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중동 전역이 휘말리는 ‘에너지 전쟁’으로 비화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4년 만에 100달러대 유가를 다시 불러오면서 경제 충격이 커지는 양상이다. 분쟁 이전 대비 50%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하며 시세가 고공 행진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사태가 어디까지 지속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중동 대표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내놓은 전망은 시장을 경악하게 만들고 있다. 국내 상황은 더 복잡하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1500원 안팎까지 상승했고, 국제 유가 역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유가와 환율의 동반 상승은 수입 물가 상승과 자본 유출 압력을 키우며 통화정책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 고유가 장기화를 전제로 한 인상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내부 복수 에너지 분야 관리들은 이란 전쟁으로 인한 공급 차질이 4월 말까지 지속될 경우, 국제 원유 가격이 배럴당 180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 수치가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 기관 내부에서는 이를 ‘기본 시나리오(base case)’로 다루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내부에서는 유가 레벨이 단기적으로는 배럴당 130~140달러 구간, 4월 초에는 배럴당 150달러 돌파, 추가 확전이 이어질 경우 배럴당 160~165달러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4월 말까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배럴당 180달러 선도 무리한 전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키는 호르무즈 해협이 쥐고 있다. 가장 좁은 폭 기준 약 39㎞, 항행 가능한 수로가 왕복 6.4㎞에 불과한 이 좁은 공간에 전 세계 일일 원유 공급량의 약 20%가 통과한다. 이란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은 사실상 봉쇄 상태다. 이곳을 지나던 유조선 몇 척이 이란 혁명수비대 공격을 받아 운행을 멈춘 상황이다. 승무원 몇 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공격 준비를 하는 한, 이곳을 돌파할 용기있는 유조선은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유조선 운행에 필수적인 보험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얼마만큼의 위험 프리미엄을 붙여 보험료를 어떻게 책정할지 여부가 아예 계산이 안 되기 때문이다.
현재 수백 척의 유조선이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해안 인근의 공해상에 닻을 내린 채 표류하고 있다. 머스크(Maersk), 하파그로이드(Hapag-Lloyd) 등 글로벌 해운기업 일부는 호르무즈를 통한 운항을 전면 중단하고 아프리카 남단을 우회하는 노선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특히 월가 일각에서는 이례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비관적인 전망을 외부에 흘린 정황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론상 유가가 오르면 더 많은 수익을 거두는 구조다. 높아진 유가를 기반으로 이전 대비 훨씬 짭짤한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유가가 급격하게 오를 경우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킹 파이살 이슬람 연구소의 우메르 카림 연구원은 “사우디아라비아는 단기 급등보다 점진적인 가격 상승과 시장점유율 유지를 선호한다. 가격이 너무 빠르게 오르면 장기 수요가 훼손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유가 급등이 경제의 위축을 부르고, 이로 인해 글로벌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 수요 급감으로 인한 유가 하락 사태가 발생해 변동성을 키운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는 유가 급등으로 인한 수혜자로 인식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전역에서 고물가로 인한 피해 사례가 속출하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가 뒤에서 조용히 돈다발을 세는 이미지로 인식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워싱턴 정가 일각에서는 익명의 목소리로 나온 사우디아라비아의 비관적인 전망이 백악관에게 전하는 경고 메시지라고 해석한다. 지금 당장 백악관이 긴장 완화 해법을 찾지 않으면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등을 울린 것이란 시각이다. 월가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잇따른 보고서를 통해 현상황을 ‘사상 최대 규모의 원유 공급 충격’으로 규정했다. 1973년 OPEC 오일 쇼크, 1990년 걸프전을 능가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메시지는 단호하다. 배럴당 100달러는 천장이 아니라 바닥(floor)이라는 것이다. 기본 시나리오에서 골드만삭스는 2026년 4분기 브렌트유를 배럴당 71달러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호르무즈 해협이 4월부터 점진적으로 정상화된다는 가정하에서다.
만약 봉쇄가 두 달 이상 지속된다면 4분기 브렌트유는 배럴당 93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으며, 2008년에 기록된 사상 최고가 배럴당 147달러 돌파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파급 효과는 에너지 시장을 넘어선다. 골
드만삭스는 유가가 10% 지속 상승할 경우 미국의 헤드라인 PCE 인플레이션이 약 0.2%포인트 상승하고 GDP 성장률이 약 0.1%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산했다. 바클레이스 역시 현재의 분쟁이 몇 주만 더 지속되더라도 브렌트유가 배럴당 120달러를 테스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위험 시나리오에서는 조만간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WSJ가 설문한 경제학자 연구조사에 따르면 현 수준 글로벌 경기침체 확률은 약 32%다. 그러나 유가가 배럴당 138달러에 도달하는 순간, 이 확률은 50%를 돌파하는 것으로 전망된다. 이 이상 유가가 오르면 글로벌 경제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퍼펙트 스톰’ 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 금융시장도 지정학적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3월 말 기준 페드워치 최신 전망에 따르면 미국 연준이 올해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점점 ‘제로’에 수렴하고 있다. 오히려 금리 인상에 베팅하는 트레이더들이 늘어가며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장은 올해 유럽중앙은행(ECB)이 추가로 금리를 두 번 올릴 가능성을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전망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전 금리 두 번 인하가 기본 시나리오였던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영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 3월 20일 5.00%를 돌파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영국 국채시장은 특히 인플레이션 재상승 우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유가와 가스 가격이 급등하는 데다 전쟁 장기화 공포가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것이다. 올해 중간선거를 앞둔 백악관 입장에서는 사태가 더 악화되면 ‘이란 늪’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중간선거에서 지면 나는 탄핵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만큼 선거 승리가 절실하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백악관이 본격적으로 출구전략을 모색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악시오스는 지난 3월 21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의 평화 협상이 어떤 모습이 될지에 대한 초기 단계 내부 논의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특사 재러드 쿠슈너와 스티브 위트코프가 잠재적 외교 논의에 관여하며, 어떤 합의든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문제 해결, 핵 프로그램·탄도미사일·역내 대리세력 지원에 관한 장기 합의를 포함해야 한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협상의 윤곽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미국이 이란에 요구하는 조건은 5년간 미사일 프로그램 동결, 우라늄 농축 완전 중단, 나탄즈·이스파한·포르도 핵시설 폐기, 엄격한 외부 사찰 등이다.
반면 이란은 휴전과 전쟁 재개 금지 보장, 그리고 배상금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란 배상금 요구와 관련된 미국 내부의 한 의견이다. 동결된 이란 자산 반환을 배상금으로 지급하는 형태로 협상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악시오스가 인용한 익명의 한 관계자는 “미국 입장에서는 동결자산 반환이지만, 이란은 이것을 배상금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미국 안에서 다양한 시나리오가 검토되고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점차 출구전략을 시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최근 트루스소셜 게시물에서 미국의 해협 방어 책임 포기를 시사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은 이를 이용하는 다른 나라들이 필요에 따라 지키고 경찰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원유의 대부분은 유럽, 일본, 한국, 중국으로 향하지 일차적으로 미국을 향하지 않는다. 미국이 아시아로 향하는 원유 통로를 굳이 지킬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해관계를 구분해 “그들(이스라엘)은 거기 있고, 우리(미국)는 멀리 있다(They are there, we are far away)”고 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 중 가장 역설적인 조치는 이란 제재 일부 해제였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선박에 적재된 이란산 원유와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제재를 일시적으로 해제한 것이다. 이 조치는 4월 19일까지 유효하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약 1억 4000만 배럴이 시장에 공급될 것으로 기대했다. CNBC는 “트럼프가 유가를 낮추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가격은 완강하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군사적 돌파구 없이는 어떤 정부도 유가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1년간 이어지면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이 0%대로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한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연달아 제기되고 있다. 고유가와 고환율, 고물가가 맞물리는 이른바 ‘3고 쇼크’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NH금융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이란 전쟁 전개 시나리오별 경영 환경 변화·대응 포인트’ 보고서에서 미국-이란 전쟁이 1년간 지속되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0%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8%로 제시했다가 지난달 26일 2.0%로 올려 잡았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의 전쟁 변수가 터지면서 이 전망치를 달성하기 힘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외 연구기관들도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다시 추산하기 시작했다. 씨티는 최근 올해 연평균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82달러로 급등하면 올해 경제성장률이 0.45%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금년도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연평균 100달러일 경우 올해 성장률은 최소 0.3%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포인트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병수 기자 · 홍장원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