한 것이다. 헨리 포드는 릴랜드의 ‘링컨’을 곧바로 포드의 럭셔리 디비전으로 삼았다.
중국 홍치
링컨 타운카
중후한 캐딜락 vs 우아한 링컨
캐딜락과 링컨의 대결은 이후 더욱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GM의 캐딜락이 중후함과 엄격함이 강조된 직선 위주의 디자인을 선호했던 것과 달리, 링컨은 우아함과 유려함이 돋보이는 곡선미를 주로 디자인에 사용했다.
특히 1922년 헨리 포드의 아들인 에드셀 포드가 곡선미를 살린 ‘타운카’를 선보였다. 이 차는 토마스 에디슨과 같은 저명인사들의 애마로 사용됐다. 1940년에는 12기통 4.8L 엔진을 사용하는 링컨 컨티넨탈이 출시됐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모델은 링컨을 럭셔리카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대통령 의전차량으로 먼저 선정된 차는 GM의 캐딜락이었다. 1929년 미국 31대 대통령에 선출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캐딜락을 대통령 전용 의전차량으로 지정했다.
물론 후버 대통령 이전에도 대통령 의전차량은 있었다. 미국 대통령 중에서 최초로 자동차를 탄 사람은 27대 월리엄 태프트이다. 그는 미국 휘장이 붙은 증기차를 주로 애용했다. 태프트 대통령은 1905년 일본과 맺었던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당사자로 잘 알려져 있으며, 당시 이 밀약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야 했다. 태프트 대통령의 뒤를 이은 28대 우드로 닐슨 대통령은 ‘피어스 실버 에로우’라는 고급 수제 자동차를 애용했다. 또 29대 위렌 하딩 대통령 역시 ‘패커드’라는 럭셔리카를 즐겨 탔다.
후버 대통령에 이어 32대 대통령에 오른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캐딜락 대신 링컨 컨버터블을 의전차로 선택했다. 특히 그가 선택한 링컨은 세계 최초로 방탄 기능이 적용됐는데, 1939년 저격사건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는 4선 연속 대통령에 당선되는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는데, 계속 링컨을 의전차량으로 선택해 이후 대통령들 역시 대부분 링컨을 의전차량으로 지목했다. 35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도 링컨을 선택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재미난 일화가 있다. 대통령이 되기 전 상원의원 시절 케네디는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에 의전차량을 구매하려고 했는데, 거절당했다는 것. 이후 대통령이 된 후 벤츠가 의전차량을 제작하겠다고 했지만, “미래를 볼 줄 모르는 회사의 차는 탈 이유가 없다”며 링컨을 의전차량으로 택했다고 한다.
링컨의 기세에 눌려왔던 캐딜락은 클린턴 대통령 시절 ‘캐딜락 원’으로 불리는 새로운 의전차량을 제공하며 다시금 대통령의 차로 선택받게 된다. 이 차는 ‘움직이는 백악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캐딜락 원에서 내리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클린턴의 선택을 받은 캐딜락은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이어 현재 오바마 대통령의 의전차량으로 제공되며 명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20세기 중반이 링컨의 시대였다면, 20세기 후반과 2000년 이후는 캐딜락의 시대인 셈이다.
에쿠스 탄 박근혜 대통령, 자국 의전차 시대 열어
국내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나라 최초의 의전차는 1903년 고종황제가 미국 공사 알렌을 통해 구입한 ‘어차(御車)’였다. 하지만 이 차는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 이후 사라져 기록이 전무한 상태다. 이후 고종황제는 1911년 황실용 어차로 미국 캐딜락 리무진을 들여오는데, 이 차가 바로 국내 최초의 의전차량이다.
대한민국 설립 이후 초대 대통령에 오른 이승만 전 대통령도 캐딜락(플리트우드 62세단)을 선택했다.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캐딜락 플리트우드 75 리무진)과 전두환 전 대통령(캐딜락 플리트우드)도 캐딜락을 의전차로 사용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임기 당시 링컨 컨티넨탈 리무진도 같이 의전차로 사용했는데, 이 차량은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도 애용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S600 리무진을 선택했다. 이 차는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차로도 유명세를 치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독일 BMW그룹의 7시리즈 시큐리티 760Li를 탔다. 취임 초기 김 전 대통령의 벤츠 S600을 애용했지만, 이후 BMW로 바꾸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안전성이 더욱 강화된 벤츠 S600 가드를 선택했다. 당시 최고의 안전성을 가진 차로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의 정부 인사들과 왕실의 의전차량으로 선택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는 최초로 국산 방탄차인 에쿠스를 취임식 의전차량으로 선택했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의 차량이기도 한 에쿠스 리무진 방탄차는 순수 국내기술로 만들어낸 최초의 방탄 의전차량으로 의미가 있다.
중국 홍치
다른 나라 대통령은 어떤 차를 탈까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왕족들은 대부분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S클래스를 의전차량으로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에서 생산 중인 독자 브랜드가 있는 경우 해당 브랜드의 플래그십모델을 의전차량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일본이다. 일본 황실과 수상은 도요타가 만든 수제작 의전차량은 센추리 로얄을 탄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 내 자동차 회사들이 대부분 다른 나라로 경영권이 넘어갔지만, 자국 브랜드인 벤틀리와 롤스로이스를 의전차량으로 선택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를 의전차량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란치아 테시스도 가끔 애용한다. 중국은 2009년부터 주석 의전차량으로 V12엔진을 장착한 홍기를 선택했다. 롤스로이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홍기는 우람한 차체가 인상적이다.
이 밖에도 대형 차량을 만들지 않는 프랑스의 경우 르노의 벨사티스를 의전차량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로마 바티칸 교황은 벤츠가 특수 제작한 ML 캐빈룸을 의전차량으로 애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