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일(현지시간), 미국 정부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을 체포하여 미국으로 이송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외교·법 집행의 영역을 넘어 국제 금융질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왜냐하면 미국의 움직임은 금융 제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제재는 곧 자산과 자본의 이동성 제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십여 년간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통화 가치 폭락, 국제 금융시스템에서의 소외를 겪어왔다. 베네수엘라 화폐인 볼리바르(Bolivar)는 사실상 이미 기능을 상실했고,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은 국내 거래에서 생존 수단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은 다른 의미를 던졌다. 미국이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체포해 송환하는 행동은, 국제제재의 확장과 금융 통제의 현실화를 상징했다.
전통 금융에서 자산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한 가격 하락이 아니다. 금융기관의 계좌 동결, 결제망 접근 제한, 해외 자산의 봉쇄, 자금 이동의 통제와 같은 통제 리스크다. 수익은 다시 회복할 수 있지만, 통제된 자산은 회복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
마두로 체포 이후 특정 신흥시장 통화는 급격히 약세를 보였고, 국제 자산배분 포트폴리오의 리스크 프리미엄은 일시적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전통 시장이 아닌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나타났다.
해당 사건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나, 이를 단순한 이벤트성 매매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시장에 반영된 가격 변화 뒤에는, 위험 환경의 변화를 감지한 자금의 점진적 이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액자산가의 선택은 매우 빠르게 그리고 조용하게 진행된다. 언론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수많은 ‘위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대안을 준비한다. 그 대안 중 하나가 비트코인과 같이 국가 통제의 테두리에서 비교적 독립적인 자산이다.
비트코인은 국가나 중앙은행의 통제를 전제로 설계된 자산이 아니다. 계좌가 아닌 개인 키(key)를 통해 소유와 이전이 이루어지고, 그 신뢰는 단일 기관이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의 합의 구조에 의해 유지된다. 이는 전통 금융계좌처럼 특정 국가의 법령이나 제재에 직접 묶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마두로 체포 이후, 블록체인 상에 기록된 거래 흐름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 관찰되었다. 단기 가격 변동에 반응하는 소액 거래보다는, 일정 규모 이상의 비트코인이 한꺼번에 이동하거나 장기간 정체되던 주소에서 자산을 옮기는 움직임이 늘어났다. 특히 거래소로의 급격한 유입보다는, 개인 지갑 간 이전이나 보관 목적의 이동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는 점이 특징적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 차익을 노린 매매보다는, 지정학적 불안에 대비해 자산의 위치와 통제 구조를 재정비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즉, 고액자산가들은 수익률이 아닌 유동성의 보존이라는 관점에서 비트코인을 선택하고 있었다. 위험이 현실화될 경우,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하는 것은 언제든지 접근 가능한 이동성이다. 이는 단순한 자산 이전이 아니라, 제도적 제약에 묶이지 않는 자산 흐름의 확보를 의미한다.
그러나 지정학적 위기가 모든 답을 비트코인으로만 이어주는 것은 아니다.비트코인은 분산성과 이동성이 강점이지만, 동시에 변동성이 크며, 전통 투자자에게는 여전히 불안정한 자산으로 분류된다. 여기서 고액자산가들은 비트코인과 비교되는 또 다른 유형의 디지털 자산인 스테이블코인에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유로와 같은 법정화폐에 가치가 연동된 디지털 자산이다.가격의 안정성과 디지털 특성의 장점을 동시에 가진 이 자산은, 단순한 ‘편의 자산’이 아니라 위기 국면에서의 효율적 이동성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마두로 체포 같은 지정학적 사건은 통화 질서와 외환 시장을 흔든다.은행 계좌가 제재될 가능성이 높아진 순간이나 국제 결제 시스템이 마비될 가능성이 커진 순간, 스테이블코인은 네트워크 기반 즉시 이동성과 법정화폐의 안정성을 동시에 제공한다.
전통적인 외환 송금은 여러 중개은행을 거치며 지연과 규제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을 통해 국경을 넘어 바로 이동할 수 있다. 이 속도는 전통 금융시스템이 추격할 수 없는 수준이며, 그 결과로 고액 자산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을 단기 보유·이전의 핵심 도구로 활용하게 된다.
이러한 선택은 단지 기술적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다. 자산이 금융질서의 테두리 안팎을 드나들 때, 가장 큰 리스크는 지연과 봉쇄다.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될수록, 고액 자산가들은 자산이
1. 즉시 접근 가능한가
2. 국가 통제로부터 독립적인가
3. 가치 안정성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비트코인은 네트워크 기반의 분산성으로 이 기준을 충족한다.스테이블코인은 가치 안정성과 즉시성으로 이 기준을 보완한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단기적 이벤트 효과가 아니다. 제재 체계의 강화, 국제 금융공조의 확대, AML·KYC 의무의 강화는 전통 금융의 경계를 더욱 촘촘하게 만든다. 이 경계는 불안감을 증폭시키며, 결과적으로 비 전통 자산의 역할을 확대시킨다. 즉, 제도적 통제가 강화될수록, 제도 밖 혹은 제도와 연결되나 독립성을 가진 자산에 대한 수요는 증가한다.
이런 맥락에서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은 서로 다른 필요를 충족시키는 자산군으로 자리잡게 된다.
결국 지정학적 사건은 일시적인 가격 변동만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 사건은 자산이 어떤 조건에서 살아남는지를 드러내며, 투자자들이 자산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를 바꿔 놓는다. 더 이상 수익률만으로 자산을 평가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 자산전략의 중심에는 얼마나 많이 벌 수 있는가가 아니라, 위험이 현실화되는 순간에도 자산을 지켜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차지하고 있다. 이제 자산전략의 중심에는 위험의 구조적 대응 방식이 자리한다. 이는 단지 한 번의 상승 흐름이 아니라 세계 자산가들이 체득한 금융 생존의 논리다. 불안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 속에서도 생존 가능한 선택을 하는 전략이다. 2026년 1월 3일의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포는 단순한 국제 뉴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산가의 불안을 현실로 드러낸 사건이며, 그 불안은 시장 가격을 통해 구체화됐다.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은 동일한 이유로 주목받는 자산이 아니다. 각각 비통제성의 저장수단과 즉시성·안정성의 이동수단으로서 고액자산가의 전략적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단순한 가격 논리를 넘어 ‘미래 금융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정지열 한양대 교수
한국자금세탁방지연구소 소장이자 한양대학교 겸임 교수로, 자금세탁방지(AML)와 금융범죄예방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학문적 연구와 함께 금융당국, 국제기구, 민간 금융기관 등에 자문을 하며 제도 개선과 정책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