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뉴욕증시에선 스테이블코인 발행 업체 써클이 주목을 받았다.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유통량 2위 기업으로 미 달러화 연동 코인 USDC의 발행사다. 써클 상장 이후 USDC를 공동 발행하는 코인베이스 역시 주가가 큰 폭으로 올랐다. 이런 모습을 본 서학개미들은 글로벌 전기차 업체 테슬라를 팔고 써클, 코인베이스 등의 주식을 사들였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허용될 것이란 기대감이 국내 증시 곳곳에 유입됐다. 다만 스테이블코인과 관련된 기술력과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정부의 정책 기대감만으로 일부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업의 펀더멘털(기초 요건)이 아닌 막연한 기대감으로 올랐던 만큼 과열 우려가 제기되자 한순간에 주가가 폭락하는 전형적인 테마주 흐름을 보였다.
정부와 여당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발행 허용 방안을 추진했지만 여전히 명확한 로드맵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시중은행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상표권 출원에 나섰지만 실제 발행을 위한 준비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의지는 명확하나 아직 기술력이 담보되지 않은 곳들이 많기에 증시 전문가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관련된 테마주 투자에 각별히 주의하라고 강조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테마주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곳은 카카오페이다. 카카오그룹의 간편결제 및 핀테크 서비스 업체로 결제 및 송금, 자산관리, 대출 등 금융과 관련된 전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카카오페이의 주가는 지난 5월까지만 하더라도 주가가 2만원대 후반에서 3만원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카카오페이 주가는 지난 6월 25일 11만 4000원까지 상승하며 이 대통령 취임 이후 1개월도 채 안돼 주가가 300%가량 상승했다. 과열 양상이 지속되자 한국거래소에선 카카오페이의 주권매매거래를 지난 6월 24, 26일 양일에 걸쳐 정지시켰다. 현재는 불꽃 같은 분위기가 잠잠해졌지만 여전히 주가가 7만~8만원 선에 머무르고 있다. 상승 재료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카카오페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상표권을 출원했다. 지난 6월 17일 원화를 뜻하는 ‘KRW’에 카카오페이를 상징하는 K, P 등의 문자를 조합한 형태의 상표권 18건을 특허청에 출원했다. KRWKP, KPKRW 등이다. 조태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대에 이용자 수 기반에 더해 선불충전금을 많이 보유한 페이먼트사의 경쟁력이 높을 것”이라며 “스테이블코인 비즈니스 모델(BM)에선 담보 자산을 보유한 만큼 운용수익을 더 낼 수 있으므로 선불충 전금 규모가 클수록 스테이블코인 담보 여력이 커져 그만큼 선불충전금이 중요할 수 있다”고 했다.
업계에선 카카오페이의 상표 등록 자체를 실질적인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거나 스테이블코인 서비스를 상용화 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카카오페이도 아직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고 선제적으로 상표권을 출원해 둔 것이라고 설명한다.
카카오페이 외 다른 카카오그룹 계열사들의 주가도 널뛰기를 반복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상표권을 출원했던 카카오뱅크도 스테이블코인 테마주로 묶여 카카오페이와 비슷하게 널뛰기 현상을 보였다. 카카오뱅크 주가는 6월 초 2만 4000원대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논의가 진행되자 큰 폭으로 상승, 6월 24일 최고 3만 875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찍었다. 이외에도 넥써쓰, 아이티센글로벌, 헥토파이낸셜, 다날, 미투온, 위메이드플레이, LG씨엔에스 등이 스테이블코인 수혜주로 묶이며 6월 한달간 90%에서 300%에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급등세에 이어 조정을 받아 하락했다. 국내 블록체인 게임사 넥써쓰는 7월 1일 4900원까지 올랐다가 현재 3000원 선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국내 스테이블코인 테마주들은 공통적으로 호재에 강하지만 악재에는 약하다는 특징을 보였다. 6월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상반기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 자체와 결제 및 운영 측면에서 잠재적인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지적하자 상승세가 멈췄다.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 사용이 보편화되면 통화에 대한 신뢰성 저하와 은행의 신용 창출 기능이 약화돼 통화정책 유효성이 제약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금융당국이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관련해 다각적이고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국 증시에서도 스테이블코인과 관련된 기업들의 급등락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 6월 5일 미국 증시에 상장된 써클은 상장 후 13거래일 만에 주가가 167.51% 올랐다. 6월 23일 주당 298.99달러까지 상승하며 최고가를 찍었다. 써클 가격이 폭등하자 서학개미들도 써클 주식을 왕창 담았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6월 18~24일 서학개미 투자자들은 써클 주식 1억 9445만달러어치를 사들였다. 써클을 담고 있는 국내 ETF(상장지수펀드)도 수익률이 좋았다. 같은 기간 KoAct 미국나스닥상장기업액티브, TIMEFOLIO 미국나스닥100액티브는 9~10% 대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6월 23일을 기점으로 주가가 조정을 받아 현재 주당 200달러 선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써클 외에 코인베이스, 로빈후드 등의 주가도 급등하는 등 스테이블코인 광풍이 여전히 미국 증시에서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이 상원을 통과했고 대형 은행, 아마존, 익스피디아 등 다양한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를 현재 2400만달러에서 2028년 2조달러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로 인한 경쟁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EU, 홍콩 등 스테이블코인 관련 제도와 법안 등이 마련되고 있고 기업들도 이에 대비하고 있다. KB증권은 스테이블코인 밸류체인 기업 13곳을 주목하라고 했다. ▲코인베이스 ▲써클 ▲로빈후드 ▲BNY 멜론 ▲소파이 ▲백트 ▲블랙록 ▲스테이트스트리트 ▲페이팔 ▲비자 ▲마스터카드 ▲쇼피파이 ▲파이서브 등이다. 스테이블코인 관련주의 높은 주가 변동성과 멀티플은 리스크 요인이지만 향후 매출 성장성을 반영한 기업가치를 따져보면 여전히 페이팔과 쇼피파이, 블랙록, 파이서브 등이 저평가돼 있다고 봤다. 그중 이익 성장성은 쇼피파이, 파이서브가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미국과 같은 수준의 상용화 및 글로벌 주도권 확보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현 정부가 관련 산업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지만 스테이블코인의 후발 주자인 한국이 산업적 주도권을 갖기는 쉽지 않다고 봐서다. 이미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기축통화 지위를 확립했고 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즉시 환매가 가능한 유동성 구조가 갖춰져야 하는데 이에 대해 국내 시장은 제약 요소가 많은 편이다.
우지연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재명 정부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정책 추진 배경엔 민간 자본 유입을 통한 내수 부양, 미국 중심의 기술 패권 대응 등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를 위해 지역화폐 형태의 시범 사업 시행 및 벤처 기업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정부 차원의 조치가 실제 소비 진작으로 이어질지는 추후 지켜볼 필요가 있으며 관련 산업은 시장의 구조적 제약으로 장기 성장성이 낮고, 정책 모멘텀에 따른 단기 테마 접근이 유효하다”고 했다. 다만 정부의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정책 방향과 가상화폐 거래량 증가에 따른 수혜를 받을 곳을 선별해 투자에 나서는 것은 유효하다고 조언한다. 또한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관련된 영업활동이 실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곳들을 잘 찾아서 중장기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게 옳다고 조언한다.
하나증권은 스테이블코인의 대장주로 NHN KCP를 꼽았다. NHN KCP는 온·오프라인 전자결제 전문 기업으로 전자결제 지급 대행, 온·오프라인 부가통신망 VAN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업체다. NHN KCP는 KRWPS, KSKOR, KSKRW 등 총 11종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한 상표권 출원을 완료한 상태며, 발행 이후 수십만 개의 가맹점을 보유한 전자결제 사업자 특성상 직접 유통까지 담당할 것으로 예상돼 그 수혜 강도가 높을 것으로 분석했다. 주식 수익지표 등을 따져봤을 때 다른 원화 스테이블코인 테마주들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봤다. 다날, 갤럭시아머니트리의 주가수익배수(PER)가 50~100배 이상으로 형성돼 있는 반면 NHN KCP는10배 미만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최재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결제 시스템 및 인프라를 갖춘 기업들의 수혜가 예상되는데 스테이블코인은 하나의 결제 수단으로 발행 이후 활용도 및 실효성 등이 중요한 만큼 기존 신용카드 결제 1위 PG사인 NHN KCP의 수혜 강도가 가장 높을 것”이라며 “지난해 영업이익을 살펴보면 타사들은 약 10억~130억원을 기록한 반면 NHN KCP는 438억원으로 압도적인 실적을 기록했고, 시장 지배력 및 실적, 밸류에이션까지 고려하면 NHN KCP가 저평가 받을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유안타증권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면 국내 IT(정보기술) 기업인 네이버(NAVER)에 주목하라고 했다.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 환전이 필요 없는 빠른 결제·송금, 제로에 가까운 수수료, 디파이 기능으로 네이버 플랫폼을 통해 전에 없던 사업과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봤다. 특히 네이버페이는 기존 VAN 수수료, PG 수수료의 원가 소멸과 스마트 컨트렉트(Smart Contract)를 통한 새로운 결제, 송금, 투자 증가, 스테이블코인 수탁 업무 및 해외송금 증가 등 새로운 수익모델 증가로 네이버 플랫폼과 계열사 전반의 수익 및 성장성 증가가 기대 된다고 분석한다. 이창영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으로 국내에도 가상자산이 기존 디지털 경제에 본격적으로 접목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결제액이 카카오페이 대비 약 3배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69%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 등의 가치 상승도 예상된다”고 했다.
[홍순빈 기자]