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는 2025년 9월, 대한민국 AI 3대 강국(G3)실현을 목표로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AI)전략위원회’를 정식 출범시켰다. 기존 ‘국가AI위원회’를 확대 개편하며, 중장기 전략 수립과 정책 사업 부처 간 조정 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긴 것이다. 이 대통령은 9월 8일 진행된 출범식에서 “국가 AI전략위원회는 AI 3대 강국 실현을 위한 대한민국의 총사령탑”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임문영 부위원장이 초대 상근부위원장(장관급)으로 임명됐다. 그는 이재명 성남시장이던 2017년 정책보좌관으로 처음 인연을 맺은 후, 경기도지사 시절 경기도 미래성장정책관을 역임했다. 당시 AI허브 조성 등 경기도의 첨단 산업 정책을 주도했으며, 현재까지 이재명 정부의 AI정책 핵심을 이끄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자연스럽게 국가AI전략위가 내놓을 청사진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2025년 12월 15일, 위원회가 야심차게 내놓은 ‘AI 액션플랜’은 문화계 16개 단체의 공동 성명이라는 거센 역풍을 맞았다. 당초 정부와 국회는 AI 산업 육성을 위해 AI가 저작물을 학습할 때 저작권 침해 책임을 면제해 주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에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은 ‘절대 수용불가’라는 성명을 내며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이들은 ‘선사용 후보상’이 저작권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며, 보상금이 AI 기업에 유리하게 책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임문영 부위원장은 이같은 논란에 대해 “우선 ‘선사용 후보상’이라고 오해를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저작권이 명확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AI 저작권 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문제로, 정부가 저작권자와 AI기업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중재자 역할을 해야한다는 설명이다.
소모적인 논쟁 너머, 임 위원장이 가리키는 곳은 더 거대한 전장(戰場)인 ‘제조업’이다. 미·중 패권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AI인프라·모델·서비스까지 풀스택(Full stack)을 갖춘 유일한 국가다. 특히 탄탄하게 기반이 갖춰진 제조산업에 AI를 이식한 ‘피지컬 AI’만이 살 길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올해에만 9조 9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다. 논란을 딛고 ‘제조 AI 강국’이라는 청사진을 그리는 임문영 위원장을 만나 대한민국의 생존 전략을 물었다.
Q 정부는 2030년까지 피지컬 AI 분야 세계 1위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는데, 구체적인 로드맵을 어떻게 제시하십니까.
A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전쟁이 심화되면서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고 봅니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의 영향권에 있는 제3세계, 즉 아시아나 중동, 아프리카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접근이 일정 부분 차단되는 효과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 틈새에서 강력한 제조업 경쟁력을 가진 나라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합니다. 한국은 반도체부터 IT, 제조 기술까지 풀스택(Full-stack)을 갖춘 국가입니다.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AI 인프라와 모델, 서비스를 결합해 제3세계 국가에 수출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입니다. 제조 강국으로서의 입지가 피지컬 AI 확산의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Q 현장 노동자들의 ‘암묵지(숙련된 기술)’를 데이터화하여 기계가 학습하게 하는 과정이 피지컬 AI의 핵심인데, 데이터 구축을 위한 기업 지원책은 무엇이 있을까요.
A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AI 기술을 가진 20대 청년들과 현장의 암묵지를 가진 50대 숙련 노동자가 만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 현장에 엔지니어를 투입하는 ‘FDE(Forward Deployed Engineering, 전방 배치 엔지니어링)’ 방식을 추진하려 합니다. 이는 글로벌 AI기업인 팔란티어에서 강조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산업 도메인과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현장마다 젊은 AI기술자를 파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Q 청년층들은 지방 제조 현장 근무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한데 어떤 유인책을 쓸 수 있습니까.
A 교육부가 인재를 양성하고, 노동부가 취업을 연계하며, 중기부가 이들이 창업할 때 투자하는 등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앤 협력 체계를 구축해 기술과 현장 노하우의 융합을 지원할 겁니다. 또한 젊은 세대가 제조 현장을 기피하지 않도록 문화적 인프라 개선도 병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산업부에서 산업단지내 공장 내 카페·편의점 등의 설치 규제도 완화하는 방안도 내놓았습니다. 카페는 예시일 뿐이고, 전반적인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Q 현재 국내 제조산업 현장의 AI 전환(AX)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진단하십니까.
A 현장 곳곳에서 성과를 증명해가는 단계라고 봅니다. 범국가적인 실증단계를 지나면 자연히 시장수요도 많아질 것으로 봅니다. 최근 HD현대삼호를 방문했는데, 베트남 여성 노동자가 용접 로봇을 운용하며 협업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로봇이 단순 반복 작업을 맡고 인간이 이를 관리하니 효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죠. 이렇게 조선업에서는 이미 AI와 로봇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자동화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Q 국내 제조기업들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인데, 이들은 대기업에 비해 투자대비수익(ROI)이 명확하지 않아 AI 도입을 망설이고 있다고 합니다.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대책이 있을까요.
A 아직 국내 제조업계 전반이 AI 도입 초기단계라고 봅니다. 대기업이라고 해도 중소·중견기업보다 좀 더 투자 여력이 있는 정도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제조업 현장에서는 기존 프로세스를 바꾸는 비용을 투자라기보다 단순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 ROI(투자대비수익)에 대한 확신이 부족합니다. 인프라가 갖춰진 상황에서 시장에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되고, AI전문 인력을 양성해 파견하는 형태여야 중소·중견기업들도 AI의 효용성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Q 정부가 엔비디아로부터 확보한 26만 장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기준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A 이것은 복지 사업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위한 투자입니다. 기계적 평등보다는 ‘효율성’과 ‘성과’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소규모로 쪼개서 나눠주기보다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기업에 집중 지원할 계획입니다.
Q 업계에서는 정부가 확보한 GPU를 단순히 물리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우드 상에서 필요한 만큼 할당받아 쓰는 ‘GPUaaS(GPU as a Service)’ 형태로 지원해야 실효성이 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A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GPU 칩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서비스로 구현해낼 수 있는 ‘클라우드 생태계’입니다. 우리가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구축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GPUaaS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단순히 서버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막대한 전력 공급, 발열을 잡는 공조 시설, 그리고 이를 운영할 전문 인력까지 갖춘 거점 인프라가 선행되어야만 클라우드 서비스도 가능해집니다.
Q 한국은 산악 지형이 많고 지역 주민과의 마찰도 잦습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대규모 센터보다는 ‘분산형 데이터센터’가 더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A 서비스의 목적에 따라 다릅니다. 이미 만들어진 AI를 서비스하는 단계(Inference)라면 사용자 근처에 있는 분산형 센터가 지연 시간(Latency)을 줄이는 데 유리합니다. 하지만 AI 모델을 만드는 ‘학습’ 단계는 다릅니다. 일론 머스크가 왜 멤피스에 세계 최대 규모의 ‘콜로서스’를 지었겠습니까? 막대한 데이터를 학습시키려면 GPU 수만 개를 한곳에 모아 연산 효율을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동네 운동장 여러 곳을 전전하며 훈련한 선수와 최첨단 대형 경기장에서 체계적으로 훈련한 선수의 기량 차이는 명확합니다. ‘국가대표 AI’를 키우려면 그에 걸맞은 대형 운동장(하이퍼스케일 센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Q 최근 국가대표 AI 선발전 1차 평가가 진행됐습니다. 최종 평가 기준은 글로벌 프론티어급 모델 성능의 95% 달성인데 실제로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A 95%라는 수치는 상징적인 목표입니다. 글로벌 빅테크들의 기술이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그 격차를 줄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도전입니다. 하지만 국가대표 AI 선발전은 기업들을 줄세우고 서열경쟁하려는 게 아니라, 한국이 파운데이션 모델 기술력과 생태계를 확보하는 것이 진짜 목적입니다.
Q 국민들은 AI 도입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요.
A 뉴스에 글로벌 테크 기업들의 대량 해고 소식이 자주 소개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해고하는 만큼 인력 충원도 있습니다. AI로 인해 업무 프로세스가 달라지면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체질 개선’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렇기에 전국민 대상 AI 교육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단순히 활용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AI와 어떻게 공존하고 주체성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윤리적 소양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무지는 공포를 낳지만, 알면 두렵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AI에 대한 사회적 신뢰자본이 쌓인다고 봅니다. 교육과 재취업 지원을 통해 전환기의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합니다.
[박수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5호 (2026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