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동에 전셋집을 구한 맞벌이 2년차 주부 권미경씨는 요즘 짐 하나를 덜었다. 매주 남편의 셔츠 세탁비로 1만5000원(5벌×3000원)을 지출하던 권씨가 이사 후 지출하는 금액은 4950원(5벌×990원). 동네세탁소에서 들쑥날쑥하던 정장이나 스웨터 세탁 요금도 각각 4900원, 2200원으로 규격화돼 있어 가계부에 세탁비를 따로 묶어둘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1000원 이상 소액은 카드결제가 가능해 굳이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지 않아도 세탁이 가능했다. 권씨가 이용하는 세탁소는 ‘크린토피아’. ‘와이셔츠 한 벌 990원’으로 기억되는 세탁전문 프랜차이즈다.
높은 품질과 낮은 가격으로 틈새시장 공략
본사 사옥
비단 권씨뿐 아니라 싱글족과 맞벌이 부부 사이에 크린토피아(www.cleantopia.com)의 인기가 상종가다. 여타 세탁소에 비해 깔끔한 인테리어와 전산화된 시스템이 신뢰를 준다면 낮은 가격에도 만족스러운 세탁 품질이 입소문을 내고 있다. 동네 어귀 26㎡ 남짓한 좁은 공간이 일터지만 전국적인 네트워크는 결코 작지 않다. 올 1월 기준 전국 가맹점 수만 1447개. 세탁공장인 지사는 89개나 된다.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본사직원만 150명, 지난해에 매출 1300억원을 올리며 국내 세탁업계를 평정한 탄탄한 프랜차이즈 체인이다.
“크린토피아(Cleantopia)는 세탁을 통해 깨끗한 세상을 구현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상호입니다. 동시에 주부들을 힘든 세탁과 다림질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의지도 담고 있어요(웃음). 매일 쏟아지는 세탁물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해결해 행복을 전하는 회사, 창업 초기의 목표였습니다.”
크린토피아의 이범택 회장은 상호의 의미를 전하며 창업초기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대학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한 이 회장은 업계에서 섬유전문가로 통한다. 1989년 염색과 석유 가공이 주업인 보고실업을 창업해 국내 최초로 울 제품 염색가공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섬유산업의 앞날이 불투명해지자 새로운 사업방향을 모색했다. 그때 이 회장의 눈에 들어온 아이템이 세탁사업이다.
“일본의 세탁 프랜차이즈 산업이 성공하는 걸 목격하곤 보고실업 내에 세탁사업부를 조직해 국내 사정에 맞게 발전시켰어요. 그때가 1992년이었죠. 초기엔 기술개발에 설비투자가 집중되다 보니 한 10년 간 수익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 경제위기 등을 겪으면서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경기가 위축되고 가계가 어려워지자 품질이 고만고만하면 싼 가격, 가격이 같으면 많은 양을 찾던 소비자에게 한 벌 당 2000~3000원하던 셔츠세탁은 결코 만만한 요금이 아니었다. 당시 크린토피아가 내세운 가격 정책은 세탁 고민에 빠진 주부들에게 파격으로 다가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당시 크린토피아의 저가정책은 주부들에게 1000원짜리 한 장이면 집에서 땀 흘리는 것보다 편하고 깨끗한 셔츠를 받아볼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줬다”고 평가한다. 이른바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한 셈이다.
크린토피아의 세탁시스템은 간단하다. 가맹점에서 세탁물을 모아 아침, 점심, 저녁, 하루 3번 들르는 지사(세탁공장)의 차량에 실어 보내면 지사는 세탁 후 다시 가맹점에 들러 고객에게 세탁물을 전하는 시스템이다.
일반 세탁소와 비교해 20~30% 싼 가격정책은 세탁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첨단 자동화 시스템으로 대체하며 가능해졌다. 자동 분배 컨베이어 시스템, 본사와 지사, 가맹점 간 온라인 시스템을 통한 업무 전산화 등으로 당일세탁서비스도 시작했다. 덕분에 아침 출근길에 세탁물을 맡기고 퇴근길에 찾아가는 맞벌이 부부 고객이 늘었다.
26㎡ 이하 1300만원에 창업 완료
이 회장이 직접 밝힌 크린토피아의 성공요인은 총 4가지. 첫째, 정도경영이다. 세탁 프랜차이즈 시장의 경쟁 속에서 크린토피아는 서비스의 정도를 지킬 수 있는 거리에만 가맹점을 받았다. 지사와 거리가 먼 지역은 서비스 품질을 이유로 가맹점 후보지에서 제외했다. 둘째, 사업초기 적자에도 개발비용 투자를 늦추지 않았다. 덕분에 10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 성장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셋째,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구축했다. 1992년 사업을 시작할 당시 평균 셔츠 세탁요금은 2500원. 크린토피아는 셔츠 자동프레스기를 지사에 설치해 요금을 현저히 낮췄다. 넷째, 국내 최초로 항균세탁법을 개발해 한국의류시험연구원의 GH마크(Good Health Mark)를 획득하는 등 세탁기술 개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소비자의 입소문이 계속되자 가맹점 확보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현재 크린토피아 창업 조건은 26㎡(5~7평)를 기준으로 가맹비, 보증금, 포스기기, 인테리어 비용을 포함해 약 1300만원(임차비용 제외)이 소요된다. 기존의 세탁편의점에 코인빨래방을 접목한 세탁멀티숍은 20평 기준에 약 7000~8000만원(임차비용 제외), 프랜차이즈 지사(세탁공장)는 가맹비와 기계, 내부시설공사 등 약 2억5000만원~4억원(임차비용 제외)이다.
오픈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약 한달. 그 기간 중 약 열흘 동안 검품과 접객, 운영에 필요한 교육이 실시된다. 서비스 교육은 1년 내내 실시된다. 본사 강의실에선 얼룩 빼는 법, 섬유의 물성 및 취급 주의점, 옷감별 용제 사용법, 접객 서비스 교육 등이 상시 진행된다. 우수업주들에겐 일본 견학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크린토피아 측에서 밝힌 16㎡ 매장 기준 세탁편의점의 수익은 월평균 250~300만원. 창업전문컨설팅사의 한 관계자는 “적은 비용으로 꾸준한 수익이 보장돼 주부들도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창업아이템”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평일 오전 10시경 찾은 양재2동의 세탁멀티숍은 세탁물을 맡기러 온 손님들이 꾸준했다. 1년 반 전 창업한 심인순 점장은 “1~2월은 세탁 비수기로 꼽는데 셔츠 등을 맡기려는 손님 수는 여전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코인빨래방을 함께 운영하는 세탁멀티숍은 이불세탁이 강점. 더불어 세탁대행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코인빨래방을 이용하는 고객이 1000원을 더 부담하면 멀티숍에서 빨래와 보관을 대행하는 서비스다. 심인순 점장이 밝힌 창업비용은 임차비용을 합쳐 1억원. 현재 20평 매장에서 연 2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11년 매출목표 1500억원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크린토피아는 직원들에게 정기 보너스 외에 80~120%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매년 우수사원에게 주어지는 해외여행 특전은 총 30명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이범택 회장이 밝힌 크린토피아의 인재상은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직원’. 이를 위해 외부강사 초청과 위탁교육 등 직원 교육을 비롯해 대리급 이상 직원은 온라인 MBA 수강이 필수다.
“세탁 사업은 기계를 이용하지만 결국 기업은 교육을 잘 받은 우수 인재가 이끌어가는 법이지요. 직원들에게 늘 본인 업무에 전문가가 되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업무에 어떤 성과를 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능률이 오릅니다. 모든 일에 ‘왜?’를 끊임없이 생각하라고 주문하죠. 이미 성공한 전략을 따라가는 것보다 새로운 시도가 이어져야 앞으로의 20년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크린토피아는 올해 두 가지 중점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첫째는 ‘의류보관서비스의 활성화’. 두껍고 보관하기 힘든 겨울옷과 이불 등을 세탁 후 최적의 환경에서 보관해주는 서비스다. 지난해 시작했지만 올해는 시스템을 보완하고 재정비해 정착시킨다는 목표다. 둘째는 세탁멀티숍 점포 개발과 영업활성화다. 2011년 매출 목표는 1500억원. 이범택 회장은 “크린토피아의 경영이념은 인재육성, 고객감동, 사회공헌”이라며 “고객감동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항상 고민하고 무료 세탁서비스 등 러브클리닝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