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8일(현지시각) 미 샌프란시스코 유니언스퀘어 인근 웨스틴 샌프란시스코 호텔에서 열린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SDC)’. 삼성전자에서 개최하는 첫 개발자 콘퍼런스였다. 개막 시작 시간은 오전 11시.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조금 일찍 행사장에 도착했다.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처음이기 때문에 개발자들이 얼마나 참석할지 몰라 약간 긴장하는 분위기였다.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에 참석함에 따라 기자는 애플, 구글, 인텔에 이어 삼성까지 글로벌 IT 기업의 핵심 개발자 콘퍼런스에 모두 참석하게 됐다. 이 같은 경험으로 애플, 구글, 인텔, 삼성의 개발자 콘퍼런스 분위기, 차이점과 공통점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애플은 매년 6월 세계개발자콘퍼런스(WWDC : Worldwide Developer Conference)를 개최하고 구글은 ‘구글 I/O’란 이름으로 5월 행사를 연다. 인텔은 ‘인텔개발자포럼(IDF : Intel Developer Forum)’이란 이름으로 대회를 연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빌드(Build)’란 개발자 콘퍼런스를 지난해부터 개최하기 시작했다.
애플의 WWDC는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 맥북에어, 아이폰 등을 발표한 행사로 유명해서 1600달러에 달하는 입장료는 1~2분 만에 매진되기도 한다. 구글의 I/O는 역사는 짧지만 참석할 때마다 크롬북, 넥서스 스마트폰, 넥서스 태블릿 등 입장료에 필적할 만한 ‘선물’을 주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구글I/O에서는 구글TV와 구글 글라스 등이 발표된 바 있다.
이들이 개발자 포럼을 개최하는 장소는 예외 없이 샌프란시스코다.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미국 동부의 뉴욕이나 서부의 시애틀이 아닌 ‘샌프란시스코’에서 개발자대회를 개최한 이유는 딱 한가지다. 이 지역에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개발자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너제이까지 차로 한 시간 걸리는 거리에 레드우드 시티(에버노트), 멘로파크(페이스북), 팔로알토(스탠퍼드 대), 마운틴뷰(구글, MS), 서니베일(야후, 모토롤라), 산타클라라(인텔), 쿠퍼티노(애플) 등의 각 시에 글로벌 기술 기업들의 본사가 몰려 있다.
이 회사들은 우수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채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또 이 행사를 통해 더 많은 엔지니어들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구글, 애플, MS 모두 소프트웨어는 생태계 싸움임을 알고 있다. 누가 더 많은 독립(Third Party) 개발자들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앱스토어가 풍부해지고 이는 더 큰 시장이 돼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지난해 애플 WWDC에서는 애플의 ‘지도’ 서비스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서비스 시연 장소는 당연히 샌프란시스코였다. 올해 구글 I/O에서는 음성 검색, 즉 말로 하는 검색 서비스를 선보였다. 서비스 시연 장소는 구글 본사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산타크루즈였다. 개발자들이 자주 놀러가는 해변 도시이기 때문이다. 유튜브 등을 통해 행사를 보는 개발자들은 샌프란시스코나 실리콘밸리 지명이 익숙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개발자대회 효과이기도 하다. 이처럼 개발자대회는 미국의 플랫폼 회사, 그리고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전유물이었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제조업체로는 처음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삼성의 첫 개발자포럼
올해 삼성개발자콘퍼런스(SDC)는 삼성전자가 실시하는 첫 번째 대규모 콘퍼런스 형태의 유료 개발자 행사이며 하드웨어 제조업체 중 최초로 이러한 대규모 개발자 행사를 진행한 것이었다. 첫 행사 치고는 많은 인원인 1300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구글, 애플의 3000~4000명 규모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처음’이라는 상징성에 비춰봤을 때 결코 적지 않은 숫자라고 평가받고 있다.
삼성개발자콘퍼런스는 스마트폰, 스마트 TV 등에서 글로벌 1위인 삼성전자가 하드웨어에 이어 소프트웨어 리더로 발돋움하는 행로를 본격화한 것이다. 28일부터 이틀간 7개 카테고리, 50개 세션에서 스마트폰·태블릿, 스마트TV, 카메라 등 삼성전자의 전 제품을 아우르며 개발자와의 교류를 위한 장이 열렸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TV, 카메라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의 경쟁력 있는 디바이스 플랫폼을 기반으로 2011년부터 외부 개발자들을 위해 디바이스 플랫폼의 주요 기능을 개발자도구(SDK)로 제공해 왔는데 이번 대회를 통해 종류를 대거 늘렸다.
삼성 모바일 기기 이용자들이 근거리 내에서 함께 음악, 게임을 즐기거나 자료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삼성 그룹플레이 SDK’와 각각의 장소에 있는 기기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어디서나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삼성 커넥티비티 SDK’를 새롭게 공개했다. 또 스마트 TV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한 ‘삼성 스마트 TV SDK’의 신규 버전과 스마트 TV와 모바일 기기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연동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는 ‘삼성 멀티스크린 SDK’ 등 스마트 TV 관련 내용도 소개했으며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의 보안을 강화할 수 있는 ‘녹스(KNOX)’ 플랫폼을 기업 고객에 이어 일반 개발자들에게도 소개했다.
삼성전자가 지난 10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최초 글로벌 개발자 행사인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에 개발자, 파트너사, 현지 미디어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됐다.
삼성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정보기술(ICT) 산업 구조는 ‘언어’와 같은 운영체제(OS)와 그 위에 있는 미들웨어 및 콘텐츠 그리고 이를 기계에서 구현해주는 하드웨어 등 3단계로 구성 돼 있다.
애플은 OS(iOS)와 미들웨어, 콘텐츠, 하드웨어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소비자에게 일관되게 전달하는 거의 유일한 회사다. 구글은 OS(안드로이드)와 서비스(검색, 지도, 구글플러스 등)를 갖추고 있지만 하드웨어가 없다. 그래서 모토롤라를 인수한 것이다. MS도 OS(윈도)와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지만 하드웨어를 갖추지 못해 최근 노키아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처럼 소비자에게 통일된 서비스 이미지를 주기 위해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 미들웨어,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체제를 갖추는 것은 산업의 메가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다 결제 서비스를 더하면 사실상 다른 생태계로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미국 플랫폼 기업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하드웨어가 있지만 소프트웨어, 서비스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어떻게 보면 ‘약하다는 평가’가 아니라 존재감이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그동안 강조를 안했을 뿐이지 약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홍원표 삼성전자 미디어솔루션센터(MSC) 사장은 매일경제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갤럭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는 SW와 하드웨어(HW)가 결합된 정수다. 삼성처럼 세계 1위가 되기 위해서는 SW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삼성의 연구개발(R&D) 인력 6만명 중 60%가 SW 엔지니어다. 그래도 배가 고프다. 삼성은 앞으로 SW 중심 회사가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삼성이 소프트웨어에 처음으로 뛰어든 것은 아니다. 삼성은 갤럭시 스마트폰 등장 이후 스마트기기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건강한 스마트 디바이스 생태계 구축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앱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개발·소통하고 수익을 내도록 지원하며 생태계 조성에 노력해 왔다.
홍 사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미디어솔루션센터’는 이 같은 소프트웨어 전략의 핵심이다. MSC는 HW뿐만 아니라 SW와 서비스를 통해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2008년 설립된 조직이다. 당시 최지성 부회장 지시로 만들어졌다. 애초에는 무선사업부(모바일) 부문의 SW를 담당하는 ‘모바일솔루션센터’로 지어졌으나 이를 전사의 SW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확대하기 위해 ‘미디어솔루션센터’가 됐다.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각종 콘텐츠 및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 스토어 등 서비스 전반을 개발하고 기획하고 있으며 국내뿐 아니라 미국 영국 싱가포르 브라질 중국 러시아 등 지역별로 현지 거점을 중심으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홍원표 사장은 “이 같은 서비스를 위해 한국 본사는 글로벌 콘텐츠 서비스 전략과 추진 방향을 수립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MSC 아메리카 등 해외는 지역 특성에 맞는 로컬 특화 콘텐츠 및 서비스를 발굴해 제공한다”며 “이를 위해 해외 10개 지역에 MSC 지역 거점을 세웠다”고 소개했다.
MSC는 지난 2012년부터 ‘삼성 개발자 데이(Samsung Developer Day)’라는 당일치기 콘퍼런스를 열어 최신 기술과 서비스 홍보를 포함해 삼성 플랫폼, 서비스, 비즈니스 현황 및 정책 등의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삼성 개발자 데이’는 2012년부터 15회 열렸고 지금까지 총 5000여 명이 참여했다.
2013년에는 ‘글로벌 개발자 교육 프로그램(Samsung Developer Training)’을 신설, 삼성의 개발 도구를 활용한 앱 개발 교육 등을 20회 이상 실시했으며 참신하고 독창적인 앱 발굴 및 육성을 위한 공모전도 꾸준히 시행했다.
2010년부터 글로벌, 지역별로 ‘삼성 스마트 앱 챌린지(Samsung Smart App Challenge)’를 실시해서 S Pen 등 삼성 단말에 특화된 기능을 활용한 앱 개발을 유도했고 갤럭시 노트3와 갤럭시 노트10.1 2014 에디션을 타깃으로 S Pen을 활용한 앱 공모전을 열었다.
개발자 육성을 위해 지난 2010년 8월 서울, 2011년 4월 대구에 개발자지원센터 ‘오션(OCEAN)’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이 센터에는 이용자 3만명, 삼성 기술 교육생 2000여 명을 배출하며 ‘오션’을 통해 100여 개 독립 개발사가 창업하고 190여 개의 앱이 개발된 것도 삼성의 자랑이다. 구글, 애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삼성이 ‘초짜’는 아니라는 것이다.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에 참석한 STA 법인장 이종석 부사장이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삼성의 플랫폼 전략은
삼성의 소프트웨어 전략은 삼성이 스마트폰과 스마트 TV의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개발자들의 콘텐츠가 서로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존 플랫폼 업체들은 운영체제 중심, 즉 iOS나 안드로이드에 중점을 두고 디바이스를 봤지만 삼성의 생각은 “어차피 삼성 디바이스, TV일테니 삼성 중심으로 모여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삼성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삼성 디바이스만 5억대가 넘는다.
이번 SDC에서 공개된 소프트웨어도 모바일과 TV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삼성 멀티스크린 SDK’나 사용자들에게 콘텐츠의 접근성을 높여 주는 커넥티비티(Connectivity) 기술들(그룹플레이, 스마트 커넥티비티, Mobile SDK의 Chord Package 등)도 이점에 초점을 맞췄다. 삼성 워치온 (멀티스크린 기반의 비데오 서비스), 삼성 월렛 (모바일 커머스 서비스) 챗온 (IP기반의 메신저 서비스)에 이어 올 연말에는 소비자 행동 패턴과 주변 상황에 기반한 서비스 등 삼성전자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빅데이터 서비스도 공개할 예정이다.
이는 OS보다는 ‘미들웨어’ 중심의 플랫폼 전략이다. OS가 안드로이드이건 윈도폰이건 타이젠이건 상관없이 삼성의 일관된 UX와 삼성계정, 빌링, 검색을 통해 삼성 서비스에 접근하고 통합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서비스 플랫폼 전략’으로 부르고 있다. 애플 iOS, 구글 안드로이드와 같이 핵심 모바일 OS가 없다면 서비스를 사실상 플랫폼화해서 통합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구글의 웹브라우저 ‘크롬’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구글의 노트북 ‘크롬북’이 서비스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을 열었으며 이제 삼성전자가 그 길을 가려는 것이다. 사실상 ‘갤럭시OS’를 구축하려는 삼성의 행보는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