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다시 급락했다, 3월 23일 오전 중동 확전 조짐에 증권가의 공기는 숫자보다 먼저 무너졌다. 개장 직후 딜링룸 전광판은 붉은색으로 번졌고,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당시에 근접한 1517원까지 치솟아 올랐다. 주식시장은 개장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패닉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였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분위기는 달랐다. 3월 18일만 해도 한국 증시는 자본시장 개혁 기대에 힘입어 5% 넘게 급등하며 다시 랠리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중동전쟁 확전 우려가 커지자 그 낙관은 너무 빨리, 너무 거칠게 뒤집혔다.
3월 23일 코스피는 6.49% 급락한 5405.75에, 코스닥은 5.56% 내린 1096.89에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은 1517.3원으로 뛰어 2009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날 하락은 단순한 조정이라기보다 ‘블랙먼데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충격에 가까웠다. 외국인과 기관의 대규모 셀(Sell), 매도 사이드카 발동, 그리고 위험자산 전반에 퍼진 투매 심리가 한 번에 겹쳤다. 한국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전반이 중동발 리스크에 휘청였지만,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그 충격을 날것 그대로 받았다.
이번 하락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주가가 얼마나 내렸는가보다, 시장 심리가 얼마나 빨리 무너졌는가였다. 한국 증시는 이미 최근 몇 주 동안 중동발 리스크에 흔들리며 급등과 급락을 반복해왔다. 전쟁 초기 충격 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기대, 그리고 자본시장 개혁 기대가 맞물리며 반등했지만, 그 반등은 기초체력이 단단해서라기보다 외부 충격이 멈춰주기를 바라는 기대 위에 세워진 측면이 컸다. 한 외신은 이에 대해 “최근 아시아 증시의 이익 개선이 내수보다 반도체와 AI 같은 글로벌 메가트렌드에 의존해왔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다시 말해 한국증시는 좋아서 오른 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외부 변수 하나에 쉽게 꺾일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는 평가다. 그래서 최근 주가 하락이 단순히 “중동에서 전쟁이 났다”라는 뉴스의 반영이 아니었다. 시장은 전쟁이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어떤 2차 충격을 가져올지를 먼저 가격에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유가가 얼마나 오를지, 달러 강세가 얼마나 길어질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얼마나 늦춰질지, 그리고 그 결과 외국인 자금이 얼마나 더 빠져나갈지를 한꺼번에 계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충격이 더 뼈아픈 것은 한국 증시가 막 회복 기대를 키우던 시점에 터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3월 발표 자료에서 1월 경상수지가 132억 6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고 밝혔고, KDI는 2월 수정 전망에서 2026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1.9%로 제시했다. 즉, 한국 경제의 기본 그림은 ‘완만한 회복’이었다. 반도체 수출과 소비 회복이 조금씩 맞물리면 올해는 지난해보다 나은 해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시장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지정학 리스크는 늘 펀더멘털보다 먼저 가격을 흔든다. 특히 한국처럼 에너지를 대부분 수입하고, 외국인 수급 비중이 크며, 환율 변동이 실물경제에 곧바로 파급되는 시장은 더 그렇다. 여기에 중동위기는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원유수송의 핵심 병목인 호르무즈 해협과 맞닿아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호르무즈 해협을 세계에서 중요한 전략적 원유 수송 요충지 중 하나로 지목한다. 시장이 중동 뉴스를 들을 때 가장 먼저 유가를 떠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장세에서 지수만큼 주목받은 수치는 원·달러 환율이다. 주가는 시간이 지나면 실적과 밸류에이션을 다시 보며 복원될 수 있다. 하지만 환율은 다르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원자재와 에너지 비용이 뛰고, 그 부담은 기업의 마진과 가계의 생활물가로 번진다. 특히 유가가 뛰는 시기에 원화까지 약세를 보이면, 한국은 달러로 결제하는 에너지 가격 상승과 원화 가치 하락을 동시에 떠안게 된다. 수출기업 일부엔 원화 약세가 단기적으로 호재일 수 있지만, 지금 같은 환율 급등은 경쟁력 개선형 약세가 아니라 위험회피형 약세다. 좋은 환율이 아니라 나쁜 환율에 가깝다. 실제로 23일 환율 급등은 외국인 순매도와 맞물려 움직였다. 외국인은 이 날 국내 주식을 3조 6000억원 넘게 순매도했고, 그 과정에서 달러 수요가 커지며 원화 약세가 더 심해졌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이에 대해 “달러 강세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여전히 이란 사태 추이와 유가 흐름이 글로벌 외환시장 흐름을 좌우할 것”이라고 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환율은 지금 한국 시장의 체온계이자, 동시에 가장 취약한 급소가 됐다.
환율이 이렇게 민감하게 흔들리는 배경에는 유가와 미국 통화정책이 함께 놓여 있다. 3월 23일 아시아장에서 브렌트유는 배럴당 112.89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98.98달러 수준까지 올라섰다. 유가 상승은 단순히 정유주와 항공주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물가를 끌어올리고, 채권 금리를 자극하고, 결국 주식의 할인율을 다시 높인다. 최근 시장이 가장 불편해하는 조합은 바로 ‘고유가+강달러+고금리 장기화’다.
준도 이런 환경을 가볍게 보지 않고 있다. 3월 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기준금리를 3.50~3.75%로 동결했고, 공식 성명에서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다”라며 중동 사태가 미국 경제에 미칠 영향도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연준은 아직 금리를 내릴 만큼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중동 리스크가 유가를 더 밀어 올리면, 시장이 기대했던 금리인하 경로는 더 늦춰질 수 있다. 한국 증시에 이는 이중 부담이다. 달러는 강해지고, 원화는 약해지고, 한은의 금리 인하 여지는 좁아진다.
조아인 삼성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고유가 장기화는 운송비 상승과 물가 압력으로 이어지고, 금리 인하 기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짚었다.
정부가 당장 꺼내 들 수 있는 카드는 ‘증시 부양’보다 ‘시장 안정’에 더 가깝다. 정부는 이미 3월 11일 중동 상황 공동 대응 방안을 내놓으면서 필요할 경우 추경을 포함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자료에서 유가 흐름을 봐가며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고, 화물차·버스·택시에 대한 유가 연동 보조금을 한시적으로 늘리며, 소상공인에 대해서도 추가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필요 시 기존 100조원 이상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정부와 한국은행이 공조해 긴급 바이백과 국고채 단순 매입 같은 조치를 시행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핵심은 정부가 이번 충격을 ‘지수 관리’가 아니라 ‘충격 흡수’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방향은 구윤철 부총리의 발언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구부총리는 3월 19일 확대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증시는 인위적 주가 부양을 지양하고, 자본시장의 근본적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겠다”라고 밝혔다.
또한 외환시장에 대해서는 “원화의 흐름이 펀더멘털과 과도하게 괴리되는 경우 적기 대응하겠다”라고 말했다. 돈으로 주가를 떠받치기보다, 외환과 채권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키고 자본시장 체질을 손보는 쪽에 무게를 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메시지도 결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이 대통령은 3월 18일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이런 위기 때야말로 필요한 개혁과제를 잘해야 한다. 그게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이 다지는 계기일 수 있다”라며 “우리가 하기에 따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닌 ‘코리아 프리미엄’도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단기 충격에 흔들리더라도, 자본시장 개혁과 지배구조 개선, 불공정 거래 척결을 흔들림 없이 밀고 가겠다는 뜻이다. 시장은 결국 숫자 못지않게 정책의 일관성을 본다. 이 대통령이 위기를 개혁의 계기로 해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증시 부양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또 다른축, 한국은행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기준금리 인하보다 시장 안정과 외환 변동성 관리가 먼저다. 한국은행은 2월 26일 기준금리를 2.50%로 유지했고, 3월 통화정책보고서에서도 “환율은 높은 변동성을 보인다”라며 중동 관련 위험이 물가·성장·금융안정에 미칠 영향을 자세히 보겠다고 밝혔다. 기준금리를 성급하게 내리면 경기에는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지금처럼 원화가 1500원대에서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환율 불안을 키울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한은의 우선순위는 당분간 ‘경기 부양’보다 ‘시장 진정’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커졌다. 단기 유동성 공급, 채권 시장 안정을 위한 정부와의 공조, 외환시장의 급격한 쏠림을 완화하는 조치가 먼저 거론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정부 역시 한국은행과 함께 국고채 단순 매입 등 채권시장 안정 조치를 적기에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은 흔히 “한은이 언제 금리를 내리나”를 먼저 묻지만, 이번 국면에선 더 정확한 질문이 따로 있다. 한은이 언제까지 환율과 금융 안정을 더 중시할 것인가, 바로 그 점이다.
전문가들이 내놓은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기본 시나리오다. 중동 긴장이 당장 끝나지 않더라도 유가가 100달러 안팎에서 진정되고, 원·달러 환율도 1500원 대 초중반에서 더 치솟지 않는 경우다. 이 경우 한국 증시는 단기 급락 뒤 높은 변동성을 동반한 박스권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정다운 LS증권 연구원이 “코스피 5000~6000포인트 내 박스권 흐름”을 기본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둘째는 비관 시나리오다. 브렌트유가 110달러 이상에서 고착되고,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 중후반에서 장기화하는 경우다. 이 경우 고유가와 고환율의 이중고가 물가와 소비, 수입 단가, 기업 마진을 동시에 압박하게 된다.
셋째는 낙관 시나리오다. 중동 긴장이 예상보다 빨리 완화되고, 유가와 달러 강세가 진정되며, 자본시장 개혁 기대가 다시 한국 증시를 끌어올리는 경우다. 이 경우 최근 하락은 ‘과열 뒤 조정’ 또는 ‘외부 충격에 따른 과잉 반응’으로 정리될 수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증시 하락세는 미국-이란 간 대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진정될 수 있다”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낙관 시나리오가 힘을 얻으려면 유가와 환율 안정이라는 전제조건이 갖춰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