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자동차는 똑같은 생김새에 전혀 다른 성능을 갖추고 있다. 말 그대로 두 얼굴이다. 그렇다고 헐크처럼 돌변하는 건 아니다. 기본이 되는 모델과 그 기본을 바탕으로 빚어낸 고성능 모델이 따로 있다. 고심을 거듭해 완성한 디자인으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출 수 있다니. 어쩌면 완성차 브랜드의 영민한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당연한 트렌드가 됐다. 누군가의 심장을 저격하는 1+α를 공개한다.
1. 1세대 ‘디펜더’는 1983년에 출시됐다. 오프로더 명가 랜드로버의 원형 같은 모델이었다. 30여 년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산과 들을 누볐다. 그러다가 단종됐다. 역사의 유물로 남게 되나 했는데 다시 부활했다. 2019년에 공개한 디펜더는 완전히 새로워졌다. 일단 외형부터 미래지향적이다. 여전히 직선과 사각형이 도드라진다.
대신 모서리를 곡선으로 매끈하게 다듬었다. 미래로 나아가는 랜드로버 디자인 방향성이다. ‘레인지로버’도, ‘디스커버리’도 같은 변화를 겪었다. 매끈하게 변한 디펜더에 환호하는 사람도, 실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얼마나 매력적이냐다. 2세대 디펜더는 여전히 디펜더로서 매력을 발산한다. 흐른 시간만큼 기술력을 반영했고, 편의장치도 대폭 늘렸다. 오프로더로서 이름에 걸맞은 성능을 뽐낸다. 역시 차는 신차가 좋다는 말, 디펜더에도 통용된다. 안팎의 미래적 감각이 옛것에 대한 향수를 지워버린다. 그렇게 디펜더는 다시 누군가의 드림카가 됐다.
+α. 오프로더에 고성능이 필요할까. 합리성의 영역에선 필요 없을지 모른다. 오프로더는 험로 주파력이 중심이니까. 마력이니, 제로백 같은 숫자보다 사륜구동 시스템과 서스펜션의 포용력에 집중한다. 하지만 자동차에는 도구로서의 쓰임만 있지 않다. 합리성보다 자극, 이성보다 감성을 건드리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디펜더에 고성능을 더한 ‘디펜더 OCTA’가 탄생한 이유다. 효율보다 풍요의 관점에서 빚었다. 럭셔리의 영역에선 그럴 수 있다. 고성능은 하나의 트로피로 기능한다. 디펜더 OCTA는 4.4ℓ V8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을 품었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도 더했다. 그 결과 최고 출력 635마력, 최대 토크 76.5㎏·m를 발휘한다. 기존에도 400마력을 내는 모델이 있긴 했다. 충분히 강력했다. 하지만 디펜더 OCTA는 충분함을 넘어 과잉의 짜릿함을 조성한다. 고성능만 더한 게 아니다. 소재나 편의장치도 럭셔리를 지향한다. 시트 등받이에 진동이 울리는 오디오 시스템을 장착한 오프로더라니. 라인업의 정상에서 상징적 모델로 군림한다. 특별해서 더 끌리게.
1.‘5시리즈’는 BMW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이다. SUV 전성시대에서도 수입 E세그먼트 세단의 인기는 여전하다. 하나의 대표성이랄까. 1972년에 첫 출시돼 50년 넘게 역사를 쌓아왔다. 현재의 5시리즈는 8세대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관심이 높았다. 대표성을 공고히 할 신무기를 장착해온 까닭이다. 8세대의 무기는 비약적으로 커진 크기다. 전 세대에 비해 세그먼트가 한 단계 올라간 듯한 웅장함을 자랑한다. 전장이 무려 97㎜나 늘어났으니까. 자동차는 세대가 바뀔 때마다 커졌다. 그럼에도 이번 8세대는 인상적일 정도로 커졌다. 같은 값이면 크기를 택하는 소비자가 다수다. 확실한 무기로 작용한다.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점도 또 다른 무기다. 커브드 디스플레이를 장착하고 동영상 시청은 물론 게임도 즐길 수 있다. 편의장치야 다들 신경 쓰는 점이긴 하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5시리즈만의 주행 감각을 토대로 첨단 기술을 더했다는 점이다. 그게 차이다. 커지고 무거워져도 여전히 BMW 세단다운 역동성을 조성했다. 대표성이 더욱 선명해진다.
+α. 고성능 세단. 이제는 익숙해도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세단은 기본적으로 안락함을 지향하니까. 물론 풍성한 출력으로 안락함을 조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성능이란 수식어가 들어가면 안락함보다 짜릿함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BMW의 ‘M’은 그 고성능 세단을 익숙해지게 한 주인공이다. 세단의 외피를 입고 스포츠카다운 몸놀림을 선보였다. ‘M3’가 M의 대중성을 확보했다면, ‘M5’는 M의 상징성을 쌓아왔다. 1984년 처음 등장한 이후로 언제나 M 라인업의 방향성을 이끌었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M 라인업의 정상에서 기준을 만들어왔다. 후륜에서 사륜으로, 터보 엔진에서 PHEV로. 신형 M5의 결정적 특징은 PHEV 시스템이다. 더 높은 출력과 환경 규제를 모두 충족시키기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도달한 신형 M5의 최고 출력은 727마력. 최대 토크는 101.9㎏·m나 된다. 성능은 한층 과격해졌는데 외관은 더 순해졌다. 전보다 5시리즈와 외관 차이가 크지 않은 까닭이다. ‘양의 탈을 쓴 늑대’랄까.
1. 고급 세단의 대명사. 차를 잘 알든 모르든 떠올리는 차량이다. 세그먼트의 대표 모델로 불린다는 건 어느 한 순간 인기 있었다고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니다. 긴 세월 동안 정점에서 군림해야 누릴 수 있는 왕좌인 셈이다. ‘S-클래스’는 그런 자동차다. 안전하고 편안한 대형 세단으로서 기준을 경신해 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안전·편의장치를 선보였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S-클래스의 변화를 주목했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 S-클래스의 인기는 더욱 특별하다.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팔리는 시장. 세계 시장의 1, 2위는 명확하다. 미국과 중국. 그다음에 한국이란 사실은 연구 대상이 될 정도로 인상적이다. 시장 규모를 따지면 선호도의 밀도는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난공불락이던 S-클래스의 위상이 흔들리긴 했다. 현행 S-클래스가 부분 변경을 앞둔 까닭이다. 그사이에 경쟁 모델인 BMW ‘7시리즈’가 웅장하게 쇄신해 빈틈을 파고들었다. S-클래스가 다시 기준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α. 고급 대형 세단은 그 자체로 완성형이다. 라인업의 상단에서 풍성함을 선사하니까. 안락함은 기본, 안팎이 고급스러우면서 커다란 차체를 움직여야 하니 출력도 풍성하다. 열에 아홉, 아니 백에 아흔아홉은 만족할 구성이다. S-클래스가 지금의 위치에 오른 이유다. 그럼에도 남은 한 명은 그 이상을 욕망한다. 안락하면서도 짜릿한, 이율배반적인 어떤 지점. ‘메르세데스-AMG S 63 E 퍼포먼스’는 그 한 명의 욕망마저 채워준다. 역대 S-클래스 중 가장 강력한 주행 성능. 이런 문구는 숫자로 증명한다. 최고 출력 802마력, 최대 토크 124.3㎏·m. 거대한 덩치를 스프린터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한 숫자다. 제로백은 3.3초면 족하다. 이런 무지막지한 출력은 4.0ℓ V8 바이터보 엔진에 전기모터를 더한 결과다. 출력만 높였을 리 없다. 과격한 출력을 온전히 노면에 전달할 AMG 퍼포먼스 4매틱+ 완전 가변형 사륜구동 시스템도 적용했다.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하체는 안락함은 물론, 짜릿함을 보장한다. 고성능 자동차는 여럿 있다. 하지만 메르세데스-AMG S 63 E 퍼포먼스처럼 흉포한 대형 세단은 드물다.
1. 쿠페형 SUV의 아우디식 해석. ‘Q8’은 일반적인 쿠페형 SUV와는 비율이 사뭇 다르다. 쿠페형 SUV는 뒤로 갈수록 지붕이 깎여 날렵해 보인다. 말 그대로 쿠페 형태니까. Q8은 ‘Q7’을 기반으로 만든 쿠페형 SUV지만 일반적인 비율을 따르지 않았다. 지붕 뒤쪽만 낮추지 않고 아예 지붕을 낮췄다. 지붕이 낮은 SUV라니, 뭔가 어색하게 들린다. 하지만 아우디의 감각은 어색함을 스타일로 승화시켰다. ‘디자인의 아우디’니까. 오히려 상식을 뒤집으니 형태가 특별해졌다. 여전히 SUV답게 위압감이 느껴지면서도 낮은 지붕 덕분에 한층 다부져 보인다. 날렵한 쿠페가 아닌 응축된 SUV로 바라보게 한달까. 쿠페가 스타일을 강조한 형태라는 점에서 해석은 달라도 통하는 지점이 있다. 실내에서도 외관의 감흥이 이어진다. 높은데 낮은 독특한 감각은 조금 다른 SUV를 운전하는 감각을 느끼게 한다. 이런 차이가 쟁쟁한 쿠페형 SUV 사이에서도 Q8을 차별화한다. 디자인이 이렇게 중요하다. 아우디가, Q8이 새삼 알게 한다.
+α. 남다른 모델을 더욱 뾰족하게 벼리는 요소는 고성능이다. Q8의 차이는 고성능을 품었을 때 더욱 명확해진다. 아우디에는 고성능 라인업인 ‘RS’가 있다. RS 배지를 단 Q8은, 그래서 더 어울린다. ‘RS Q8’의 최고 출력은 640마력, 최대 토크는 86.68㎏·m다. 제로백은 3.6초. 4.0ℓ V8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과 8단 팁트로닉 자동 변속기를 조합한 결과다. 고성능을 품었다고 해서 RS Q8이 사납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전 RS 배지 모델은 그랬다. 서스펜션을 조여 날카로운 감각을 극대화했다. 이젠 대응 영역이 넓은 서스펜션으로 양면성을 획득했다. RS Q8에 적용한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 스포츠는 주행모드에 따라 성격을 달리한다. 트랙과 일상 영역을 넘나들며 흉포함을 쉽게 빼어 쓸 수 있다. RS 배지만의 안팎 요소도 RS Q8의 매력을 조성한다. 외관은 매트 카본 패키지로, 실내는 알칸타라로 치장했다. 고성능을 테마로, 과하지 않게 럭셔리를 빚었다.
1. 태생적 한계를 기술로 극복한 유일무이한 스포츠카. ‘911 카레라’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한 문장이다. 911 카레라는 엔진을 뒤에 싣고 뒷바퀴를 굴린다. 어쩔 수 없이 조향과 무게중심에서 손해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포르쉐는 기술을 보완해 전통을 고수했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출력은 높아지고, 반면 운전은 편해졌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옛 911 카레라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911의 전통은 디자인만의 얘기가 아닌 셈이다. 누군가는 포르쉐를 고집스럽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쯤 되면 고집이라는 말 자체가 찬사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렇게 911 카레라는 60여 년간 이어졌다. 911 카레라의 발전사는 곧 포르쉐의 발전사다. 지금 포르쉐 라인업을 채우는 모든 차종은 911 카레라에서 파생됐다. 이렇게 캐릭터 확실하고 영향력 강력한 모델은 911 카레라가 유일하다. 포르쉐의 시작과 끝. 세상에 나온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 911 카레라가 쌓아 올린 위치다. 수많은 사람이 드림카로 꼽는 이유다.
+α. 911 카레라는 그 자체로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911이라고 다 같은 911이 아니다. 포르쉐는 모델 수가 많지 않은 대신 다양한 세부 모델을 펼쳐냈다. 특히 911 카레라가 세부 모델이 다채롭다. 사륜구동을 적용한 ‘4’를 비롯해, 출력을 높인 ‘S’, 다루기 편한 고성능 ‘GTS’도 선보였다. 터보 엔진이 주류를 이룬 지금 고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을 품은 ‘GT3’도 있다. 그리고 수많은 세부 트림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터보 S’가 있다. 911에서 터보 모델은 특별하다. 터보 엔진을 처음 적용하고, 후면부 펜더도 보다 웅장하게 완성했다. 출력뿐 아니라 외형에서도 확연하게 구분 지은 911. 터보라는 명칭은 터보 엔진에서 기인했다. 이젠 911 카레라도 터보 엔진을 품는다. 자연스레 ‘911 터보 S’의 터보는 상징적인 단어가 됐다. 그러니까 강력한 출력. 911 터보 S는 최고 출력 662마력, 최대 토크 81.6㎏·m를 발휘한다. 제로백은 2.7초. 전기차인 ‘타이칸 터보 S’가 2.8초다. 911 터보 S가 포르쉐에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종훈 모빌리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